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49화
「외국 귀족조차 새로운 귀족 사회에 들어갈 때면 많은 텃세와 배척을 당하는데…… 하물며 평민이면 얼마나 더 힘들겠니? 나는 감히 상상도 못 하겠단다. 네가 조금만 독했어도 이런 걱정은 안 했을 거야. 오, 하지만 너는…… 애가 참 착해. 그게 문제란다.」
에드워드는 자신이 ‘착하다’고 생각한 적 없었지만, 굳이 그 말은 꺼내지 않았다.
달링 후작부인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네가 이 사회에 발을 들이면 어떤 경험을 해야 하는지 제네비브가 직접 보고 느끼길 바랐어. 전해 듣자 하니 세인트 존 칼리지를 졸업하면 괜찮은 직장을 찾을 수 있다고 하더구나. 나는 네가 굳이 귀족 사회에 진출해서 안 겪어도 되는 일을 겪지 않게끔 도와주는 게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단다. 솔직히…… 이기적인 마음은 내 딸이 고생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고.」
제네비브를 떠올린 듯, 달링 후작부인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에드워드는 자신과 제네비브를 엮어 생각하는 달링 후작부인의 말을 정정해 주고 싶었다.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자신에게 그녀는 그저 감사한 선배일 뿐이라고.
「아서도 내가 카르디르에서 자리 잡을 때까지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거든. 아서의 어머니는 나와 결혼하기 전에 여신의 품으로 돌아가셨고, 나는 그 때문에 적응이 어려웠어. 그리고, 어제 그 일이 있었지.」
하지만 달링 후작부인은 에드워드에게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내가 틀렸다는 걸 깨닫는 데엔 시간이 조금 걸렸어. 너를 걱정해서 그런 거라도 해도 굉장히 질 나쁜 행동이었어. 오, 진심으로 걱정한 거라면 내 독단으로 판단하면 안 됐는데. 나도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지. 과거의 나 역시 새로운 사회를 친절히 안내해 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말이야…….」
달링 후작부인은 계속 말을 이어 갔다.
「괜찮다면 내가 너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주고 싶구나. 너무 늦게 사과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해……. 나는 네가 내 제안을 거절해도 이해한단다.」
“…….”
먼저 느낀 건 당혹감이었다. 달링 후작부인이 이런 이야기를 꺼내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에드워드는 어디에서부터 짚어야 하는지 고민했다.
달링 후작부인이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것? 아니면, 밀포드 씨가 응당 해야 할 후견인의 역할을 본인이 맡겠다고 한 것?
결론은 달링 후작부인은 지금 에드워드를 돕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본인과 겹쳐 보여서, 과거의 본인이 받지 못한 도움을 제게 주고 싶어서.
아본리아에서 대귀족으로 태어나, 후작부인임에도 새로운 땅에서 은근히 무시당했던 레베카 달링과 황실의 핏줄을 물려받았으나 평민처럼 살아가는 본인 중 누구의 처지가 더 기구한진 뚜렷했지만, 에드워드는 달링 후작부인의 사연에 공감했다.
「……도와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에드워드는 곧 긍정을 내뱉었다. 도와준다는 걸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정말 고맙구나.」
달링 후작부인이 말했다.
「내가 카르디르 귀족 사회에서 배운 게 있다면, 무시 받지 않기 위해선 옷차림이 중요하단 거야. 슬프게도 인간만큼 속물인 동물도 없어. 보이는 대로 믿으니, 상대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에 맞춰서 입으면 된단다.」
그 말에 에드워드는 제 옷을 봤다.
깨끗한 흰색 상의는 에드워드의 세심한 관리로 단정했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낡은 티가 났다. 소매 끝은 헤져서 실이 풀리기 직전이다.
「옷은 준비했으니 걱정은 넣어 두렴. 어디에 머무는지 알려 주면 된단다.」
에드워드가 호실을 알려 주자, 그를 이곳까지 안내한 남자가 라운지를 나갔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란다. 최소한 이 정도는 해 줘야지. 그나마 우리 제네비브가 너와 어울려서 정말 다행이구나.」
제네비브가 너와 어울려서 다행이구나. 에드워드의 머리에, 마음에 오래 남을 문장이었다.
「어디서 호감을 느꼈는지 알겠어. 오, 망나니 같은 놈들이었으면 어디서부터 손봐야 할지 고민했을 텐데.」
「선배는…… 사람들의 좋은 면만 봐줘서 그런 거지, 제게 호감을 느끼거나…… 하진 않습니다. 저도 그렇고요.」
에드워드는 달링 후작부인이 말한 ‘호감’이 ‘이성 간 호감’에 속하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횡설수설 변명을 늘어트렸다.
「오, 부모보다 자식을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단다.」
그 말을 들은 달링 후작부인은 웃음을 터트렸다.
「네…….」
에드워드는 짧게 답했다. 더 얘기했다간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얼굴이 붉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옷 몇 벌 선물하는 걸로 끝났다는 생각은 넣어 두렴.”
달링 후작부인은 능숙하게 주제를 돌려, 가도 된다는 뉘앙스로 말했다. 그녀에게 인사한 에드워드는 라운지를 벗어났다.
“…….”
달링 후작부인이 마지막으로 한 의미심장한 말의 의미를 깨달은 건 방에 도착한 이후였다. 커다란 상자를 든 사람들이 에드워드의 방 안으로 줄지어 들어갔다.
응접실엔 개봉된 상자들로 가득했다. 한 사람이 상자를 열어 안에 있는 옷을 꺼내면, 다른 한 사람이 옷을 받아 벽장 안으로 들어갔다.
상의 기장과 색상이 미묘하게 다른 연회복 서너 벌, 브로드로 짜인 상의가 열 벌, 바지 일곱 벌, 다이아몬드가 박힌 커프스단추 한 벌, 고급 신발 일곱 켤레.
