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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29화 (29/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29화

* * *

다음 날이 되었음에도 명확한 답은 안 보였다.

침대를 정리해 준 직원이 식권을 건넸지만, 제네비브는 거절했다. 입맛이 없었다.

오후 즈음에 차와 빵을 먹고, 다시 잠들 느슨한 계획을 세운 후 제네비브는 소파에 앉았다.

“밥 먹으러 가자.”

때문에, 블랑카의 제안에 제네비브는 영 시원치 않은 반응을 내보냈다.

“오웬이 카드 챙겨 왔다는데.”

블랑카는 제네비브가 거절하기 전에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정말?”

그 말에 제네비브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대화가 없어도 괜찮은 놀 거리의 존재가 이렇게나 반가울 줄 몰랐다. 뒤늦게 카드를 챙기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얼마나 아쉬웠는지.

“그래, 브런치도 먹어야지.”

블랑카가 회심의 일격을 가했다.

“맞아, 브런치가 있지! 그걸 까먹다니 나도 드디어 미쳐 가나 봐.”

그랜드 익스프레스는 종종 도착지의 음식을 제공하는데, 그중에서도 마이언식 브런치는 어디를 가도 열차만큼 잘 만드는 곳이 없었다. 심지어 보아르네 공작저에서도 말이다!

더구나 룸서비스로 제공하지 않아서 식당 칸과 공용 칸에서만 먹을 수 있었다.

“근데 나, 식권 안 받았는데.”

제네비브는 멍청한 선택을 한 아침의 자신을 타박하고 싶었다.

“그럼, 공용 칸에서 먹어야…….”

말을 하면서도 표정이 굳어 가는 게 느껴졌다.

전날, 찰스 패거리가 터줏대감처럼 바글바글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고작 그들을 피하고자 안 가는 건 저만 손해 보는 일이었다.

“오, 진저. 대체 오웬을 뭐로 보는 거야.”

블랑카가 쓸데없는 고민을 한다는 듯 말했다.

“오웬이 왜?”

“걔가 네 식권도 가져갔어.”

“어떻게 단 한 번도 기대를 저버리지를 않지?”

제네비브는 힘없이 웃었다.

모두가 비슷한 시간대에 아침을 먹었던 탓에 식당 칸은 인파로 붐볐다. 인원을 감당하지 못한 식당 칸은 직원이 식사 시간을 다시 조정하여 어느 정도 문제를 해소했다.

“앉을 수나 있을까…….”

제네비브가 식당 칸 복도에 몰린 인파를 보며 중얼거렸다.

“오웬이랑 제임스가 먼저 갔으니까, 걱정 마. 오웬이 다른 건 몰라도 자리 하나만큼은 잘 찾잖아.”

블랑카는 그런 제네비브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식당 칸에 오웬은 없었다. 북새통이었던 식당 칸을 벗어나니, 사람 천지인 공용 칸이 눈에 들어왔다. 식당 칸보다 조용했지만 어제와 비교하면 머릿수가 많았다.

이곳저곳 열차 칸을 돌며 빈 테이블을 찾으려는 사람이 있는 반면, 테이블은 구했지만 의자가 부족해 의자를 찾는 이도 있었다.

다행히도 규모가 큰 행사에 가는 길이라는 기대감 덕분인지, 자기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 익숙한 학생들은 별다른 성질을 부리지 않았다.

‘……이러다 자리 못 잡는 거 아니야?’

“여기야~!”

그때, 괜한 의심을 했다는 듯 당당하게 앉아 있는 오웬이 둘을 불렀다. 게다가 그는 빈 의자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있었는데, 의자를 선점해 두기 위함처럼 보였다.

미리 주문해 둔 건지 테이블 위엔 접시 다섯 개가 있었다.

‘다섯 개?’

제네비브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유는 금방 나왔다. 오웬의 맞은편에 앉은 제임스. 그리고, 제임스 옆에 앉은 에드워드.

“…….”

기별 없이 나타난 후배를 보며 제네비브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블랑카도 에드워드의 합석에 대해선 언질 받은 게 없었는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얘가 여기 브런치를 한 번도 안 먹어 봤다잖아~ 투어, 제대로 한 거 맞아?”

