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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32화 (32/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32화

“여기, 헤이븐은 아본리아에서 왔대.”

벌써 시온과 말을 튼 건지, 테오도르가 안 해도 되는 친절을 베풀었다.

“안녕하세요. 시온 헤이븐입니다. 우드 칼리지 1학년이에요.”

시온이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제네비브 달링이에요.”

제네비브는 적당히 사교적인 미소를 지으며 시온의 인사를 받아 줬다.

“저, 조금 이상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혹시, 형제가 있을까요?”

제네비브가 물었다.

비록 그가 소개한 학년이 원작과 똑같긴 했지만, 원작에서 다른 형제의 언급이 있던 것도 아니지만…… 쌍둥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연년생 형제라던가. 알고 보니 시온 헤이븐이 남주와 똑같이 생긴 것일지도 모르고.

“형제요? 아뇨. 외동입니다.”

하지만, 제네비브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돌아온 건 자신이 남주가 맞다고 확정 짓는 대답이었고, 그녀에게 있어선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시온은 초면에 갑자기 호구 조사를 하는 제네비브를 이상하게 바라보았지만,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더 큰 문제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발. 그, 그럼…… 지금 이 테이블에…….’

남주와 흑막과 구 약혼자가 있다는 거잖아!

어찌나 당황했는지, 제네비브는 한동안 잊고 살았던 전생의 욕까지 떠올렸다.

물론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 에드워드와 시온을 같은 공간에 두면 안 됐다.

원작에서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둘인데, 같이 저녁 식사를 하라는 건 미리 전쟁을 일으키라는 소리였다.

제네비브는 훌리에타가 갑자기 사실은 제 머리 색이 분홍색이고, 자신이 여주라도 해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아니, 차라리 그랬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압박감에 정신을 못 차리던 제네비브는 훌리에타에게 말을 걸었다. 잠깐이라도 좋으니, 현실과 미래의 문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미안해요. 너무 우리끼리 떠들었죠? 테오를, 아니, 테오도르를 탓하면 된답니다. 세인트 존 칼리지 3학년 제네비브 달링이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렐타 사관 학교에서 오셨나요?」

「렐타 사관 학교 1학년 훌리에타 가르시아입니다.」

그녀의 입에서 서툰 공용어가 나왔다.

주인공과 흑역사 사이에서 휘말리고 싶지 않았던 제네비브는 옳다구나 하고 말을 이어 가려고 했다.

「시온 헤이븐입니다.」

「전 테오도르 우드빌이에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1학년이면 이곳은 처음이겠군요.」

하지만, 테오도르와 시온이 방해했다.

여자들끼리의 대화를 하고 싶었던 제네비브는 입맛을 다셨다.

「저…… 사실.」

그 뒤로 훌리에타의 주눅 든 목소리가 렐타어로 무어라 말했다.

제네비브는 대륙의 웬만한 언어를 알아들었지만, 대륙 정반대 쪽에 있는 렐타어는 잘 몰랐다.

‘안녕하세요’나 ‘감사합니다’ 같은 짧은 문장 정도는 구사할 수 있지만, ‘제 이름은 제네비브입니다’를 렐타어로 말할 줄 아는 건 이 상황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제네비브는 흔들리는 눈으로 테오도르를 바라보았지만, 렐타어를 못하는 건 그도 마찬가지였는지 고개를 저었다.

‘남자 주인공이라면…….’

제네비브는 마지막으로 시온을 봤다. 그래도 명색이 남자 주인공 아닌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

“그래도 조금은 알아들어요.”

시온은 통역에 나섰지만, 해석한 문장들이 상당이 추상적이어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

언어 장벽이 주는 어색함은 대단히 컸다. 공기는 딱딱하게 굳어 갔고, 긴장한 훌리에타에게 제네비브가 할 수 있는 건 세 살 수준의 렐타어로 ‘괜찮아요’를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오늘 만찬은 괜찮을까…….’

몇 시간 동안 조용히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저절로 숙연해지게 만들었다.

만약 오늘 만찬에서 에드워드와 시온이 아무 갈등 없이 잘 넘어간다면, 그건 필시 이 딱딱하고도 어색한 분위기 때문일 거라고 제네비브는 생각했다.

제네비브는 테오도르와 눈빛을 교환하며 좋은 방도가 있는지 생각했다.

그러던 중, 뒤에서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에드워드!”

뒤를 돌아본 제네비브가 활짝 웃으며 그를 반겼다.

“……안녕하세요.”

에드워드는 잠시 제네비브에게 시선을 주었다가 한 박자 느리게 인사했다.

에드워드는 어떻게 구한 건지 모를 턱시도를 입고 있었다.

못해도 치수가 세 개는 큰 옷을 입은 에드워드는 흡사 아버지 양복을 몰래 훔쳐 입은 아이 같았다. 흰색 리본은 삐뚤어졌고, 머리 만지는 법을 몰랐는지 앞머리는 여전히 덥수룩했다.

