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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20화 (20/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20화

“……선배?”

“왔구나!”

에드워드의 목소리를 들은 제네비브가 안심했다는 투로 말했다.

“여긴, 왜…….”

“괜찮나 확인하려고.”

맑은 녹색 눈이 에드워드의 얼굴을 구석구석 뜯어 봤다.

그녀의 걱정이 읽혔다. 제네비브가 단정한 눈썹을 찌푸린 채 안절부절못하며 그의 상태를 분석하는 것처럼 찬찬히 쳐다봤다.

“…….”

자신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괜찮아?”

따뜻한 목소리가 물었다.

“……힘들었어요.”

에드워드는 어린아이가 투정 부리듯 이야기했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전부 제가 했다고 하니까…….”

“…….”

“주전에서 빠졌어요. 퇴학당할지도 모르고요. 여러모로 많이 도와주셨는데…… 죄송합니다.”

말은 점점 길어졌다. 에드워드는 왜 자신이 구구절절 이야기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그때, 제네비브가 어색하게 손을 들어 그의 등을 천천히 쓸어 줬다. 규칙적으로 토닥이는 작은 손길은 다정했다.

“넌 잘못한 거 없잖아.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야. 그걸 믿는 사람이 이상한 거고.”

에드워드는 물어보고 싶었다. 자신이 뭐라고 소문마저 무시한 채 저를 신뢰하는지. 목이 메는 기분이었다.

“내가 도와줄게.”

제네비브가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뿐이더라도 좋았다.

그거면 충분했다.

* * *

“도울 방법이 있어? 주말만 지나면 퇴학시키라고 난리일걸.”

희한하게 이 넷 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사람은 제임스였다.

캡틴인 그가 조정 클럽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거야!’보단 ‘계속 이따위로 하면 조정 팀 연패의 연패가 다른 의미의 연패가 되겠어!’라고 말하며 동기 부여해 주는 건 알았지만, 막상 당하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제임스의 말은 타당했다. 머릿속에 묻어 두고만 싶었던 불편한 진실을 제임스가 끌어냈다.

“물론, 우린 네가 말한다면 최대한 돕겠지만…… 윽, 왜 이렇게 달아?”

블랑카가 제네비브가 만든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인상을 썼다.

“설탕을 넣어 봤어. 오웬이 차가 쓰다고 해서.”

“하여튼, 별 쓸데없는 의견만 준다니까. 진저, 난 옛날 차가 더 좋아.”

과자랑 균형이 맞았단 말이야. 제네비브가 다음번엔 설탕을 넣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나서야 대화는 다시 이어졌다.

그렇게 평일, 야밤에 제네비브가 소집한 셋은 휴게실에 앉아 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몇 시간 전만 해도 에드워드에게 당당하게 돕겠다고 선언한 게 무안해질 정도로 뾰족한 수는 안 보였다.

“홍차 다시 끓이러 갈게.”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동안, 나오라는 아이디어는 안 나오고 준비한 차만 동이 났다.

“야, 야. 같이 가. 이번에 잘 보고 배워.”

제네비브가 찻주전자를 들고 일어서자, 오웬이 기겁하며 뒤를 따라갔다.

“개미한테 먹일 생각이야? 차라리 맹물을 마셔라. 아니, 찻잎을 왜 그렇게 낭비해? 그만큼 넣으라는 뜻이 아니잖아.”

답답해진 오웬이 제네비브가 덜어 낸 찻잎을 다시 통에 담으며 말했다.

“제네비브. 에드워드를 돕고 싶은 건 알겠지만 방법이 없어. 지금으로선 별다른 입장 표명 없이 일이 조용히 지나가길 바라는 게 최선이야.”

“나도 알아. 하지만…….”

제네비브는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한숨을 쉬었다.

“…….”

그때, 주방 한쪽에 청소용으로 아무렇게나 놓인 <더 칼리지>의 3월호가 눈에 들어왔다.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스쳤다.

“……있어.”

“뭐가?”

“방법이 있다고.”

제네비브가 오웬의 손을 붙잡았다.

“네 도움이 필요해.”

제네비브는 연신 의아한 표정을 짓는 오웬을 끌고 휴게실로 (결국 오웬은 제네비브에게 차 우리는 방법을 못 가르쳤다) 돌아갔다.

찻주전자를 소리 나게 테이블 위에 올린 후, 제네비브는 제 친구들에게 계획을 설명했다.

해명하더라도 트집을 잡힐 거고, 하더라도 찾아보는 사람은 없을 거다. 에드워드의 평판을 끌어내릴 새로운 사건이 알려지는 게 아닌 이상, 그의 해명이나 옹호는 전부 묻힐 게 확실했다.

“……그게 제일 큰 문제야.”

제네비브의 설명을 들은 오웬과 블랑카가 동의했다.

제아무리 <더 칼리지>가 신문의 기능 중 절반을 겨우 채우는 취미 생활이라 해도, 3년 동안 집필한 덕분인지 두 사람은 제네비브가 하는 말을 곧바로 이해했다.

“그래서, 그걸 이용하려 해.”

“<더 칼리지>를 통해서?”

“맞아.”

제네비브는 설명하면서도 오웬과 블랑카가 도와줄지 확신이 안 섰다. ‘다른 학생 비난 금지’라는 조건을 아슬아슬하게 빗기는 계획이니까.

제네비브의 계획인즉 이랬다.

현재 논란의 중심에 선 에드워드의 통치학 과제와 만점을 받은 다른 사람의 과제를 <더 칼리지>에 실으려는 것이다. 비난하는 척, 어떻게든 모두가 읽게 하여 마지막엔 ‘에드워드가 잘 썼다’라고 인정하게끔 여론을 형성하고자 했다.

