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58화
꺼림직한 우승을 당사자가 미처 만끽하기도 전에 세인트 존 칼리지 학생들이 먼저 우승의 기쁨에 취했다.
그 뒤로 많은 게 에드워드를 덮쳐 왔다. 사람들은 능력이 입증된 그에게 거리낌 없이 호감을 내비쳤다.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불편한 관심을 유연하게 받아 주는 건 저와 춤추길 바라는 여학생들의 눈빛을 모르는 척하는 것과 차원을 달리했다.
본디 수상을 원하지 않았고, 그들의 호의가 불편하다는 걸 차마 말할 순 없었기에 에드워드는 그저 귀족들이 주는 관심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자 노력했다.
“에디. 진저는 어디에 있어?”
숨 막히는 허례허식을 상대하던 중,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제네비브의 친구들이 순차적으로 찾아와 그녀의 행방을 물었다(개중에는 테오도르도 있었다).
에드워드는 그나마 편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그들은 ‘몸이 안 좋아서 먼저 들어갔다’라는 짧은 대답에 만족한 채, 반강제적으로 대화 순서를 타인에게 넘겨주었다.
“너무 걱정 마. 잘 보살피라고 할게.”
하지만, 블랑카의 한마디로 에드워드는 남은 시간을 어떻게든 보낼 수 있었다.
“예선에서도 패배한 적 없다니, 정말 대단한 실력자시군요!”
“과찬이십니다.”
눈앞의 상대와 대화를 나누며 머리로는 다른 생각을 하는 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뒤죽박죽이었다. 수많은 축하 인사를 받으며 감사하다고 말할 때, 에드워드의 머릿속은 한 가지를 알아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선배는 정말 괜찮을까?
주변이 조용해지면 오늘 제가 한 행동 중에 그녀의 심기를 거슬리게 만든 것이 있었는지 찾아봐야겠다.
에드워드는 연회 끝 무렵이 되어서야 자신이 밀포드 씨의 경고보다 제네비브를 더 걱정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그가 연회에 집중하지 못한 것과 별개로, 그날 주인공이 누구냐 물으면 모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에드워드라고 대답할 것이다.
* * *
소문이라고 말할 것도 없이, 세인트 존 칼리지 학생들은 연회가 끝난 다음 날에도 계속해서 에드워드를 언급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제임스가 솔잎 브로치를 받는 건 칼리지에 있어 영광스러운 일이긴 하나, 한편으로는 연례행사일 정도로 수상이 당연하게 된 만큼 신선함은 떨어졌다.
우승 트로피를 받을 수 있는 십여 개의 종목 중 정작 우승한 경기가 두 개인 걸 고려하면 굴욕감을 느낄 법도 했지만, 솔잎 브로치를 두 개 받은 것 또한 우월감이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때문에 세인트 존 칼리지 학생들은 에드워드가 받은 두 번째 솔잎 브로치의 성취에 더 집중하며 이번 행사에서 느낀 미묘한 패배감을 씻어 냈다.
마이언 아카데미에서 기차역까지 가는 길 동안 에드워드를 언급하지 않은 학생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모두가 에드워드를 좋게 생각했다.
“한 경기당 시합이 세 개 있잖아, 그래서 나는 하나 정도는 내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정말 한 경기도 안 지더라? 그러게, 내가 테니스 말고 펜싱 예선 보러 가자고 했잖아.”
처음부터 에드워드의 경기를 본 학생들은 과장을 살짝 섞어 가며 경기를 묘사해, 남들의 부러움을 샀다.
“…….”
그리고 제네비브는 장차 흑막이 될 그에게 공포를 느낀 주제에 마음 한구석에서 뿌듯함을 느끼는 자신이 우스웠다.
어제 연회에서 에드워드와 춤춘 그녀에게도 궁금한 게 많았는지, 열차 안에 들어서자마자 말을 몇 번 섞어 본 적도 없는 동급생들이 친한 척을 해 대며 다가왔다.
“그럼 달링, 너는 에드워드와 파트너였던 거야?”
“장학생이 연회에서 너와 렐타 사관 학생 말고는 같이 춤춘 사람 없는 거 알지? 왜 그런 건지 말해 줬어?”
“너는 왜 중간에 나갔어?”
하필 그중에서도 가장 말이 많은 레일라와 객실이 가까워, 제네비브는 객실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진땀을 빼야 했다.
‘힘들어.’
