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23화
물가에 다다랐을 때, 이미 펜싱 부원들은 연못 반대쪽으로 가 버린 후였다.
그리고 두 사람을 끌어낸 제임스는 펜싱 부원들의 얼굴을 기억하려는 것처럼 다리 중간까지 가, 사라지는 그들을 끝까지 지켜봤다.
제네비브는 펜싱 부원들을 쫓아가 한 소리 해 주고 싶은 충동을 꾹 내리누르며 에드워드를 쳐다봤다. 에드워드가 주저앉은 채 콜록거리며 물을 뱉어 냈다.
제네비브는 그런 에드워드의 등을 두들겨 줬다.
“괜찮아?”
기침 소리가 수그러들자 제네비브가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
대신, 그는 제네비브를 끌어안았다. 등 뒤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를 끌어안은 몸이 가쁘게 들썩였다.
소설로 읽을 당시엔 차갑고 커다랗게만 느껴지던 그가 떨리는 몸으로 저를 끌어안은 채 울고 있다.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에드워드가 안쓰러웠다. 고작 누군가가 만들어 낸 세계에서 이런 불행을 겪는 게 맞는 걸까?
소설 속, 가벼운 손짓만으로 세상을 부리던 오만하고 완벽한 남자는…… 그가 흑막이 된 이유를 이해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아프고 볼품없는 과거를 겪어야만 했다.
제네비브는 계획을 설명하는 대신, 차가운 에드워드의 몸을 천천히 쓸어 줬다.
동시에 눈앞이 어두워졌다.
* * *
왜 울고 만 걸까.
연못에 빠졌을 땐 무섭긴 했어도 울진 않았는데. 뭍에 나와 저를 위로하는 제네비브의 음성과 손길이 닿자마자 울음이 쏟아지고 온몸이 떨렸다.
그러다 에드워드는 제 등을 쓰다듬는 손길이 멈췄을 때, 조금 눈을 크게 떴다. 어깨에 가벼운 무게감이 느껴졌다. 제네비브의 몸이 축 늘어졌기 때문이다.
에드워드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일순 그녀가 죽은 줄 알았다.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심장이 철렁거렸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불안감에 휩싸였다.
마치 값비싼 도자기 인형을 다루듯, 에드워드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잡아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제네비브의 머리는 앞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에드워드는 가느다란 그녀의 목에 손을 댔다. 제발, 제발……. 그러곤 속으로 중얼거렸다.
다행히 흰 피부 아래로 규칙적인 맥박이 느껴졌다. 그제야 작게 올라갔다 내려가는 어깨가 보였고 작은 숨소리가 들렸다.
“하아…….”
에드워드는 그제야 안심했다.
“얘, 왜 이래?”
때마침 다리에서 내려온 제임스가 물었다.
“……잠드신 것 같아요.”
“아, 그럴 만하지.”
무슨 타당한 이유가 있는지, 제임스가 이해한다는 투로 말했다.
“선배, 못 주무셨나요?”
“얘기 못 들었어?”
“……무슨 얘기요?”
제임스가 설명하려는 듯 입을 열다가 다시 다물었다.
“그게…… 음. 본인한테 직접 들어 봐. 그러는 넌 괜찮아?”
“네…… 괜찮아요.”
사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제네비브에게 안겨 조금 따뜻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추웠고, 물에 빠졌더니 안 좋은 기억만 되살아났다.
“다행이네. 아까 보니까 2학년들이던데. 쟤들은 팀 감독한테 꼭 말해 둬. 감독이 하는 일이 그거잖아.”
“……스미스 감독님이 제 말을 들어 줄지 모르겠어요. 저, 오데인 교수님 일 때문에…….”
“아, 그거?”
제임스가 반가운 주제가 나온 듯 반색했다. 에드워드는 움츠러들었다. 자신에게 뭐라고 말할까.
“해결될 거야.”
하지만 제임스는 비난하긴커녕 간단하게 말했다. 너무 확신을 담아 말하기에, 에드워드는 일순 모든 문제가 정말 해결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제임스가 제네비브를 제게 달라는 것처럼 팔을 벌렸다.
“제가 할게요.”
에드워드가 자신에게 축 늘어진 제네비브를 고쳐 안으며 말했다.
“너만 괜찮다면…… 아,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시간을 확인한 제임스가 다시 한번 괜찮을 거라는 말을 끝으로 가 버렸다. 그의 말대로 수업까지 몇 분 안 남았다.
학생이 빠져나간 기숙사 건물은 고요했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제네비브의 방이 어디인지 몰랐기에 그녀를 방에 데리고 가지 못했다.
소파에서 재워야 하는 걸까?
제 방과 기숙사 휴게실 사이에서 한참 고민하던 에드워드는 결국 전자를 택했다. 4월의 칼리지는 여전히 서늘했고, 물에 젖었으니 더더욱 추울 게 분명하다.
제네비브가 혹여 감기에 걸릴까 싶어 에드워드는 기숙사 방 난로에 장작을 피우고는 마른 담요를 꺼내 덮어 줬다. 제네비브의 방에 있는 것에 비하면 거칠겠지만, 저가 가진 것 중에선 가장 좋은 것이었다.
