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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71화 (71/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71화

제네비브가 어렵게 생각해 낸 간단한 해결책은 자습 시간 동안 떠올리고, 그 자리에서 즉시 폐기한 ‘크루즈에서 누가 폭약을 설치했다고 거짓말하기’에서 기인했다.

떠올린 당시엔 무모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니 괜찮은 답이 보인 것이다.

그 방법을 처음 떠올렸을 때 즉시 폐기한 이유는 제네비브의 일방적인 주장 말고는 내세울 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높은 보안을 자랑하는 황실 연회, 그리고 검증되지 않은 어린 학생의 주장. 도리어 그 말을 한 당사자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뿐 항해는 계속될 게 자명하다.

설령 제네비브가 바라던 대로 연회가 취소되더라도 이후, 황실이 그녀를 불러다 조사할 거야 분명했다. 황태자가 주최하는 연회에서 폭약을 봤다던 사람을 고분고분하게 보내 줄 리 없으니까.

제대로 본 게 맞냐, 거짓말 아니냐, 왜 검증되지 않은 말로 황실 연회를 망쳤냐, 등등.

만약 그 상황이 되면 제네비브로서는 답을 꾸며 낼 수밖에 없으니 앞뒤가 완전히 똑같을 수 없을 테고, 그녀의 말을 듣는 사람도 말이 안 맞는 부분이 있다는 걸 금방 알아차릴 거다.

하지만, 그 주장을 입증할 만한 물건이 있다면?

“가령, 화약 가루라던가.”

고맙게도 화약은 시중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당장 칼리지 인근 상가만 가더라도 화기 상점에 각종 총과 화약이 판매되고 있으니까. 또한 구입한 사람을 추적하기 용이한 총과 다르게, 화약은 그런 걱정도 없었다.

“내가 최초 목격자가 되면 조사에 불려갈 테니, 그건 피해야 하고…….”

보통 현장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초반 용의자로 몰리는 만큼, 찔리는 구석이 있는 제네비브는 참고인 조사를 받아선 안 되었다.

수중에 화약이 있을 리 만무하니 구매해야 하는 상황인데, 만약 황실이 본격적으로 조사에 착수한다면 제네비브가 연회 직전에 화약을 구매했다는 사실쯤은 금방 밝혀질 거다.

그렇기에 제네비브가 아닌, 다른 사람이 ‘폭약이 있는 것 같다’라고 증언해야 했다. 되도록이면 저와 아무런 접점이 없는 사람이.

제네비브는 화약을 처음 발견하면 좋을 사람의 자격 조건을 쭉 나열했다.

“우선, 귀족이어야 해.”

애먼 직원이 해고되면 안 되었다. 귀족은 비교적 신분이 모든 걸 해결해 주지만, 평민은 그렇지 못하니까.

“음. 그것 말고는 딱히 더 없는 것 같은데…….”

제네비브는 골똘히 생각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웬만한 귀족은 화약 가루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기에 단순한 먼지로 치부하진 않으리라는 점이다. 사냥은 귀족이 즐기는 가장 흔한 취미이니, 눈이 달려 있다면 단번에 알아볼 거다.

기왕이면 성질 더럽고, 선민의식에 찌들어, 자신이 귀족이란 사실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 발견하면 좋을 텐데.

“그래야 과잉 반응할 테니까.”

일을 소란스럽고 크게 벌여 줄 만한 사람일수록 좋았다.

이름 모를 귀족의 선실 문고리에 소량의 화약을 묻히고, 소동이 일어나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확인한 뒤, 바다에 남은 화약 가루를 버리면 끝나는 일이었다.

“소동이 한차례 벌어지면 매뉴얼대로 수색 작업에 들어갈 테고…….”

아본리아 황족과 귀족의 목숨이 걸린 일이고, 주장에 물증까지 있다면 쉬쉬하며 넘어갈 수도 없다.

그 거대한 황실 크루즈를 샅샅이 뒤지다 보면 주말은 훌쩍 지나갈 거다. 사람들은 결국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것에 조금 억울해하겠지만, 추후 바다에 기상이변이 몰아닥쳤다는 소식을 들으면 오히려 천운으로 여기지 않을까.

“무엇보다 크루즈 어디에도 폭약도 없으니까, 작은 해프닝으로 마무리되겠지.”

계획을 다시 한번 점검한 제네비브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계획이 생각대로 안 흘러가면 그냥 내가 발견한 척할 수밖에 없고.”

되도록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지만 말이다.

이 완벽한 계획에서 아쉬운 게 있다면, 그건 기존 미래와 다르게 에드워드가 황족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블라이스 가문이 도와주면 좋을 텐데…….”

마이언에서 달링 가문이 그랬듯, 아본리아에서도 힘 있는 가문이 에드워드의 뒤에 있다는 인상을 남겨 준다면 에드워드는 남은 학교생활을 찰스 무리의 괴롭힘 없이 보낼 수 있을 터였다.

