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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86화 (86/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86화

“찰스 콜린스.”

제삼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후려 맞은 머리에선 여전히 고통이 느껴졌다. 아침에 먹은 음식물은 게워 낼 것 같았다.

흐릿한 시야를 간신히 부여잡은 에드워드는 힘겹게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

제네비브였다. 자신은 왜 항상 최악의 모습을 그녀에게 보이고야 마는지.

에드워드는 어디서부터 일이 잘못되었는지, 또 방금까지 제게 일어난 일을 되새겼다.

에드워드가 단 한 번도 와 본 적 없는 카터 가문을 돌아다니기로 한 건, 순전히 리셉션이 주는 압박감 때문이었다.

카터 가문의 장례식은 한 발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숨이 막혀 왔다. 밀포드 씨가 주는 것과 결이 다르면서도 이상하리만큼 비슷했다.

그러다 제임스가 제네비브와 함께 리셉션을 나갔을 때는 그 숨 막히는 공기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았다.

오웬과 블랑카는 제네비브의 생뚱맞으면서도 의미심장한 부탁을 받았음에도, 잠깐 나갔다 돌아오겠다는 에드워드를 말리지 않았다.

그야, 에드워드는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챙겨야 하는 어린아이가 아니었고, 그가 나가겠다는 데 두 사람 역시 말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

그 필요성을 이제야 알았다는 게 문제지만.

차라리 말리거나, 에드워드가 제네비브의 염려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였다면 상황이 여기까지 치닫지 않았을 거다.

그 뒤로 무슨 일이 있었지.

리셉션에서 나와 긴장을 가라앉힌 뒤, 에드워드는 다시 응접실 안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에드워드.’

찰스가 그를 부르지만 않았다면 그랬을 터다.

이후의 일은 태풍처럼 워낙 순식간에 덮쳐, 불과 몇 분 전에 일어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하지만 에드워드가 하나 확실하게 기억하는 게 있다면, 그건 처음으로 제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찰스의 낮은 목소리를 듣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는 것이다.

찰스는 에드워드를 따라 응접실을 나온 것 같았다. 그의 뒤에는 크리스토퍼도 똘마니처럼 어슬렁거렸다.

에드워드는 찰스와 크리스토퍼를 경계하며 그에게서 몇 걸음 떨어졌다. 검은색 양복을 입은 탓인지, 오늘따라 더욱 위협적으로 보이는 찰스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가관이었다. 네가 황자라는 건 알고 있다. 과거는 묻어 두고, 잘 지내 보자.

어디서 얻은 정보인지 궁금했지만, 에드워드는 질문하는 대신 찰스의 말을 무시했다. 그에게서 진심 어린 사과를 받는 건 요원한 일이구나. 미약하게나마 한탄할 뿐이었다.

‘사과하는 사람의 태도가 너무 당당하다는 생각은 안 드나 보네.’

‘…….’

‘나는 너와 잘 지낼 생각이 없어, 콜린스. 그런 말도 안 되는 사과를 받을 생각도 없고. 그딴 식으로 사과할 거면, 애당초 하지 마.’

에드워드는 확실하게 제 의사를 밝혔다. 그는 찰스와 크리스토퍼를 지나쳐 리셉션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분명 그랬다.

우당탕! 쿵—!

그러자 찰스는, 복도 벽에 걸려 있는 무거운 석상을 휘둘러 에드워드의 머리를 쳤다. 일순 눈앞이 멀 정도로 둔탁한 감각이 느껴졌다. 와중에 힘 조절은 했는지, 찰스는 딱 에드워드가 기절할 정도로만 때렸다.

이후, 에드워드는 퀴퀴한 건초 냄새를 맡으며 의식을 되찾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그는 흐릿하게나마 눈에 담기는 것들과 들려오는 말을 들으며 장소를 파악했다.

아직 그가 깨어난 줄 모르는 듯, 찰스와 크리스토퍼의 대화 소리가 어슴푸레하게 들려왔다.

‘이렇게까지 해야 해?’