“앞으로 마이언에서 남은 시간 동안 제가 에드워드 군을 모시게 될 겁니다. 닉이라 불러 주십시오. 드레스 룸은 채우고 있습니다.
그를 라운지까지 안내한 남자가 자신을 소개했다.
“저…… 이렇게까지 안 해 주셔도 됩니다.”
에드워드는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과한 대접이었다. 에드워드가 생각한 건 옷 몇 벌 정도였다. 조금 더 나아가면 ‘달링’을 언급해도 된다는 허락까지가 상상의 최대였다.
그런데 벽장을 가득 채우는 옷과 개인 버틀러라니. 에드워드는 당황스러운 눈으로 닉을 봤다.
“……깨끗하게 쓰고 돌려드리겠습니다.”
에드워드는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달링 가문에서 드리는 선물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과한 선물이었다.
“기성품이니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나마 맞춤복이 아니라는 것에 에드워드는 한시름 놓기로 했다.
평생 입을 옷을 지금 전부 받았는데도 닉은 이게 끝이 아니라는 듯이 재봉사를 소개했다. 그는 에드워드의 몸에 줄자를 이리저리 대 보더니, 쓱쓱 메모한 뒤에 ‘달링 후작부인을 만나 뵈러 가야겠다’라고 말하며 사라졌다.
한순간에 일어난 일에 에드워드는 조금 전 일이 맞춤복을 만들기 위함인 걸 뒤늦게 깨달았다.
“후작부인께서 에드워드 군이 춤 수업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춤을요?”
“예, 마지막 날 연회에 춤을 추셔야 하여…….”
입장할 때 동행하면 끝나는 게 아니었던가? 물론, 무도회인 건 알았지만 ‘진짜 무도회’이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이래서 다들 파트너 찾기에 시간을 썼구나.’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무도회라 하더라도 같이 입장하고, 첫날 연회처럼 저녁 식사만 갖는 건 줄 알았다.
“또한, 당부하신 것이 있는데…….”
“뭔가요?”
“에드워드 군이 머리를 다듬길 바라십니다. 깔끔한 인상으로 무도회에 가길 바라시는데, 어려우시면 대신 말씀 전해 드리겠습니다.”
닉이 예의 바르게 말했다.
“…….”
에드워드에게 있어서 머리카락은 불가침의 영역이었다.
단순히 외모에 관심이 없어서 기르는 게 아니었다. 깔끔한 그의 성격에 덥수룩한 앞머리는 어울리지 않았다.
‘어려우시면’이라는 말이 붙은 걸 보면 달링 후작부인은 그의 성질을 제대로 알아봤지만, 당연하게도 그가 머리를 기르는 이유는 몰랐다.
‘내가…… 아버지를 닮아서.’
에드워드는 생부— 황제와 놀라울 정도로 똑 닮았다.
특별하지 않은 연갈색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지만, 딱 그뿐이었다. 그 외 모든 곳에서 황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젊었을 적 황제와 똑같은 얼굴을 내놓고 다니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너무 짧게만 안 잘라주시면 괜찮습니다.”
고민하던 에드워드는 제 의견을 말했다.
“후.”
얼굴은 안경으로 가리면 된다. 머리칼을 뒤로 넘기고 멋 부리지만 않으면 괜찮을 거다.
* * *
‘뭔가 달라졌어.’
제네비브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네 번째 경기를 진행하는 에드워드를 바라보았다. 어디가 달라졌다고 콕 집어 말하진 못했지만, 아무튼 전과 달라졌다고 확신했다.
예선과 다르게 본선은 챙겨 보는 사람이 많았고, 이번 오전 경기가 끝나면 오후에 준결승과 결승이 치러진다. 거대 이벤트 도입부에 해당하는 지금, 제네비브는 자연스레 앞자리 기자석과 안녕을 고했다.
그녀는 에드워드가 검지 크기로 보이는 거리에 앉았다. 쉽게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그녀를 비웃기라도 하듯, 예선전 이후로 경기장이 아닌 곳에서 에드워드를 만나기란 어려웠다.
‘거의 이틀째지.’
그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다.
세인트 존 칼리지는 드디어 우승을 했다. 영광의 주인공은 놀랍지 않게도 제임스였다.
제임스는 4인 단체전에서 2등을 했고, 개인전 싱글 스컬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세 종목 모두 순위권에 드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하여 제임스가 브로치를 받을 거라는 이야기가 암암리에 돌았다.
친구들에겐 미안한 생각이지만, 폴로 경기 없이 마이언 아카데미에서 보내는 시간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제임스는 언제나 훈련 중이었고, 오웬은 타국 지인들과 어울리기 바빴으며, 블랑카는 <더 칼리지>를 걱정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무료하고 심심한 제네비브의 하루는 에드워드의 시합이 달래 줬다. 비록 대화를 나누지 않더라도, 원작 서브 남주가 원작과 유사한 장면을 보여 주니 마치 미공개 외전이라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제네비브는 손가락 사이로 에드워드를 잡으려고 했다. 몇 번의 시도는 금방 실패했다. 워낙 에드워드가 피스트 위를 잽싸게 오간 탓이었다.
금방 포기한 제네비브는 손을 내리고 에드워드의 경기를 봤다. 이번 경기에서 이기면 에드워드는 결승에 진출한다. 상대는 테오도르였다.
짝짝짝—!
시합이 끝나고 관중들은 손뼉을 쳤다.
시합은 큰 반전 없이 에드워드의 승리로 돌아갔다. 에드워드는 바우트 세 개를 전부 치른 적이 없었다. 그는 모든 시합을 두 바우트 안에 끝냈으니까.
정말이지, 괴물 같은 실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