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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61화 (61/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61화

“아, 여태 받은 가산점이야.”

다행히 가산점 용지와 랜돌프 황태자의 죽음이 적힌 종이는 생김새가 비슷했고, 마침 위치도 그 주변이었다. 제네비브는 제 순발력을 칭찬하며 가산점 용지를 보여 줬다.

에드워드가 영문도 모른 채 그녀의 가산점을 보는 동안, 제네비브는 ‘랜돌프 블렛이 죽는다’라는 불길한 문장이 적힌 종이를 교복 주머니 안에 쑤셔 넣었다.

‘이건 기숙사로 돌아가면 태워야겠어.’

황족의 죽음을 함부로 언급해선 안 되니까.

제네비브는 랜돌프 황태자가 죽는 이유를 생각하는 대신, 몇 개월 뒤에 펼쳐질 행복한 미래에 집중하기로 했다.

달링 후작 부부가 가문 내외를 돌보는 동안, 힘들지만 짧은 후계자 수업을 받은 뒤 자유를 만끽하면 됐다.

제네비브는 영지에서 게으른 전원생활을 보내다가 사교 시즌에 맞춰 수도로 올라가 사교계를 구경하고, 가문 사업 서너 개를 맡아 보는 자신을 그렸다.

주기적으로 아본리아나 마이언에 방문해 친구들을 만나거나, 그들을 카르디르로 초대해도 좋을 것 같았다.

‘에드워드한테도 종종 연락해야지.’

물론 그가 지나치게 흑화하지 않아야 가능하고, 또 그때쯤이면 황태자가 되었을 테니 마음대로 편지를 보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제네비브는 작은 바람을 품었다.

‘파인트리 행사도 열심히 참석하고…… 그때마다 에드워드 상태 체크하고, 연애 상담도 해 주고.’

추후 여자 주인공과 건강한 관계를 쌓아 연애까지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원작대로 실연을 겪게 된다면 제네비브는 그에게 아직 운명의 짝이 나타나지 않은 것뿐이라고 위로해 줄 생각이었다.

‘……근데, 여주는 왜 시온을 골랐을까?’

실연당할 에드워드에게 건넬 위로를 고민하던 제네비브는 문뜩 의구심이 들었다. 여자 주인공이 왜 저 얼굴을 안 골랐는지, 제네비브로선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었다.

물론 직접 본 시온도 잘생겼고,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여자 주인공과 쌓은 서사도 훌륭하긴 했다.

하지만 전적이 화려한 카사노바와 일편단심 해바라기 중 고르라고 하면 제네비브의 선택은 당연히 후자였다.

‘에드워드가 어디가 부족하다고!’

제네비브는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이며 에드워드와 거리를 좁혔다.

물론, 원작 속 에드워드도 인성 면에서 여러 가지 하자가 존재했지만…… 직접 본 것만 믿기로 한 이상, 제네비브는 여자 주인공을 이해하되 공감하지 않기로 했다.

무엇보다 다른 여자와 공공장소에서 키스하고 다니는 걸 소문내 달라고 해서 그런가? 시온에게 그리 정이 가진 않았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길게 이어지던 억울함을 멈춘 건 당황한 에드워드의 목소리였다.

“아! 미안해. 생각 좀 하느라.”

제네비브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별건 아니고, 나 곧 졸업하잖아.”

제네비브는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간신히 제어했다. 졸업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웃는 건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네…….”

에드워드가 조금 어두워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맞은편의 제네비브가 너무 들뜬 탓에 에드워드는 상대적으로 더 침울해 보였다.

“편지해도 돼? 그래도 연락은 계속하고 싶어서.”

그녀의 말에 침침했던 에드워드의 안색이 빠르게 펴졌다.

연갈색 머리가 위아래로 가볍게 끄덕인 걸 본 제네비브는 노트를 펼쳐 주소를 끄적인 뒤, 종이를 찢어 그에게 건넸다.

“주소는 여기야! 수취인은 나로 하면 돼. 생각나면 연락해 줘.”

사실 졸업식 때 주소를 알려 주는 게 더 그럴듯하나, 제네비브는 신이 난 나머지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에드워드는 공손하게 종이를 두 손으로 받았다.

“감사합니다.”

그는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하곤 교과서를 폈다. 이어 책 사이에 종이를 가지런히 꽂았다.

“언제든 보내도 돼요?”

“물론이지!”

제네비브는 재빨리 대답했다. 에드워드가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결국 편지를 안 보내는 참사는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도서관에선 조용히!”

그녀가 용건이 없더라도 부디 편하게 편지해 주면 좋겠다며 거듭 강조할 때, 저 너머에서 프란시스 부인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이미 비슷한 말을 많이 한 상태였는지 목소리 끝이 살짝 갈라졌다.

“프란시스 부인은 분명 전생에 박쥐였을 거야.”

대화를 크게 나눈 것도 아니었는데.

제네비브는 목소리를 낮추며 질린다는 듯 툴툴거렸다.

“그러고 보니, 너는 무슨 일로 왔어?”

“저도 과제 때문에 왔어요.”

에드워드는 그가 들고 온 두툼한 <대륙의 역사>를 들어 보였다. 보기만 해도 무겁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대륙의 역사상 가장 대단한 국가가 주제예요.”

