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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11화 (11/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11화

“긍정적으로 생각해 봐! 네가 하는 걸로 우리 모두 방과 후 필사 클럽 회원이 되었어.”

그때, 오웬이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넌 좀 조용히 해.”

제네비브는 지친 목소리로 대꾸했다.

이후 홀라당 가 버린 오웬과 다르게, 제임스와 블랑카는 그녀를 톰슨의 사무실 건물까지 바래다줬다. 신전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2층짜리 낡은 건물은 담쟁이덩굴로 뒤덮여 있었다.

“안쪽까지는 도저히 못 들어가겠어. 나, 지금 머리 안 묶어서…….”

“난 넥타이 때문에.”

“여기까지 와 준 게 어디야. 톰슨이 보기 전에 빨리 가.”

모두 교칙엔 명시되지 않은 복장 규정을 알아서 맞춰 주길 바라는 톰슨의 피해자였다. 톰슨은 그가 가진 모호한 기준을 학생들이 알아서 맞추길 강요했다.

“머리 흘러내렸어.”

블랑카가 제네비브의 머리카락을 제 핀으로 고정하여 정리해 줬다.

“토미가 하는 말은 개소리다~ 라고 생각하고!”

“알았어.”

친구들을 뒤로한 채 건물 안으로 들어선 제네비브는 창문에 비친 제 모습을 다시금 확인했다.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에 하는 최종 점검이었다.

‘머리는 이 정도면 되겠지.’

첫날엔 반묶음 머리로 들어갔는데, 톰슨은 그마저 단정치 못하다며 제네비브를 나무랐다.

그날 이후 제네비브는 여러 헤어스타일을 시도해 봤지만, 전부 30분 이상의 잔소리를 불러왔을 뿐이다. 오늘은 깔끔한 포니테일이니 제네비브는 아무리 톰슨이더라도 할 말이 없을 거라고 여겼다.

단화 위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내고, 삐뚤어진 넥타이를 고쳐 맨 제네비브는 마지막으로 교복 상태까지 확인한 후, 톰슨의 사무실 문을 열었다.

“이시스 여신이시여. 이 몰상식하고 어리석은 어린양을 구원하소서.”

문을 열자마자 제네비브를 반긴 건 진한 향초 향과 톰슨의 한숨 소리였다. 톰슨은 제네비브를 보자마자 ‘무지한 양들을 위한 기도’를 올렸다.

“……안녕하세요.”

공손하게 인사하는 것도 일이었다. 제네비브는 며칠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과 함께 준비된 성전을 펼쳤다.

수요일까지 백 장이 넘도록 필사했고, 오탈자 하나 내지 않았지만, 톰슨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학생이 겸손치 못하게. 쯔쯧.”

톰슨이 들으라는 듯 크게 중얼거렸다.

차라리 조용히 저 할 일이나 하면 좋을 텐데, 톰슨은 언제나 제네비브를 집요하게 관찰하며 어떻게서든 트집거리를 찾아냈다.

“머리 장식이 아주 화려하군요.”

곧이어 그가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했다.

“…….”

며칠 전에도 비슷한 핀을 꽂았다. 그땐 아무 말 않더니. 제네비브는 퉁명스럽게 사과하며 그가 원하는 대로 머리핀을 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토미가 뭐야? 똥슨이 어울리지.’

제네비브는 속으로 그를 연신 씹어 댔다.

이제 이틀만 버티면 된다. 제네비브는 톰슨이 하는 모든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데 최선을 다했다.

‘죽겠다…….’

제네비브는 경련이 오는 오른손을 주물럭거렸다. 필사한 걸 자랑스럽게 톰슨에게 보여 줬지만, 그는 오늘도 그저 무심하게 내일도 오라고만 말했다.

“성전 필사 나흘째! 소감은 어떠신지요.”

제네비브가 기숙사에 도착하기 무섭게 오웬이 물었다.

“……최악이야.”

