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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99화 (99/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99화

갑자기 쏠린 무게에 에드워드는 뒤로 넘어갔다. 그는 본능적으로 제네비브를 마주 안아, 그녀가 받아야 했을 충격을 고스란히 흡수했다.

평소였다면 제네비브는 그에게 곧장 사과했겠지만, 오늘만큼은 예외였다. 제네비브는 사과를 건네는 대신, 에드워드를 안은 팔에 힘을 더 실었다.

바닥과 부딪힌 팔은 이상하리만큼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에드워드를 끌어안던 제네비브는 이내 몸을 반 정도 일으켜 세우고는 그를 바라보았다.

잘 다듬은 앞머리는 조금 흐트러졌다. 에드워드의 이마가 살짝 드러났다. 빈틈없어 보이던 아까보다 자연스러워졌기 때문일까, 에드워드는 아직 상황 파악을 끝내지 못한 것 같았다.

제네비브는 어리둥절한 기색이 가득한 연갈색 눈과 시선을 맞췄다.

“……고마워. 정말로.”

제네비브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이 마음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정말로 좋아요?”

에드워드가 마치 확인하듯 물었다.

“당연하지.”

제네비브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억지가 아닌 웃음을 보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제네비브는 쓰러지듯 에드워드의 옆에 누웠다.

오후 내내 햇살을 잔뜩 머금은 잔디는 푹신했다. 땅에 핀 들꽃은 바람에 맞춰 살랑거렸다. 기우는 노을빛을 받아 진한 오렌지 색으로 물든 하늘이 눈앞에 펼쳐졌다. 원래 노을이 이렇게 예뻤던가?

그동안 자신을 짓눌렀던 모든 압박감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자신을 무력하고 분노하게 만들었던 감정부터 불안하게 만들었던 감정까지. 복잡하고 절망스러웠던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이 이렇게나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니. 이렇게 쉽게 없어질 수 있던 거였다니.

안개가 깔린 듯 불확실한 미래와 모든 선택을 후회하던 머릿속이 개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지금 제네비브에게 있어, 에드워드는 마치 한 줄기의 빛 같았다.

그대로 사라진 줄 알았던 길이 다시 나타났다. 그의 도움 덕분에 제네비브는 자신이 처음 바라고, 그리던 길을 이어 가, 끝을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다행이네요.”

그녀가 느낀 안도감이 에드워드에게 퍼졌는지, 그는 방금보다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싫어할 줄 알았어?”

제네비브는 에드워드를 바라보며 물었다.

“조금 불안했어요. 칼리지 찾아가기 전에 미리 선배 의견을 물어보려고 했는데…… 답장이 안 와서요.”

에드워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답장이라니?”

제네비브는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한테 편지를 보냈었어?”

처음 듣는 소식이었다.

“몇 번 보냈는데도 답이 없어서…… 그냥 답을 안 보낸 건 줄 알았어요.”

“난 오웬이 편지에서 네가 내게 편지를 하겠다는 이야기를 알려 줘서 기다렸었는데.”

제네비브는 솔직하게 말했다.

“뭐라고 보냈어?”

“별 내용 없었어요. 칼리지 관련해서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달라는 거랑 몸은 괜찮은지 같은 거랑…….”

에드워드는 친절히 그가 보낸 편지 내용을 알려 줬다.

즉석에서 꾸며 냈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상세했다. 밀렸던 걱정을 한 번에 받게 된 제네비브는 작은 웃음을 지었다.

“……그러다가 제가 귀찮게 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편지를 그만 보냈어요.”

“절대 귀찮을 일 없으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선배 말만 믿을게요.”

에드워드는 살포시 웃었다.

그는 편지가 누락된 것 같다는 성의 없는 추측을 펼쳤다. 지금 에드워드에게 중요한 건 편지를 빼돌린 사람을 찾는 게 아니라, 제네비브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니.

‘누가 한 짓이지?’

하지만, 제네비브는 달랐다. 그녀는 에드워드를 안심시키며 걸리는 부분을 생각했다.

‘부모님이 그럴 리가…….’

유급 권유를 마음대로 거절한 전적 때문일까, 제네비브는 가장 먼저 달링 후작 부부를 떠올렸지만 의심을 곧바로 거두었다.

아무리 달링 후작 부부가 자신을 아본리아로 보내는 걸 꺼리더라도 제게 오는 편지를 가로챌 정도는 아니었다.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기회가 사라졌으니, 이번에야말로 제네비브 스스로 유급 제안을 거절하게끔 설득했을 거다.

그렇다면, 녹서스에 오기 전에 누군가 편지를 빼돌렸겠지.

“…….”

열심히 추리를 하던 제네비브를 방해한 건 에드워드였다.

잔디에 누워 그를 바라보던 제네비브를 물끄러미 구경하던 에드워드는 자세를 고치더니, 갑자기 제네비브를 향해 손을 뻗었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손에 제네비브의 모든 사고는 순간 정지되었다.

“…….”

커다란 손은 어울리지 않게 섬세했다. 간지러운 손끝은 제 머리 선을 타고 귓바퀴를 가볍게 쓸었다. 손끝이 오른쪽 귓가에 닿았을 땐 기분이 이상했다.

“……머리가 삐져나와서요.”

에드워드는 손을 떼며 말했다.

“아…… 고마워.”

제네비브는 어색하게 답했다.

지금 제 얼굴이 어떤지는 모르나, 제네비브는 노을이 져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부디 에드워드가 노을과 민망해진 얼굴을 구별하지 못하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달려오느라 삐져나왔나 봐.”

이어서 제네비브는 딱딱하기 그지없는 웃음소리를 냈다.