오웬이 장난스레 제네비브를 나무랐다.

“……아, 아니에요. 잘 알려 주셨습니다.”

에드워드가 손사래를 치며 제네비브를 변호했다.

하지만 어제 투어 내용을 생각한다면 오웬의 말이 맞았다. 제네비브는 반박하는 대신 오웬을 한번 째려보는 걸로 만족했다.

동석 후, 가볍게 시작된 대화는 곧 에드워드 위주로 흘러갔다.

작년에 개최한 여름 대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가한 파인트리 서클 행사라는 이야기에 세 사람은 도저히 안 믿긴다는 눈으로 에드워드를 바라보았다.

“가을 사냥 대회도?”

“……네.”

모교에서 진행한 행사조차 불참했다는 얘기에 오웬이 입을 떠억 벌렸다.

“그럼, 그동안 기숙사에서 뭐 했어?”

행사들이 겨울 방학을 대신한다는 말이 돌 정도로 모아 보면 5주나 되는 긴 시간이었다.

“공부하거나, 과제가 있으면 과제를…….”

“맙소사.”

오웬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에게 있어선 그건 마치 방학 내내 공부한다는 것과 똑같은 발언이었다.

“만약 칼리지에 나 혼자 남아 있다면…… 난 계단 난간을 미끄럼틀처럼 탔을 거야. 아니면, 복도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넌 사람이 있어도 그러잖아.”

마치 평소엔 안 한다는 양 구는 말에 제임스가 어처구니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한 번 다녀왔으니까, 아카데미 구조는 익혀서 다행이다.”

사정을 대강 이해한 블랑카가 말했다.

“그런가요?”

“학교 안내는 첫날에 1학년들만 받으니까. 놓쳤으면 외우는 데 몇 시간 소비해야 하잖아.”

에드워드는 블랑카의 말을 이해 못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길이 복잡하니~ 마이언 아카데미는 한 번 길을 잃어 줘야 그 뒤로 길을 안 잃어!”

“……제가 아카데미 안내를 받지 않아서.”

에드워드는 백지상태인 제 상황을 알려 줬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2학년이라고 학교 안내를 못 듣는 건 아니니까.”

제임스가 그런 에드워드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이 후배들이 참여하는 일정에 선배가 등장하는 것만큼 이상한 그림도 없었다.

“참고하겠습니다.”

비슷한 생각에 도달한 듯 에드워드가 진심 없이 대답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우리한테 물어봐! 그게 낫겠다.”

“그럼…… 숙소 배정은 어떻게 되나요?”

“넌 학교 대표니까…… 숙소는 클럽 부원들과 가깝게 배정 받겠다.”

제임스의 대답을 들은 에드워드가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도착하면 개최 연회가 열려. 이튿날엔 여행 피로 풀고, 시차 적응하라고 경기는 없고. 사흘째 되는 날에 경기가 시작하던가?”

블랑카가 제임스의 검토를 기다렸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블랑카는 말을 이어 갔다.

“첫 번째 종목은 언제나 양궁이야. 경기는 전부 토너먼트식으로 진행되고. 펜싱은 이튿날부터 시작해.”

블랑카가 손가락을 접어 가며 이후 일정을 나열했다.

“그리고 선수들은 경기 날에만 출전하는 게 아니라, 새 환경에 적응해야 하니까 감독들이 시합 전까지 자율 훈련을 시켜. 말이 자율이지, 필수라고 생각하는 게 편해.”

“그래서 우리 카터 군은 대회 중반까지 얼굴을 안 보이죠~.”

오웬이 제임스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는 서운한 목소리로 말했다. 공용 칸 직원은 과장된 움직임을 하는 오웬을 피하며 음식을 날랐다.

“…….”

그리고 제네비브는 기차 소음 때문에 원하는 만큼 대화에 참여하지 못했다. 친구들이 중간중간 그녀를 의식해 큰 목소리로 말해 주긴 했지만, 그래도 점차 원래 크기로 돌아갔다.