저녁 식사를 마친 학생들은 휴게실에서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놀던 분위기가 대부분이던 주말과 다르게 평일은 제법 면학 분위기가 보였다.

“근데, 뭐 하는 거야?”

“다음 달에 마이언 아카데미 가잖아. 샐리 교수님이 선수 명단 정리를 부탁하셔서.”

“벌써 5월인가…….”

파인트리 서클에 소속된 다섯 학교는 학생 간 교류를 위해 각각 행사를 하나씩 준비했다.

세인트 존 칼리지의 가을 사냥 대회. 마이언 아카데미의 여름 스포츠 대회. 프레스반 아카데미의 학술 대회. 렐타 사관 학교의 봄 사냥 대회. 우드 칼리지의 겨울 스포츠 대회.

그중 가장 인기가 있는 건 세인트 존 칼리지의 사냥 대회와 마이언 아카데미의 스포츠 대회였다. 전 대륙에서 잘 알려진 행사인 만큼, 각지에서 온 귀족들과 친목을 쌓을 수 있는 진귀한 기회이기도 했다.

마이언 아카데미는 5월에 여름 대회를 주최했다. 조정, 테니스, 펜싱, 양궁, 요트, 폴로. 총 여섯 개의 종목으로 이뤄진 대회는 일주일간 진행된다.

선호도의 편차가 비교적 적은 사냥 대회와 다르게 스포츠 대회는 여름 선호도가 확연하게 높았다. 특히 마이언 아카데미의 여름은 구름 한 점 없는 마법 같은 하늘로 유명했다.

“너, 올해도 출전해?”

“아니. 올해는 응원만.”

작년 시합에서 낙마하여 생긴 부상으로 이번에 제네비브는 참여하지 않았다.

선수로 활동할 생각이 있던 것도 아니라서 큰 상실감을 느끼거나 하진 않았다. 승마 금지령을 내리려는 부모님을 설득하느라 진이 빠졌을 뿐, 폴로는 여전히 제네비브가 즐기는 취미 중 하나였다.

“너희도 가지?”

“응. 나는 조정이니까.”

제임스가 간단하게 대답했다. 하긴, 조정 클럽 주장에게 가냐고 묻는 건 당연한 질문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집에 가는 건데 거절할 이유가 없지. 신청 기한 놓쳐서 죽을 뻔했잖아.”

인기가 많은 행사답게 학생들은 신청만 하면 응원 목적으로 마이언 아카데미에 갈 수 있었다.

“……아슬아슬했지.”

제네비브가 그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정말 네가 아니었으면 쓸쓸히 칼리지에 있어야 했을 거야. 「친구여, 네 덕에 내가 살았도다」.”

블랑카가 유창한 마이언어를 덧붙였다.

“그나저나, 넌 경기하느라 제대로 못 즐겼겠다.”

그러고는 무언가 중요한 걸 깨달은 사람처럼 말했다.

블랑카의 말대로 세인트 존 칼리지의 여학생 폴로 클럽은 뛰어난 경기력으로 유명했다. 때문에 제네비브도 마이언 아카데미에 갈 때면 거의 마지막 날까지 경기를 치르곤 했다.

“지금이라도 즐길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야. 나랑 돌아다니면 되겠다.”

블랑카는 그간 제네비브가 놓친 부분을 전부 알려 주겠다고 장담했다.

클럽 활동 시간이 되자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제임스는 조정 훈련을 위해 떠났고, 블랑카는 오웬과 함께 <더 칼리지> 신문을 마무리하러 부실로 갔다.

기숙사 휴게실 한구석에 자리 잡은 제네비브는 펜싱 선수 명단을 확인했다.

“……에드워드가 없네.”

그녀가 선수 명단을 보며 중얼거렸다.

소설에서 에드워드는 펜싱에 상당한 두각을 펼쳤다. 독자적인 성격 때문에 단체전보단 개인전에서 빛을 발했는데, 펜싱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에드워드는 갑작스레 등장한 스타가 됐다.

