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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42화 (42/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42화

“…….”

내가? 너랑? 뭘?

잠깐 정신 판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방금 율리아가 파트너 신청을 했고, 제임스는 지금 나랑 같이 가기로 했다고 말한다는 건…….’

잠깐. 내가?

“……뭐라고? 얘가, 너랑?”

고맙게도 율리아가 대신 물어봐 줬다.

“응.”

제임스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네비브의 녹색 눈이 정처 없이 방황하는 사이, 율리아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새빨개졌다.

“거짓말! 난 네가 달링과 파트너였던 적을 본 적이 없어! 단 한 번도!”

율리아는 ‘달링’에 유독 힘을 주며 외쳤다. 그 외침에 연회는 한순간 조용해졌다.

이목은 세 사람에게 쏠렸다.

이곳에서 제네비브와 제임스와 율리아를 안 보는 사람은 오직 필드 위를 뛰는 선수들뿐이었다. 제네비브는 이 순간 투명 인간이 되고 싶었다.

물론, 율리아의 분노를 헤아리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필시 그녀는 제임스와 친구들이 늘 그랬던 것처럼 따로 다닐 거라고 생각했을 테니.

제네비브는 율리아를 달래고자 위로의 말을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율리아가 더 빨랐다.

「저 애면 모를까!」

급기야 율리아는 모국어로 쏘아붙이며 오웬을 가리킨 채 말했다. 자신에게 쏠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할 말을 하는 모습이 일견 대단하기까지 했다.

실제로 제네비브는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오웬과 종종 파트너로 참석했지만, 율리아가 그런 어조와 태도로 말하니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달링, 말해 봐. 네가 정말 제임스의 파트너야?”

현실을 부정하는 건지, 율리아가 다소 거만하게 물었다.

“응? 나?”

갑작스러운 추궁에 제네비브는 멍청하게 되물었다.

제네비브를 잡은 제임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프기보단 ‘제발 답을 잘해 주세요’ 같은 구조 요청에 가까웠다.

평소라면 귀찮은 일에 어울려 주지 않았겠지만, 율리아의 태도 때문인지 제네비브는 평소와 다른 결단을 취했다.

“음……. 그게, 맞아. 그렇게 됐어. 이제 졸업인데 마지막은 친구들끼리 가 보려고. 하하. 바우어, 미안해.”

왜 본인이 사과하는지 알 턱이 없지만, 제네비브는 나름대로 성의를 다해 말했다.

‘이 정도면 포기하겠지.’

이제 제임스에게 대가로 어떤 걸 받아 낼지 고민만 하면 된다.

“사실이야?”

하지만, 제네비브는 율리아의 집념을 얕봤다. 그녀는 납득하지 못한 듯 이제 오웬과 블랑카에게 물었다.

“어어~ 우리끼리 가기로 했어~ 아하하.”

오웬이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

결국, 율리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리라도 지를 것처럼 얼굴이 빨개진 그녀는, 최후의 인내심을 발휘해 소리 나게 정원을 빠져나가는 걸로 만족했다.

땅을 얼마나 세게 밟았는지, 율리아가 지나간 자리마다 선명한 구두 자국이 새겨졌다.

한바탕 소동이 끝나자 사람들은 눈치껏 모르는 체했다. 물론, 숙녀들은 팔랑거리는 부채 뒤로 신사들은 담뱃불을 주고받으며 이 일을 두고두고 회자할 테지만, 제네비브와 제임스는 일을 마무리 지었다는 데 의의를 뒀다.

“하…….”

제네비브는 한시름 놓고서야 참아 왔던 한숨을 내뱉었다.

“고맙다.”

그녀와 똑같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 제임스가 말했다.

“이 일에 대한 대가는 꼭 받아 낼 거야. 카터 저택 기둥 뽑힐 준비해.”

“각오한 일이었어.”

제임스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마지막을 친구들과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지.’

하지만, 오웬과 블랑카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 것 같았다.

“아, 다 망했어. 이번에는 새로운 사람 좀 만나나 했더니…… 또 오웬이야.”

“나라고 너와 파트너가 되어서 기분이 썩 좋은 건 아니란다.”

그도 그럴 게 오웬과 블랑카는 이로써 2년 연속 서로를 맡게 되었다. <더 칼리지>는 행사마다 바빴기에, 둘은 클럽 가입 이후 마지못해 서로의 파트너를 담당하곤 했다.

누가 누가 불평을 더 잘하나 겨루기라도 하듯, 오웬과 블랑카는 남들이 들을 수 없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쫑알쫑알 불평을 늘어트렸다.

둘은 제네비브가 입에 디저트를 물리고 나서야 조용해졌다.

“말 맞춰 줘서 고마워.”

제임스가 미소를 지었다. 마카롱을 삼킨 오웬이 극적인 목소리로 ‘카터 도련님을 위해서라면!’이라고 말했다.

“실은…… 너희를 그렇게 대하는 사람과 가고 싶지 않았어.”

제임스가 쑥스러운 듯 어색하게 웃어봤다.

“헨리 제임스 카터, 이 의리 넘치는 자식……!”

오웬이 감격한 목소리로 외치며 제임스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러고는 칭찬이라도 하듯 잘 정리된 금발을 헤집어 놓았다.

“야, 그만해.”

말과 다르게 제임스는 즐거워 보였다.

흐뭇하게 친구들을 바라보던 제네비브는 뒤늦게 에드워드를 확인했다. 어느새 가까워진 에드워드는 가끔 보이던 의미 모를 눈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 맞다. 인사.’

