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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28화 (28/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28화

휴게실 칸과 식당 칸이 가까운 덕분에 시간에 딱 맞춰 도착했다. 저녁 식사 티켓을 확인한 식당 칸 직원은 둘을 창가 자리로 안내하곤 메뉴판을 전달했다.

“코스로 나와서 메인디시만 주문하면 돼. 농어 요리도 괜찮고…… 아, 푸아그라도 맛있어. 먹고 싶은 거 있어?”

제네비브가 물었다.

고심하며 메뉴를 읽던 에드워드는 쉽게 답하지 못했다.

“선배가 좋아하는 건 뭔가요?”

“여긴 송아지 요리가 맛있어.”

제네비브는 기차를 타면서 송아지 요리를 먹어 본 적 없지만, 소설에서 에드워드가 좋아한다고 시도 때도 없이 나오던 음식이었기에 그 메뉴를 권했다.

“그럼 저도 송아지 스테이크로 하겠습니다.”

에드워드가 말했다.

“굽기는 어떻게 할래?”

“……굽기까지 정할 수 있나요?”

“응. 주문대로 만들어 줘. 미디움레어는 어때?”

제네비브가 물었다.

“중간이요?”

미디움(Medium)을 단어 그대로 받아들인 듯 에드워드가 되물었다.

순박한 질문에 제네비브는 살짝 웃었다.

“고기가 적당히 익었으면 좋겠어, 아니면 바싹 익었으면 좋겠어?”

“……선배가 추천하신 걸로 먹겠습니다.”

대화의 맥락에서 ‘미디움’이 뭔지 알아챈 듯, 에드워드의 귓가가 붉어졌다.

“그래도 괜찮아?”

“제가 구분하면서 먹은 적이 없어서…….”

에드워드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조금 부끄러운 건지, 그의 귀는 아까보다 더 발갛게 타올랐다.

“다양하게 먹으면 좋지. 취향은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거잖아.”

하지만, 이미 에드워드의 취향을 파악하고 있던 제네비브는 미디움레어로 송아지 요리 두 개를 주문했다.

전채를 먹으며 제네비브는 스테이크 굽기 종류를 알려 줬다. 에드워드는 무슨 요리에 어느 포크를 써야 하는지 완벽하게 아는 것과 다르게, 생활 지식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부족했다.

‘……얘가 정말 남들은 그냥 먹을 때, 혼자 미디움레어로 주문하던 애라니.’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도 까먹은 그녀가 에드워드가 좋아하는 음식과 굽기를 기억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원작 속에서 에드워드는 주방장의 실수로 스테이크가 주문한 것보다 더 구워져서 나오자, 그를 얄짤 없이 해고한 것으로 모자라 벌하기까지 했다. 기억에 남았다기보단 어이가 없어서 기억하는 정보였다.

하지만, 지금의 에드워드는 플레이팅이 예쁘게 된 요리를 보고 감탄하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 황실 핏줄인데.’

그러니 열차 내부를 제 입맛대로 바꾸고, 식사 시간 하나를 통째로 비워 혼자 식사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익숙한 에드워드라면 신기한 눈으로 열차 곳곳을 둘러보는 게 아니라, 이 모든 게 당연하고 지루해서 심드렁한 눈으로 흘겨봐야 했다.

제네비브는 블렛 황실이 에드워드를 다시는 안 볼 생각으로 내쳤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좀 더 지나면…….’

하지만 원작대로라면 황실은 곧 에드워드를 찾을 것이다.

“……까요?”

“응? ……미안, 못 들었어.”

오랜만에 미래에 있을 일을 생각했더니 주변을 잊을 정도로 깊게 파고든 모양이다. 생각에 잠긴 나머지, 이미 가지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는데도 그녀의 손은 접시를 칼질하고 있었다.

“책자, 드릴까요?”

열차 소음 때문에 못 들은 거라고 여겼는지 에드워드가 몸을 가까이하며 다시 한번 말을 반복했다.

“넌 필요 없어?”

“전 다 외워서 괜찮아요.”

에드워드의 목소리에선 거드름이나 자랑스러움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 같은 일상적인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럼, 잘 쓸게.”

호의를 거절하고 싶지 않았기에 제네비브는 고맙다고 말했다.

“철로의 밤하늘이 예쁘대요. 꼭 봐요.”

에드워드가 책자를 건네며 넌지시 말했다.

제네비브는 작게 웃어 보며 그러겠노라 대답했다.

책자를 외투 주머니 안에 넣을 때쯤 메인디시가 나왔다.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송아지 고기는 냄새만 맡아도 맛이 느껴졌다. 부드러운 고기를 입안에 넣자, 매번 양고기나 푸아그라만 먹은 과거의 자신이 원망스러워질 지경이었다.

입안에 터지는 육즙과 소스의 조합은 환상적이었고, 잘 익은 송아지 고기는 목을 부드럽게 넘어갔다.

‘에드워드 음식 취향이 괜찮네.’

제네비브는 먹어 본 적 있는 척해야 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감탄하며 먹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입맛엔 잘 맞아?”

제네비브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을 했다.

“네, 맛있어요.”

에드워드가 즐거운 듯한 어조로 말했다.