언제나 그렇듯 두꺼운 안경이 얼굴 절반을 차지했다. 그런데 괴상한 모습과 별개로 옷감 하나는 고급져, 그의 모습을 더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다.

광대 같은 모습을 한 에드워드는 제네비브의 맞은편, 더 정확히는 테오도르의 옆자리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에드워드입니다.”

짧은 인사말이 딱 에드워드다웠다.

“렐타 사관 학교 1학년 훌리에타 가르시아입니다. 「——」.”

훌리에타는 자기소개만 외워 왔는지, 인사 뒤로는 거의 울음기 가득한 표정과 함께 렐타어로 무언가를 말했다.

「——.」

그런데 훌리에타의 말을 들은 에드워드가 똑같이 렐타어로 대답했다. 낯선 외국인들 사이에서 모국어를 들은 훌리에타의 표정은 마침내 밝아졌다.

“너, 렐타어도 할 줄 알아?”

제네비브가 두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조금요.”

에드워드는 귓가를 붉히고는 겸손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평생 렐타어를 접해 본 적 없는 사람이 들어도 에드워드의 이해력과 유창한 문장이 범상치 않다는 건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에드워드입니다. 세인트 존 칼리지 2학년이에요.”

“시온 헤이븐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가장 긴장했던 둘은 다행스럽게도 기 싸움을 펼치진 않았다.

이어서 에드워드와 테오도르가 통성명하던 중, 앞문으로 다섯 교장이 입장했다.

테이블 중앙에는 파인트리 서클 핵심 학교인 세인트 존 칼리지의 총장과 마이언 아카데미의 교장이 앉았다. 그 뒤로는 군용 제복을 입은 렐타 사관 학교의 총장이 프레스반 아카데미의 교장을 에스코트하며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다섯 명 중에서 가장 어린 우드 칼리지의 총장이 자리에 앉았다.

주최자인 리옹 교장이 은색 나이프로 와인 잔을 몇 번 쳤다. 깨끗한 소리가 울리자, 연회장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조용해졌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앞으로 대륙의 미래를 이끌어 갈 인재들이 전부 이곳에 모였군요. 여러분이 있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30년째 축사를 하는데, 늘 비슷한 이야기를 해서 세실리아에게 미안해지는군요.」

다섯 명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교장직을 맡은 프레스반 아카데미의 교장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길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짧게 끝내는 게 좋겠지요. 부디 이레 동안 결과보다 중요한 걸 얻어 가길 바랍니다. 타국에서 만난 새로운 인연, 소중한 추억과 새로운 경험을요! 이시스 여신의 가호가 언제나 함께하기를.」

리옹 교장이 와인 잔을 높게 들고는 축사를 매듭지었다. 교수와 학생들도 그를 따라 잔을 들어 올렸다.

「함께하기를.」

제네비브도 유리잔을 들며 따라 말했다.

이후, 연회장은 학생들이 교류하는 소리로 가득했다.

“…….”

제네비브의 테이블을 제외하고 말이다.

침묵만이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주문을 받으러 온 웨이터들조차 지나칠 정도로 고요한 테이블의 눈치를 봤다.

‘이대로 가면 안 돼.’

원래 만찬이라고 하면 처음 보는 사람들과 친분을 쌓는 게 목적 아닌가. 그러나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이미 다섯 명 중 세 명이 만찬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생각을 마친 제네비브는 테이블에서 그나마 대화가 잘 통할 것 같은 사람을 쳐다보았다.

“테오.”

“제네…….”

머릿속에 적신호가 울린 건 그녀만이 아니었다. 제네비브와 테오도르는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먼저 얘기해.”

제네비브는 적당히 사교적인 표정을 꾸며 내며 말했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고. 네 네임 카드가 있어서 놀랐어. 부상은 어때?”

작년에 일어난 낙마를 암시하는 문장이었다.

본디 제네비브는 유쾌하지 않은 경험으로 흘러가는 대화를 즐기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야깃거리를 찾아내는 게 우선이었기에 테오도르가 먼저 언급해 줘서 고마웠다.

“많이 나아졌지. 보다시피 멀쩡하게 걸어 다니잖아?”

어쨌든, 대화의 물꼬만 튼다면 할 말은 많아진다.

비슷한 이유로 작년 일을 끌고 왔을 테오도르는 주제를 자연스럽게 바꾸며 제네비브를 띄워 줬다. 그의 배려가 묻어났다.

“……말도 안 돼. 거짓말이지?”

“정말이야. 아버지랑 형도 달링 후작님이 시키셔서 경기를 봤다니까. 람프스 자작과 대화를 나누려고 했는데, 경기가 끝나니 그분도 네 경기를 보고 계셨어.”

테오도르는 달링 후작이 제 딸의 경기에 집중하도록 만든 일화를 들려줬다.

이제 일흔을 바라보는 람프스 자작이 오페라 안경으로 폴로 경기를 관람했다는 걸 상상하니 우스웠다. 그간 몰랐던 경기장 바깥 상황을 알게 된 제네비브가 입을 가리며 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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