워낙 포괄적인 주제라 제네비브는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에드워드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파인트리 행사 이후라 그런지 헤더스 교수님이 배려해 준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이번에도 내가 필요한 책을 누가 전부 가져간 거 아니야?”

제네비브는 아본리아 제국 관련 서적을 전부 쓸어 담은 제 트롤리를 보며 농담했다.

그녀의 말을 알아들은 듯 에드워드가 살포시 웃었다.

“아본리아 제국도 훌륭하지만…… 멸망한 국가를 위주로 써 보려고 해요. 아무래도 지금까지 유지되는 곳보다 멸망한 국가를 평가하는 게 더 쉬울 것 같아서요. 선배는 뭐에 대한 과제예요?”

“나는…….”

제네비브는 눈을 굴리며 말을 골랐다.

누가 들어도 그럴듯하게 들리는 주제를 말해야 했다. 어지럽게 널린 책들에서 ‘종교’와 ‘정책’이 눈에 들어왔다.

“종교 정책, 이반 황제가 내놓은 종교 정책에 대해 내 견해를 작성해야 해.”

‘종교 정책’과 관련된 과제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별개로, 이반 황제의 종교 정책은 실제로 존재했다. 또한 입에 올리기만 해도 토론이 시작되는 민감한 주제였기에 같은 의견을 가진 상대라는 걸 모르는 이상 되도록 회피하는 주제였다.

“저번 달에 종교 정책을 발표만 하고, 아직 실질적으로 진행된 게 없어서 견해라고 할 만한 게 없어. 그래서 아본리아 선대 황제들은 종교 정책을 어떻게 했는지 참고를 좀 해 보려고.”

한 번 시작된 거짓말은 술술 나왔다. 전후 관계도 나름 잘 끼워 맞췄다.

“선배는 종교 정책 자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에드워드가 궁금하다는 듯 말했다.

“음……. 나는 시대 역행이라고 생각해.”

앉은 자리에서 급조한 과제 주제인 만큼 제네비브는 이반 황제의 종교 정책을 자세히 알진 못했지만, 하나 확실한 건 이로 인해 아본리아 제국의 종교적인 색채가 짙어질 거라는 거다.

제국에서 신전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사제와 성녀, 신성력도 존재하지만, 과학이 어느 정도 발전했기 때문에 ‘세상 만물은 신의 의도다’라는 말은 이제 예전만큼 큰 설득력을 주지 못했다.

“이반 황제가 신실한 종교인이라 보니, 지금처럼 신전의 힘이 약해지는 걸 많이 아쉬워하는 것 같아.”

물론, 성전에서 하지 말라는 불륜을 일삼긴 했지만. 제네비브는 뒷말은 혼자 알고 있기로 생각했다.

“하지만 굳이 신전에 힘을 더 실어 줄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야. 나는 조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강요해서 믿음이 생긴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물론, 믿음과 정치를 하나로 묶으려는 시도가 그동안 없었던 건 아니지. 근데, 이걸 공공연하게 발표하는 건…….”

제네비브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학생들. 도서관 안에선 조용히,라고 말했을 텐데요?”

제네비브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프란시스 부인이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나가세요.”

결국, 프란시스 부인은 소리의 근원지까지 찾아냈다.

제네비브는 사정해서 간신히 <황실의 연구>와 <블렛 황실 족보>를 대출 받을 수 있었다. 트롤리에 한가득 채웠던 책이 무색하게 건진 건 고작 두 권이었다.

“나 때문에 미안……. 책 더 봐야 하는 거 아니었어?”

“아니에요. 기간이 짧은 것도 아니고, 필요한 책은 이미 빌렸어요.”

에드워드의 가방 안에서 두꺼운 자태를 뽐내는 <대륙의 역사>를 보자니 제네비브는 자신의 어깨가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선배야말로 두 권으로 될까요?”

에드워드가 사뭇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존재하지도 않는 과제를 걱정해 주는 모습을 보니 미안해졌다. 제네비브는 괜찮다는 걸 계속 강조하며 기숙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

기숙사 휴게실을 향해 모퉁이를 꺾던 제네비브는 단단한 무언가에 부딪혔다.

“길을 막으면 어떡해?”

다시 확인하니 제네비브가 부딪힌 건 사람이었다.

제네비브는 이마를 문지르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휴게실 입구 길목에서 가만히 서 있는 건 듣도 보도 못한 예의였다.

“…….”

천천히 뒤돌아본 상대는 찰스 콜린스였다.

그와 직접 대면한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그는 조롱 섞인 회색 눈으로 제네비브를 내려다보았다.

이토록 코앞에서 찰스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멀리서 봤을 때도 크다고 느꼈는데, 가까이서 보니 거대하다는 표현이 더 올바를 것 같았다. 에드워드보다 큰 찰스의 키는 2미터는 족히 될 것 같았다.

거구에서 오는 위압감에 제네비브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모습이 재미있기라도 했는지 찰스가 킥킥 비웃었다.

“아, 하늘 같은 선배님의 길을 방해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찰스는 분명 빈정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졸업을 목전에 앞둔 지금, 제네비브는 큰일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콜린스, 말 조심해.”

하지만 에드워드는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에드너드, 여자 친구 앞에 있다고 지금 허세 부리는 거야? 아, 애인은 다른 달링이었던가?”

찰스가 개소리를 하며 잇몸이 보이도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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