제네비브는 여전히 세상모르고 곤히 잠들었다.
‘왜 이 사람은…….’
이렇게까지 자신을 도와주는 걸까.
에드워드는 그녀의 이마에 붙은 금색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 줬다.
* * *
제네비브가 눈을 뜬 건 점심이 조금 지나서였다.
익숙한 방 구조 때문에 제 방인 줄 알았다. 편하게 침대 위를 뒤척이던 제네비브는 낯선 이불을 끌어 덮었다.
‘……잠깐. 낯설다고?’
제네비브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주변을 둘러보니 제 방이 아니었다. 친구들의 방도 아니었다.
방은 첫날 모습을 그대로 옮긴 듯 허전했다. 장작이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를 보고서야 제네비브는 이곳에서 사람이 머물고 있다는 걸 알았다.
제네비브는 처음 보는 이불을 봤다. 낡아서 시간이 묻어났지만, 관리가 잘되어 있었다.
뭔가 기시감이 느껴졌다. 제네비브는 축축한 침대를 짚고 일어섰다. 책상 위에 두꺼운 안경이 보였다.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니―.
“…….”
“…….”
에드워드가 있었다.
그것도, 반나체인 상태로.
“……나, 나 아무것도 못 봤어! 바, 밖에 있을게!”
예고 없이 봐 버린 살갗에 제네비브는 눈을 가리고 도망쳐 나왔다.
‘에드워드 방이었어?!’
제네비브는 기억이 끊긴 시점을 회상했다.
갑자기 몰려온 졸음에 기절하듯 잠들었고, 아마 마땅히 재울 곳이 없어 에드워드가 제 방 침대에 눕혔을 거다.
그의 방 안까지 들어가게 된 사정을 머릿속에 그려 본 제네비브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다 좋은데, 왜 그게 아직도 생각나냐고…….’
예의와 체면상 못 봤다고 했지만, 찰나에 본 그의 몸은 기억에 똑똑히 남을 만큼 훌륭했다. 조각가가 혼신을 다해 완성한 조각품 같았다.
기억에서 지우려고 하면 할수록 뇌리에 박혔다. 실수로 본 남의 맨몸에 감탄할 정도로 제네비브는 양심이 없지 않았다.
제네비브는 손부채를 하며 머리를 식혔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에드워드의 몸…… 아니, 그게 아니라 상황을 알려 줘야…….’
제네비브는 마른세수를 했다. 에드워드가 방 밖으로 나오기 전에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근데, 지금 몇 시지?”
문뜩 든 불안한 감각에 제네비브는 손목시계를 봤다.
7시 30분을 가리킨 시계가 무색하리만큼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빛은 마치 고장 난 시계를 놀리는 것 같았다. 저건 결코 오전 햇살이 아니었다.
제네비브는 곧바로 자신이 빠진 수업을 계산했다.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한담.
“…….”
걱정이 더 이어지기 전에 제네비브가 기대고 있던 방문이 열렸다. 갑자기 문이 열린 바람에 제네비브는 뒷걸음질 치다 그만 에드워드와 부딪혔다.
에드워드가 얼굴을 발갛게 물들였다. 그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을 느낀 제네비브는 서둘러 에드워드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친 부분도 없어 보이고, 두려움에 가득 찼던 눈 또한 제법 안정을 되찾은 티가 났다. 제네비브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제가 선배 방을 몰라서, 제 방으로 데리고 왔는데…… 휴게실 소파는 불편하실까 봐요……. 제가 옷을 벗었던 건 씻다가 나와서…… 이, 이상한 걸 하려던 건 절대 아니에요.”
에드워드가 횡설수설 설명했다.
“오해 안 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데리고 와 줘서 고마워.”
제네비브는 그저 에드워드가 자신을 변태로 여기지 않아 고마울 뿐이었다.
“그리고 여기, 신발……. 두고 가셔서요.”
“아…… 고마워.”
뒤늦게 자신이 맨발이란 걸 알아차린 제네비브는 조금 창피해졌다. 그에게서 신발을 받은 다음, 등 뒤로 숨겼다.
“저…… 선배.”
“응?”
“카터 선배가 무슨 일이 해결될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무슨 일인가요?”
혼자 우왕좌왕하던 사이에 에드워드가 해야 할 일을 일러 줬다.
“……일단, 사과부터 할게.”
그렇게 말한 제네비브는 에드워드를 끌고 휴게실로 갔다.
제네비브가 휴게실에 그를 앉혀 놓고 길게 설명하려던 찰나, 에드워드가 멈춰 세웠다.
“……선배도 몸 좀 말리세요. 계속 젖은 옷 입고 있으면 감기 걸려요.”
그 말을 끝으로 에드워드는 제네비브를 일단 방으로 올려 보냈다. 제네비브는 그가 시키는 대로 재빨리 씻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후 제네비브는 <더 칼리지> 4월호를 손에 쥔 채 계단을 내려가며 에드워드에게 설명할 말을 정리했다.
하지만, 휴게실에 도착하자마자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아챘다. 소파에 앉은 에드워드가 주의 깊게 <더 칼리지>를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휴게실엔 학교 신문 여러 부가 굴러다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