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51화
“…….”
“에드워드? 너, 안에 있어?”
자신을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선배!”
“한참을 찾았어! 근데 여기엔 왜…… 아니, 일단 나오자.”
하지만 문고리는 더 돌아가지 않았다.
“문이 잠겼어요! 열쇠가 필요할 거예요. 열쇠를 가진 사람이…….”
열쇠를 찾아오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에드워드는 입안을 씹었다.
“아, 잠긴 거야?”
제네비브는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말했다.
그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곧 문에서 철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열쇠를 돌리는 감사한 소리였다.
끼이익—.
녹슨 쇳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문은 힘없이 열렸다. 아무리 차고 때려도 소용없던 문이 열린 것에 놀라는 것도 잠시, 문 사이로 제네비브가 보였다.
한참을 뛰어다녔던 건지 그녀의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고, 땀 때문에 잔머리는 관자놀이와 뺨에 붙어 있었다. 숨을 고르는 가슴은 작게 들썩였다.
“괜찮은 기술이지?”
조금 자랑스럽게 말한 제네비브는 배시시 웃으며 열쇠 구멍에서 무언가를 빼냈다.
얇은 실핀이었다. 다시 제네비브를 보니, 옆으로 깔끔하게 땋아 있던 반묶음 머리가 누가 헤집은 듯 붕 떠 있었다.
“선배, 머리가…….”
“설명은 이따 해 줘. 빨리 가자.”
실핀을 주머니 속에 챙긴 제네비브는 에드워드를 끌고 갔다. 둘은 거의 달리듯 복도를 걸어갔다.
“저를 어떻게 찾은 거예요?”
“아니, 네가 도망, 쳤다는 거야. 미안, 숨이 차서.”
어떤 걸 불참 사유로 내놓았나 궁금했는데, 들어 보니 어이가 없었다.
표정이 썩 어두웠는지 에드워드를 본 제네비브가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네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지? 나도, 안 믿겼어. 그럴 리가 없잖아.”
“…….”
“테오도르도 이상하게 생각해서, 잠깐, 휴식 요청했는데…… 그래서, 이제 시간이 얼마나, 남았냐면.”
제네비브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5분 남았잖아! 에드워드, 내 속도에 안 맞춰도 돼. 빨리 가!”
“네?”
“5분 넘겨서 도착하면 경기 못 해! 먼저 가!”
제네비브는 기겁하며 에드워드의 등을 떠밀었다.
“부담 갖지 말고. 잘할 수 있을 거야.”
“네.”
제네비브를 뒤로하며, 에드워드는 경기장을 향해 달려갔다.
넓은 보폭으로 빠르게 뛰어간 에드워드는 시간에 맞춰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산만해.’
경기장 안으로 들어서자 느껴지는 건 산만함이었다. 마틴과 라이언은 놀란 듯 보였다. 여유롭던 찰스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건 일 초면 충분했다.
스미스 감독과 알렌 코치는 진지하게 말을 나누고 있었다. 심판과 실랑이를 이어 가던 테오도르가 에드워드를 확인하고 물러섰다.
이 어수선한 분위기는 저 때문이었다. 에드워드를 발견한 스미스 감독이 곧바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에드워드!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거냐?”
“죄송합니다.”
잠시 이 모든 일의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하는지 고민했지만, 이럴 땐 군말 없이 사과하는 게 깔끔하고 편했다.
“왔으면 됐다. 빨리 준비해.”
“네.”
스미스 감독은 에드워드에게 마스크를 툭 건넸다. 머리에 보호구를 쓴 에드워드는 코치와 프런트가 하는 대로 준비했다.
“하던 대로만 해라.”
스미스 감독이 말했다.
그 말이 하던 대로 깔끔하게 이기라는 건지, 아니면 긴장하지 말라는 뜻인지 알 방법은 없었다.
에드워드는 마지막으로 손수건을 움켜쥐고 피스트 위로 올라갔다.
“살뤼(Salut).”
심판의 목소리가 경기장을 채웠다.
지시대로 에드워드와 테오도르는 검을 들고는 무릎 아래로 휙 내렸다. 가느다란 칼이 공기를 가로지르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안정을 되찾은 에드워드는 상대를 침착하게 봤다.
테오도르 우드빌.
그의 시합을 관찰해 본 결과, 공격보단 방어에 능한 선수였다. 체력이 좋아 상대를 지치게 하여 허점을 만들어 낸 뒤, 공격으로 점수를 따내는 데 능했다. 지구력이 좋은 선수였다.
두 바우트 안에 끝내야 한다.
에드워드 또한 체력이 좋지만, 세 번째 바우트까지 가 본 적이 없어 아마 그때부터 경기 운행 능력이 눈에 띄게 차이가 날 것이다.
“앙가르드(En Garde).”
심판이 바닥을 향해 손을 양옆으로 뻗었다.
에드워드는 몸을 낮춰 공격 자세를 만들었다. 상대도 비슷한 자세를 취했다.
준비가 되었냐는 심판의 질문(Etes―vous prets?)에 두 사람 모두 ‘예(Oui).’라고 대답했다.
에드워드는 깊게 숨을 쉬었다.
“알레(Allez).”
경기가 시작되었다.
