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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104화 (104/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104화

이는 제네비브에겐 조금 껄끄러운 주제였고, 오웬과 블랑카에겐 어두운 이야기였다.

셋은 아무나 먼저 말을 꺼내 주길 기다린 듯, 제임스가 언급되기 무섭게 각자 품고 있는 정보를 공유했다.

“나도 들은 게 없어. 공작위 수여식도 약식으로 했다잖아. 카터 저택에서 나온 적 없다는 소문도 들었는데…… 정말 괜찮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제네비브와 블랑카는 오웬을 쳐다봤다.

“나라고 전부 아는 게 아니야.”

“그래도 우리 중에선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을 거 아니야.”

아본리아 귀족에 대한 건 그 나라 귀족이 제일 잘 아는 법이다. 늘 새 학기가 시작되면 오웬과 제임스는 저들만 아는 일화를 만들어 내기 일쑤였기에 충분히 가능성 있었다.

“나도…… 제임스랑 연락 끊긴 지 꽤 됐어.”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언젠데?”

제네비브가 물었다.

“장례식 때 만난 게 마지막이지. 근데, 그 뒤로는 나도 연락이 안 돼.”

오웬이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세 사람 모두 같은 시기에 제임스를 마지막으로 보았고, 이후로 연락이 안 된다는 소리였다.

“……제임스, 내일 올 것 같아?”

블랑카가 물었다. 책봉식은 내일이었지만, 그가 리스톨에 왔다는 소식은 지금껏 들리지 않았다.

“그것도 잘 모르겠어. 황실은 당연히 초대한 것 같지만.”

오웬이 말했다.

“리스톨에 머무는 동안이라도 제임스를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확인이라도 해 봐야 마음이 놓이지…… 못 보고 가면 좀 그럴 것 같아.”

“만나게 되면 편지할게. 뭐, 파인트리 행사에 올 수도 있으니까.”

“파인트리……?”

제네비브의 말을 들은 블랑카가 의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제네비브, 블랑카한테 말 안 했어?”

“아, 맞아. 해야지.”

“뭐를?”

제네비브는 뒤늦게 제 유급 소식을 알릴 사람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나, 칼리지 유급하기로 했어. 직접 얘기하는 게 맞는 것 같아서…….”

제네비브는 간단히 상황 설명을 했다.

에드워드가 도왔다는 얘기를 해도 되는지 잠깐 고민이 됐지만, 결국엔 에드워드를 위해서라도 비밀로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잘됐다! 학교 일 년 다니는 거야 진저, 네겐 아무것도 아니지! 오웬이 다닌다면 걱정되겠지만…….”

블랑카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말하듯 ‘너라면 잘할 거다’라고 제네비브를 격려했다.

짧은 축하 뒤로, 대화는 다시금 제임스 걱정으로 넘어갔다. 세 친구는 제임스를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대할지, 어떻게 그의 기분을 좋게 만들지에 대해 다소 진지하게 토론을 나눈 뒤에야 헤어졌다.

* * *

황태자 책봉식은 그다음 날이었다.

행사가 오전부터 진행되는 덕에 초대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이들은 그보다 훨씬 더 이른 시간부터 준비를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새벽부터 치장한 제네비브는 잠들지 않도록 안간힘을 썼다. 달링 부부는 칼리지를 가도 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본리아를 꺼리는 건 여전한지 축제 기간에만 머무르기로 했다. 여행 체질이 아니었던 달링 부녀는 여독을 미처 풀지 못해, 피로감으로 반 즈음 죽어 갔다.

에드워드의 책봉식은 대신전에서 이루어졌다. 황족으로서의 첫 단계가 바로 신에게 인정받는 것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장소였다.

하지만 입장은 지금까지도 요원했다. 신전 입구부터 마차 행렬이 이어졌다. 기다리는 데 지친 제네비브는 마차 창문을 열어 몸을 살짝 빼냈다. 눈에 안 보이던 신전이 손바닥 크기로 커졌으니, 진전이라면 진전이다.

‘엄청 막혀서 문제지…….’

