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87화
제네비브는 낮게 새어 나오려는 신음을 삼켰다. 찰스가 아무런 근거 없이 찔러 본 거라고 단언하기에는 확신에 가득 찬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안타깝네. 지금이라도 나가는 게 좋지 않겠어?”
하지만 제네비브는 흔들리지 않게끔 마음을 다잡고, 인상을 쓰며 말했다.
“개수작도 상대를 봐 가면서 부렸어야죠.”
그러나, 찰스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저놈들한텐 통했을지 몰라도, 나한텐 안 통해.”
그는 잠시 친구들이 도망친 곳을 봤다. 물러설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찰스 콜린스, 다 들통난 마당에 더 뭘 어쩌겠다는 거야?”
“…….”
“여기까지 해. 나중에 가서 후회할 짓 하지 말고.”
제네비브에겐 원작 속 찰스가 오늘 일을 후회했는지 알 방도는 없었다. 그래도 사람이라면,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린 날의 치기를 뉘우치지 않았을까.
하지만, 제네비브는 그마저도 말도 안 되는 가정임을 알았다. 만약 반성이라는 걸 할 인물이라면 애당초 이딴 짓을 저지르지도 않았을 거다.
기실 제네비브는 찰스 콜린스라는 인간 자체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가 얼만큼 최악이든, 인생을 송두리째 말아먹든 제 알 바 아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사람이 발생한다면. 무엇보다 그 사람이 에드워드라면 말은 달라진다.
제네비브는 찰스를 향해 총구를 겨누며 한 발 가까이 다가갔다. 두 사람 사이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저보다 머리 두 개는 크고, 탄탄한 근육이 만들어 낸 거대한 체구가 주는 압박감은 컸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제네비브의 목을 꺾는 것 정도야 일도 아닐 거다.
제네비브는 필사적으로 손 떨림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여차하면 쏴야 해.’
물론, 그를 달래며 내보내는 게 최선이었다.
그사이 두 사람의 거리는 더욱 좁아졌다. 사격을 배운 적 없어도 충분히 맞힐 수 있는 거리까지 되었다.
제네비브는 더 이상 어떠한 피도 흐르지 않길 바랐지만, 이 상황에선 기꺼이 방아쇠를 당길 의향은 있었다.
“쏠 자신은 있고?”
찰스가 도발하듯 거만하게 물었다. 누가 본다면 총을 쥔 사람이 찰스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필요하면 쏠 거야.”
제네비브는 총구를 올리며 말했다. 검지에 힘을 조금만 주어도 찰스의 가슴에 구멍이 생길 각도였다.
그녀는 진심으로 이쯤에서 찰스가 물러서길 바랐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친구들과 함께 도망치거나, 총을 봤을 때 포기했을 거다. 하지만 찰스는 끈질기게 이 자리를 고집했다.
그리고 지금 제네비브가 간과한 게 있다면, 찰스는 그녀의 상상 이상으로 정신이 나갔다는 점이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겉으론 일견 여유로운 체하는 찰스의 속내는 억울함이었다. 그는 손쉽게 원인을 제네비브와 에드워드에게 돌렸다.
당사자인 에드워드는 물론 찰스조차 모르는 일이었지만, 찰스 콜린스가 에드워드를 좋아한 건 생각보다 더 오래된 일이었다.
처음, 찰스는 평민과 함께 세인트 존 칼리지를 다녀야 한다는 불쾌감과 그 평민이 귀족보다 뛰어난 구석이 존재한다는 걸 견딜 수 없었다.
하여 부러움 대신 열등감이 자리를 잡았고, 찰스는 병적으로 에드워드의 학창 생활을 망치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평민 주제에 괴롭힘을 받을 때마다 아랑곳하지 않았다. 늘 곧은 자세로 찰스를 똑바로 보며 제 의사를 전했고, 그가 반항하는 걸 보는 건 찰스의 즐거움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아무리 평민이 고고한 척하고, 잘난 척한들 졸업 뒤에는 제 밑이리라. 찰스는 그 즐거움이 바보 흉내를 내는 사람을 볼 때 느껴지지는 유쾌함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랫것을 향한 선천적인 거부감이 지나치게 커서일까. 찰스는 실은 자신이 에드워드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가 행한 괴롭힘은 그저 폭력적이고 유아적인 태도로 에드워드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함으로 변했다. 괴롭힘이 없을 때면 에드워드는 당연하게도 찰스에게 아무런 시선도 주지 않았으니까.
그러다 찰스는 콜린스 백작 부부의 대화를 통해 에드워드가 황자라는 걸 알았고, 그는 그제야 자신이 에드워드에게 호감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에드워드를 향한 얽히고설킨 감정들은 결국, 이런 결과를 내보냈다.
하지만 찰스에게 어떤 사연이 있든, 지금 그가 인간 말종이란 건 변함이 없었다. 또한 이 사실을 찰스 본인도 알고 있었기에 그는 원인을 자신이 아닌 사람에게서 찾아내려고 혈안이었다.
탕―!
총성에 놀란 말들이 바닥을 긁으며 울음소리를 냈다. 동시에 매캐한 화약 냄새가 퍼졌다. 그 뒤로는 제네비브의 짜증스러운 비명도 짧게나마 들렸다.
