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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22화 (22/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22화

“돌아왔구나.”

“토미한테 걸린 줄 알았어.”

신문부실 안으로 들어가자, 오웬과 블랑카가 제네비브를 반겼다.

중앙에 긴 소파 두 개가 테이블을 가운데 둔 채 서로 마주 보고 있었고, 테이블 위엔 여러 호의 <더 칼리지>가 널브러졌다.

“제임스는?”

“컨디션 관리한다고 먼저 들어갔어.”

“과제는 받았어?”

“응. 여기.”

봉투는 오웬의 손에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와……. 그럼, 진짜 빌젠가까지 간 거야?”

오웬은 미묘한 눈으로 서류를 한 번, 제네비브를 한 번 봤다. 마침 오데인 교수도 비슷한 얘기를 했기에 제네비브는 마음이 영 불편해졌다.

“빨리 읽기나 하자.”

주제를 돌린 제네비브는 페이퍼 나이프로 봉투를 개봉했다. 20페이지에 달하는 에드워드의 과제가 책상 위로 우수수 흩어졌다.

제네비브는 과제를 3등분으로 배분했다.

그렇게 셋은 과제 읽기와 분석에 착수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확실히 잘 썼어. 내가 2학년 때 쓴 거랑 비교하면 이건 논문인데.”

다 읽은 오웬이 감탄했다.

“이걸 읽긴 하고 소문을 퍼트린 걸까?”

블랑카가 의아한 목소리로 의문을 표했다. 제네비브도 그 말에 동의했다. 과제가 아니라 교과서에 있어야 하는 수준의 글이었다.

잠깐 머뭇거린 제네비브가 입을 열었다.

“내가 통치학 만점 받은 과제도 아이흘러를 기반으로 쓴 거라, 내 글을 옆에 붙이는 걸 생각해 봤는데. 어때?”

에드워드의 과제를 읽기 전까지만 해도 제네비브는 자신의 과제 정도면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부 읽고 나니, 대체 왜 오데인 교수가 자신에게 만점을 줬는지 이해가 안 될 만큼 초라해 보였다.

“어. 이거, 네 교과서에 붙어 있던 거 아니야?”

제네비브가 꺼낸 과제가 눈에 익었던 오웬이 익살스럽게 말했다.

“안 붙였거든?”

제네비브는 오웬을 쏘아봤다.

“정말?”

“……끼워 뒀어.”

대답을 들은 오웬은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하지만 제네비브의 과제도 30페이지 가까이 된다는 걸 깨달았는지 눈에 띄게 생기를 잃었다.

“네 건 내가 읽을게.”

오웬보다 지적 능력이 뛰어난 블랑카가 말했다.

블랑카가 과제를 읽는 동안, 제네비브는 오웬과 함께 <더 칼리지>에 어느 단락을 첨부할지 골랐다. 그사이 제네비브의 과제까지 다 읽은 블랑카도 합류해 의견을 나눴다.

미묘한 차이로 본론의 두 번째와 네 번째 단락이 선정되었다.

제네비브는 서론과 첫 번째 단락이 들어가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표했고, 오웬과 블랑카는 네 번째 단락과 세 번째 본론을 넣어야 한다고 마지막까지 우겼다.

다시 말해 전부 잘 써서 고르는 것조차 격렬한 토론이 오가야 했다. 가까스로 선정이 끝나자, 오웬과 블랑카는 타자기를 꺼냈다.

“그런데 말이야. 이런 글 옆에 다른 사람의 글이 있으면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타자기에 글을 옮기던 블랑카가 예리하게 물었다.

사실 제네비브도 마음에 걸리던 일이었다. 때문에 제네비브는 방어적으로 나오는 대신, 더 이야기해 달라고 말했다.

“물론, 네가 못 썼다는 건 절대 아니야……! 진저, 네 과제는 훌륭하지.”

