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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12화 (12/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12화

* * *

에드워드는 그녀의 질문에 무난한 답을 내놓으려고 했다. 가령 ‘그럭저럭해요’라든가, ‘잘 모르겠습니다’ 따위를 말이다.

하지만, 대답은 생각처럼 쉬이 나오지 않았다.

‘황자님. 살고 싶으시면 눈에 띄지 마십시오.’

“…….”

에드워드는 입을 달싹였다.

검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 재능이 있다는 건 본인이 가장 잘 알았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아야 할 사람이 명문 세인트 존 칼리지 장학생인 것도 모자라 스포츠 클럽 가입이라니. 이만큼 모순되는 일도 없을 거다.

에드워드는 펜싱 실력에 대해 말을 아끼며 다른 질문을 꺼냈다.

“근데, 어떻게 가능한 건가요?”

그러자 그녀가 마치 기밀 사항을 전달하는 낮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안 알려진 거라 절대로 들키면 안 돼. 교수님들 귀에 들어가는 순간, 내년부터 금지될지도 몰라.”

완전무결하게 보이는 절차에 허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에드워드로서는 700년이 되는 세월 동안 촘촘하게 만들어졌을 교칙에서 허술함을 찾은 제네비브가 대단해 보였다.

“……어때? 펜싱이 어려우면 양궁이나 요트도 있는데.”

자신이 잘하는 종목을 귀신같이 골라 권유하는 모습에 놀라던 한편, 그녀가 다른 종목도 추천했다.

하지만 에드워드에겐 양궁이나 요트는 클럽에 가입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지금 이 시력으로 백 미터 너머에 있는 표적을 맞히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양궁 클럽이 제 콧대에 무겁게 내려앉은 안경을 보자마자 내쫓아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요트는…… 비용을 생각하면 불가능했다. 클럽 활동이 기부와 가문의 지원으로 돌아가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밀포드 씨가 천문학적인 금액을 선뜻 내주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도리어 말릴 게 분명하다. 설령 비용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에드워드에겐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제가…… 수영을 못 해서요.”

정확히는 물이 무서웠다. 캄캄하리만큼 깊은 물 속을 생각하면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다.

“그래? 그럼 요트는 선택지에서 빼야겠네. 안전이 우선이잖아.”

에드워드는 큰 반응 없이 넘어가 주는 제네비브가 고마웠다.

결국 에드워드는 양궁 클럽까지 거절했지만, 그렇다고 펜싱 클럽에 가입하겠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펜싱 클럽은 찰스 콜린스와 그의 친구들이 터를 잡은 곳이었다. 그들은 종종 긴 나뭇가지를 들어 저를 상대로 펜싱을 연습하기도 했다. 그곳에 가면 어떻게 지낼지 눈에 훤했다.

“……역시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게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도 강요하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같이 가면 재미있을 텐데. 아쉽다.”

“……네.”

그 뒤로 제네비브는 말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안 그래도 애써 방법을 찾아 준 걸 거절해서 미안한데, 말까지 없으니 불안해졌다.

“선배, 괜찮아요?”

“어? 왜?”

“표정이 어두워져서요.”

“아아, 걱정했구나. 별일 아니야.”

제 표정을 자각하지 못한 건지 제네비브는 되레 그를 안심시켰다.

제네비브는 다시금 평소의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녹색 눈이 천천히 에드워드를 살펴봤다. 정확히는 찰스에게 맞은 뺨을 보는 것 같았다.

“…….”

민망함에 귀가 벌겋게 익는 게 느껴진다. 에드워드는 급히 제네비브의 시선을 피했다.

“많이 나았네?”

제네비브가 제 왼쪽 눈썹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눈썹 위에 깊숙하게 난 상처도 많이 아물었다. 이젠 거즈 대신 작은 테이프를 붙이고 다닐 만큼.

“네. 선생님께서 흉터는 안 남을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다행이다.”

“……선배 덕분이죠.”

초기에 치료하지 않았더라면 깊은 흉터가 남았을 거라고 했다. 에드워드가 감사를 표하자, 제네비브는 기겁하며 손을 저었다.

에드워드가 진지하게 설득하고서야 제네비브는 결국 항복했다.

* * *

‘펜싱 클럽에 가입하면 어떻겠냐니.’

괜한 짓을 했다. 안 그래도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껄끄러울 상대가 있는 곳에 들어가고 싶을 리 없었다.

‘마이언에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는데.’

찰스 하나 때문에 행사를 참가하지 못하는 에드워드의 처지가 억울했다.

제네비브는 혹시나 하는 희망으로 제임스에게 조정 팀 명단, 그것도 최후의 보루로 후보에 넣어 줄 수 없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못 한다’였다.

“정말 못 해? 너, 클럽 주장이잖아.”

“못 한다니까. 이미 올해 초에 꾸린 팀이야.”

아직 잠에서 벗어나지 못한 제임스가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그렇지만…….”

“진저, 오늘은 토미한테 안 가?”

“가는데?”

“그럼, 넥타이는 얻다 뒀어?”

“어? 나, 넥타이 어디 갔지?”

어느덧 오늘과 월요일만 지나면 성전 필사도 끝이 났다. 제네비브는 이 시점에서 토미에게 책잡힐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교과서에서 튀어나온 듯한 완벽한 모습이어야 했지만, 넥타이는 기숙사 방을 이리저리 뒤집어도 나올 기미가 안 보였다.