결국, 자신이 총에 맞은 줄 알았던 찰스는 바닥에 엎어졌다. 몸을 일으킨 그는 상체를 더듬거리며 다친 부위를 찾았다. 저 미친 여자가 정말로 총을 쏠 줄이야.
하지만 손에는 아무런 피도 안 묻어났고, 아픈 곳도 없었다. 어디도 아닌 허공에 가져다 쏜 거였다.
“다음 건 정말 맞힐 거야.”
“이…… 이게.”
찰스는 민망함을 감추며 제네비브를 봤다.
어차피 남은 총알은 많아 봤자 다섯 발 남짓이다. 그는 자신이 정말 총에 맞아 죽게 되면 일어날, 이후 상황을 상상했다.
어차피 제네비브는 해외 귀족이고, 그가 저지른 짓이야 어떻게든 해결되고 고국으로 돌아갈 거다. 되레 황자를 구한 영웅으로 칭송 받을지도 모른다.
“…….”
일반 사람이라면 여기서 현실을 깨닫고 멈췄겠지만, 찰스는 아니었다.
‘반대가 된다면.’
주어를 조금만 바꿔도 말이 되었다.
찰스 콜린스가 에드워드 황자를 제네비브 달링에게서 구한다.
찰스는 아직 앓는 소리를 내는 에드워드를 보았다. 그러고선 제네비브가 쥔 총에 시선을 옮겼다.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뺏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일순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문장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만약 총을 빼앗는 데 성공하고, 이 일을 전부 제네비브에게 뒤집어씌울 수 있다면…….
“윽―!”
찰스는 제네비브를 밀쳤다. 돌발 행동에 제네비브는 반항조차 못 하고 쓰러졌다. 순간 손에 힘이 풀려, 쥐고 있던 총은 먼발치까지 미끄러졌다.
제네비브와 찰스는 동시에 총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마치 상대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동시에 총을 향해 달려갔다.
찰스는 제네비브를 치고 가려고 했고, 제네비브는 찰스의 허리를 붙잡아 그를 넘어트렸다.
작은 주먹이 찰스를 거세게 때렸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미친년이 왜 자꾸 끼어들어서, 너 때문에……!”
찰스는 자신을 넘어트린 제네비브의 발목을 잡아, 그녀를 던지듯 끌어냈다.
가벼운 몸은 어렵지 않게 찰스가 의도한대로 움직였다. 뒤로는 무언가에 맞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잠깐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기둥에 머리를 맞은 듯 제네비브가 힘없이 누워 있었다.
찰스는 절뚝거리는 발걸음으로 총을 향해 다가갔다.
“일이 너무 커졌어…….”
그는 중얼거리며 총을 주웠다.
뒤돌아 바라본 마구간 전경은 끝내줬다. 놀란 말들의 울음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바닥에 주저앉은 제네비브는 기둥에 기댄 채였다.
그녀는 마치 정신을 놓지 않으려는 것처럼 피곤한 눈을 깜빡였고, 에드워드는 무거운 몸을 움직이려 애쓰고 있었다.
“……결국, 너도 죽여야 하나.”
찰스는 꿈틀거리는 에드워드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크리스토퍼나 라이언 같은 이들은 쉽게 입막음할 수 있었다. 공범이니 어쩌니 하며 겁을 주면 끝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모든 걸 본 에드워드라면……. 특히나 상대가 일개 평민이 아닌, 황자라면.
“……제네비브 달링이 에드워드 황자를 총으로 쏴서 죽이고, 황자를 구하려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제압하던 와중에 실수로 밀쳐 죽였다.”
즉석에서 만들어 낸 이야기지만, 정말이지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누구부터 죽여야 할까.
제네비브는 가만히 둬도 알아서 죽을 것 같았다. 숨조차 쉬기 어렵다는 듯 쌕쌕거리고 있으니까.
“…….”
찰스는 천천히 에드워드를 향해 걸어갔다.
“……개자식.”
에드워드가 혐오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내가 널 좋아하기는 한데…… 여기서 죽는 건 사절이라.”
찰스는 씩 웃으며 말했다. 누군가 자신을 죽이는 것보단 역시 자신이 누군가를 죽이는 게 나았다.
방아쇠에 손가락이 얽히자, 찰스는 비로소 해방감을 느꼈다. 그는 이로써 후환이 없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그때,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살아남으려는 발악을 구경하고 싶은 만큼 에드워드부터 처리해야 했다.
찰스는 방아쇠를 당겼다.
틱―.
하지만, 총은 굉음이 아닌 틱틱거리는 작은 소리만 냈다. 잠금장치는 풀려 있는 게 확실했다.
찰스는 당황하며 총을 살폈다. 탄창이 텅 비어 있었다. 그는 당황하며 제네비브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기둥에 기대어 쓰러져 있던 제네비브가 없었다. 어느새 제네비브는 거대한 삽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쿵―!
무거운 쇳덩어리가 찰스의 얼굴을 강타했다.
“멍청아. 총알은 처음부터 하나였어.”
흐려지는 정신 사이로 제네비브의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