짧은 견제 뒤엔 신발이 바닥과 부딪혀 마찰음이 들렸다.
역시나 테오도르는 방어에 능했다. 그는 에드워드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며 그를 찌르려 했지만, 에드워드는 간신히 막아 낸 뒤 테오도르의 가슴 부근을 찔렀다.
1대0.
에드워드가 선점을 취했다. 연속 득점만 한다면 흐름을 아예 이쪽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하지만, 정말 테오도르 상대로 선공을 해도 되는 건가? 섣불리 공격하다간 역으로 점수를 빼앗길 수 있었다.
그 망설임을 읽은 듯 테오도르가 먼저 공격해 왔다. 넓은 보폭으로 한 발, 두 발. 간격을 좁힌 테오도르가 칼을 들이밀었다. 묵직한 칼이 배를 쿡 찔렀다.
“고작 한 점이야.”
에드워드는 중얼거렸다.
‘복구하면 된다.’
에드워드는 다짐하며 경기를 이어 갔다.
테오도르는 실력이 뛰어났고, 이는 에드워드도 마찬가지였다. 선수로서 둘의 특기가 다를 뿐이다.
테오도르는 방어였고, 에드워드는 공격이었다.
창과 방패의 싸움에서 이기는 건 3분간 더 많은 점수를 얻어 내는 사람이다.
둘은 누가 한 점을 내면 다른 누군가 한 점을 복구하는 식으로 흘러갔다. 때문에 먼저 점수를 딴 에드워드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12대10.
첫 번째 바우트는 에드워드의 승리로 돌아갔다.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학생보단 이 사태에 어리둥절한 사람이 많았다.
속으로 기대감을 품은 사람도 존재했지만, 대부분 ‘설마 진짜 이기겠어?’라는 생각이 컸다. 상대는 꾸준한 실력을 보인 테오도르였다. 일말의 기대감도 없던 경기 흐름이 점점 ‘우리’ 쪽으로 흘러온다.
에드워드는 피스트에서 내려와, 알렌 코치의 쓸데없는 말을 대충 넘겨들으며 숨을 가다듬었다.
“두 번째 바우트에서 무조건 이겨라. 끝까지 가면 안 돼.”
그나마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하는 건 스미스 감독이었다.
에드워드는 물을 마시며 피스트 반대편, 테오도르 쪽 경기장 입구를 봤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제네비브가 서 있었다. 경기장과 입구, 애매한 곳에 걸쳐 있는 그녀는 벽에 기대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인사하듯 작게 웃어 줬다.
“자자, 이제 까알―끔하게! 우승하자고!”
탐욕이 덕지덕지 묻은 알렌 코치의 목소리가 에드워드를 방해하지만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테지만.
다시 피스트로 오르자, 조용했던 아까와 다르게 몇몇 응원 소리가 들렸다.
“에드워드 이겨라!”
그 순간, 들려온 응원의 목소리에 에드워드는 뒤를 돌아 소리가 나는 쪽을 봤다. 멀찍한 곳에서 제임스가 팔을 흔들고 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다시금 테오도르와 인사하고, 준비 자세를 취한 에드워드는 경기에 집중했다.
관중들은 점점 에드워드에게 동화되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칼, 상대 공격을 부드럽게 막아 내는 움직임. 몇 걸음 만에 상대와 붙는 대담함.
테오도르의 공격이 성공하면 그들은 에드워드보다 더 아쉬워했고, 에드워드가 공격에 성공하면 그들은 에드워드보다 더 좋아했다.
은근한 기대감이 경기장을 채웠다. 에드워드가 연속으로 3득점을 하자, 신난 박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제야 에드워드는 저를 응원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깨달았다.
13대9.
에드워드가 만만치 않은 상대라고 판단한 마이언 아카데미 측에서 타임아웃을 요청했다. 마이언어로 된 문장들이 저쪽에서 들려왔다. 신난 알렌 코치와 보기 드물게 들뜬 스미스 감독은 ‘2점만!’을 말했다.
1분 남짓한 시간.
역전될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했다.
2점을 외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숨이 막힐 때, 에드워드는 거연히 제네비브를 찾았다. 아까와 똑같은 자리에서 저를 보는 제네비브를 눈에 담으니 마음이 안정되었다.
가끔 제네비브를 보면 목 부근이 간지러웠고, 가끔은 긴장한 것도 아닌데 뻣뻣해진다. 또 가끔은 지금처럼 저를 진정하게 만든다.
바우트는 다시 시작되었다.
타임아웃을 하는 사이에 어떤 조언을 들었는지 테오도르는 방어 대신 공격 위주로 패턴을 변경했고, 에드워드는 그가 공격하는 방식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상대에게 에드워드는 4점을 내줘야 했다. 세인트 존 칼리지 학생 몇몇은 아쉬운 소리를 냈지만, 에드워드는 묵묵히 점수를 메웠다.
14대13.
테오도르와 에드워드는 거의 동시에 공격 자세를 취했다. 전면전이었다. 이 1점으로 승부가 갈린다. 에드워드에겐 우승을, 테오도르에겐 다시 한번의 기회를.
그리고 테오도르가 에드워드와 한 점 승부에서 전면전을 선택한 건, 대단히 어리석은 결정이었다.
15대13.
에드워드의 완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