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19화
“아는데, 그게 왜?”
잘됐다고 축하한 게 바로 어제의 일이었다. 제네비브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이야기의 요점이 뭐라는 건지.
오데인 교수의 ‘2학년까지는 만점을 못 받는다’라는, 철통같은 원칙이 깨진 기념으로 파티라도 열리나?
“그게 왜냐니. 2학년이 만점을 받았다니까? 다들 조작이 아니냐고 말이 많아.”
레일라가 답답한 듯 말했다.
제네비브는 두 사람이 장난이라도 치나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의 눈에서 진심을 읽어 내기란 쉬웠다.
“……확실한 거야?”
“그래! 무려 오데인 교수라니까? 그런데 2학년이 만점? 말도 안 되지!”
“정말 잘 쓴 거면 어떡하게?”
제네비브는 확실하지 않으면 말을 퍼트리지 말라는 의미로 힘주어 말했다.
“아무리 잘 썼다고 해도, 2학년이 만점을 받는다고? 그동안 그 애보다 잘 쓴 사람이 없었을 리가 없잖아.”
모처럼 귀족 화법을 썼건만, 둘은 이미 조작이라고 단정 지은 건지 제 할 말을 이어 갔다.
“내가 전에 에드윈이랑―.”
“에드워드야.”
제네비브는 짜증을 애써 누르며 잘못된 부분을 정정해 줬다.
“그래, 에드워드. 아무튼, 걔랑 얘기해 봤는데 애가 좀 음침하더라. 말하는 것도 이상하고…….”
레일라가 들뜬 목소리로 언젠가 에드워드를 만났던 이야기를 했다.
“오데인 교수님이 성적을 조작한 게 확실해?”
“……어? 아니?”
제네비브는 대화가 이상하게 흘러가기 전에 화제를 원상태로 돌려놓았다.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에드워드를 감싸면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독이 된다.
“잘 모르는 일이라면 말을 아끼는 게 좋을 텐데.”
자칫하면 시비조로 들릴 수 있어, 제네비브는 어조와 표정에 신경을 기울였다. 최대한 염려하는 목소리와 표정을 연출하자, 그런대로 정말 그들을 걱정해서 하는 말처럼 보였다.
에드워드의 몇 안 되는 인간관계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레일라는 어떻게든 이야기를 캐내려고 했지만, 제네비브가 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들려주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닫고는 강의실을 나갔다.
제네비브는 두 사람이 떠나고 나서야 레일라가 한 말을 곱씹었다.
“…….”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에드워드가 통치학 수업에서 만점을 받았다는 사실을 못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강의실을 나와 복도를 걷자, 용감한 몇 명이 제네비브에게 다가와 조금 전 레일라가 했던 것과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지난 금요일에 에드워드가 그녀의 테이블에서 저녁을 먹었으니, 다른 사람보다 전말을 잘 알 거라는 결론을 도출한 덕분이었다.
사건의 경위를 몰라도 괜찮았다. 에드워드의 단점 하나만 들어도 만족하고 돌아갈 이들이었다. 제네비브가 ‘그럴 만해서 받았겠지’라고 생각을 전환시키는 것도 한두 번이었다.
한참 비슷한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던 제네비브는 결국 사람들을 피해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다. 프란시스 부인이 감시하는 이곳에서 그녀에게 말을 걸 대담한 이는 없을 거다.
“하…….”
제네비브는 이마를 짚었다.
이런 소문이 퍼져서 좋을 건 없었다. 에드워드의 흑화만 앞당기게 되지 않을까?
소문은 오늘 시작됐지만, 제네비브는 이 소문이 곧 제국 전체를 뒤덮을 거라는 걸 알았다. 못해도 주말 즈음에 도착하는 학생들의 편지나 본가로 돌아가는 학생들이 말을 퍼트리고 다닐 테니까.
더 나아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평민이었다. 물어뜯어도 별 탈 없는 이 재미나고도 억울한 이야기를 어떻게 함구하겠는가.
‘죽겠다.’
제네비브는 도서관 E구역 책상에 엎드렸다.
“어으…… 힘들어.”
그때, 오웬이 평소보다 눈 밑이 퀭한 상태로 도서관에 들어왔다.
“대체 왜 다들 안 믿는 거야? 오데인 교수가 성적 조작? 차라리 토미가 신흥 종교인이라는 게 더 그럴 법하지.”
의자 위에 풀썩 앉은 오웬이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도 대피하러 왔구나.”
“당연하지. 프란시스 부인이 있는 이곳에서 누가 감히 말을 걸겠냐?”
둘은 속닥거렸지만, 프란시스 부인은 그마저도 거슬렸는지 작게 헛기침했다.
오웬은 제 주장에 힘을 실어 주는 프란시스 부인의 기침 소리를 들으며 자랑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게다가, E구역엔 사람도 없잖아.”
“그건 그래.”
제네비브는 교수들이나 찾을 법한 책들을 쭉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왜 저래?”
곧이어 블랑카와 제임스마저 지친 표정으로 등장했다.
“보아르네 양!”
책장에 책을 꽂던 프란시스 부인이 작게 소리쳤다.
“어머, 죄송해요.”
블랑카가 작게 웃음 띤 얼굴로 사과했다.
“다들 왜 저러는 거야?”
다시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온 블랑카가 똑같은 질문을 반복해 물었다.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둥, 단체로 정신이 나간 것 같다는 둥,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던가……!”
“심심해서 그러는 거지.”
제임스가 얼굴에서 피곤함을 지우고 짧게 말했다.
