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59화
열차는 자체적인 통금 시간을 갖고 있었다.
방음 마법처럼 승객들의 편의를 위한 마법이 걸려 있는 한편, 직원들의 편리함을 위한 자동 잠금 마법도 제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가볍게 밀기만 해도 문이 열리던 몇 분 전이 착각처럼 느껴질 정도로, 문은 꾹 닫혀 일말의 움직임도 안 보였다.
그동안 늦은 시간까지 밖에 있을 이유가 없었던 탓에 제네비브가 크게 생각하지 않던 열차 상식이기도 했다.
‘시스템이 너무 최첨단인데…….’
제네비브는 절박한 마음으로 열쇠 구멍을 찾아 헤맸다.
물론 바늘이나 실핀을 가진 것도 아니었지만, 애초에 문에는 열쇠 구멍이 없었기에 바늘이나 실핀이 있었더라도 그 재주는 유용하지 못했을 테다.
한마디로 꼼짝도 못하고 온실에 갇혀 버린 신세다. 제네비브는 본디 출구였던 문에 머리를 기댔다.
“……에드워드는 잘 들어갔으려나.”
제네비브는 작게 중얼거렸다.
아무리 에드워드 주변에 사람이 많아졌다 하여도 열차 문이 닫히는 시간처럼 쓸데없는 주제로 대화를 나눴을 것 같진 않았다.
제네비브는 확인차 휴게실 칸을 확인하려고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금방 알게 되었다.
“…….”
바로 앞에 에드워드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제네비브는 눈을 비벼, 자신이 제대로 본 게 맞는지 거듭 확인했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여전히 있었고, 환각이 아니라는 듯 거리는 아까보다 더 가까워졌다.
‘방금 한 말을 들었을까?’
에드워드가 자신처럼 방음 마법이 안 듣는다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척했겠지만, 그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곳을 조용한 온실로만 여길 것이다.
한껏 꾸몄던 연회와 다르게 에드워드는 다시 제네비브가 아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다시 안경을 쓰고, 달링 후작부인에게 받은 옷은 어디로 간 건지 교복을 입고 있었다. 눈을 덮던 앞머리가 조금 짧아진 걸 제외하면 예전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자신이 아는 에드워드를 보며 제네비브는 몸에 퍼져 나가는 안도감을 느꼈다. 동시에 고작 겉모습이 바뀐 것에 두려워하고, 다시 원래처럼 돌아온 것에 안심하는 자신이 한심해졌다.
에드워드가 넓은 보폭으로 저벅저벅 다가왔다. 그가 거리를 좁혀 오자, 제네비브는 반사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에드워드가 일순 움직임을 멈췄다.
* * *
자신이 가까워지려고 할 때면 그녀는 자신에게서 멀어진다.
“…….”
아니겠지.
정확히는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에드워드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다시금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가자, 제네비브는 그 즉시 두 걸음 뒤로 갔다.
에드워드는 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직면하게 되었다.
‘나를 피하고 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제대로 들어갔을지 걱정하던 제네비브는 무슨 이유에선지 자신을 피하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이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고민했다.
연회 때 먼저 나간 것도, 열차를 탄 뒤에도 제네비브가 안 보였던 것도, 몸이 안 좋아서가 아니라 그저 자신과 같은 공간에 있기 싫어서 그런 거였다.
그렇다면 모든 게 설명이 되었다.
그걸 몰랐던, 그리고 믿기 싫었던 에드워드는 제네비브가 스스럼없이 다가왔던 전과 다르게 피하기 시작한 이후, 자신이 달라진 점을 찾아내는 데 며칠을 소모했다.
하지만 몇 번을 생각해도 그가 달라진 건 외적인 게 전부였다.
제 얼굴이 못난 건지, 아니면 카르디르 왕국 기준에서 제 얼굴이 흉측한 건지 알 길 없지만, 에드워드는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 묵묵히 수행했다.
애초에 공공연하게 얼굴을 보이며 멋을 부리는 건 자신과 안 어울렸고, 안경이 없는 생활은 불편하기만 했다.
달링 후작부인이 선물한 옷을 입고 다닌 게 미련해 보였던 걸까? 거기까지 생각한 에드워드는 달링 가문이 선물한 옷을 트렁크 가방 깊숙이 넣었다.
이로써 에드워드는 원인으로 예상되는 요소를 전부 없앴다. 이젠 그녀와 대화로 해결하면 됐다. 오해가 있다면 풀고, 피하는 이유가 있다면 듣고 고치면 된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막상 낯선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제네비브를 보자니 입이 쉽게 안 떼어졌다. 말간 녹색 눈에 담긴 건 무관심도, 호의도 아닌 공포였다.