아무리 제네비브가 제 과제에 자신감을 잃어도 그녀 또한 만점을 받았다. 다만, 인간이란 비교하는 걸 좋아하게 태어났으니 위험 요소가 있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제네비브처럼 본래 포가츠 아카데미에 가려고 했던, 아니면 재학했던 학생들은 이미 꼬리표가 달려 이런 논란에 더더욱 치명적이었다.

“나도 그게 걸려.”

제네비브가 불안하게 말했다.

“저번에 해리슨이 만점을 받았다고 들은 것 같은데.”

“해리슨은 안 빌려줄 거 같은데.”

3학년 수석인 해리슨은 그가 2학년 때 못 받은 만점을 에드워드가 받았다는 사실에 가장 분개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저녁 식사 때 해리슨이 다가와 ‘3학년 수석과 차석이 현 사태를 대표해서 탄원서를 작성해야 한다’라고 말한 게 떠올랐다.

제네비브와 블랑카의 대화를 곰곰이 듣던 오웬이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해 보자.”

* * *

4월 20일 오전 6시.

<더 칼리지> 발행 1시간 전.

“다 됐지?”

“응…….”

블랑카가 신음인지 대답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부실 한구석에서 공지문을 찍어 내던 오웬 역시 앓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 중에서 몸을 가장 많이 혹사한 사람은 단연 제네비브였다. 밤중에 많은 일을 겪었음에도 다음 날 꾸벅꾸벅 조는 오웬이나 블랑카와 다르게 조는 모습 하나 안 보였으며, 부실에서 교대로 잠을 잔 두 사람과 다르게 계속 깨어 있었다.

그런 제네비브 덕에 오웬과 블랑카는 흐름을 유지하고, 무사히 <더 칼리지> 마감을 지킬 수 있었다.

“졸려 뒈지겠다…….”

“말조심~.”

제네비브가 뇌를 거치지 않은 문장을 중얼거리자, 인쇄기에 몸을 기대고 있던 오웬이 달링 후작부인의 어조를 흉내 내며 말했다.

대꾸할 힘마저 없었던 제네비브는 부실 안을 걸어 다니며 잠을 내쫓으려고 했다. 머리를 어딘가에 기대는 순간 바로 잠들 것 같았다. 그렇게 제네비브는 몽롱한 정신으로 인쇄소 심부름꾼 소년에게 10루오르를 건넸다.

세 사람이 커피를 들이켜며 <더 칼리지>를 다시 검토할 때, 제임스가 신문부실 안으로 들어왔다. 힘없는 친구들을 딱한 눈빛으로 바라본 그가 수그려 앉아 부실을 정리해 줬다.

“제에에임스……. 우리가 청소한다니까.”

“수업 시작하기 전에 잠이나 자. 너희, 구울 같아.”

아무도 호응해 줄 기력이 남지 않았던 탓에 그 누구도 제임스의 농담에 웃지 못했다. 결국, 제임스는 자신이 한 농담에 스스로 어색하게 웃어 줬다.

신문부실 책상 한곳에는 유리잔이 산처럼 쌓였다. 절반 정도는 밤마다 간간이 방문한 제임스가 차를 끓여 가져온 거였고, 나머지 절반은 제네비브가 잠을 쫓기 위해 만든 커피였다.

제임스가 세 명으로 보였다. 제네비브가 흐려지는 초점을 바로잡았다.

안개가 낀 정신 사이로 제네비브는 용케 계획을 세웠다. 에드워드한테 말하고, 수업을 듣고, 기숙사로 돌아오자마자, 잔다.

‘그러고 보니, 에드워드한테 말해야지.’

애석하게도 전날, 에드워드에게 계획을 알려 줄 틈이 없었다.

정신만 멀쩡했더라면 미리 당사자의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걱정했겠지만, 현재 제네비브의 뇌는 그 기능조차 수행하지 못했다.

“제임스…… 가 보자.”

주어가 많이 사라진 문장이었지만, 제임스는 제네비브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차렸다.

이후, 제임스는 제네비브를 펜싱 클럽 조깅 경로로 안내했다.