마차 줄을 보자니, 내려서 직접 신전까지 걸어가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다.

‘오웬은 지금 자고 있으려나.’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던 제네비브는 맞은편에 앉은 부모님에게 신경을 돌렸다. 달링 후작은 그답지 않게 다리를 떨고 있었고, 달링 후작부인 역시 졸기 직전이었다.

“데이브 경, 언제 도착할 것 같나?”

달링 후작이 창문에 얼굴을 들이대며 물었다.

“마차가 많아, 30분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호위의 대답을 들은 모두가 한숨을 쉬었다.

“제국 모든 귀족을 초대한 것도 아니고, 나 원.”

“황제 폐하라면 그러셨더라도 안 놀랄 거예요.”

달링 후작부인이 시들한 목소리로 말했다.

호위가 말한 대로, 달링 가문은 한참을 기다린 뒤에서야 겨우 마차에서 내렸다.

처음 보는 타국의 신전은 감탄을 자아냈다. 흰제 칼라카타는 아낌없이 도배되었고, 사제의 보살핌을 받은 정원은 아름답게 펼쳐졌다. 마이언 아카데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보는 이에게 진정한 성역이 무엇인지 친히 알려 주는 것 같았다.

제국의 건국과 함께 수많은 황족의 대관식과 책봉식을 진행한 곳인 만큼, 사제들은 익숙하게 귀족들을 안내했다.

황실에서 직접 정한 몇몇 가문은 예외적으로 2층 내부 발코니에서 책봉식을 볼 수 있었다. 황실의 배려인지, 아니면 친척이라 가능한 일인지 몰라도 달링 가문은 블라이스 가문과 같은 발코니에 배정되었다.

제네비브는 이곳이 오페라 박스석 같다는 생각을 하며 친척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눴다.

“오, 정말이지 너무 막히지 않았나요?”

“제 말이요! 당최 책봉식 준비를 어떻게 한 건지.”

“그래도, 다들 들어오긴 한 것 같네요.”

이렇듯 신전은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과 안부를 나누는 걸로 어수선한 분위기를 띠었다.

제네비브는 난간에 몸을 기댄 채 신전을 둘러보았다. 칼리지 밖에서 신전을 방문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천장의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빛이 신전 안을 환하게 밝혔다. 작은 음악 소리가 신전을 채웠다. 제단 위에서 음역을 맞추는 성가대와 오르간 소리가 들렸다.

“뭐 해?”

“그냥, 구경.”

제네비브는 옆으로 다가오는 오웬을 보며 자연스럽게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오웬은 발코니 난간에 기대며, 제네비브와 마찬가지로 신전을 구경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그가 이내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야, 저거 제임스 아니야?”

“어디에?”

제임스 석 자를 듣자마자 제네비브는 고개를 돌렸다.

“저기, 반대편 오른쪽에서 두 번째 발코니.”

제네비브는 곧바로 오웬이 알려 준 곳을 보았다. 그가 말한 대로 제임스 홀로 널찍한 발코니를 차지하고 있었다

“…….”

그 이유를 알기에 제네비브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를 보고 나서야 제네비브는 반대편 발코니가 이상할 정도로 휑하다는 걸 눈치챘다. 사람들로 와글거리는 이곳과 대비되었다. 위화감이 느껴졌다.

제임스는 그녀와 오웬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의자에 앉은 채 1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네비브는 누구의 것일지 모를 시선을 피해 제임스를 따라 아래를 쳐다봤다.

발코니를 배정 받지 못한 사람들은 신자석에 앉았다. 불만을 가질 법했지만, 황태자 책봉식에 초대 받았다는 것 자체가 가문의 영광으로 여겨졌기에 모두가 들뜬 것처럼 보였다.

어수선하던 분위기는 연단 위로 사제들이 올라오며 정리가 되었다. 오르간 연주와 함께 신전 사제가 들어오자, 달링 후작부인과 블라이스 백작부인은 제네비브와 오웬을 자리로 불러들었다.