“타이 빌려줄까?”

“정말?”

“오웬 오라버니~ 라고 해 봐.”

오웬이 가성으로 목소리를 높게 내며 제네비브를 골려 댔다.

“저거 또 시작이네. 진저, 그냥 내 거 써.”

“고마워.”

제네비브는 오웬을 한 번 쏘아보고는 블랑카에게 넥타이를 받았다.

* * *

“아니, 왜 정리하신 거지?”

휴게실 테이블에 정리해 둔 선수 명단이 청소 직원의 눈에는 더러워 보였는지 엉망으로 모아졌다. 직원의 불필요한 배려로 결국 제네비브는 휴게실에 묶여 서류를 원래대로 배치해야 했다.

그렇게 십여 분을 허비한 후, 기숙사 건물을 나오고 나서야 과제를 챙기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제네비브는 다시금 기숙사로 돌아가 과제를 챙겨서 1층으로 내려왔다.

“어?”

입구 쪽에서 어딘가 나가려는 에드워드가 보였다.

“에드워드!”

제네비브는 반갑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갈색 머리칼이 살짝 흔들리더니 소리가 들리는 쪽을 돌아봤다.

“이제 가는 거예요?”

에드워드가 제 옆으로 조르르 달려온 제네비브에게 물었다.

“응. 과제를 깜빡하고 기숙사에 두고 갔지 뭐야. 너도 지금 나가?”

“네, 이때가 조용해요. 사람도 없고, 본관이랑 가까워서 달려가지 않아도 제시간에 도착하거든요.”

에드워드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너는 항상 이 시간에 갔어?”

“사람 만날 일 없어서 편하더라고요. 복도도 넓게 쓸 수 있고…….”

“아침마다 복도에 사람이 많은 편이긴 하지.”

고작 10분 늦게 출발한 건데 복도는 평소답지 않게 여유롭고 한적했다.

들고 있던 책을 떨어트리면 어떡하나, 걱정한 게 괜한 일일 정도였다. 아침에 이런 여유를 느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이때 수업 가는 것도 괜찮겠다.”

아침마다 늦을까 전전긍긍했던 제 모습이 우스워질 지경이었다.

“……요?”

여유로운 복도를 새삼스레 감상하던 중, 에드워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그런데 워낙 작게 말한 터라 들리지 않았다.

“……아, 아니. 혼잣말이었어요. 전 여기서 꺾으면 돼요. 선배도 오늘 하루 잘 보내세요.”

에드워드는 그 말을 뱉고는 제네비브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반대편으로 빠졌다.

“용케 안 늦었네?”

“그치?”

아침의 여유롭던 등굣길 덕분일까? 한 번 박자를 가다듬은 뒤로 꼬일 것 같은 일과가 차곡차곡 해결됐다.

샐리 교수에게 아침에 정리한 선수 명단을 넘기자, 그녀가 제네비브에게 새로운 일감을 줬다.

“제네비브, 펜싱 클럽 학생들에게 이것도 좀 나눠 주겠니?”

소중한 점심시간을 이런 곳에 투자해야 하냐고 따지기엔 어려울 몰골이었다.

샐리 교수는 하루 만에 얼굴이 핼쑥해졌다. 기간제에 말단 교수인 그녀가 타 교수들의 자질구레한 일감을 도맡은 덕분이었다.

“네……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요.”

제네비브는 샐리 교수가 건넨 서류를 보았다. 대회 중 부상에 대한 합의서였다. 제네비브에게도 익숙한 서류였다.

파인트리 서클 조약으로 인해 경기 중 학생이 부상을 입는다면 가문은 그 일을 고소해선 안 되고, 고소 절차를 밟으면 즉시 퇴학 조치와 함께 파인트리 서클 소속의 어떤 학교로도 재입학이 불가능하며, 그 대신 학교는 학생들의 회복과 재활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보아하니 3학년 펜싱 부원에게 주면 곧바로 끝날 일이었다.

“세상에, 너는 왜 볼 때마다 새로운 일거리가 생기는 거 같지?”

블랑카가 제네비브가 테이블 위에 올려 둔 두꺼운 서류 봉투를 보며 순전히 감탄했다.

“이건 프란츠만 찾으면 끝나.”

제네비브는 수프에 빵을 찍어 먹고는 짧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서류 봉투를 교과서 사이에 끼웠다.

프란츠는 펜싱 클럽 소속의 3학년생이었다. 1학년 때 같은 공용어 수업을 들어 가볍게 안면은 튼 사이였다.

“늦어서 미안. 제임스는 어디 갔어?”

뒤늦게 도착한 오웬이 블랑카의 옆에 앉았다.

“맙소사. 오웬, 대체 친구에게 얼마나 관심이 없는 거야? 저번 달부터 여름 대회 때문에 점심은 조정 팀이랑 따로 먹잖아.”

“아, 맞다. 요즘 4월호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네…….”

“<더 칼리지> 준비는 잘되어 가?”

<더 칼리지>는 오웬과 블랑카가 발간하는 교내 신문이었다.

물론 시중에서 판매되는 ‘진짜 신문’처럼 매일 발행되지는 않고 매달 20일에 발행된다. 비평이나 비난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고, 대부분 교내 일정이나 행사 등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졸업 이후에도 정계든 사업에서든 만날 사람들이니 굳이 얼굴 붉힐 거리는 만들지 않겠다는 게 두 사람의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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