“아무튼, <더 칼리지>에 에디의 과제를 싣자는 거지?”

“……어려운 부탁인 건 알아.”

제네비브가 불안하게 말했다.

둘은 에드워드와 많이 친하지도 않았다. 주말에 그에게 보여 줬던 호의도 자신을 통해 알게 된 사람이니만큼 적당히 지킨 예의였을 거다.

그런데 굳이 <더 칼리지> 마감을 늘리는 귀찮은 일을 떠맡을 이유가 없었다. 제네비브는 여차하면 정치 철학 과제를 꺼낼 생각이었다.

“오데인 교수님이 곧 공개한다고 하지 않았어?”

세인트 존 칼리지 내에서 오데인 교수가 과제 전문과 평가 기준을 공개할 거라는 소문을 들은 제임스가 순진한 소리를 했다.

“당사자가 공개하면 효과가 떨어져. 이편이 나아.”

“그래?”

“가뜩이나 재미 보고 있는 와중에 흥을 깨트리는 거잖아. 게다가 본인이 직접 공개하고 설명하는 거니만큼 일단 의심부터 하겠지.”

제임스가 여전히 이해를 못 하자, 오웬이 빠르게 설명했다.

“<더 칼리지>를 다시 쓸 거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지지만…… 알았어. 누구 욕하는 것도 아니고, 제목은 에디를 비난하는 투겠지만 고작 신문 한 면이잖아. 이걸로 화내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야말로 켕기는 구석이 있다는 소리겠지.”

가령, 소문을 가장 먼저 퍼트린 사람이라던가. 제네비브는 생각했다.

“우리가 언제부터 마감일 전에 끝냈다고…….”

블랑카가 우는지 웃는지 모르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뭐. 잘못될 것도 없지.”

잠이야 이틀 정도 반납하면 되는 거고. 오웬이 머리카락을 질근 묶었다.

“제네비브, 왜 그렇게 놀란 표정이야?”

“……그게, 너무 선뜻 나서 줘서.”

제네비브는 오웬과 블랑카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나를 뭐로 보는 거야. 그럼, 브라이언 교수님 과제 빚은 이걸로 갚는 거다?”

오웬이 별일 아니라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자, 빨리 일해야지. 오데인 교수님한텐 누가 갈래?”

블랑카가 손뼉을 치며 이목을 집중시키곤 말했다.

“……지금은 퇴근하지 않았을까?”

제임스가 번거로운 사실을 알려 줬다.

교수진의 절반 정도는 칼리지 내부에서 생활했고, 나머지 절반은 빌젠가(교수들이 거주하는 타운하우스가 밀집한 거리) 에서 지냈다.

그리고 오데인 교수는 후자에 속했다. 또한, 이 시간에 외출증을 받아 오는 건 불가능했다.

블랑카는 오늘은 틀만 대강 구상하자고 제의했으나 제네비브의 생각은 달랐다. 그간 곁에서 <더 칼리지>의 발행 과정을 지켜본 결과, 적어도 19일 밤에는 모든 게 끝나야 했다. 여유롭게 내일 오전까지 기다리기엔 위험 요소가 너무 많았다.

과제가 미리 공개된다면?

신문이 제시간 안에 못 나온다면?

그러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

“내가 확인해 볼게.”

제네비브가 말했다.

“알겠어. 그럼, 나랑 오웬은 미리 구상하고 있을게. 신문부실에서 만나자.”

저녁이 지나 하루를 슬슬 마무리할 때였다. 그런 만큼 이 시간에 학생이 연구실을 찾아가는 건 엄청난 무례를 범하는 거였다.

무릇 예법을 익힌 귀족 가문의 여식 혹은 예의 바른 모범생이라면 다음 아침 해가 뜰 때까지 기다리는 게 맞았다.

하지만, 한시가 급한 와중에 예의를 차릴 정신은 남아 있지 않았다.

‘에드워드한테 말해 놓는 게 좋겠지.’

그를 위한 기사라고 해도 표면적으로 봤을 때 기사의 구성은 악의적일 거다. 미리 알려 줘서 주의를 시키는 게 맞았고, 그가 싫다면 하지 말아야 했다.

휴게실을 나온 제네비브는 남자 기숙사로 향하는 계단을 보았다. 아까 그랬던 것처럼 몰래 올라가고 싶었지만, 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기숙사 관리인이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돌아와서 알려야겠다.’

제네비브는 빠른 걸음으로 오데인 교수의 사무실에 있는 본관으로 갔다. 퇴근하고도 남을 시간이긴 해도 혹시나 하는 희망 때문이었다.

향하는 동안 제네비브는 계획을 재검토했다.

웬만한 학생의 과제라면 역효과가 날 테지만, 에드워드의 과제는 그럴 리 없었다. 작중에서도 독자가 질릴 만큼 천재라고 언급되었고, 오웬의 말마따나 ‘그 오데인 교수’가 만점을 준 과제이니까.

흑막이 된 소설 속 에드워드 역시 다양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편법을 쓰는 사람은 아니었다. 제네비브는 그런 에드워드를 믿었다. 그의 능력을 믿었다.

하지만.

“미치겠네…….”

예상대로 오데인 교수 사무실 문은 굳게 잠겼다.

제네비브는 이마를 짚었다. 예상한 일이었지만 맞다는 걸 확인 받으니 착잡해졌다. 제네비브는 복도에 사람이 없음을 몇 차례나 확인한 후, 그대로 사무실 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이럴까 싶어서 챙기긴 했는데.”

작게 한숨을 쉰 다음, 구멍 안으로 실핀을 쑤셔 넣었다.

단 한 번도 교수 사무실에 이런 짓을 저지를 줄은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병동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사무실 문을 따고 있자니 범죄에 공모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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