‘맞다. 얜, 날 좋아하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접촉에 놀란 쪽은 오히려 제네비브였다. 이어서 그녀는 자신 또한 조금 전에 에드워드를 아무렇지 않게 끌어안았다는 사실에 조금 괴로워졌다.

‘나는 에드워드를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게 아니야. 그냥 유급 관련으로 도와줘서 고마워서 이러는 거야.’

이성적인 호감과 인간적인 고마움을 헷갈려선 안 되었다. 유급을 도와준 걸로 그가 남자로 보인다면 그것만큼 얄팍한 감정도 없을 거다. 에드워드에 대한 예의도 아니었다.

“아, 그럼 유급은 어떻게 해?”

제네비브는 눈치 없이 뛰는 심장을 무시하며 물었다. 차분한 주제로 신경을 돌리니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그건 선배가 총장님께 편지로 보내면 바로 될 거예요. 아, 그리고 저 때문에 다시 권유를 받은 건 다들 모르고 계세요. ……선배가 그쪽을 더 선호할 것 같아서요.”

에드워드가 말했다.

제네비브는 저택으로 돌아가면 곧바로 실행할 생각이었다. 저번 유급 권유에서 ‘가겠다’라고 말하지 못하고, ‘고려하겠다’라고 이야기해서 얼마나 많은 굴곡이 생겨났던지.

“너와 같은 학년이겠네?”

에드워드의 설명이 끝나자 제네비브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에드워드와 학교를 같이 다닌다.

이 말을 몇 개월 전에 들었다면 제네비브는 기겁했을 거다. 에드워드를 몰랐을 시절에는 과장을 조금 보태어 학교를 진작 그만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약간의 걱정과 약간의 설렘, 상반된 두 가지 감상이 오묘하게 공존했다.

‘아마 원작대로 흘러가겠지.’

불변의 법칙인 원작이 여태까지 그래 왔듯, 아마 소설은 언급된 대로 지금과 같이 흘러갈 거다.

제네비브 달링은 ‘지나가는 에드워드의 예전 학교 선배’가 아니라, ‘어떻게든 이야기에 관여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제네비브는 결코 에드워드를 원래 흐름대로 가게 두지 않을 거다.

“근데, 무슨 일로 사절단까지 꾸려서 카르디르로 온 거야?”

제네비브가 물었다.

그녀는 에드워드가 고작 자신을 만나기 위해 사절단을 꾸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황자 홀로 진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공개된 지 얼마 안 된, 지지 기반이 없는 황족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실이 녹서스를 방문하기 위해 고급 인력을 제공할 것 같지도 않았다.

“아……. 그건.”

에드워드는 몸을 일으켰다. 누워 있던 제네비브의 눈만이 그를 바쁘게 쫓아갔다.

“제 책봉식 때문에 왔어요.”

에드워드가 말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간 그를 머릿속에서 의도적으로 잘라 온 덕분에 제네비브는 아본리아 소식지를 찾아보지 않았고, 아본리아를 기피하게 된 부모님 역시 저택에 아본리아의 소식이 돌지 않도록 입단속을 시켰다. 친구들의 편지를 읽을 여유도 그동안 없었다.

“황태자 책봉식을 말하는 거야?”

“네. 다음 주에 진행돼요. 워낙 갑작스럽게 잡힌 일정이라…… 타국에 가서 직접 초대하는 편이 낫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렇다면 이해가 된다. 국가적으로 불안할 땐 왕실이 견고하다는 걸 보여 줘야 한다. 제국은 에드워드의 책봉을 통해 그 의사를 비치려는 것 같았다.

소문난 잔치일수록 먹을 게 있어야 망신을 사지 않는 법이었고, 에드워드는 사절단만 보내도 충분히 의사 전달이 가능한 걸 본인이 직접 와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대륙에 있는 나라들은 거의 다 가 보는 거 아니야? 안 힘들어?”

제네비브는 작게 탄식했다.

“모든 나라는 아니고, 가까운 동맹국만 가는 게 일정이에요. 그렇게 힘들지도 않아요. 시설이 놀랍도록 좋아서…… 황궁에서 개인 열차도 따로 있더라고요.”

에드워드는 다시 생각해도 놀랍다는 듯 말했다.

“사절단은 처음부터 합류할 계획이었어?”

“아뇨…….”

에드워드는 황실에 입적한 뒤로 겪었던 일화를 담백하게 알려 줬다.

그는 개인 교사들이 여럿 붙었다고 이야기하며, 자격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갖춰지자 황제가 보냈다고 말했다.

“말도 안 돼! 열 시간씩이나? 게다가 개인 수업을 딴청 피우는 것도 어렵고…… 쉴 시간도 거의 없는 거네? 확실히 준비할 게 많긴 하겠지만…… 고생 많았어, 에드워드.”

제네비브는 에드워드가 하루에 열 시간 이상 개인 수업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경악했다.

이제 앉은 자세로 바꾼 제네비브는 열변을 토해 냈다. 황실이나 왕실 사람들이 일반 귀족보다 바쁘게 살아가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당사자로부터 직접 듣자니 너무했다.

“여름에도 못 쉬다니…… 그래도 시간이 얼마 안 지났는데, 사절단으로 올 정도라면 엄청 능력 있다는 뜻 아니야?”

제네비브는 그를 한껏 띄워 줬다.

“널 아는 사람들은 모두 네 책봉식을 가고 싶어 할 거야.”

제네비브는 에드워드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그는 제네비브의 손길을 가만히 받았다.

“제네비브 선배는요?”

조용히 제네비브가 하던 칭찬 세례를 듣던 에드워드가 굉장히 뜬금없이 질문을 건넸다.

“…….”

에드워드는 한쪽 팔을 기대어 제네비브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

“선배도 오고 싶어요?”

에드워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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