‘저런, 크리스토퍼. 내 말을 귓등으로 들었냐? 얘가 바로 새로운 황자 전하시라고.’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아버지께서 얘기하셨어. 우리가 그간 이 새끼한테 한 짓이 들키면 어떻게 되는 줄 정말 몰라서 묻는 건 아니겠지. 보험 든다고 생각해.’

‘하지만…… 남자는 비위 상하는데.’

찰스의 말에 크리스토퍼가 헛구역질하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 너는 네가 얘한테 한 짓이 펴져 나가도 상관없다?’

‘그, 그게 어떻게 그렇게 되냐?’

‘알아들었으면 닥치고 애들이나 불러.’

찰스의 지시가 끝나기 무섭게 마구간을 빠져나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크리스토퍼가 사라지고, 점점 의식을 되찾은 에드워드는 이곳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몸을 일으켰지만, 갑자기 일어서려고 하자 머리가 어지러웠다.

다시 바닥에 주저앉은 그의 앞엔 어느새 찰스 콜린스가 있었다.

찰스는 그런 에드워드를 잠시 노려보다가 난데없이 그의 뺨을 때렸다. 에드워드의 머리는 힘없이 돌아갔다. 또 한 번 가해진 충격에 긁힌 입 안쪽에서 피가 터졌다.

찰스는 그가 석상으로 때린 곳을 또 한 번 때렸다. 머리가 다시금 심하게 울렸다.

본능적으로 이곳에서 도망쳐야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에드워드는 찰스를 때리려고 했지만, 주먹을 쥔 손은 그에게 닿지 못했다. 찰스는 우습다는 듯 그의 손을 쳐 냈다.

그리고 찰스는, 에드워드의 상의를 천천히 벗겨 갔다.

에드워드가 욕지거리하며 반항했지만, 그는 에드워드를 확실하고 손쉽게 제압했다. 엄청난 악력이 에드워드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콜린스, 네가 내게 죄책감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제발, 나를 놔줘.’

‘에드워드. 너는 모르겠지만…….’

차가운 손이 맨살 위를 더듬거렸다. 제가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알기에, 에드워드는 필사적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그나마 상대할 사람이 한 명일 때 빨리 도망쳐야 한다. 그의 친구들까지 오게 되면…… 탈출은 안녕이다.

에드워드는 손에 잡히는 아무거나를 들어, 찰스의 머리를 가격했다.

‘미친 새끼…… 나는 분명 친절하게 대하려고 했어.’

하지만 힘이 부족했는지, 찰스는 조금 긁힌 걸 제외하면 멀쩡했다. 헛소리할 기력마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가 흐르는 피를 닦으며 에드워드를 바라보았다.

‘나는 네가 황자여서…….’

‘…….’

‘싫어. 네까짓 게 어째서.’

찰스가 화난 어조로 말했다. 그는 치미는 분노를 푸는 양, 에드워드를 또 때렸다.

‘너는 그냥 너답게, 에드너드로 있었어야지.’

찰스가 에드워드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착각일까. 어딘지 모르게 아련한 어조였다.

에드워드는 찰스의 눈을 정확히 직시했다. 눈은 제 주인을 닮았다. 겉만 요란하고 속은 공허하기 짝이 없었다. 또한, 공허한 눈에선 여러 감정이 읽혔다.

분노, 열등감, 증오, 두려움, 불안…….

그리고, 마지막 감정은 에드워드에게도 익숙한 것이었다. 에드워드는 본능적으로 그게 무엇인지 알아챘다.

‘……미친놈. 콜린스, 네가 정말 정신이 나갔구나.’

‘…….’

‘나를 좋아해?’

사랑에 빠진 자는 사랑에 빠진 자를 알아본다고 하지 않는가.

에드워드는 혐오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찰스는 제 감정을 들킨 게 수치스러운 듯 그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혼자 하고 싶은데…… 그럴 용기는 없어서 같이할 애들을 불러온 거야?’

그가 역겨웠다.

속이 메스꺼웠다.

저딴 인간이 나를 좋아한다니. 언제부터 나를 좋아했냐, 미안하지만 네 마음은 못 받아 주겠다 등, 그런 생각을 할 정신조차 없었다.

