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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13화 (13/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13화

“뭐, 나름대로. 이번 달은 문제 없는데 진짜 문제는 5월부터지. 선수 인터뷰할 거 생각하니 벌써 머리가 아프다……. 블랑카, 너 사냥 대회랑 겨울 스포츠 대회 때 다 참가해서 내가 혼자 한 바람에 여름 대회는 네가 9할쯤 하기로 한 거 잊지 않았겠지?”

블랑카가 세인트 존 칼리지와 렐타 사관 학교의 사냥 대회, 그리고 우드 칼리지의 겨울 스포츠 대회까지 참가한 덕분에 거의 모든 행사 기사를 혼자서 작성했던 오웬이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말했다.

“헉…….”

출전을 대가로 여름 대회 때 <더 칼리지> 일감을 절반 이상 도맡기로 약속했던 블랑카가 이제야 떠오른 듯 입을 틀어막았다.

“내가 그걸 까먹었네…….”

마이언 아카데미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떠올린 블랑카가 미안한 미소를 띤 채 제네비브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내가 승자 인터뷰 하나 구해 올게.”

제네비브는 약간의 허세를 섞어 말했다.

보통 승자 인터뷰는 구하기 어려웠다. 승자 대다수가 재학하는 학교의 신문이나 대형 신문사와의 인터뷰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우리 학교에서 많이 이겼으면 좋겠다.”

블랑카가 한숨을 푹 쉬었다.

세인트 존 칼리지가 강세인 종목은 딱 정해져 있다. 폴로 여자부와 남자 조정 팀. 두 종목은 학교의 자부심이긴 하나, 냉정하게 말하면 신선하지 못했다.

“펜싱 클럽은 왜 안 들어오는 거야.”

어느새 수프가 바닥을 보였는데도 프란츠가 안 보이자, 제네비브는 초조하게 말했다. 계획대로라면 프란츠에게 서류를 넘기고 손을 떼는 거였지만, 도대체 어디 있는지 코빼기도 안 보였다.

“제임스처럼 점심 따로 먹는 거 아니야?”

“그럴지도 모르겠네. 펜싱장에 한번 가 보는 건 어때?”

친구들의 의견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었다.

제네비브는 기왕 펜싱 클럽으로 가는 길에 찰스 무리를 눈에 익히기로 결심했다.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니까.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이라지 않나.

“……뭐지?”

그런데 펜싱 훈련장에 가까워질수록 학생 수가 늘어나는 기분이었다.

우연히 같은 방향으로 가는 줄 알았던 이들마저 펜싱장으로 향하는 걸 보았을 때, 제네비브는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졌음을 예감했다.

“……장학생이랑 싸운대!”

빠르게 제네비브를 스쳐 지나간 2학년생이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

‘장학생?’

불안한 기운이 엄습했다.

펜싱장. 장학생.

지금 펜싱장에 있을 법한 장학생은 한 명이었다.

“설마…….”

제네비브는 서둘러 훈련장으로 달려갔다.

* * *

펜싱장은 입구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비정상적인 인파였다. 누군가 ‘장학생’이란 단어를 외치지만 않았더라면 공개 훈련이 시작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공개 훈련은 마이언 아카데미로 떠나기 일주일 전, 점심이 아닌 마지막 교시에 진행된다.

“잠시만, 잠시만…… 잠깐 지나갈게.”

제네비브는 인파 속에 몸을 구겼다. 학생들이 그녀를 향해 불만을 토로했지만, 그리 큰 타격을 입히진 못했다.

설령 에드워드가 이곳에 없다고 해도 그녀에겐 프란츠를 만나야 하는 적당한 핑계가 있었다. 제네비브는 제 품에 안겨 있는 교과서 (더 정확히는 그 사이에 끼워 둔) 동의서를 잠시 보았다.

관객석을 개방하지 않은 탓에 인파는 전부 경기장에 몰렸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본래 클럽 관계자가 아닌 이상, 경기장 출입이 제한되는 걸 생각하면 비정상적인 인파였다. 펜싱 경기가 진행되는 피스트에 가까워질수록 ‘오!’나 ‘와!’ 같은 환호성이 들렸다.

몇 걸음을 더 걸어가서야 제네비브는 경기장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앞줄 남학생들의 어깨 사이로 피스트가 보였다.

바우트가 진행 중이었다.

두 선수가 맞붙고 있었다. 오른편 선수는 검은색 하의를 입었고, 왼편 선수는 정석대로 흰색으로 맞춰 입었다.

“……스! 찰스! 찰스!”

두 선수 모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탓에 누가 경기 중인지 몰랐지만, 제 쪽에서 복창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왼쪽 선수가 찰스일 거라고 여겼다.

응원하는 선수의 사기를 북돋는 데 확실한 방법이긴 했다. 상대방을 위축시키는 무례한 관람이기도 했지만.

“에드너드, 쟤 지금 뭐 하냐?”

제네비브는 상대 선수가 에드워드가 아니길 간절하게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이 ‘에드너드’라고 야유하는 걸 듣고 말았다.

기록원과 계시원이 앉은 테이블엔 득점판이 있었다. 보아하니 이번 게임은 두 번째였고, 첫 번째 바우트는 찰스가 이겼다고 나와 있었다.

