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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101화 (101/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101화

“머레이 백작의 말대로, 달링 가문의 영애가 보여 준 용기는 흔치 않으니 말이죠.”

에드워드는 제 초대에 타당성을 부여했다.

“……제네비브 양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말을 마친 에드워드가 짧은 망설임 뒤에 말을 덧붙였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과 다른 게 하나도 없는 덕분에 모두가 수긍했다.

말을 마친 후, 에드워드는 들고 있던 잔으로 제네비브를 가리켰다.

그러자 테이블에 있는 사람 모두가 거의 동시에 제네비브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제네비브는 호의가 약간 섞인 머레이 백작의 시선을 받으며 흠잡을 데 없는 예의 바른 미소를 지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입꼬리를 올렸지만, 기실 제네비브는 민망했다. 모두의 시선을 받는 일이야 종종 있으니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에드워드가 제 이름을 부르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

성씨처럼 매번 이름 끝을 장식하던 ‘선배’는 언급되지 않았고, 오로지 이름으로만 불렸다.

원래 이름을 듣는 게 이렇게나 간지러운 일이었나? 블랑카가 즐겨 부르던, 자신과 어울리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진저’라는 애칭을 들을 때보다 더 낯간지러웠다.

‘……내가 왜 이러지.’

제네비브는 얼음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달아오른 얼굴을 식혔다. 그녀는 테이블 위 촛불 사이로 보이는 이들에게 신경을 분산시켰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 밖에 초대를 받은 부모님은 당황스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권유한 순간, 정해진 답과 다른 답변은 내놓지 못할 거다.

이건 시간이 안 되더라도 어떻게든 만들어서 가야 하는 일정이었고, 설령 가지 못하더라도 당사자가 초대한 이상 면전에서 거절하는 건 불가능했다.

“어떻게 거절하겠습니까? 전하께서 달링 가문을 초대해 주어 영광입니다.”

달링 후작은 억지로 기쁜 목소리를 만들어 냈다. 이어 평소에 짓던 웃음까지 만들어 내려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가기 싫다’와 ‘굳이 타국 귀족까지 초대해야 하냐’ 따위의 의미가 완연하게 담겨 있었다.

하지만 달링 후작의 속마음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은 물론이고, 빈 잔에 와인을 따라 주는 식솔들까지 전부 알아들었음에도 그 누구도 안 와도 된다거나 못 가겠다는 말을 하진 않았다.

“흔쾌히 받아 주니 기쁘군요. 조만간 정식으로 초대장을 보내겠습니다.”

에드워드는 자신이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 아니라는 듯 태연한 얼굴로 초대에 쐐기를 박았다.

“조만간 또 만나겠군요. 기대하겠습니다.”

누가 듣더라도 황족다운 말투였다. 정확한 발음은 귀에 딱딱 내리꽂혔고, 부드러운 어조와 권유의 탈을 쓴 말속에는 상급자가 내리는 명령과 같은 압박을 지녔다.

그 까다로운 걸 해내는 에드워드를 보며 제네비브는 그의 지위를 다시 한 번 체감했다.

“…….”

황자가 된 에드워드에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만큼은 언제나 똑같았다.

에드워드의 작은 예외가 자신이란 사실에 제네비브는 기분이 조금 들떴다. 제네비브는 기분 좋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은 디저트를 떠먹었다. 시원한 레몬 셔벗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훌륭한 저녁이었습니다. 덕분에 이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달링 후작부인.”

때마침 에드워드는 달링 후작부인과 시선을 맞추며 그녀의 노고에 박수를 보냈다. 그게 신호라도 된 듯, 머레이 백작과 카르디르 왕실 대리인 역시 달링 후작부인에게 칭찬을 건넸다.

“입이 즐거웠습니다, 부인.”

머레이 백작이 진한 아본리아 억양으로 말했다.