제네비브는 객실에 들어오자마자 침대 위로 엎어져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몸이 안 좋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며 헤르멜이 어젯밤 방문해 물심양면으로 보살펴 준 건 고마웠으나, 정신이 없을 정도로 포리지를 먹이고 수면 향을 피워 준 덕분에 제네비브는 원래 계획했던 생각 정리는커녕 곧바로 수마에 빠져들었다.
그러니 반나절 만에 누리는 혼자만의 시간이다. 제네비브는 어젯밤, 드레스를 갈아입을 때까지 했던 브레인스토밍을 마저 이어 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쉽지 않았다.
“귀엽게 생기지 않았어? 이름이 에드먼드랬지? 제임스만큼 잘생긴 애도 참 오랜만에 봐.”
“평민 출신이라 안타까울 뿐이야. 하다못해 몰락 귀족 출신이었다면 더 잘됐을 텐데.”
“그런 신분으로 태어난 게 그 애 탓은 아니겠지만…… 평민 티가 안 나는 건 신기하더라.”
객실 밖에서 에드워드와 제임스 중 누가 더 잘생겼는지를 두고 열띤 토론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제네비브의 객실 앞을 지나치는 학생 모두 에드워드를 언급했다. 가끔은 함께 브로치를 받은 제임스가 언급되었고, 또 가끔은 제네비브가 언급되는 식이었다.
생각 정리는 고사하고 계속해서 에드워드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니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내가 오만했어.”
제네비브는 모든 감정을 뒤로한 채 냉정히 판단했다.
에드워드의 인생에 고작 좋은 선배가 한 명 등장한 것만으로 앞으로 닥쳐 올 비극을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그의 성격이 뒤바뀐 건 학교에서의 기억 때문만은 아니었으니.
또한, 원작 속 모습을 한 에드워드를 본 것만으로도 겁을 먹은 자신이 뭘 바꿀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난 정말 아무 힘도 없구나.”
복잡한 머릿속은 한 줄로 정리가 되었다.
어느 순간 멀어지면 당황스럽겠지만, 이제 제 빈자리쯤은 못 느낄 정도로 새로운 인연들이 금방 채워질 거다.
‘이게 맞는 거야.’
제네비브는 마음 한구석에 자라려는 의심을 싹을 짓밟았다.
아본리아로 돌아가는 열차는 제네비브만이 들을 수 있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 엔진이 위잉위잉 요란하게 움직이는 소리, 기차의 이음새가 내는 묵직한 소리까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제네비브는 잠시나마 본인이 처한 현실에서 벗어났다.
그로 인해 제네비브는 그랜드 익스프레스를 탑승한 이후, 처음으로 열차가 만들어 내는 소음과 방음 마법이 안 먹히는 제 특이 체질을 감사하게 여겼다.
“나가지를 말자.”
지금만 해도 이런데, 객실 밖을 나섰다간 에드워드의 소식을 직접 들을 게 뻔했다.
그럼 머리는 다시 복잡해질 거고, 이미 제가 손쓸 수 없는 상황이란 걸 알게 된 상황이니만큼 에드워드를 만나면 제 무능함만 되새겨질 뿐이었다.
다시 모르는 사이가 된다면 그의 불행을 자신이 함께 안을 필요는 없어진다. 그러니까, 지금 그랜드 익스프레스는 갑자기 멀어진 인간관계의 도입부 같은 공간적 배경이다.
그리고 객실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는 그녀의 결심은 블랑카가 그녀의 객실 안으로 들이닥칠 때까지 유효했다.
“밖에 나와도 괜찮다니까? 객실 안에만 있으면 안 힘들어?”
이틀째 객실에서 틀어박힌 제네비브를 보며 블랑카가 말했다.
“괜찮은데.”
제네비브는 냉큼 대답했다. 하지만 내뱉은 말과 다르게 온종일 객실 안에만 있던 탓에 제네비브는 하루가 지날수록 생기를 잃었다.
“나도 추가 인터뷰 따는 데 한참을 기다렸어! 주변에 사람이 워낙 많아야 말이지. 에디가 말을 걸고 싶어도 못 걸 거야.”
제네비브가 연회 이후, 에드워드를 피한다는 걸 눈치챈 블랑카는 굳이 그의 근황을 자세히 알려 주지 않았다.
방금 들은 정보에서 제네비브가 알아낸 건 에드워드가 열차를 탄 뒤에도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있다는 거다.
처음 겪어 보는 호의적인 분위기에 신이 났을까?
