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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100화 (100/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100화

갑자기 가까워진 거리감에 제네비브는 뒤로 주춤 물러났다. 가까이서 에드워드의 얼굴을 보자니, 순간 사고가 돌아가지 않았다. 굉장히 나쁜 신호였다.

간신히 할 말을 고른 제네비브가 입을 열었다.

“……내가 가도 돼?”

이건 일개 귀족이 주최하는 연회가 아니었다. 무려 한 나라의 황태자씩이나 되는 거물의 책봉식이었다. 그러니만큼 참여하는 사람은 주로 자국 귀족이었고, 외국 손님은 대부분 사절단 자격으로 방문하는 이들로 이루어졌다.

운이 좋아 친분 있는 아본리아 귀족과 동행은 할 수 있더라도 외국 귀족이 당사자로부터 개인적인 초대를 받는 건 몹시 드문 일이었다.

“너무 아무나 들이는 거 아니야?”

가고 싶다는 의사 하나만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님을 알고 있기에, 제네비브는 에드워드가 제안을 철회해도 이상하지 않게끔 일부러 장난스럽게 말했다.

“선배는 아무나가 아니잖아요.”

에드워드는 ‘아무나’에 힘을 주어 틀린 부분을 지적했다. 가식 하나 섞이지 않은 연갈색 눈이 제네비브를 똑바로 직시했다.

“제네비브 선배가 오면…… 힘이 될 거예요.”

에드워드가 수줍게 말했다.

자연스러운 초대였다. 친구의 (에드워드 경우에는) 좋아하는 사람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힘이 될 때가 있다.

에드워드는 가볍게 권유했다. 아니, 그런 척했다. 첫눈에는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으나, 그는 말하며 제네비브의 기색을 살피고는 그녀가 할 대답을 예측하는 게 훤히 보였다. 혹시나 그녀가 거절을 할까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 방금 초대 받은 거야?”

제네비브가 긍정하듯이 되묻고 나서야 에드워드의 안색은 밝아졌다.

“네. 당장 손님 명단에 올려 드릴게요.”

“그래 줄 수 있어?”

에드워드의 농담에 제네비브는 작게 웃었다.

“책봉은 아직이지만, 그럴 권한은 있더라고요.”

“네가 초대해 준다면 당연히 가야지.”

제네비브의 대답을 들은 에드워드는 활짝 웃었다.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반대 의사를 꺼낼 부모님의 얼굴이 곧장 떠올랐지만, 제네비브는 그쪽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누구도 아닌, 제 의사였다.

“저녁때 한번 말해 보려고요.”

“괜찮겠다. 그러는 편이 더 공식적이기도 하고…….”

에드워드가 직접 말한다면 달링 후작 부부의 허락을 받기가 수월하다.

하지만, 제네비브는 이 부분까지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그에게 지금 부모님과 제 사이가 서먹하다는 걸 알리는 건 불필요하다.

“이제 가야 할 것 같아요.”

에드워드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하늘은 점차 푸른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먼저 일어선 에드워드는 잡으라는 듯 두 손을 내밀었다. 제네비브는 그의 호의를 감사하게 받았다. 제네비브가 그의 손을 맞잡자, 에드워드는 가볍게 제네비브를 일으켰다.

갑작스러운 반동에 제네비브는 조금 휘청거렸다. 자칫하면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지만, 에드워드가 즉각적으로 팔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붙잡아 준 덕분에 민망한 불상사는 피할 수 있었다.

“괜찮아요?”

바로 옆에서 에드워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네비브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어두워진 덕분에 그의 표정은 분간하기가 어려웠지만, 분명 놀란 것 같았다.

“으응…….”

제네비브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에드워드가 너무 가까이 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정말이지 모든 게 괜찮았다.

“난 괜찮아.”

제네비브는 딱딱하게 대답했다. 마음의 준비가 덜 된 상태로 그와 가까워지니 새삼스럽게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넘어질 뻔해서 그런가, 아니면 그의 목소리가 너무나 가까운 곳에서 들렸기 때문일까. 심장은 쓸데없이 빠르게 뛰었다.

“빨리 가자. 다들 기다리겠어.”

재빨리 중심을 잡은 제네비브는 에드워드에게서 멀어졌다. 앞장선 제네비브는 길잡이를 자처했다.

‘제네비브, 진정하자.’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후원을 지나갔다.

제네비브는 하늘을 보며 마음의 안정을 차츰 되찾아 갔다. 강렬했던 주황색 노을의 자리를 차지해 가는 푸른색 장막을 보며, 제네비브는 부모님께 어떻게 유급 소식을 전할지 고민했다.

이제 찰스 콜린스는 없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해야 할까, 그 정도면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지 않을까.

고민을 거듭하던 중, 떠오른 불쾌한 이름이 반가운 재회로 잊었던 정보를 상기해 주었다. 제네비브는 고개를 돌려, 계속 저를 보던 부드러운 시선과 눈을 맞췄다.

“에드워드,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뭔데요?”

“……재판에 관한 건데, 궁금한 게 있어서.”

에드워드는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리듯 침묵을 지켰다.

“걔를 삽으로 때린 건 나잖아. 근데, 왜 다들 너라고 하는 거야?”

“그건…….”

“……혹시, 네가 나 대신 덮어썼어?”

제네비브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네.”

그리고 에드워드는 그 질문을 부정하지 않았다.