본디 사업적인 색채가 강한 식사 자리는 만남을 주최한 가문의 수장이 먼저 손님에게 찬사를 듣고, 그 찬사를 들은 수장이 제 부인의 공이라고 밝히는 과정을 거친다.

때문에 달링 후작부인은 달링 후작을 거치지 않은 감사 인사를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다.

“오, 급박하게 준비해서 부족한 부분이 많았을 텐데, 좋은 시간을 보내고 계시다니 마음이 놓이는군요.”

달링 후작부인은 미소를 띠며, 평소라면 말하지 않을 이야기까지 했다.

이후 대화는 비교적 평범하게 진행되었다.

머레이 백작과 카르디르 왕실 대리인은 달링 후작과 협상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그다음부터는 알맹이 없는 대화가 오갔다.

머레이 백작으로부터 에드워드를 구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얼마나 듣고, 또 녹서스가 무척 아름답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을까.

식사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끝이 났다.

* * *

귀빈들은 녹서스에서 하루 더 머물렀다. 제네비브는 어딘가 밝아 보이는 달링 후작부인을 보며 제 방으로 돌아갔다.

에드워드와 대화를 많이 못 나눈 식사 자리가 아쉬운 동시에 다행으로 다가왔다. 제네비브는 그와 대화를 더 나눌 수 있길 바랐지만, 만약 그랬더라면 자신이 어떤 헛소리를 할지 걱정이 됐다.

‘내일 또 에드워드를 보겠지.’

제네비브는 빗질을 하는 헬렌의 손길을 받으며 생각했다.

그를 만나게 된다면 어떤 대화를 나누는 게 맞을까. 고민할 시간은 충분했으나, 막상 에드워드가 앞에 있다고 생각하니 마땅히 떠오르는 주제는 없었다.

‘……근데, 나는 에드워드와 어떤 관계가 되고 싶은 거지?’

제네비브는 거울 속, 고심하는 자신을 보며 생각했다.

에드워드가 일반인이었다면 제네비브는 당연한 수순으로 연애를 생각했을 거다. 어린 귀족 규수처럼 한 나라의 황후가 되는 상상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소설의 등장인물이었고, 원작을 읽은 제네비브는 에드워드가 앞으로 나아갈 길과 그가 살인까지 마다하지 않을 사랑을 하리란 걸 알고 있었다.

애초에 그와 ‘어떤 관계’가 된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원작의 짧은 과거를 겪은 바에 의하면 소설에서 언급된 설정은 어떻게든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한마디로 원작은 반드시 오는 거대한 흐름이고, 작은 조연에 불과한 자신이 이리저리 뛰어 어렵게 미미한 변화를 만들어 낼 뿐이었다.

심지어 제대로 서술된 적 없는 과거 시점을 바꾸기조차 이렇게 벅찬데, 대체 원작이 전개되던 시점은 얼마나 불가항력일지.

“……에드워드는 결국 여자 주인공을 좋아하게 되겠지.”

그게, 소설이 정한 운명이니까.

제네비브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지금은 에드워드가 저를 좋아하더라도 여자 주인공을 만나게 되면 소설이 정해 준 대로 흘러가지 않을까.

머리를 다 빗고, 침대 위를 뒤척거리던 제네비브는 침울해진 감정을 삼키며 다른 곳에 집중하기로 했다.

“만약, 상황이 바뀌더라도 한차례 소설에서 일어난 일은 일어나게 되는 거라면…….”

강간 사건을 막은 만큼 에드워드에겐 더 이상 흑화할 이유가 없다는 걸 알곤 있지만, 여기까지 생각을 하니 제네비브는 초조해졌다.

그러니까, 소설의 흐름으로 인해 갑자기 흑화의 이유가 ‘여자 주인공이 제 마음을 안 받아 줘서’가 될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그렇게 되면 에드워드는 결국 흑화하고, 학생들은 전부 죽어 버리고, 에드워드도 여자 주인공 손에…….’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

조금씩 찾아오던 졸음이 사라졌다. 지금보다 더 세인트 존 칼리지에 가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제네비브는 세인트 존 칼리지를 반드시 가야 했다. 작위라는 개인적인 목표뿐만 아니라, 죽을지 모르는 에드워드를 지키기 위해서.