겨를이 없어 인사를 미룬 게 생각났다.

“선배, 안녕하세요.”

제네비브와 눈이 마주친, 더 정확히는 그녀가 저를 바라보길 기다린 듯 에드워드가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잘 찾아왔네? 「훌리에타 양도 좋은 오전이에요.」 둘이 만나기로 약속한 거야?”

제네비브가 조금 아는 렐타어를 섞어 가며 인사하자, 고맙다는 서툰 공용어가 돌아왔다.

“아, 아뇨. 가르시아 씨와는 오는 길에 우연히 만났어요. 오늘 폴로 경기에 가르시아 씨의 친구분이 나온다고 해서…….”

에드워드가 양손을 저어 가며 강하게 부정했다.

“그래? 그럼 딱 맞춰서 왔네! 지금 경기 중반부인데, 렐타가 이기고 있어.”

에드워드는 제네비브의 말을 번역해 훌리에타에게 알려 줬다. 저번 저녁 만찬보다 긴장이 풀린 듯 그녀의 말수는 눈에 띄게 늘었다.

“어머, 에디! 너도 경기 보러 왔어?”

그때, 블랑카가 친근하게 물었다.

“달링 부인이 초대해 주셔서 왔습니다.”

“고모님이? 으음, 그럴 수도 있지. 옆에 친구는 누구?”

오웬이 물었다.

“첫날에 같은 테이블에 앉은 애야.”

“아아, 렐타 학생이었던가……?”

블랑카가 기억을 더듬으며 물었다. 제네비브가 맞다고 고개를 끄덕여 주자, 블랑카는 이가 보이도록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저는 세인트 존 칼리지 3학년 블랑카 라 투르 보아르네예요. 편하게 블랑카라고 부르면 된답니다.」

그녀를 시작으로 오웬과 제임스도 인사를 했다.

「아, 안녕하세요. 렐타 사관 학교 훌리에타 가르시아입니다.」

블랑카와 악수한 훌리에타는 빠르게 자신감을 잃었다.

「설마, 아구스틴 가르시아가…….」

블랑카가 입을 가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가르시아 양은 공용어가 조금 서툴러.”

제네비브의 말에 블랑카는 신나게 떠들려는 입을 다물었다.

“혹시, 편히 구사하는 다른 언어가 있을까요?”

제임스가 물었다. 정확하게는 렐타어를 제외한 모든 언어를 의미했다.

블랑카가 “프레스반어라도.”라며 절박하게 말했지만, 만약 훌리에타가 다른 언어를 구사했다면 그날 만찬은 에드워드가 없더라도 잘 흘러갔을 거다.

「아뇨…….」

제임스를 본 훌리에타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짧은 말은 그 의미를 충분히 전달했다. 훌리에타는 거의 울 듯한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한 뒤, 자리에서 벗어났다.

“저…… 가르시아 씨께서 경기를 보러 간다고…….”

좋게 포장하면 경기 관람이고, 솔직하게 말하면 말이 안 통해서 도망친 것이다. 하지만 잘 교육 받은 이라면 응당 그러하듯 누구도 못난 진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블랑카는 세인트 존 칼리지 경기를 보기 위해 자리를 빠져나왔고, 오웬과 제임스도 프레스반 아카데미 지인을 만나며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저…… 선배. 그럼 선배는 제임스 선배의 파트너인 건가요?”

둘만 남았을 때, 에드워드가 물었다. 제네비브는 올 게 왔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날 연회에 대해 에드워드가 잘 모를 거라고 여겨서 설명하려고 했지만, 그는 살짝 웃으며 “저도 작년에 오긴 했어요.”라고 대답했다.

“어쩌다 보니 같이 가 주기로 했어. 로맨틱한 건 아니고…….”

제임스를 상대로 ‘로맨틱’을 언급하니 팔에 닭살이 돋았다.

“큼…… 정확히 말하자면 난 퇴치용에 가까워.”

“……퇴치용이요?”

에드워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나를 핑계 삼아서 다가오는 여학생들을 거절하려는 셈이야. 이미 파트너가 있으니까 대화를 걸어 봤자다, 뭐 이런 거지. 자꾸 말 걸고, 파트너 신청하라고 눈치 주는 것도 컨디션에 영향을 미치잖아. 이번에 종목 세 개 나가는 것만 해도 머리 아플 텐데……. 매번 거절 방법 고민하는 것도 얼마나 일이겠어?”

“거절하는 것도 일인가요?”

에드워드가 이해가 안 가는 듯 물었다.

“그럼, 일이지. 제임스는 최대한 정중하게 거절하는 편이거든. 오늘은 예외였지만…….”

제네비브는 흐려진 율리아의 발자국을 봤다.

“그래서, 가든파티에 온 소감은 어때?”

제네비브가 발로 율리아의 발자국을 문지르며 더 흐릿하게 만들었다.

“음……. 잘 모르겠어요. 이렇게 경기를 보는 건가요?”

에드워드가 야외 파티장을 쭉 둘러봤다.

“응. 눈에 잘 안 들어오지?”

“필드가 넓어서 경기 파악이 어렵네요.”

대답을 들은 제네비브는 조금 크게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야. 잘 모르겠으면 사람들이 손뼉 칠 때 따라서 치면 돼.”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점수판 숫자가 바뀌자 박수 소리가 들렸다. 제네비브가 손뼉을 치는 걸 본 에드워드는 그녀를 따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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