냉혹할 정도로 잔인한 말이지만 사실이었다. 포가츠 아카데미의 사건 이후, 성적 조작은 이제 누군가의 망상이 아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되었으니까.
세인트 존 칼리지 학생들은 그저 퇴학 예정인 에드워드를 구경하는 데 재미를 느꼈을 뿐이다. 오데인 교수가 아무것도 없는 평민 장학생을 편애할 이유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무료함을 풀어 주는 소문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E구역에 발 한번 들인 적 없는 학생들은 넷에게 다가오고 싶은지 주변을 서성거렸지만, 프란시스 부인의 감시 아래에 입만 다셔야 했다.
그야말로 완벽한 피난처였다. 제네비브는 미리 이곳에서 만나자고 한 게 아닌데도 이곳에 온 친구들이 새삼 신기했다.
“너, 지금 통치학 수업 있지 않아?”
책장 하나 너머에 있는 D구역에서 말소리가 넘어왔다. 제네비브는 대화를 엿듣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후 내용은 그녀의 모든 신경을 가로챘다.
“갑자기 취소됐어. 오데인 교수님이 총장님과 면담하러 가셨대. 그 조작 문제 때문인 것 같은데?”
“오……. 결국 성적 조작이 사실이란 거네?”
말소리는 점차 작아졌다.
옆에 앉은 블랑카가 금방 넘어갈 거라고 했지만, 한번 번진 소문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 법이다.
“……에드워드가 걱정돼.”
제네비브가 작게 말했다.
* * *
로커 룸에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방과 후 진행되는 훈련인 만큼, 이미 모든 클럽 부원이 성적 조작 사건에 대해 전해 들었다.
이는 당사자인 에드워드도 포함되었다.
“…….”
에드워드는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를 생각했다.
지금껏 그를 본 학생들은 ‘쟤가 걔래.’라고 말하며 쑥덕거렸고, 오데인 교수의 부재로 오후 수업이 취소되자 그를 향한 시선은 더더욱 또렷해졌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이 말도 안 되는 소문의 출처를 알았다.
머리칼을 말리던 에드워드는 옆에서 옷을 입는 찰스를 흘겨봤다. 휘파람을 불며 단추를 채우는 찰스는, 조바심 내던 며칠 전과 달리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에드워드는 어제, 점수를 확인하던 제 주변에 찰스가 있다는 걸 기억했다.
‘……내가 어쩌다 저런 애랑 엮여서.’
에드워드는 입 안쪽 여린 살을 씹었다.
“성적 조작은 무조건 클럽 퇴출인데.”
사물함을 닫은 크리스토퍼가 히죽 웃으며 찰스에게 말했다.
“아, 퇴학 아니었어? 포가츠 꼴 나지 않으려면 제대로 처벌해야 할 텐데.”
찰스가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에드워드는 참지 못하고 그 사이에 말을 얹었다.
“네가 이런다고 뭘 얻는지 모르겠어.”
“그건 두고 봐야지.”
찰스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그와 같은 공간에 계속 있다간 정신이 어떻게 될 것 같았다. 에드워드는 속으로 기도문을 외며 재빠르게 옷을 갈아입었다.
“에드워드! 코치님이 부르셔.”
가방을 들고 로커 룸을 나가기 전, 프란츠가 들어와 말했다.
“네.”
알렌 코치는 시간에 예민했다. 시간 약속을 어길 시 신경질을 부리기에 에드워드는 신발을 슬리퍼처럼 구겨 신은 채로 서둘러 코치실로 달려갔다.
알렌 코치의 사무실은 스미스 감독의 사무실보다 좁았다. 벽 한 면엔 그가 여태 학교에서 받은 각종 감사장과 상들이 자랑스럽게 전시돼 있었다. 받은 연도와 사유도 다양했다.
그는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 그래. 앉아 봐라.”
어두운 분위기를 각오하고 들어온 것과 다르게 알렌 코치는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홀가분한 것처럼 보였다.
“왜 불렀는지는 알겠지? 아무리 네 실력이 뛰어나도, 논란이 있는 학생을 학교 대표로 내세울 수 없다는 게 감독님과 내 생각이야. 뭐, 확정 나기 전까진 퇴출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찰스를 다시 주전으로 올리기로 했다.”
“네.”
에드워드는 그 결정에 반발하거나 철회해 달라고 간청하지 않았다. 그저 어쩐지 일이 잘 풀렸다,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럼…….”
“근데, 오데인 교수한테 뭐라고 했길래 그 양반이 만점을 준 거냐? 약점이라도 잡았어? 하하.”
돌아가려고 입을 떼려던 차, 알렌 코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그래, 그래. 안 했겠지.”
알렌 코치는 말하지 않아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내년부턴 이런 일 만들지 마. 클럽 퇴출까진 막았다만…….”
퇴학은 아니었으면 좋겠네. 알렌 코치가 허허 웃으며 덧붙였다.
“……가 보겠습니다.”
에드워드는 기분 나쁜 티를 굳이 숨기지 않았다. 문을 세게 닫지 않으려고 온 인내심을 끌어모은 후, 깊게 심호흡을 했다.
기숙사 건물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전부 제 이야기를 할 것 같았다.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저를 지나치는 사람을 못 본 체하며 기숙사 층으로 올라갔다.
‘퇴학하게 되면, 다시 그곳으로…….’
계단을 하나 오를 때마다 불안은 증폭되었다.
그런데 가장 구석진 곳에 있어 늘 한산하던 복도에선 낯선 인기척이 느껴졌다. 제 방문 앞에 한 사람이 서성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