제네비브는 턱을 괴고 네 사람이 대화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솔잎 모양’이나 ‘금색’과 ‘은색’이 언뜻 들리는 걸로 보아, 대화 내용이 브로치로 넘어간 것 같다.

파인트리 서클은 대회 성적이 가장 좋은 세 사람에게 트로피와 솔잎 모양 브로치를 선물한다.

이는 전체 종목에서 우수한 활약을 한 세 사람에게만 주는 것으로, 최우수 선수 같은 개념이었다. 디자인이 중성적이고 심플 해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유행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후…… 지긋지긋한 가르시아 형제들이 드디어 다 졸업했으니까, 렐타 사관 학교가 아닌 사람들이 우수 선수로 뽑혔으면 좋겠다.”

블랑카가 두 손을 모으며 빌다시피 말했다.

제네비브가 입학한 뒤로 스포츠 대회에서 브로치를 받는 사람은 고정되었다.

제임스가 남학생 선수 중에서 2년 내내 우수 선수에 선정되는 동안 렐타 사관 학교의 가르시아 네 형제가 사이좋게 그 자리를 독식했고, 인터뷰를 못 딴 블랑카는 그 네 형제를 조금 원망했다.

“제임스는 금색 브로치가 두 개야! 아마 칼리지. 아니, 파인트리 서클 최초일걸?”

오웬이 제임스를 자랑스럽게 치켜세웠다.

다른 사람이라면 어깨가 올라갈 법도 했지만, 이미 <더 칼리지>에서 온갖 미사여구로 추앙 받았던, 정확히는 블랑카에게 이용당했던 제임스는 다소 질린다는 반응이었다. 그는 그만하라고 오웬의 입을 틀어막으려고 했다.

“선배는 받으신 적 있나요?”

에드워드가 티격태격 싸우는 오웬과 제임스를 구경하다가 제네비브에게 물었다.

“응? 솔잎 브로치 말하는 거야?”

“네.”

“솔잎 브로치는 그렇게 쉽게 받는 게 아니야.”

제네비브는 작게 웃었다.

우수 선수가 되는 기준은 까다로웠다. 매번 밥 먹듯이 선정되는 제임스가 특이한 경우였다.

“카터 선배, 감독님께서 전략 회의로 부르셨어요.”

내내 티격태격하던 둘은 부원 한 명이 제임스를 찾아오고서야 행동을 멈췄다.

“우드 칼리지 조정 팀 변동 때문에…….”

“지금 갈게. 블라이스, 두고 보자.”

제임스가 으름장을 놓으며 공용 칸을 떠났다.

그 뒷모습을 보던 오웬이 무언가 떠오른 듯 입을 열었다.

“블랑카! 너, 기차에서 인터뷰 딴다고 하지 않았어?”

“대체 왜 얘기했어. 이제 막 자유를 누리려던 참인데.”

“난 그저 너 대신 기억해 줬을 뿐이야.”

“정말로 감읍하네요.”

“알아서 다행이로구나.”

오웬이 웃으며 아량이 넓은 왕을 흉내 냈다.

“너, 따라 나와.”

“내가 왜?”

오웬은 눈썹을 치켜올렸지만, 반항은 얼마 가지 못했다.

“아야야……. 알았어, 알았다고……. 놓아줘. 놓아주세요, 블랑카 님.”

이미 하루를 통속 소설과 함께 보낸 블랑카는 혼자 일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오웬의 구레나룻을 당기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진저, 나랑 오웬은 먼저 갈게. 호호. 에디, 또 궁금한 거 있으면 우리한테 물어보기야!”

공작 가문의 막내딸다운 사랑스러운 웃음소리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 죽어 가는 신음이 섞였다. 제네비브는 고통에 가득 찬 오웬에게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애들이랑 이야기는 많이 했어?”

“네. 많이 알려 주셨어요.”

에드워드는 자신이 배운 걸 세세하게 알려 줬다.

제네비브는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에드워드가 대화에 포함되지 못했던 자신을 위해 길게 설명해 줬다는 걸 깨달았다.

“마이언이 기대돼요.”

마지막으로 마이언 아카데미의 교풍을 들은 대로 설명한 에드워드가 짧게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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