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89화
제네비브는 찰스 콜린스를 지목하고 정신을 잃은 터라, 그 과정에서 못 보고 못 들은 게 많았다.
“거짓말 마! 우리 찰리킨스가 얼마나 순하고 착한 앤데……! 어디서 카르디르 출신이 주제 파악도 못 하고 뻔뻔하게 거짓말이니!”
가장 먼저 들려온 건 콜린스 백작부인의 부정이었다.
부모라는 존재가 그러하듯, 콜린스 백작 부부는 제 아들이 외국 귀족을 반송장으로 만들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우리 아들, 지금 어디에 있어! 찰리킨스 어디에 있냐고!”
검은색 옷을 맞춰 입은 두 사람 중에서 먼저 말을 꺼낸 건 콜린스 백작부인이었다. 그녀는 조문객들이 제네비브의 말을 채 이해하기도 전에 큰소리로 외쳤다.
“우리 찰리킨스는 그럴 애가 아니야. 일어나서 똑바로 말해, 똑바로 말하라고!”
콜린스 백작부인은 이마에 핏줄을 세우고, 낯간지러운 아들의 애칭을 부르며 악에 받친 소리를 질렀다.
만약 에드워드가 콜린스 백작부인을 제지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정신을 잃은 제네비브에게 달려가, 축 늘어진 그녀의 몸을 흔들며 따졌을 거다.
“네가 뭘 잘못 안 거야!”
콜린스 백작부인은 제네비브를 향해 삿대질했다.
“다른 사람이 했겠지!”
그러다 이젠 에드워드를 노려보며 말했다.
“우리 아들이 그럴 리 없다네. 분명 오해일 걸세!”
백작부인에 더불어 이어지는 콜린스 백작의 눈물겨운 아들 변호에 에드워드는 비웃듯 피식 웃었다. 이런 와중에도 콜린스 백작 부부는 진심으로 제 아들의 무죄를 굳게 믿고 있었다.
짝—!
비웃음에 이어 에드워드가 눈을 굴리자, 결국 화를 참지 못한 콜린스 백작부인이 그가 황자라는 것마저 잊고 손을 올렸다.
“두 분 다 적당히 하세요!”
달링 후작부인이 호통치듯 말했다.
그녀는 위태로운 딸과의 시간을 이런 몰상식한 사람들과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그들이 이 시간을 망치는 것도 두고 볼 수 없었다.
달링 후작부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제 딸은 안정이 필요합니다!”
그녀는 눈물 맺힌 눈으로 그들을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콜린스 백작과 백작부인은 그제야 입을 옴짝달싹했다.
“황자님……!”
그리고, 에드워드의 호위는 이 모든 사태가 벌어지고 일어난 뒤에서야 들어왔다.
한발 늦게 도착한 호위병은 응접실을 둘러보았다. 동시에 그는 직감적으로 자신이 저지른 실수 두 가지를 깨달았다. 황자를 놓친 것, 그리고 아직 공개되지 않은 에드워드의 호칭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
응접실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제네비브가 지나간 바닥에는 선명한 핏자국이 남아 있었고, 그녀를 안고 여기까지 달려온 에드워드는 온통 피 칠갑이었다. 흰색 셔츠의 본래 색을 찾아볼 수도 없었다. 상복이 아니었더라면 더 섬뜩한 모습이었을 테다.
응접실 한가운데에 놓인 소파에 축 늘어진 제네비브의 안색은 창백했다. 핏기가 없는 얼굴은 자칫 죽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의사는 소파 옆에서 그녀의 몸에 주사와 약을 바쁘게 투여하고 있었다.
“아까 저 아이를 보고 황자라고 했지?”
“나도 분명히 들었어.”
한편, 낯설면서도 익숙한 호칭을 들은 조문객들은 이 상황마저 잊고 술렁였다.
“…….”
피로 물든 에드워드는 호위병을 노려보았다. 형형한 연갈색 눈과 마주친 호위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두 사람 사이에 감도는 분위기 덕분에 이게 장난이 아님을 눈치챈 조문객들은 숨을 죽이며 이 상황을 바라보았다.
“출혈을 잡았습니다.”
딱딱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감히 말을 꺼낸 건 의사였다. 에드워드는 곧바로 제 무능한 호위에게서 관심을 돌리고, 소파에 누워 있는 제네비브를 보았다.
“……필요한 조치는 전부 취하도록.”
“네, 공작님.”
제임스의 손짓과 의사의 허락하에 하인들은 조심스럽게 제네비브를 옮겼다.
“그리고, 조금 뒤에 에드워드도 봐주면 좋겠군.”
제임스는 주사기와 약을 정리하는 의사에게 말했다.
“알겠―.”
“그럴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제임스의 호의를 단칼에 거절했다.
그 역시 진찰이 시급해 보였으나, 가타부타하며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았던 제임스는 강제로 그에게 의사를 붙일 생각을 하며 상황을 넘겼다.
“장례식은 여기까지입니다. 여기 에드워드 군과 콜린스 백작, 백작부인을 제외하곤 모두 돌아가 주시길.”
제임스는 부드럽고도 강압적인 어조로 축객령을 내렸다.
조문객은 이후 상황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아쉬워하면서도 엄청난 광경을 목격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사건이 사건인지라 새로운 가십거리를 완전히 즐기기엔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어차피 영지로 돌아가는 마차에선 가족들에게, 저택에선 식솔들에게, 사교계에선 오늘 일을 퍼트릴 테다.
“헨리……! 그래도, 의지할 가족이 필요―.”
