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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25화 (25/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25화

<더 칼리지>가 발간된 후, 에드워드의 삶에 큰 변화는 없었다.

소문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세인트 존 칼리지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성적 논란 따위 일어난 적 없다는 듯이.

에드워드의 이름은 슬그머니 펜싱 클럽 주전 명단에 다시 올랐고, 코치와 감독은 언제 그를 배척했냐는 양 행동했다.

그를 향해 잠깐 보였던 복잡 미묘한 눈길도 며칠이 지나자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장학생인 에드워드에게 사과하는 사람은 없었다.

에드워드는 잠시 이 모든 게 제 상상 속에 일어난 일이 아닐까, 잠깐 고민도 했다. 하지만 오데인 교수의 느닷없는 퇴임과 아직도 학교 곳곳에 돌아다니는 <더 칼리지>에 제 과제가 인쇄된 걸 보면 분명히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굳이 사과를 받고 싶지 않았다. 진심이 아닌 사과는 받은들 소용없기도 하거니와 애초에 그는 자신에게 상식적인 반응이 올 거라는 기대가 없었다.

오웬의 말마따나 세인트 존 칼리지의 학생들은 명문가의 자제답게 자존심이 높았다. 외려 평민인 제게 밥 먹듯이 사과를 하는 제네비브가 신기한 경우였다.

* * *

오늘은 훈련장이 아닌, 경기장에서 3학년과 연습 경기를 했다.

에드워드가 팀 내 에이스를 손쉽게 이겨 내자, 관계자석에 앉은 스미스 감독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공개 훈련이니 분명 다른 학교에서도 전력 분석차 올 거다.”

“…….”

에드워드는 스미스 감독의 말을 들으며 물을 마셨다.

“그러니 에드워드, 너는 이번 공개 훈련에 참여하지 않는다.”

스미스 감독은 그를 비밀 병기처럼 대하면서도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반대로 알렌 코치는 에드워드를 볼 때마다 두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연습 경기에서 승을 챙길 때마다 과하게 호응하는 그를 볼 때면 광대가 된 기분이 드는 동시에 부담스러웠다.

훈련은 날이 갈수록 고되었다. 특히, 에드워드는 다른 부원이 몇 년 동안 배운 걸 몇 주 안에 익혀야 했기 때문에 더 어려웠다. 지칠 여유도 없었다.

“다크호스 취급 받아서 기분 좋겠다?”

검을 정리할 때 즈음, 찰스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다시 후보로 내려갈 땐 조용하더니 며칠이 지났다고 자신감을 되찾은 모양이었다.

에드워드는 찰스의 회복력이 빠른 건지, 아니면 낯짝이 두꺼운 건지 궁금해졌다.

“이런 대우를 받는 네가 칼리지 이름에 먹칠을 할까 걱정이 들 정돈데……. 에드너드, 두 사람 말 무시하고 공개 훈련 때 나오는 건 어때?”

지도자 두 사람에게 처음 가졌던 호감은 전보다 흐려졌지만, 그렇다고 찰스의 말을 들을 정도로 에드워드가 멍청한 건 아니었다.

“너는 분명 좋은 가문에…… 부족함 없이 살았을 텐데, 왜 하는 짓을 보면 못 배운 것 같지?”

“이 새끼가……!”

에드워드는 찰스가 무어라 말하기 전에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 * *

“그럼 너는 공개 훈련에 안 나가?”

<더 칼리지> 4면을 펼쳐 펜싱 공개 훈련 일정을 찾아보던 제네비브가 물었다.

훈련 일정은 일반 신문의 구인 구직란처럼 빽빽했는데, 에드워드는 그녀의 수고를 덜어 주고자 자신이 훈련에 나가지 않는다는 걸 알렸다.

“단체전에 콜린스가 나오는데, 보고 싶으시면 시간 알려 드릴게요.”

“걔 경기를 봐서 뭐 해.”

제네비브가 질색하며 끔찍한 소리는 자제해 달라고 덧붙였다.

에드워드를 연못에 빠트린 사람이 찰스란 걸 알게 된 이후부터 제네비브는 찰스를 향한 적대심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그래도 좀 아쉽다. 저번에 못 봐서 제대로 보고 싶었는데.”

“……본경기 때 보면 되죠.”

에드워드가 대답했다.

“그때는 정말 집중해서 볼게. 새끼손가락 걸고!”

제네비브가 새끼손가락을 들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던 에드워드가 멀뚱히 바라보자, 제네비브가 작게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약속의 증거로서 네 새끼손가락을 내 새끼손가락에 걸면 되는 거야. 이런 식으로.”

제네비브가 왼쪽 새끼손가락으로 오른쪽 손가락을 걸었다. 그제야 이해한 에드워드는 그녀가 알려 준 대로 실천하려 했지만, 제네비브는 이미 손가락을 접은 후였다.

“그럼, 조정 훈련 같이 볼래?”

다시 <더 칼리지>로 시선을 돌린 제네비브가 펜 끝으로 종이를 톡톡 치며 물었다.

“흠……. 보니까, 조정과 펜싱이 같은 시간에 하네.”

“갈 수 있어요.”

에드워드가 냉큼 대답했다.

“그러면 다행이고! 조정 경기는 짧아서 잠깐 나와도 괜찮을 거야. 원래 조정 포기하고 네 경기 보러 가려고 했는데. 같이 제임스 경기 보면 되겠다.”

제네비브는 자연스럽게 일정을 잡아 줬다.

* * *

5월이 다가올수록 세인트 존 칼리지 내 분위기는 바뀌었다.