스포츠 클럽의 아침 조깅 루트는 고만고만했지만, 폴로 클럽의 경우 폴로 경기장을 뛰었기에 제네비브는 다른 클럽의 경로를 잘 몰랐다.

제네비브는 하품을 참으며 빠른 걸음으로 제임스의 뒤를 쫓아갔다. 뺨을 몇 번 때리고, 바깥공기를 마시니 정신이 조금 맑아졌다.

그래도 몸이 피곤한 건 속이지 못했다. 제네비브는 걷다가 중심을 몇 번 잃었고, 몸이 좌우로 위태롭게 움직이는 그녀를 제임스가 불안하게 바라봤다.

“보통 학교 연못부터 시작해서 호수를 몇 바퀴 돌아.”

세인트 존 칼리지 내부에 있는 연못에 가까워지자, 제임스가 말했다. 초반 경로였기에 제네비브는 더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못 위로는 낡은 다리가 있었다. 깊고 칙칙한 칼리지 연못과 어울리는 목재 다리였다.

그런데 무슨 구경이라도 난 건지 운동복을 입은 남학생들이 다리를 넘어가는 대신, 한곳에 몰려 있었다.

남학생 무리 중심엔 찰스가 있었다. 제네비브는 곧 그들이 펜싱 클럽 소속이란 걸 눈치챘다.

‘으…… 쟨 뭔데 자꾸 보이는 거야.’

제네비브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다가갔다. 잠깐 훈련에서 에드워드를 빼낼 생각으로 갔건만, 가까워질수록 머릿속에 불안한 경보가 울렸다.

제네비브는 저도 모르게 군중을 따라 시선을 내렸다. 연못에 물거품이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물살이 철썩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사람이 빠진 것처럼.

“저거, 사람이야?”

제임스가 얼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수면에 연갈색 머리카락이 떠올랐다 다시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안 나오고 뭐 하는 거야?”

에드워드였다.

“……에드워드, 수영 못 하는데.”

제네비브가 작게 말했다.

“쟤, 수영 못 해!”

이어 정신이 든 듯 크게 소리쳤다.

“……뭐라고?”

제임스의 혼잣말을 뒤로한 채 제네비브는 연못가를 향해 달려갔다. 중간중간 구명부표가 있을 정도로 칼리지의 연못은 깊었다.

“구명보트라도 던져 줄까?”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다리 위에서 비웃음 소리가 흘렀다. 역겨웠다.

제네비브는 욕을 삼키며 연못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뒤따라 온 제임스가 그녀를 멈춰 세웠다.

“이대로 들어가면 너도 죽어.”

제네비브가 붙잡은 손을 떨쳐 내려고 하자, 제임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다리 부근의 구명부표를 들어 에드워드가 있는 곳으로 던졌다.

구명부표는 에드워드 앞에 안착해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에드워드는 그게 명줄인 것처럼 붙잡았다. 이어 발장구를 쳤지만, 수영을 못 한다는 걸 입증하듯 둥둥 뜨는 게 최선이었다.

제임스가 구명부표와 연결된 밧줄을 끌어당기려고 하자, 에드워드가 겁에 질린 듯 크게 어푸거렸다.

“가만히 있어 봐!”

몇 번이고 가만히 있으라고 외쳤지만, 안 들리는 것 같았다.

제네비브는 제임스에게 밧줄을 맡겼다. 그러곤 대충 신발을 벗은 채 밧줄을 붙잡고는 연못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연못은 듣던 대로 깊고, 더럽게 차가웠다.

가까이 다가간 제네비브는 공포에 질린 에드워드를 볼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은 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으로 흠뻑 젖었다.

“에드워드.”

제네비브는 에드워드의 손을 맞잡았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손이 제네비브의 손을 아프게 쥐었다.

“……선배, 콜록.”

“이제 괜찮아. 가자.”

손 떨림이 점차 줄어들었다.

제네비브가 이제 밧줄을 당겨도 괜찮다고 손짓했고, 제임스는 천천히 줄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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