우승한 이후, 사람들이 보내던 얄팍한 호감이라도 담겼다면 상황이 더 나았을까?
며칠 사이에 온기가 사라진 녹색 눈을 보자니 가슴이 내려앉았다. 자신이 뭐라고 말한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
에드워드는 덜컥 겁부터 났다.
만약 제네비브가 자신이 싫어져서 보기 싫다고 말한다면……. 언제나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는 에드워드였지만, 이번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제가…… 싫어졌나요?”
“…….”
제네비브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부정으로 생각해야 하는지 저울질하던 에드워드는 곧 열차에선 제네비브의 세계가 더 시끄러워진다는 사실을 떠올랐다.
제가 한 말이 소음에 묻히는 게 그녀에게 무시당하는 것보다 나았다. 에드워드는 천천히 제네비브 앞으로 갔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걸음걸이에 그녀는 에드워드와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듯했다. 두 사람의 거리가 좁아졌다.
녹색 눈이 머리 하나 위에 있는 에드워드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긴장이라도 한 듯 제네비브가 숨을 쉴 때마다 자그만 어깨가 위아래로 작게 들썩였다.
“……잘못했어요.”
에드워드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을 열었다.
갈라진 목 사이로 메마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시야엔 비단 슬리퍼를 신은 작은 발이 보였다.
에드워드는 순간 울컥했다.
“다음부터 안 그럴게요. 저, 미워하지만 말아 주세요.”
목소리는 점점 눅눅해졌다. 입술을 떼기 전부터 코끝이 찌릿해졌다.
에드워드는 울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는 뭘 잘못했는지를 모르면서도 용서를 구했다. 구질구질한 걸 알면서도, 그는 어떻게든 제네비브가 저를 원래처럼 대해 주길 바랐다.
좋아하는 사람인 걸 떠나서 소중한 인연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놓칠 수는 없었다.
* * *
에드워드는 한 뼘 가량 떨어진 거리에서 저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언제나 덤덤하던 눈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고, 저를 보던 연갈색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은 곧 손쓸 새도 없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본인조차 울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에드워드가 당황하며 손으로 눈을 닦았다.
“저를, 저를 왜 피하세요?”
“…….”
한번 눈물이 흐르자 주체할 수 없었던지, 에드워드가 조금 가쁜 숨을 내쉬며 말했다.
“제가…… 고칠게요.”
그는 갑자기 관계를 끊어 내는 제네비브를 탓하는 대신,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았다.
‘……나, 진짜 나쁜 사람이구나.’
그 모습을 보니, 제네비브는 다시 한 번 자신이 한심해졌다.
그동안 뭘 그렇게 걱정하고 두려워했던 걸까. 단순히 자신이 아는 에드워드의 모습을 마주한 것만으로 안도하면서.
‘처음부터 뭘 하려고 했던 게 아니잖아. 에드워드가 안쓰러워서…… 그래서 할 수 있는 만큼 도우려고 했던 거였잖아.’
바뀐 건 에드워드가 아닌 제네비브였다.
언제부턴가 인간적으로 호감을 느끼고, 그를 도와주고, 웃게 만들어 주고 싶었던 건데.
천천히 손을 든 제네비브는 에드워드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 손길을 받으며 에드워드는 조심스레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묻었다.
“난…….”
제네비브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사과해야 하는 건 자신인데, 도리어 에드워드가 제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네가 싫은 게 아니야.”
고심 끝에 고른 단어의 나열이 고작 이거라니.
갑자기 무시당한 에드워드에게 보일 태도는 아니었지만, 애석하게도 당장 제네비브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내가 널 왜 미워해. 네가 잘못한 거 없으니까, 사과하지 마.”
제네비브는 사뭇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말도 없이 그래서 미안해. 네가 갑자기 달라져서…… 나도 모르게 놀랐던 것 같아.”
하지만, 제네비브가 말할 수 있는 진실은 여기까지였다.
따뜻한 차라도 마시면 좋겠지만, 풀밖에 없는 온실에서 그런 방법은 불가능했다. 결국, 제네비브는 에드워드가 진정할 때까지 등을 쓸어 줬다.
“저는 계속 같은 사람이에요.”
에드워드가 어깨에 기댄 채 웅얼거렸다.
“같은 사람인 거 알지.”
긴장을 많이 한 듯, 에드워드는 손을 떨고 있었다.