세인트 존 칼리지는 일 년 대부분 서늘한 날씨에 자욱한 안개를 자랑했지만, 4월 말부터 8월까지는 언제 그랬냐는 듯 따뜻하고 맑았다.

7월부터 여름 방학이 시작된다는 걸 고려하면 학생들이 칼리지에서 햇빛을 만끽할 수 있는 건 두 달 정도였다.

오웬은 무서울 정도로 완벽한 여름을 보며 개교기념일이 5월인 데엔 다 이유가 있다고. 성자, 존이 부동산 사기를 당한 거라고 말했다.

아무튼, 칼리지에서 여름을 느낄 수 있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하복이었다. 동복을 옷장 속에 집어넣고 하복에 익숙해질 때 즈음, 학교에서 그랜드 익스프레스 신고서를 전달한다.

그랜드 익스프레스는 파인트리 서클이 소유한, 제국 전체를 횡단하는 호화 열차였다.

대륙의 웬만한 국가를 지나치는 철로는 일반인도 이용하는 이동 수단이지만, 파인트리 서클 행사가 있을 때면 손님 없이 학생들만 태워 곧바로 목적지로 이동했다.

또한, 신고서는(문장 그대로 학생이 가지고 갈 고가의 물건을 보고하는 서류였다) 대부분 가문에서 처리하지만 간혹 학생 개인이 귀중품을 챙길 때가 있었기에 예의상 발부했다.

파인트리 서클의 모든 행사는 사교장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때문에 가문이나 학생 할 것 없이 행사 마지막 날마다 열리는 연회에 심혈을 기울였다.

별다른 일이 없고서야 작성할 일 없는 신고서지만, 어쨌든 큰 행사가 다가온다는 걸 체감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하복에 익숙해진 제네비브는 신고서를 받은 순간, 미련 없이 종이를 찢었다.

보아르네 가문은 사랑하는 막내딸의 절친인 제네비브를 무척 아꼈다. 덕분에 제네비브가 마이언 제국에 가면 보아르네 가문의 이름으로 온갖 선물이 도착했다.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블랑카가 카르디르 왕국을 방문할 때면 달링 가문도 이에 질세라 그녀의 친구를 물심양면으로 챙겼다. 그렇기에 제네비브는 더더욱 몸만 가면 됐다.

그렇게 신고서가 기숙사 휴지통에 쌓여 갈 때 즈음 공개 훈련이 시작되었다. 공개 훈련이 있는 날엔 오후 수업이 없었다.

“에드워드!”

따사로운 햇살이 에드워드를 감쌌다.

“늦어서 미안. 빨리 온다는 게…….”

“저도 방금 왔어요.”

에드워드가 해사하게 웃었다.

“블라이스 선배랑 블랑카 선배는요?”

“쟤네는 따로 앉아.”

에드워드가 친구들의 행방을 물었고, 제네비브는 서운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웬과 블랑카는 <더 칼리지>의 5월호를 위해 미리 학교를 떠났다. 둘은 4월호의 미친 마감 일정을 소화한 이후, 다시는 마감을 미루지 않겠다며 이시스 여신의 이름을 걸고(하지만, 둘 다 교내 일정이 아니었다면 신전을 국가 기념일에만 방문할 인물들이었다) 맹세했다.

신문부는 특혜로 파인트리 서클과 칼리지 내부 행사에 있어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았고(오웬이 <더 칼리지>에 입부한 이유가 이 때문일 거라, 제네비브는 추측했다), 제네비브도 그 특혜를 쏠쏠하게 받았었다.

그런데 오웬이 에드워드도 온다는 걸 전해 듣자, 갑작스레 동행인은 한 명만 가능하다고 합석을 거절했다.

“너라도 신문부 자리에 앉게 할 걸 그랬나 봐.”

“아뇨, 전 이것도 좋아요.”

제네비브의 걱정 어린 말에 에드워드가 괜한 걱정이라는 양 재빨리 대답했다.

“그래? 그것참 영광인데. 빨리 가 보자.”

제네비브는 제 친구들에게 하는 것처럼 손을 뻗어 에드워드의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아직 그건 좀 아닌가 싶어 손을 거두었다.

“물건은 다 챙겼어?”

“옷만 몇 벌 챙겼어요. 웬만한 건 클럽에서 준비해 준다고 해서요.”

“그런 점은 클럽이 편하긴 하지.”

제네비브는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 주던 폴로 클럽을 회상했다.

예정보다 늦게 도착한 바람에 호수는 벌써부터 사람이 가득했다. 보이는 거라고는 뒤통수뿐이다.

제네비브는 어쩐지 데자뷔를 느꼈다.

‘……그때처럼 인파를 뚫어야 하나?’

하지만 지금은 전교생이 있고, 세인트 존 칼리지도 그때와 다르게 더웠다. 찝찝하게 다른 사람의 살갗과 몸을 맞대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마음 같아선 당장 신문부 자리로 가, 여유롭게 관람하고 싶었다. 하지만 오웬이나 블랑카가 없기에 들여보내 줄 것 같지 않았다.

“안 보이네…….”

혹시나 하는 바람으로 까치발을 들었지만, 눈에 들어온 건 키가 더 큰 사람의 뒷모습이었다.

“선배.”

“응?”

제네비브는 이제 까치발까지 들며 폴짝폴짝 뛰었다.

“잘 보이는 곳을 알아요.”

“정말?”

제네비브로서는 경기 내용만 파악할 수 있어도 감지덕지였다.

“이러다 시작하겠어. 어디야?”

“제가 예전에 본 곳인데…… 시원하고 좋아요.”

에드워드가 힘차게 앞장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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