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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81화 (81/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81화

“……정말 재시험은 안 되나요?”

제네비브는 지푸라기로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 오기 싫어서 안 온 게 아니었다. 그 누구도 아닌 황제의 명으로 수도에서 하루를 더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제네비브는 다른 유학생들처럼 시험을 봤을 거다.

황실 편지로 얻은 성과가 고작 유급이라니. 제네비브는 순순히 용납할 수 없었다.

데클렌 총장은 고개를 저었다.

“안 좋은 선례를 만들 수 없습니다. 지금 제네비브 학생은 황궁에 머무르느라 못 온 것이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수도에서 놀다가 못 온 학생으로 기억되겠죠.”

“…….”

“오늘 이후로도 졸업 시험을 못 치르는 학생은 계속 생겨날 겁니다.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 테고요— 제네비브 학생이 황명으로 어쩔 수 없었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만약 오늘 이후로 어떤 학생이 황실 주최의 연회에 참석했다 시험에 불참한다면…… 오늘 일을 언급하며 그도 재시험을 요구할지도 모르는 일이에요. 쉽게 말해 선례를 악용할 여지가 있다는 거죠.”

“그렇지만…….”

“유급 권유도 개교 이후 처음 있는 일이란 걸 알아주시죠.”

데클렌 총장이 먼저 말을 끝냈다.

인자한 목소리와 다르게 내용은 인색했다. 그는 제적을 유급으로 바꿔 주는 것만 해도 후한 처사라는 듯 말했다.

“…….”

그를 보자니 재시험을 치르는 건 불가능한 일 같았다.

“……조금 더 생각해 봐도 괜찮을까요.”

시간이 필요했다. 생각을 정리하고, 무엇이 최선일지 고민할 시간이.

이렇게 큰 결정을 혼자 내릴 수 없었다.

“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여름 동안 고민하고, 학기가 시작하기 전까지만 알려 주시죠.”

다행히 데클렌 총장은 ‘이 방을 나가면 이 제안도 없는 일이다’ 같은 협박은 하지 않았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네비브는 인사를 하며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

생각할 시간을 벌었다.

세인트 존 칼리지를 일 년 더 다닐지, 아니면 졸업장 없이 살아갈지.

걸음을 한 번 뗄 때마다 고민이 더해졌다.

과연 세인트 존 칼리지에서 일 년을 더 다니는 게 현명한 일일까?

에드워드와 3학년을 한 번 더 보낸다— 얼핏 들으면 괜찮게 들렸지만, 고려해야 할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다.

‘과연 원작대로 흘러갈 위험이 아예 없을까?’

고작 제네비브 하나가 생겼다고 원작의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에드워드는 예정대로 여자 주인공을 좋아할 거고, 원작대로 시온과 사이가 나빠질 것 같았다.

반면 냉정하게 생각하면, 일 년을 더 다닌다고 무사히 졸업할 자신도 없었다. 까딱하면 타오르는 세인트 존 칼리지 건물 안에 자신이 있을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목숨이라도 부지하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 일만 막는다면.’

에드워드의 성격이 바뀌게 되는 계기. 그 일만 막는다면, 위험 요소는 전부 사라질지도 모른다. 비록 크루즈 침몰을 막는 건 실패했지만…….

‘그래도 숙부님은 살렸어.’

부정적인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자, 제네비브는 고개를 저으며 자신이 만든 변화에 집중했다. 블라이스 백작은 원래 죽을 인물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남긴 쪽지로 그는 살아남았다. 블라이스 백작이 직접 한 말 아닌가.

“…….”

하지만 그래 봤자 원작의 흐름으로 보면 미미한 변화였다. 소설대로 흘러가지 않을 거라는 근거가 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도 제네비브는 해내야 했다. 소설 내용은 고사하고, 에드워드가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하게 둘 수는 없었다.

“언제, 어디에서, 누가 했느냐는 게 관건인데.”

제네비브는 작게 중얼거리며 기숙사 방 안으로 들어왔다.

에드워드의 성의 없는 과거 묘사가 그렇듯, 그 사건에 대한 정보는 한정적이었다.

‘단서가 있는 듯 없는 듯…….’

아득한 기억 속에 단서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일과 관련된 정보는 없었다. 인상 깊은 사건이라고는 선정적이거나 잔인한 장면이 전부였다.

“하아…….”

처음 입학했을 때, 제네비브는 졸업이 이렇게 물 건너갈 줄 몰랐고, 칼리지 분위기가 무거울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 보지 않았다.

기숙사 건물은 어제보다 더 사람이 없는 듯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수업은 중단됐고, 크루즈 침몰과 관련 없는 아본리아 출신 학생들도 가문의 대리인을 통해 학교를 떠나 집으로 돌아갔다.

블랑카가 그토록 기대했던 졸업 파티도 당연히 취소되었고, 참사로 인해 졸업식은 간단히 약식으로 진행될 거라는 공지가 떨어졌다.

“나갈 준비 해야지…….”