떨림이 사그라든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제네비브를 바라보았다. 등꽃 사이로 샌 달빛은 붉어진 눈가를 비췄다.
에드워드가 민망하다는 듯 얼굴을 훔쳤다.
“……정말 제가 실수한 건 없나요?”
그가 불안하다는 듯 재차 물었다.
‘나 때문인걸.’
제네비브는 안심하지 못하는 에드워드를 이해했다. 그가 하지도 않은 일을,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을 두려워하며 피하려고 한 자신이 하찮아졌다.
“그럼.”
에드워드는 에드워드인데.
제네비브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책에서 본 에드워드보다 본인이 직접 보고 겪은 현재의 에드워드를 믿자고.
“근데 우리, 어떻게 나가지…….”
훈훈한 분위기와 대비되게 둘은 곧 문이 잠겼다는 걸 다시금 체감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야간 순찰을 하는 직원은 코빼기도 안 보였다.
두 사람은 결국 온실에 마련된 선베드에 앉았다.
“왜 아무도 안 오지?”
가슴 앞에 무릎을 모은 채, 제네비브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군가 오고도 충분히 남을 시간인데 온실 안을 확인하는 직원이 없었다.
“지금은 순찰을 안 하는 것 같더라고요.”
반대편 선베드에 앉은 에드워드가 담백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는 마지막 날에는 직원들이 수화물 정리를 위해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순찰을 시작한다고 이야기했다.
“이것도 열차 팸플릿에 쓰여 있던 거야?”
제네비브가 농담하는 어조로 물었다.
“아뇨, 2학년 객실 담당 직원과 대화하다 알게 되었어요.”
정확히는 그분이 일방적으로 제게 말해 준 거였지만요. 당시 일을 회상하며 에드워드가 난감한 어조로 말했다.
“그럼 너, 갇힐 걸 알고 들어온 거야?”
제네비브는 당황한 듯 물었다.
“……네.”
에드워드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짧게 대답했다.
“나 때문에 네가 고생하네…….”
제네비브는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알면서도 들어온 사람은 저예요.”
“…….”
“그리고, 선배와 풀어서 좋은걸요.”
그 말을 듣고 제네비브는 살짝 웃었다.
“나도, 하암…….”
직원이 올 때까지 버텨 보려고 했지만, 새어 나오는 하품은 참을 수 없었다. 눈꺼풀도 점점 내려앉았다.
“눈 좀 붙이세요. 직원이 오면 깨울게요.”
에드워드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도, 좀 자…….”
문장을 제대로 발음했는지 모르는 상태로 제네비브는 까무룩 잠에 빠져들었다.
“……배, 일어나요.”
제네비브가 일어난 건, 그 뒤로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나서였다. 어느새 아침 해는 떠 버렸고, 햇빛이 들어오자마자 온실은 곧바로 따뜻해졌다.
느리게 두 눈을 뜬 제네비브의 눈에 들어온 건 에드워드였다.
눈부실 거라는 생각과 다르게 제네비브의 시야는 편안했다. 에드워드의 큼직한 몸이 만든 그림자가 그녀의 몸에 드리워 빛을 가려 주고 있었다.
놀란 제네비브는 몸을 엉거주춤 일으켰다.
“직원은, 안 온 거야?”
막 깨어서인지 제네비브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가라앉아 있었다.
“많이 바쁜가 봐요. 잘 잤어요?”
에드워드는 바닥에 언제 떨어졌는지 모를 카디건을 주우며 물었다.
“나야 잘 잤지……. 네가 덮어 준 거야?”
“네, 어젯밤에 추우신 것 같아서요.”
“아…… 외투 떨어트려서 미안해. 많이 더러워졌어?”
“괜찮아요. 그리고 방금 확인했는데, 이제 온실 문 열려요. 다행히 일찍 열리는 것 같더라고요.”
에드워드가 외투를 들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이제 곧 도착할 것 같은데, 방에 들어가서 좀 쉬세요.”
“응. 너도 침대에서 잠 좀 자고. 아무튼, 깨워 줘서 고마워.”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은 후, 두 사람은 반대편 출구로 향했다.
제네비브는 객실까지 걸어가며 지난 며칠 동안 느끼지 못한 해방감을 느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은 기분이었다.
“힘이 닿는 데까지 도와주자.”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지금의 에드워드를, 추워하던 자신에게 제 외투를 덮어 주었던 에드워드를 돕자. 제네비브는 다시금 다짐했다.
그리고 에드워드의 말대로 2시간가량이 지나자, 그랜드 익스프레스는 세인트 존 칼리지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