제임스의 친척들은 더 남아 있으려고 발악했으나, 제임스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그들까지 쫓아냈다.
얼마 없는 예외는 제네비브를 따라간 달링 후작부인과 하녀의 안내를 받고 다른 층으로 간 블라이스 가문 사람들, 그리고 블랑카뿐이었다.
그토록 좁아 보이던 응접실은 점차 원래 크기로 돌아왔다. 준비된 먹을거리는 그 반조차 사라지지 않았고, 눈에 띌 듯 띄지 않았던 식솔들은 모습을 드러내 어수선한 응접실을 정리했다.
소파에 앉은 에드워드는 다리를 떨고 있었다. 필시 제네비브 때문에 불안한 모습이었다. 한편, 콜린스 백작부인은 열불이 나는지 부채를 팔랑거리며 그런 에드워드를 노려보았다.
“제네비브는 괜찮아.”
“…….”
“위험했다면 함부로 옮기지도 않았겠지.”
제임스가 격려하듯 에드워드의 등을 가볍게 쳤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그 가벼운 손길에도 예상외로 아파하며 작게 “윽.” 소리를 냈다.
“카터 공작……. 그 카르디르 여자애가 다행이라니 좋은 소식이네만, 우리 아들은…….”
콜린스 백작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에드워드, 찰스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 줘야겠어.”
“…….”
당초부터 질문할 생각이었던 제임스가 말했다.
“마구간에 있습니다.”
에드워드가 투박하게 대답했다.
제임스를 필두로 에드워드와 그의 호위, 콜린스 백작 부부, 그리고 저택 의사가 뒤를 쫓았다.
“놓쳐서 리셉션으로 바로 갔는데 안 계셔서 잠깐 나왔습니다. 그때, 돌아오신 것 같고…….”
호위병은 구차하게 제 주군에게 역할 수행을 못 한 이유를 설명했다.
장황한 설명을 요약하면 결국 ‘길이 계속 엇갈려 찾지 못했다’였다. 호위병은 대답 없는 에드워드를 불안하게 바라보며 황자라고 부른 이유도 알렸다. 그는 그를 찾아 돌아다니던 중 누군가 피를 뒤집어쓴 채 응접실에 갔다는 하녀의 말을 들었고, 그 ‘누군가’가 에드워드라고 생각했다고 변명했다.
“조용히 갔으면 좋겠는데.”
에드워드가 인상을 쓰며 말하자, 호위는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도착한 마구간은 떠나기 전 그대로였다. 말이 푸르릉거리며 들어오는 사람들을 맞았다.
풍경은 처참했다. 걸레짝이 되어 버린 나무 펜스와 말 물통 안으로 떨어진 짚, 찰스가 쥐고 있는 총.
“…….”
제네비브가 머리를 찧은 기둥을 보자, 에드워드의 안색은 한순간에 어두워졌다. 기둥에는 검붉은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찰스!”
“찰리킨스……!”
대자로 뻗은 찰스의 이마엔 상처가 나 있었다. 콜린스 백작부인은 울음을 터트리며 막내아들을 끌어안았다.
이마가 조금 긁힌 걸 제외하면 찰스는 셋 중에서 가장 멀쩡하게 보였으나(찰스는 코를 작게 골며 평온하게 자고 있었다), 콜린스 백작부인은 그가 죽기라도 한 것처럼 울음을 터트렸다.
“얼굴에 피 좀 봐……! 잘생긴 얼굴에 무슨 짓을…… 으흑흑, 미친 게 분명해, 분명하다고! 어떻게 우리 아들한테……!”
콜린스 백작부인이 주먹을 쥐며 소리쳤다. 옆에 있던 콜린스 백작이 찰스를 일으키자, 그의 손에서 총이 빠져나갔다.
그제야 총을 발견한 콜린스 백작과 백작부인은 미묘한 눈길을 주고받았다.
콜린스 백작은 총을 주웠다. 리볼버를 찬찬히 관찰하던 그는 자리에 일어서 제임스에게 다가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총에 블라이스 가문 문양이 있군요.”
“……하! 보나마자 그 카르디르 애가 우리 찰리를 쏘려고 한 거겠지!”
콜린스 백작부인이 말을 거들었다. 콜린스 백작은 부인을 무시하며 말을 이어 갔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아내가 조금 예민하다만…… 블라이스 가문이 얽혀 있는 걸 보아하니, 그냥 넘어갈 수가 없겠군?”
콜린스 백작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지만, 눈은 빠르게 무언가를 계산하는 것 같았다.
“카터 가문이 중립인 건 알지만, 블라이스 가문과 혈연으로 얽혀 있으니 우리도 불안하다는 점을 알아주게.”
“어떤 면에서 불안하다는 건가.”
“예를 들어…… 물론, 그런 일은 없겠지만 자네가 친구들을 변호하고자 증거를 조작한다거나.”
“…….”
“뭐, 이런 걱정거리가 있겠지. 그래서, 이 총은 우리 영지로 가져가 조사하고 싶은데……. 이해해 주면 고맙겠군.”
콜린스 백작은 제임스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원래 피해자 측이 조사하는 게 맞지 않는가.”
“…….”
그의 말은 미묘하게 설득력 있는 개소리였다.
“……무슨!”
하지만, 거래는 성사되지 못했다. 중간에 끼어든 에드워드가 콜린스 백작이 들고 있던 총을 빼앗아 갔기 때문이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피해자인 제가 직접 알려 드리죠.”
에드워드는 ‘피해자’라는 단어를 유독 강조하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