12대4.

누가 봐도 경기의 주도권은 찰스에게 있었다.

3분 동안 점수를 더 내거나 15점을 선취하는 사람이 이기는 펜싱의 특성상 에드워드가 남은 시간 내에 역전할 확률은 낮았다.

‘……왜 원작에서 펜싱을 골랐는지 알 것 같네…….’

펜싱에 문외한인 제네비브가 보더라도 에드워드의 움직임과 자세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하지만 제네비브는 지금 그가 기량을 전부 발휘하지 않고 있다는 기분을 지우지 못했다.

에드워드는 찰스의 공격을 방어하고, 칼을 몇 번 맞댔지만 먼저 공격하는 법이 없었다. 공격을 시도하려는 모습조차 안 보였다.

공격 우선권을 획득하는 게 중요한 종목이건만, 에드워드는 자기 자신을 방어할 때를 제외하면 도통 움직이지 않았다. 소심하게 맞닿은 칼은 공격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에드워드가 공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경기를 관장하는 주심마저 찰스의 패거리였던 건지, 겨우 내지른 공격은 무효 처리가 되었다.

‘왜 멈추지?’

그때였다.

찰스가 갑자기 타임아웃을 요청했다. 흐름을 타는 선수가 타임아웃을 요청하는 경우는 드문 일이었다. 특이한 행동에 경기장 내부가 술렁거렸다.

찰스가 마스크를 벗었다. 그러고는 피스트 반대편에서 솜을 고르는 에드워드를 향해 외쳤다.

“에드너드. 나 이기면 가입하게 해 준다니까?”

유치한 도발에 경기를 관람하던 학생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허…….”

기가 찼다. 지금 이걸 입단 테스트라고 하는 건가?

입단 테스트는 클럽마다 다르지만, 반드시 필요한 사람은 몇 명 있다. 클럽 감독과 코치, 교수, 그리고 클럽 주장이다. 하지만 이곳엔 아무도 없었다. 이건 입단 테스트가 아니었다. 그저 질 나쁜 괴롭힘이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잠깐 이마를 짚은 제네비브는 앞줄 학생들의 틈 사이를 파고들었다.

암묵적으로 넘지 않은 선을 넘은 제네비브는 찰스나 그 무리로 향하는 대신, 중간 테이블에 앉은 기록원 (을 맡은 학생) 에게 다가갔다.

“저기, 경기 중에 들어오면 안 됩니다.”

에드워드를 향해 조롱 섞인 야유를 보내던 남학생이 제네비브에게 말했다.

“그래? 근데, 샐리 교수님이 이걸 전하라고 해서 말이야.”

제네비브는 봉투 속 합의서를 내보였다.

“주장님께 전해 드리겠습니다.”

제목과 내용을 확인한 남학생은 동의서를 받으려고 했지만, 제네비브는 서류를 다시 가져가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내가 직접 전달할게. 프란츠는 언제 와?”

“……알겠습니다. 보통 40분 즈음에 오십니다.”

그런데 용건이 끝난 것 같은 제네비브가 떠나지 않자, 기록원은 그녀를 멀뚱하게 바라보았다.

“지금 입단 테스트하는 거야?”

제네비브가 순진한 눈망울을 꾸며 내며 물었다.

워낙 괜찮은 외모인지라 남학생은 발그레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러고는 어떻게 된 상황인지 신나게 떠들어 댔다.

“에드너드가 갑자기 펜싱 클럽에 가입하고 싶다는 겁니다. 장학생 따위가 클럽에 가입한다니…… 솔직히 말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콜린스가 꿈 깨라고 교육해 주고 있습니다. 하핫, 자세는 그럴싸한데 한다는 공격도 저 같고. 우리끼리 하는 말인데, 솔직히 장학생이 클럽에 가입하려는 거 너무 염치없지 않습니까? 우리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건데……. 공짜로 다니면서 부끄러움도 없지.”

오랜만에 듣는 헛소리였다.

남학생이 눈치 없이 떠드는 동안, 뒤쪽에선 경기가 재개되었다.

“그 말인즉, 지금 애 하나 놀리겠다고 이러고 있단 거네?”

“…….”

날카로운 반응에 남학생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경기장에 다른 사람 들이는 건 허락 받은 거니? 관람석도 아니고…….”

제네비브는 진심으로 걱정하듯 말했다. 관계자가 아닌 이가 경기장 내부에 출입하려면 적당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얘네한테 그런 게 있을 리가.’

아무리 있는 집 자식들이라고 해도 학교 시설을 남용해선 안 됐다. 특히 여름 대회가 코앞이었기에 학교는 정보 유출을 극도로 꺼렸다. 그야말로 멍청한 이들이 저지른 멍청한 실수였다.

이들이 모든 걸 에드워드 탓으로 돌릴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닿은 제네비브는 문제가 생기기 전에 교수님께 미리 이 일을 전하여 해결하기로 결심했다.

제네비브의 말을 들은 남학생은 그제야 무언가를 깨달은 양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기록원 자리에서 일어나선 어디론가 헐레벌떡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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