그게 무엇이든 아마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고백일 테다. 차라리 눈치를 못 챘더라면 조금 나았을까. 에드워드는 구토감을 느꼈다.

역시나 찰스는 정곡에 찔렸는지, 성을 내며 바닥을 찼다. 조각난 짚이 허공에 휘날렸다.

‘그래. 이왕 들켰는데, 하고는 보내 줘야지. 그래야 억울하지는 않지.’

‘…….’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찰스는 말을 마침과 동시에 에드워드의 머리카락을 움켜쥐며 고개를 젖히게 만들었다. 이어 입안에 그의 엄지가 들어왔고, 에드워드는 손가락을 있는 힘껏 깨물었다.

화난 찰스가 다시금 그의 뺨을 치려던 찰나, 사람들이 마구간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에드워드는 순식간에 불어난 인기척을 들으며 체념했다. 그리고, 이젠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겠다고 생각했을 때―.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제네비브가 나타났다.

* * *

원작에서 에드워드가 흑화를 하게 된 계기는 강간이었다. 그리고, 가해자들은 찰스와 그 무리였다.

어째서인지 원작에선 퇴학과 같은 상식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찰스는 <세인트 존 칼리지에서 일어난 일>의 등장인물이었고, 에드워드가 마지막으로 죽이려고 한 학생이자 에드워드가 살인하는 데 실패한 유일한 피해자였다.

모든 게 딱딱 맞아떨어졌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제네비브는 매섭게 물었다.

원작에선 사건의 진상을 알려 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껏 에드워드의 손에 죽은 다섯 학생을 동정했다.

하지만 인제 보니, 일 년이나 참았던 에드워드의 인내심이 대단했다.

“달링 선배. 그러니까, 이건…….”

찰스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가 한 걸음 가까이 다가오자, 제네비브는 무릎을 굽혀 몸을 낮췄다.

“…….”

“가까이 오지 마.”

제네비브는 발목에 고정시킨 총을 꺼냈다. 이어, 정확히 찰스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하하. 진심으로 쏠 건 아니겠죠?”

당황한 찰스는 애써 여유로운 체하며 제네비브에게 말했다.

그가 경고를 무시하며 다가오자, 제네비브는 총의 안전장치를 해제했다. 철컥하는 서늘한 쇳소리에 찰스를 제외한 다른 남학생들은 놀란 듯 몸을 움찔했다.

“사람들을 불렀어. 오는 길이야.”

물론, 거짓말이었다.

그녀는 사람을 부르고 싶었지만, 부르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가 상대해야 하는 사람을 최대한 줄여야 했다. 아무리 총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남학생 다섯 명을 상대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그걸 알 리 없는 남학생들은 눈에 띄게 동요했다. 누군가 큰일 나는 게 아니냐고 말하자, 공포는 전염병처럼 공기를 타고 퍼져 나갔다.

“이건 평민이어도 큰일인데, 에드워드는…… 이제 평범한 사람이 아니잖아?”

이에 제네비브는 쐐기를 박았다.

돌아오는 반응을 보자니, 에드워드의 정체를 대강이나마 아는 사람은 다섯 중에서 셋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살짝 인상을 쓰는 찰스를 제외하면 나머지 둘은 흔들리는 것 같았다. 또 다른 두 학생은 친구의 반응을 보며, 에드워드가 무언가 범상치 않은 사람임을 짐작했다.

사회적으로 매장당할지도 모른다. 따라올 후폭풍을 뒤늦게서야 떠올린 남학생들이 움츠러들었다.

“그래도 잘못은 찰스가 한 거지. 너희는 그저 얘가 하라는 대로 한 거고.”

제네비브는 리셉션에서 귓속말을 나누던 남학생을 보며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그게 마치 지금이라도 도망가라는 말처럼 들렸는지, 그중에서 가장 체구가 작은 남학생이 먼저 마구간을 빠져나갔다. 그러자, 다른 남학생들도 일제히 그의 뒤를 따라 마구간에서 도망쳤다.

“병신들…….”

찰스는 뒤꽁무니를 빼는 제 친구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나만 남았네?”

그는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돈 찰스가 후련하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사람 불렀다는 거, 거짓말이죠?”

“…….”

그가 여상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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