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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44화 (44/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44화

대체 그는 어떤 환경을 접하고 자랐기에 미움 받는 것이 익숙한 걸까? 일상적인 일을 이야기하듯 갈색 눈은 잔잔했다. 그게 더 그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에드워드, 미움 받는 건 당연한 게 아니야.”

제네비브는 콧잔등을 살짝 찡그렸다.

“네가 그럴 대접을 받아야 할 이유도 없고.”

제네비브는 에드워드의 손을 잡고는 저보다 큰 손등을 가볍게 토닥였다.

“그러니까,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알겠지?”

“…….”

“알겠어?”

대답이 없자, 제네비브는 확인하듯 재차 물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이건 내가 가져갈게.”

제네비브는 에드워드가 들고 있던 와인 잔을 가져갔다. 조금 실랑이할지도 모르겠다고 각오한 것과 다르게 에드워드는 손에 힘을 주지 않았다.

물론, 제네비브에게 넘기고 싶어서 넘긴 건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다는 양 멍하게 허공을 보던 에드워드는 한 박자 늦게 상황을 파악했다.

그는 제네비브의 잔을 다시 가져가는 수고를 하는 대신, 직원에게 다시 와인을 주문했다.

“아니! 안 줘도 된다니까 그러네!”

“제가 드려야―.”

“오, 우리 딸. 성인식은 아직 몇 달 남은 걸로 아는데.”

와인 한 잔으로 아옹다옹하는 제네비브와 크롬웰을 멈춘 건 달링 후작 부인의 목소리였다.

“그쵸, 아서?”

달링 후작 부인이 옆 남성의 동조를 채근하듯이 물었다.

“아빠!”

달링 후작이었다.

둘에게 황급히 다가간 바람에 제네비브는 와인을 흘렸다. 붉은 자국이 무릎 부근에 남았지만, 제네비브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눈치를 보며 느리게 달링 부부와 거리를 좁혔다.

“몸은 괜찮으세요?”

“한숨 자니 낫더구나. 그런데, 옆에 친구는 언제 소개해 줄 게냐?”

“아, 이쪽은 에드워드예요. 에드워드, 여기는 우리 아빠야. 엄마는 어제 만났지?”

제네비브는 달링 후작에게 에드워드를 소개했다. 부모님을 만나는 자리에서 술을 들고 있다는 게 신경 쓰였는지 에드워드는 손을 아래로 내렸다.

“달링 부인,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에드워드가 정중하게 인사했다.

“아니란다. 좋은 시간 보내고 있니?”

제네비브는 이때, 아주 조금은 모친이 원망스러웠다.

에드워드가 이런 상황을 겪게 될 줄 알면서 초대한 의도를 탓하고 싶었고, 모친의 의도를 그녀에게서 직접 들었는데도 에드워드가 이곳에 오게 둔 자신이 무능하게 느껴졌다.

“네, 덕분에 잘 보내고 있습니다.”

상식인이라면 초대한 사람에게 방금 귀족 한 명에게 모진 대우를 받았다고 말하지 못한다. 에드워드는 사실을 고하는 대신, 대다수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들려줬다.

“흠……. 너무 잘 보내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는군…….”

달링 후작이 두 사람 손에 들린 와인 잔에 시선을 두며 말했다.

제네비브는 아버지가 딸이 오해 중이라고 착각하거나, 에드워드가 질 나쁜 학생이라 첫인상을 굳히기 전에 재빨리 입을 열었다.

“이건 크롬웰 경이 시킨 거예요.”

“크롬웰? 토마스를 말하는 게냐?”

달링 후작은 크롬웰 자작의 이름을 언급했다. 자애롭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아뇨, 그 아드님이요.”

딸의 대답을 들은 달링 후작의 얼굴은 붉게 변하다 못해 서서히 보랏빛으로 질렸다.

“그러니까 지금…… 크롬웰 자작도 아니고, 그 아들이 우리 딸에게 와인 심부름을 시켰다는 게냐?”

순간, 제네비브는 크롬웰을 희대의 상놈으로 만들어 낼 생각이 떠올랐다. 더불어 행사 동안 에드워드를 보호할 방법도.

“제가 아니라 에드워드에게 시켰어요. 하지만 에드워드는 엄마의 손님인데, 어떻게 그런 걸 하게 하나요?”

제네비브는 염려 가득한 표정을 꾸며 냈다.

“크롬웰 가문 영식이, 지금 레베카의 손님을……!”

“아서.”

달링 후작 부인이 이마를 짚었다.

“레베카, 당신의 손님을 부려 먹은 건 곧 당신을 부려 먹은 거잖소! 크롬웰 가문이 이 달링 가문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달링 후작이 녹색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달링 후작은 그 성(Darling)과 다르게 화가 나면 전혀 사랑스럽지 못한 사람이었다. 웬만한 일은 유하게 넘어갈 정도로 발화점이 높아, 거의 화를 내지 않았으나 그가 유일하게 참지 못하는 순간이 있으니 그건 바로 가족이 무시당하거나 다칠 때였다.