“제네비브 선배가 한 일로 알려지면…… 듣지 않아도 되는 말을 듣게 되잖아요.”

에드워드는 그녀가 왜 그랬냐고 묻기 전에 설명을 덧붙였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제네비브는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심지어 소문의 여파는 자신보다 에드워드에게 더 치명적이었다.

찰스 콜린스를 삽으로 때렸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 때문에 에드워드는 별의별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오웬이 모아 놓은)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그의 평판에 흠이 갔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 실제로 그가 얼마나 이상한 말을 들어야 했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제가 듣는 게 차라리 나아요.”

에드워드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했다.

“그래도 전 아본리아 사람이고, 황자니까. 황실에서 많이 신경 써 주니까, 그런 얘기는 빨리 사라지거든요. 하지만, 제네비브 선배는 그게 어려울 거고…… 또, 선배가 그런 식으로 언급되는 게 더 싫어요.”

에드워드가 속상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

제네비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때로는 논리를 듣는 것보단 감정을 이해하는 게 더 수긍하기 쉬웠다.

제네비브는 이해했다는 대답을 내놓으며 저택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까지 네게 특별한 사람이 된 걸까. 네가 나에게 이렇게까지 해 줄 가치가 있나? 마음 한편이 어지러이 울렁거렸다.

제네비브는 애써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어떤 질문은 스스로 알아낼 수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에드워드의 감정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과연 오래 갈 호감일까? 여자 주인공이 나타나면 바로 사라지는 건 아닐까?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제네비브는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찾아내,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에드워드를 어떻게 생각할까.’

지난 시간 동안 궁금하지 않은 척했던 질문이었고,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알고 싶어 하는 척했던 질문이었다.

진지하게 고찰하며 답을 알아낼 필요가 없었다. 제네비브는 이미 예전부터 답을 알고 있었다.

‘나는 에드워드를……’

제네비브는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저택에 있던 사람들은 제네비브와 에드워드를 보곤 할 말을 잃었다.

카르디르 왕실에서 온 이의 말에 따르면 두 사람의 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산짐승 같았다. 고작 잔디와 흙이 머리와 옷에 조금 묻은 것뿐이었지만, 타인의 시선에는 그들이 진흙탕에서 한바탕 구른 것처럼 보였다.

“전하……! 당최 무슨 일을 당하신 겁니까?”

에드워드를 따라온 남자가 아본리아 억양이 가득한 어조로 물었다.

“조금 굴렀습니다. 다치지 않았으니, 호들갑은 자제해 주시기를.”

그는 ‘어디가 조금 구른 거냐’라며 한마디 할 눈치였지만, 황자의 당부대로 입을 다물었다.

“아가씨, 아가씨께서 이제 성인이란 걸 알아 주세요.”

제네비브가 에드워드와 멀어지자, 하녀가 그녀의 머리에 묻은 흙을 털어 내며 난감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다 하녀는 넋을 놓은 제네비브를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

에드워드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걸 인정한 제네비브는 넋을 놓았다. 아닌 척 부정하고 외면해 봐도 쓸데 없는 짓이었다.

제네비브는 하녀의 손길을 받으며 매무새를 정리했다.

* * *

저녁은 야외에서 이루어졌다. 준비 기간이 이틀뿐이었던 걸 감안하더라도 식사는 훌륭했다. 가장 상석에는 당연하게도 에드워드가 앉아 있었다.

“…….”

마음을 깨달으니 그가 의식이 되었다. 한 박자 늦게 그에게 뻣뻣한 인사를 건넨 제네비브는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제네비브는 형식적이고 예의 바른 동시에 지루하고 틀에 박힌 대화를 가만히 들었다.

보통 권력이 낮은 이가 권력자의 부름에 찾아가는 게 일반적이라, 사절단이 달링 저택까지 찾아온 예외적인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화를 들을수록 제네비브는 왜 황실의 측근이 녹서스까지 친히 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제네비브 달링 양이 보여 준 용기에 감탄하여…….”

표면적인 이유는 죽을 뻔한 에드워드를 구한 제네비브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먼저 방문한 게 이상할 게 없는 사유였다.

“곧 진행될 카르디르와 아본리아 국가 사업에 투자를…….”

하지만, 본 목적은 이쪽이었다.

달링 가문은 개국 공신이 맞았으나, 정치에서 한 발 떨어져 가문이 가진 부를 늘리는 데 평생을 썼다. 권력은 돈을 따라간다는 녹서스 달링의 말 때문이었다. 자금이 필요하여 감사 인사의 탈을 써서 온 듯싶다.

달링 후작부인이 바쁘게 손님 맞이를 준비하는 동안, 달링 후작 역시 이미 준비를 끝낸 것인지 그는 솜씨 좋게도 제게 유리한 사항을 요구하며 이득을 찾았다.

협상이 오가며 테이블 위의 음식은 에피타이저에서 메인 메뉴로, 그리고 나서 디저트까지 도달했다. 제네비브는 부친의 능력에 감탄하며 셔벗을 떠먹었다.

“감사의 의미로 달링 가문을 제 책봉식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대화에서 빈 공간을 찾은 에드워드가 말을 꺼냈다.

모두가 있는 곳에서 타국 황족의 초대를 거절할 수는 없는 법이었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국 황자의 실수를 지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제네비브와 에드워드만이 괜찮은 초대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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