객실 안에만 있었다던 예전과 다르게 블랑카와의 대화에서 등장하는 에드워드는 항상 공용 시설에 머물러 있었다.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저도 모르게 에드워드의 입장을 헤아리려던 제네비브는 생각하는 걸 멈췄다. 그의 심리를 파악해 봤자, 누구에게도 하등 도움이 안 된다.
“알았어. 저녁에 나가 볼게.”
에드워드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고, 다른 사람을 상대하느라 바쁘다면 자신과 마주치게 되더라도 대화를 나눌 상황은 아닐 테니까.
제네비브가 고심 끝에 고른 외출 시간은 다음 날 밤 10시였다.
혹여 에드워드를 마주치면 피곤하다는 핑계로 돌아갈 수 있는 완벽한 시간대였다. 거기에 공용 시설은 11시가 넘으면 문을 닫으니, 돌발 상황에도 끄덕 없었다.
드르륵—.
제네비브의 객실 문은 무려 사흘 만에 열렸다. 그녀는 문 사이로 얼굴을 내밀어 복도를 살폈다.
복도는 어두컴컴했다. 객실 문 앞에 걸려 있는 작은 등은 대부분 소등된 상태였는데, 이는 객실 안에 사람이 없거나 취침 중이라는 뜻이었다. 늦은 시간을 고려하면 후자일 확률이 높았다.
아무리 이곳이 그녀에겐 공사장보다 더한 소음 공해의 장이라고 해도 마법이 듣는 남들에겐 고요할 것이다. 제네비브는 발소리가 안 나도록 객실을 살금살금 걸었다.
에드워드와 함께 마이언행 열차를 돌아다녔던 기억을 무시하며 제네비브는 공용 칸을 지나, 온실 칸에 도달했다. 이곳까지 오는 데 에드워드나 다른 사람은 마주치지 않았다.
‘이 시간엔…… 있더라도 휴게실에 있겠지.’
3학년 칸과 가까운 공용실이나 식당보단 2학년 객실 칸과 연결되어 있는 휴게실 칸에 그가 더 있을 법했다.
제네비브는 비교적 여유로워진 발걸음으로 온실을 둘러보았다. 해가 있을 땐 더운 온실은 밤이 되니 조금 서늘해졌다.
나무는 햇빛이 강한 쪽을 향해 우뚝 자라났다. 온실 유리 천장은 등나무가 장식했는데, 여름 대회가 진행되었던 일주일 사이에 작은 등꽃이 아래로 피었다. 등나무 사이로 들어온 달빛은 폭 좁은 오솔길과 졸졸 흐르는 인공 개울을 비췄다(인공 개울을 미처 보지 못해서 제네비브는 실수로 발을 담갔다).
작게 흐르는 줄기를 따라 걸으니, 개울의 시작점으로 보이는 분수대가 있었다. 제 허리만 한 작은 분수대엔 가느다란 물줄기가 여럿 흘렀다. 주변엔 앉을 선베드가 있었다.
아무도 없는 온실을 자유롭게 걷자니 모르는 사이 축적되었던 긴장이 풀렸다.
개울에 빠진 발을 탈탈 털던 제네비브는 다음 열차 칸을 슬쩍 바라보았다. 휴게실이었다. 10시라는 비교적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휴게실엔 여전히 학생 몇 명이 자리잡고 있었다.
“…….”
그리고 중심엔 에드워드가 있었다. 그는 뻣뻣한 태도로 제게 오는 관심을 어색하게나마 소화하고 있었다.
‘대화가 안 들리네……. 아니지, 들어서 뭐 하려고.’
제네비브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에드워드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한층 개선되었다는 걸 직접 확인하니 한시름 놓였다.
어쨌든, 이 호의적인 분위기가 학년이 끝날 때까지만 이어진다면 에드워드는 2학기를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거다.
새로운 인간관계가 생성되는 틈을 타, 제네비브는 ‘어쩌다 엮이게 되었고 어느 순간 멀어진 선배’ 정도의 역할에 만족하며 물러나면 됐다. 멀리서나마 그가 엇나가지 않기를 바라며, 그의 인생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며.
“벌써 시간이…….”
제네비브는 시계를 보곤 작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허둥지둥 온실 반대편 입구를 향해 걸었다. 늦으면 안 됐다.
“……망했다.”
하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문이 안 열렸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있었으니, 제네비브가 반대편 입구에서 누군가 들어온 소리를 못 들었다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