제네비브는 딱 일 년 만에 부친이 화내는 모습을 봤다. 작년 여름, 그녀가 낙마해서 부상을 입었을 때, 그는 이렇게 화를 냈었다.

“안 되겠군. 그리 원한다면…… 내가 직접 가져다주겠어. 에드워드 군이라고 했나? 잔을 내게 주게.”

달링 후작의 명령 아닌 명령을 들은 에드워드는 저도 모르게 순순히 잔을 건넸다. 제네비브가 들고 있는 잔까지 챙긴 달링 후작은 곧장 크롬웰을 찾으러 갔다.

계획대로 반응해 주는 아빠에게 감사하는 제네비브와 다르게, 에드워드는 이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정말이지 너와 네 아버지는 못 말리겠구나.”

달링 후작 부인이 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쫓아갔다. 저가 만들어 낸 태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제네비브와 덩그러니 남은 에드워드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뭐긴, 우리 가족을 본 거지. 이제 괜찮을 거야.”

미소를 지은 제네비브는 에드워드와 가벼운 걸음으로 부모님을 따라갔다.

몇 걸음만으로 제네비브와 에드워드가 천막에 도착했을 때, 마침 상황이 전개되었다.

“크롬웰.”

“달링, 아니, 달링 후작님께서 어떻게…….”

천막 아래 의자에 앉아 시시덕대던 크롬웰은 달링 후작을 보자마자 화들짝 놀랐다.

“크롬웰 군이 애주가인 줄 몰랐어. 얼마나 마시고 싶었으면 내 부인의 손님에게 와인을 가져오라 시켰는지 궁금하여, 내가 직접 아내를 대신해 가져왔다네.”

달링 후작이 허허 웃으며 잔을 건넸다.

그의 입은 호선을 그리고 있었지만, 녹색 눈은 크롬웰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너 같은 놈팡이가 감히?’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여기서 크롬웰이 술을 거절하면 그는 왕국에서 제일가는 가문의 수장을 무시하는 것이었고, 잔을 받으면 후작 부인이나 되는 사람을 마음대로 부린 게 된다. 한마디로 어느 걸 고른들 무례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것이다.

결국, 스물을 갓 넘긴 청년은 벌벌 떠는 손으로 달링 후작이 건넨 잔을 받았다.

“술맛은 어떤가?”

“……훌륭합니다.”

“그래, 그래야지. 맛이 있어야지. 맛이 없으면 되겠나?”

그리하여 데이비드 크롬웰은 달링 후작 부인의 손님을 거짓말쟁이로 몰아간 것뿐만 아니라 그를 시종처럼 부려 먹고, 기어이 달링 후작에게 와인 심부름을 시킨 천하의 상놈이자 위아래도 없는 놈이 되어 버렸다.

‘됐다!’

제네비브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에드워드를 얕볼 사람은 없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달링 후작은 크롬웰과의 소동으로 달링 후작 가문과 에드워드의 변형된 형태의 샤프롱 관계를 만들어 냈고, 그걸 이곳에 있는 모두에게 밝혔다.

비록 달링 후작은 에드워드를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크롬웰이 아내를 모욕해서 화를 낸 거였지만, 아무튼 에드워드를 모욕하면 달링 후작 가문을 모욕한 거라는 공식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혔다.

그제야 제네비브는 마음의 짐을 덜어 냈다. 그리고 딸이 만들어 낸 상황을 모를 리 없는 달링 후작 부인은 이마를 짚었다.

“예상하셨던 건가요?”

몇 초가 지나서야 일련의 일들을 이해한 듯 에드워드가 놀란 눈을 하며 물었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제네비브는 가벼워진 마음으로 대답했다.

달링 가문의 보호야말로 그녀가 지금 에드워드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 * *

달링 후작부인이 에드워드를 초대한 의도를 완벽하게 비틀었기에, 제네비브는 모친이 부디 화를 많이 내지 않기를 (달링 부부는 딸을 몹시 사랑했음으로 불필요한 걱정이었다) 바랐다.

무관심은 곧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대체 에드워드가 누구길래 달링 부부가 싸고도는 걸까?

오해였지만 달링 가문 사람 중 어느 누구도 정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달링 후작은 방금 자신이 무슨 발언을 한 건지 전혀 신경도 안 쓰는 듯했다.

정정했다간 가족에게 무안을 주는 일이었기에 후작부인은 정정하지 ‘못했고’, 제네비브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자신을 향한 호기심 어린 시선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듯했다. 에드워드가 긴장했다는 걸 알아챈 제네비브는 그를 인적이 드문 연회장 외곽으로 데리고 갔다.

“좀 낫지?”

“네, 고마워요.”

지나가는 사람은 없어서 좋았지만, 천막이 시야를 막아 경기 파악이 어려웠다.

“저 때문에 경기 놓칠 필요 없어요.”

“우리 학교가 이길 텐데. 본선 보면 되지.”

제네비브는 별거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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