지난날 동안 실력이 안 좋아 예선에서 탈락한 걸까 싶었지만, 펜싱 클럽 소속 학생 명단에 그가 없는 걸 미뤄 봤을 때 3학년이 되고 나서 가입한 모양이다. 2학년까진 따돌림으로 못 나가고, 황태자 책봉을 받고 나서야 재능을 펼친 것 같았다.

‘여주한테 상을 주는 장면도 인상 깊었는데.’

학생들의 괴롭힘으로 힘들어하는 여주를 위해 에드워드는 상과 함께 값비싼 브로치를 공개적으로 선물했다.

그 장면은 여주에겐 위로로 다가왔지만, 실제로는 에드워드가 남주에게 여주가 제 것이니 넘보지 말라는 은근한 견제가 담긴 메시지였다.

그걸 읽으며 좋아했던 시절도 있었다.

‘악당은 얘가 더 악당 같은데.’

제네비브는 인쇄물 속, 찰스 콜린스를 보며 생각했다.

‘하는 짓이 삼류 악당에 가깝긴 해도…… 인성 면에선 에드워드보다 얘가 더하지 않나?’

한숨만 나왔다.

조금 더 빨리 에드워드의 정체를 알았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제네비브는 기대던 벽에 머리를 쿵쿵 찧었다.

“…….”

그런데, 딱딱한 벽이 어느 순간 말랑해졌다.

생소한 감각에 위를 올려다보자 에드워드가 있었다. 그가 손바닥으로 제네비브가 머리를 박던 벽을 막아 준 것이다.

“그러면 다쳐요.”

에드워드가 제네비브의 머리를 벽에서 떼어 내고는 말했다.

“무슨 일 있으세요?”

무슨 일이 지금 눈앞에 있긴 있다. 말할 수 없을 뿐이지.

“아무 일도 아니야.”

“…….”

에드워드는 가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제네비브를 빤히 볼 때가 있었다. 지금처럼.

제네비브는 그간 자신을 길에 널린 낙엽만도 못한 존재로 여기며 마음 편히 살아왔는데, 에드워드가 이렇게 쳐다볼 때면 소설 속 주요 인물이 된 것 같았다.

머리에 적신호가 시끄럽게 울렸다.

“……앉을래? 이건 치워 줄게.”

민망해진 제네비브는 재빨리 책상 위에 놓인 선수 명단을 정리했다. 에드워드는 제네비브가 만들어 준 자리에 순순히 앉았다.

“이건 뭔가요?”

“펜싱 선수 명단. 다음 달에 마이언 아카데미에 가잖아. 교수님이 부탁하셔서 정리하고 있었어.”

“선배도 가시나요?”

“나? 당연하지. 응원만 하려고. 너는?”

갖고 온 책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던 에드워드가 잠깐 뜸을 들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신청 기한을 놓쳤어요.”

“아…….”

제네비브는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다른 행사는 참여한 적 있냐고 물어보려고 했지만 애써 말을 삼켰다. 굳이 물어봐서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럼, 가고는 싶은 거야?”

“……네?”

“여름 대회 말이야.”

제네비브는 퍽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이내 작은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했다.

“그럼, 방법은 있어.”

그녀가 들고 있던 종이를 몇 번 펄럭이며 말했다.

단체전은 올해 초부터 팀이 꾸려져 새로운 선수를 추가할 수 없다. 하지만 개인전의 경우, 선수 명단의 변경이 출발 전까지 자유로웠다.

또한 학교 대표는 마이언 제국의 방문 신청을 하지 않더라도 세인트 존 칼리지에서 자동으로 신청을 도왔고, 특히 개인전의 경우 선수 변경이 가능해 신청 기한이 따로 없었다.

세인트 존 칼리지에 존재하는 몇 안 되는 허점이었다.

“에드워드.”

“네?”

“너, 펜싱 할 줄 알아?”

하여, 제네비브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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