에드워드와 연애를 한다는, 그런 꿈같은 소리는 하지 않기로 했다. 제네비브는 에드워드가 무사히 졸업하기를 바라고, 그의 해피 엔딩을 돕고 싶었다.

‘유급 얘기를 하려면 지금 하는 게 낫겠지.’

달링 후작 부부가 지금껏 별다른 반응이 없는 걸 보면 칼리지가 유급 제안을 보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학비만 아니었다면 제네비브는 허락 없이 아본리아로 떠나는 기행을 펼쳤겠지만, 자신에겐 그만한 돈이 없었다. 학비를 낼 두 사람을 설득하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제네비브는 짧은 고민 끝에 방을 나섰다. 모두가 잠든 저택의 복도는 어두웠지만, 이 시간에 잠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제 부모님이다.

제네비브가 짐작한 대로, 달링 후작의 집무실은 아직도 빛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어떡하긴요. 초대를 받았으니 가긴 해야겠죠.”

살짝 열린 집무실 문틈 사이로 부모님의 대화 소리가 흘러나왔다. 제네비브는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다.

가장 먼저 달링 후작부인의 난감한 목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은 식사 때 받은 에드워드의 초대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카르디르 귀족이 초대 받는 일도 흔치 않으니 말이오. 콜린스 가문도 망해서 꺼릴 이유도 없고,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만……. 그쪽에서 받은 위자료를 카르디르로 옮겨야 하니, 어차피 가긴 가야 하지.”

아본리아 방문 자체를 경계하는 어머니와 다르게, 아버지는 가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인 것 같았다.

‘그렇담, 유급에 관련해선 아빠를 공략하는 편이 더 나으려나?’

아본리아에 대한 두 사람이 인상이 아직 바뀌지 않은 것을 보며 제네비브는 지금 말하려는 제 계획을 미뤘다.

“제네비브, 밖에 있는 거 다 알고 있단다.”

정확히는, 미루려고 했다. 나와서는 안 되는 이름이 달링 후작부인의 입을 통해 정확하게 흘러나왔다.

제네비브는 잘못하다 걸린 어린아이처럼 쭈뼛거리며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아가, 무슨 일이니?”

달링 후작이 야밤에 찾아온 딸을 바라보며 의아하게 물었다.

“……말씀드릴 게 있어요.”

제네비브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칼리지에서 유급 제안이 다시 왔어요.”

지금 말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돌이켜 보면 언제 말하는 게 좋을지 재는 건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어차피 언젠가 나눠야 하는 대화고, 일찍 말할수록 설득할 시간이 더 생기니, 과정이 힘들더라도 빨리하는 게 좋았다.

“오…… 그 얘기는 전부 끝난 게 아니었니?”

달링 후작부인이 난감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정 교사도 거의 다 골라 간다고, 분명 네가 가을부터 국가시험을 준비하기로…….”

“그건 유급이 선택지에 없었을 때였잖아요.”

제네비브가 부드럽게 말했다.

“두 분께서 방금 말씀하신 대로 이제 칼리지에서 위험한 사람은 없어요.”

“…….”

달링 후작 부부는 반박하지 않았다.

제네비브의 말대로였다. 비록 주동자인 찰스는 없어졌지만, 그의 오른팔 역을 자처하던 패거리는 남아 있었다.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대로라면 나머지 세 사람은 ‘찰스 콜린스를 말리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두 사람이 그 정보가 틀렸음을 알고 있을 리 없다.

제네비브는 말을 아낀 과거의 자신을 칭찬하며 부모님을 바라보았다.

“세인트 존 칼리지를 다시 가고 싶어요.”

제네비브는 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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