소파에 늘어진 제네비브는 맥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저녁, 제네비브가 재시험을 위해 교수들께 간청하는 동안, 블라이스 가문이 보낸 전갈이 도착했다. 블라이스 백작은 그의 아들뿐만 아니라 조카도 영지로 불러들였는데, 이제 곧 떠날 때가 되었다.

‘짐 정리는 블라이스 가문에서 해 주겠지.’

자신은 귀중품만 따로 챙기면 되었다. 제네비브는 선반에 있는 보석함을 지나쳐 서랍을 열었다.

“…….”

은색 리볼버는 빛을 받아 반짝였다. 칼리지에서 총기를 들고 다니면 무조건 퇴학이라는 게 문득 떠올랐다. 제네비브는 긴장한 기색으로 탄환 개수를 확인하고는, 외투 주머니 안에 넣었다. 그러고선 어디에서 본 것처럼 총을 허리춤에 끼웠다. 외투로 가리니 감쪽같았다.

“진저, 준비는 끝났어?”

“이제 나가려고.”

거울을 통해 몇 번이고 점검한 제네비브는 겨우 방에서 나왔다. 총은 그녀가 고정해 둔 대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움직일 때마다 괜히 불안한 건 사실이었다. 제네비브는 블라이스 백작을 보면 권총집을 달라고 요구해야 할지 고민했다.

블랑카는 제네비브를 입구까지 바래다 주었다.

짧게 이어지는 대화에서 제네비브는 의도적으로 재시험과 관련된 주제를 피했고, 블랑카도 먼저 질문하지 않았다.

“블랑카 너도 같이 가면 좋을 텐데. 혼자 남아서 어떡해.”

“오, 그런 걱정은 넣어 둬. 잠깐 못 보는 걸로 우리가 모르는 사이가 되는 것도 아니잖아.”

“그건 그래.”

제네비브는 그녀의 말에 동조했다.

“오웬은 먼저 도착했네.”

제네비브는 블랑카가 보는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블랑카의 말대로 오웬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제네비브는 빠른 걸음으로 마차를 향해 걸어갔다.

“제네비브, 재시…….”

오웬은 인사마저 생략하며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가장 궁금했을 질문을 꺼내려고 했으나, 문장은 이상한 곳에서 끊겼다. 제네비브가 뒤를 돌아보자, 제 뒤에서 고개를 격하게 저어 대는 블랑카가 보였다.

그 광경을 본 제네비브는 바람 빠진 웃음을 지었다.

“재시험은…… 잘 안 됐어. 특수한 상황이지만 선례를 만들면 나중에 악용될 수도 있대서.”

제네비브는 간단히 요점만 말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블랑카는 어이없다는 듯이 따졌다. 제네비브는 블랑카를 달래며 말을 이어 갔다.

“그래서 재시험은 어렵다고 하고, 제적 대신 유급은 어떻냐고 묻더라.”

“…….”

새로운 선택지에 오웬과 블랑카는 당황한 것 같았다.

“여름 동안 생각할 시간을 주겠대. 학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알려 달라고 해서, 고민 좀 하려고.”

“어렵네…….”

“어렵지.”

오웬은 블랑카의 말에 동조했다.

서로 생각을 해 보겠다는 말을 끝으로, 제네비브는 오웬의 에스코트를 받아 블라이스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본디 금요일에 탔어야 할 마차라고 생각하니 입 안이 썼다. 마차 안에서 오웬은 유급을 하면 따라올 장단점을 나열했다.

바쁘게 재잘거린 오웬은 ‘유급하는 게 그리 나쁜 선택이 아닐지도 모른다’라고 결론을 내렸고, 만약 제네비브가 미래를 몰랐더라면 그녀도 설득되었을 거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제네비브는 그저 아무 의견 없이 잠자코 그의 말을 듣기만 했다.

마차는 반나절이 지나서야 블라이스 영지에 도착했다.

“…….”

이곳에서 황궁과 학교에서 맴돌던 우울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건물 곳곳마다 검은 깃발이 걸려 있었지만, 그저 예의상 애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차는 블라이스 백작저에서 멈췄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테판, 리스톨 말고 왜 여기에 있어?”

블라이스 타운하우스에 있던 주요 인력이 넘어왔는지, 둘을 마중한 건 스테판이었다.

“저는 블라이스 백작님이 원하시는 곳에 있습니다. 도련님은 여전히…….”

스테판은 그 말을 하며 오웬을 훑어봤다. 주름이 진 눈은 어깨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머리카락을 째려보고 있었다.

“대체 저 머리는 도대체 언제 자를 건지…….”

“스테판, 옛날에는 긴 머리가 귀족의 상징이었대.”

오웬은 능숙하게 그의 타박을 흘려보냈다.

“대체 몇 세기 전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

스테판은 뜬구름 잡는 오웬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발사를 부를 테니 이번에는 꼭 잘라 주십시오. 이 늙은이가 간청합니다. 아, 그리고 제네비브 아가씨.”

“응?”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제네비브는 되물었다.

“손님께서 기다리십니다.”

“손님이라니?”

블라이스 백작저에서 저를 찾아올 손님이 있었던가?

“아마 좋아하실 겁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스테판은 부드러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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