블라이스 가문과 공적인 자리에 몇 번 참석하기만 하더라도 소문이야 알아서 불어나겠지만, 제네비브는 블라이스 가문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이 없을뿐더러 밀포드가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인물이 아니었다(적어도 제네비브는 그렇게 생각했다).

“에드워드가 인정받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허무하게 죽는 것보단 이게 나아.”

제네비브는 결국 크루즈 여행을 취소시킬 최선의 방법을 찾았다는 데 의의를 뒀다. 성공 여부가 누군가에게 달린 게 아닌, 자신이 직접 개입하는 계획이니만큼 마음이 편했다.

계획은 세웠으니, 이제 준비만 하면 된다.

또다시 하는 외출이었다.

제네비브는 따끔한 햇빛을 받으며 주말 외출이 잦아졌다는 걸 실감했다.

상가 거리에 도착한 그녀는 사냥 용품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벽의 가장 가운데에 걸린 사슴 머리가 가장 먼저 그녀를 반겼다.

박제된 사슴 머리 양옆으로는 온갖 종류의 총기가 쭉 펼쳐졌다. 진열대에는 각종 덫과 해체용 칼이 나열되었다.

어쩐지 뒷덜미가 서늘했다. 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럴 리 없겠지만, 잘못하면 팔이 잘리거나 총에 맞을 것 같았다.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는 의자에 앉아 총을 손질하고 있었다. 표정에서 긴장한 티가 났는지, 그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찾는 물건이 있나…… 요, 아가씨.”

그는 존대가 어색한 듯했다. 제네비브는 고개를 까닥이는 걸로 인사를 대신했다.

“화약을 사고 싶어서요.”

제네비브는 제 팔뚝만 한 곰 전용 덫을 조심조심 피하며 카운터 가까이 갔다.

“흑색 화약과 무연 화약이 있는데 생각해 둔 건 있는지, 요……. 이 흑색 화약은 물이랑 상극이라, 젖으면 폭발을 안 하니까 보관을 잘해야 해. 얘는 무연 화약이라고, 물에 젖어도 되는 애고.”

남자는 어색한 존대를 그만두곤 각기 다른 주머니를 꺼내 화약을 설명했다. 제네비브는 비슷하게 생긴 두 검은색 가루를 차례로 보았다.

“흑색 화약은 물에 젖으면 못 쓴다고요?”

제네비브가 오른쪽 화약을 가리키며 묻자, 남자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로서는 화약이 제 역할을 못 하는 편이 마음에 놓였다. 화약 보관 방법에 무지했기에 되도록 안전하게 가고 싶었다.

“그럼, 얘는 한번 젖으면 말려서도 못 쓰나요?”

“젖으면 무용지물이지. 흑색 화약은 젖는 순간 끝이야, 끝.”

“흑색 화약으로 주세요.”

제네비브는 남자에게 거듭 확인을 받고서야 용도에 알맞은 화약을 골랐다.

돈을 받은 남자는 찬장에 무연 화약을 집어넣고는 제네비브가 바라는 만큼의 흑색 화약을 작은 갈색 주머니에 넣었다.

“이렇게 적은데, 어디다 쓰려고?”

“쓸 일이 다 있죠.”

제네비브는 금액을 지불하곤 주머니 안을 보았다.

1루오르도 안 되는 작은 검은색 알갱이는 지금, 제네비브의 눈엔 황금보다 더 귀하게 반짝거렸다.

* * *

그렇게 시간은 흘러 시험일이 성큼 다가왔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대강당에서 사흘간 세 과목을 치러야 하는 시험은 과목 사이사이에 배치된 짧은 휴식 시간과 식사 시간을 제외하면 계속 앉아 있어야 했다.

호기롭게 시험장 안으로 들어섰던 3학년들의 얼굴은 시험이 끝날 때 즈음이 되니 급격히 수척해졌다. 모든 시험을 에세이 형식으로 답해야 했기 때문에, 저녁 식사 시간 땐 모두가 손목 통증을 호소했다.

“답안지엔 이름이 아니라, 배부해 드린 시험 번호를 작성하세요. 검은색이나 파란색 잉크로만 작성하셔야 합니다.”

시험 감독관의 뚜벅거리는 발걸음 소리와 펜이 바쁘게 종이 위를 오가며 사각거리는 소리가 강당을 채웠다.

‘……금요일도 생각보다 쉬운데?’

제네비브는 제 시험지를 보며 생각했다.

밀포드가 누군지 알아내기 위해 무수히 읽었던 도서관 책이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할 말을 전부 담아내지 못하거나 어떻게 답할지 몰라서 백지를 제출할지도 모른다는 예상과 다르게, 제네비브는 거의 모든 시험을 10분가량 남겨 놓고 펜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목요일엔 그저 운일 줄 알았지만, 금요일이 되니 자신감이 붙었다. 시험지 위에 인쇄된 날짜를 본 그녀는 오늘이 결전의 날임을 체감했다.

몇 시간 뒤면, 그녀는 리스톨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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