메인디시가 끝나 가자, 식당 칸 직원이 다 먹은 접시를 치워 주고 디저트를 올렸다.

오랜만에 먹는 학교 밖 디저트에 제네비브는 감격한 마음으로 밀푀유를 구경했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겹겹이 쌓인 파이 사이사이로 크림과 과일이 올라갔다. 바삭한 페이스트리와 풍미 깊은 크림은 계속해서 손이 갔다.

점점 줄어드는 밀푀유의 크기에 아쉬워하던 차, 그녀의 앞으로 새 디저트가 나타났다.

에드워드가 준 거였다.

“안 먹어?”

제네비브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단 걸 많이 안 좋아해요.”

그렇게 대답한 후, 에드워드는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 직원을 불러 따뜻한 커피를 주문했다.

아무리 사양해도 그는 기어코 그녀에게 제 디저트를 먹이고 말았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에드워드는 뜨거웠는지 인상을 썼다.

장차 흑막이 될 사람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는 사실에 가슴이 철렁일 법도 했지만, 제네비브는 의외로 괜찮았다.

“…….”

이런 에드워드가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궁금해졌을 뿐이다.

소설에선 간략하게 서술된, 그에겐 평생 같았을지도 모르는 몇 줄에서 에드워드는 어떤 일들을 겪었던 걸까.

* * *

객실로 돌아온 후, 제네비브는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았다.

“진저, 몸은 좀 어때?”

어언간 객실에 들어온 블랑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미 잠옷으로 갈아입은 그녀는 숄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지금은 괜찮아.”

제네비브가 말했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만……. 혹시 몰라서 초콜릿 가져왔어. 멀미하면 먹으라고.”

블랑카가 손에 들린 상자를 살짝 흔들었다. 안에 있는 초콜릿이 이리저리 부딪혀 요란스러운 소리를 냈다.

“내일 정차하니까 조금만 버텨. 내리고 다시 안 타면 안 된다?”

블랑카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 너도 잘 자.”

제네비브는 초콜릿을 한 알 집어 먹으며 말했다.

블랑카는 제네비브에게 <루젠 부인의 비밀>을 빌린 후, 본인 객실로 돌아갔다. 객실 문이 조용히 닫혔다. 모두가 잠들 시간이라 열차 복도는 어두워졌다.

“하아…….”

오랜만에 원작을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제네비브는 주변인들에게 ‘원작’이나 ‘소설’ 따위의 미친 소리를 하지 않기 위해 어느 순간부터 원작 내용을 생각하는 걸 멈췄다.

그러니 또렷하게 확신할 수 있는 기억은 학기 초마다 회상했던 주인공들의 외모, 그리고 그 기억을 뒷받침해 줄 표지뿐이었다.

숨을 쉬는 걸 알아도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제네비브에게 소설 속 세계란 그런 의미였다.

하지만 오늘은 어째서인지 현실감이 넘쳤다. 그러니까 이 세계가 소설 속이고, 빙의한 자신만이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게.

몇 줄 서술되지 않았던 에드워드의 서사를 궁금해한 적 없었는데, 지금은 왜 알고 싶은지 모르는 일이다.

‘왜 블렛 황실은 에드워드를 내쳤을까?’

반쪽짜리라 하더라도 황실의 핏줄이니만큼 보통이라면 황실 일원으로 인정받는 게 일반적이다.

소설에선 정확히 묘사되지 않았지만 그녀가 아본리아 제국에 몸담은 지금, 이유는 대강 추측할 수 있었다.

황제는 평소 신사적인 이미지로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 강경 귀족파인 블라이스 백작조차 그에게선 먼지 한 톨 찾아내기 힘들다고 툴툴거렸다.

그런 황제에게 에드워드의 존재는 탐탁지 않았을 거다. 정부가 서넛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사회에, 황제는 대외적으로 정부도 없었고 가정에도 충실했으니까.

그러니 에드워드의 존재는 그에 대한 부정이다. 에드워드를 죽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깔끔한 마무리였을 거다.

하지만, 죽인다면 언젠가 그 사실이 황제의 목줄을 쥐게 될 테지. 누구도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 못한다.

어찌 되었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에드워드는 태어날 적부터 환영 받지 못한 존재였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문제는 그걸 일어나게 둬도 괜찮은 거냐고.”

제네비브는 에드워드가 죽길 바라지 않았다. 그가 학교를 불태우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죽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던 건 먼 옛날 일이었다. 이제 제네비브는 상냥했던 에드워드가 어째서 그런 끔찍한 짓을 하게 되었는지가 알고 싶었다.

과연 에드워드가 황태자로 책봉되는 게 맞는 일일까? 만약 없는 일이 된다면…… 에드워드는 지금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을까?

자신이 알고 있는 에드워드가 사라질 걸 생각하니 씁쓸해졌다. 그러다 제네비브는 허튼 생각을 하는 자신을 비웃었다.

‘이름도 안 나온 조연이 뭘 할 수 있다고.’

제네비브는 심란해진 마음으로 창밖을 봤다.

에드워드가 말한 대로 어두운 밤하늘에 별이 촘촘히 박혀 아름답게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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