곧 황제 부부가 들어왔고, 사람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반 황제를 본 블라이스 가문은 못마땅한 기색이었다. 제 친척들은 숨기려는 노력을 최소한으로 했다. 하지만, 고요한 신전에서 대놓고 황제를 모독할 순 없었기에 블라이스 백작은 눈살을 찌푸리는 걸로 만족했다.

제네비브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마음에 안 드는 걸 표출하는 친척들을 보고는 남편의 곁을 따라서 들어오는 오필리아 황후를 보았다.

오필리아 황후를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슬픔 따위는 보이지 않는 황제와 대비되게 황후는 아직 자식을 잃은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듯 안색이 어두웠다.

장인이 손수 만들었을 아름다운 드레스와 남편의 것과 똑같은 보석이 박힌 왕관으로 치장을 했음에도 그녀는 몹시 슬퍼 보였다. 그동안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는지, 전에 봤던 황실 초상화보다 얼굴이 희고 주름이 깊어졌다.

교황이 황태자 책봉식을 진행할 거라는 예상을 뒤집고, 이반 황제가 움직였다. 성가대의 노랫소리가 책봉식의 시작을 알렸다. 고대어로 된 찬가는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사람들은 일제히 침묵하며 그의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이반 황제는 본디 교황이 있어야 할 자리에 서 있었다.

황제의 옆으로는 사제가 황태자의 관이 올려진 쿠션을 들고 있었다. 황제 부부의 것보단 작았지만, 제국의 국보라는 것엔 변함없었다.

“…….”

예스러운 멜로디와 함께 에드워드 블렛이 신전 안으로 들어왔다. 검은색 제복 위로 흰색 신복을 입은 에드워드는 맨발로 걸음을 뗐다.

거리가 먼 탓에 제네비브는 지금 에드워드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다만,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그의 아버지를 대하듯 그가 행동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거다.

수백 쌍의 눈이 에드워드를 지켜보았다. 의미는 다양했다. 앞으로의 그의 행보를 기대하겠다거나, 아니면 평민으로 자란 그가 일을 그르칠까 걱정하거나.

하지만, 제네비브는 전혀 다른 이유로 그를 보았다.

제네비브는 에드워드의 상태를 추리하는 데 여력이 없었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정확히 알 방법이 없다는 걸 인지하고 있음에도 제네비브는 그를 걱정하는 데 바빴다.

‘지금 에드워드는 어떤 심정일까.’

긴장되지는 않을지, 황태자라는 막중한 자리에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지.

한참 중앙 통로를 걷던 에드워드가 이반 황제 앞에서 멈췄다. 유리를 통해 들어온 햇살이 에드워드를 비추자, 연한 갈색 머리카락이 금발로 보였다. 그 모습은 마치 여신의 손길을 받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가 부친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위대한 풍요와 평화의 여신, 이시스여—.”

이반 황제는 한 번이라도 신전에 발을 들인 적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아는 기도문을 외웠다. 그에 맞춰 에드워드는 손을 모았다.

“여신의 피가 흐르는 우리(황족)는 성인(成人)으로 태어나 성인(聖人)으로서 삶을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살아가겠나이다.”

중후한 목소리가 신전 안에서 울려 퍼졌다.

그러고 보니, 아본리아 황족은 태어난 순간부터 성인(成人)으로 인정된다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이번 책봉식이 성인식의 역할도 한다는 걸 새삼스레 깨달은 제네비브는 에드워드를 주시했다.

“여신의 피가 흐르는 어린양은 성인으로 태어나, 성인으로서 삶을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살아가겠나이다.”

에드워드는 황제가 읊은 기도문을 따라 외웠다. 정확한 발음이 신전 안을 채웠다.

그의 대답을 들은 이반 황제는 신관이 들고 있던 왕관을 에드워드에게 씌워 줬다.

“나, 위대한 이시스 여신의 아들 이반 블렛은 신을 대리하여 아들 에드워드 블렛을 황태자로 임명한다.”

그가 걸치고 있던 신복을 내려놓고 그의 머리 위로 왕관이 씌워진 순간, 모두가 그의 이름을 합창하며 환호했다.

그렇게, 아본리아 제국에 새로운 황태자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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