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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110화 (110/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110화

제네비브는 무슨 일이 생기면 비명을 지르겠다는 약속까지 하고서야 달링 가문의 호위를 간신히 떼어 냈다.

이런 외지까지 온 것만 해도 부모님이 알면 뒷덜미를 잡고 쓰러지실 만한 일인데, 누군가의 뒷조사까지 하고 있다는 걸 들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감히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내부는 바깥에서 본 것보다 훨씬 비좁고 초라했다. 반 즈음 뜯긴 벽은 제 역할을 소화하지 못했고, 지붕도 다를 건 없었다. 판자로 구멍을 대충 막아 놓은 걸 보자니 비가 내리면 그대로 맞을 게 분명하다.

낡은 집에서 풍기는 퀴퀴한 냄새가 강하게 진동했다. 제네비브는 집 안까지 들어오는 따가운 햇빛을 피해서 그늘 뒤로 몸을 숨겼다. 앉은 나무 의자는 삐꺽거렸다. 조금 뒤척이기만 해도 의자는 중심을 잃어 불안정하게 움직였다.

블랑카와 미묘한 눈빛을 교환한 제네비브는 테이블에서 딱 세 걸음 떨어진 주방에서 스토브에 불을 켜는 노인을 보았다.

“대접할 게 이것뿐이라 미안하군.”

노인은 누그러진 분위기로 두 사람에게 따뜻한 액체가 담긴 양철 컵을 건넸다. 컵과 손잡이의 이음새 부분은 붉은 갈색으로 녹이 슬었다.

“언질 없이 온 건 이쪽입니다.”

제네비브는 부드럽게 말했다.

원래도 느꼈던 측은함은 배가 되어, 이젠 노인이 주는 물을 받는 것조차 죄책감이 들었다.

제네비브는 그에게 대접을 받고 싶을 정도로 염치가 없지 않았다. 그는 살아가는 게 아니라, 생존하고 있었다. 차라리 벼룩의 간을 빼먹고 말지. 제네비브는 속으로 자조하듯 중얼거렸다.

“독을 살 정도의 형편도 안 되고, 독초가 자랄 여건도 안 되니 안심하고 드시게.”

노인은 컵에 손을 대지 않는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선뜻 마시지 못하는 게 위험할까 봐 걱정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가 차 대용으로 준 건 뜨거운 소금물이었다. 얇은 양철 컵은 뜨거웠다. 제네비브가 급히 손을 떨어트리자, 노인은 손잡이 부분을 잡고 마셔야 한다고 말했다. 투명한 액체 위로 정체불명의 나뭇잎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제네비브는 그 성의에 답하고자 작게 한입 마셨다. 소금물이 혀와 입술에 닿자마자 제네비브는 반사적으로 인상을 썼다. 짠맛이 너무 강하다.

다행히 노인은 표정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시력이 안 좋은지, 그녀가 찰나에 지은 표정을 못 본 것 같았다.

“그래, 뭐가 궁금해서 이곳까지 찾아왔는가?”

“윌리엄 밀포드에 대해서요. 정확히는 밀포드와 선대 황제의 관계가 어땠는지 궁금해요.”

블랑카가 재빨리 설명했다. 이런 환경에 익숙지 않은 그녀는 빨리 해치우고 돌아가고 싶은 기색이었다.

“두 사람은 사이가 안 좋았나요?”

제네비브는 컵을 내려놓으며 답의 범위를 좁혔다.

“밀포드와 황제의 사이가 안 좋았냐고?”

뭐가 그렇게 웃긴 말이었는지, 노인은 처음으로 박장대소하며 대체 어디서 들은 헛소문이냐고 물었다.

“…….”

이로써 라몬 황제와 사이가 안 좋아서 그 손자를 강압적으로 대한 거라고 가볍게 세웠던 제네비브의 가설은 곧바로 없는 일이 되었다.

“선대 황제를 아는 사람도 슬슬 적어지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먼.”

관리가 안 된 턱수염을 매만지던 노인이 곧 입을 열었다.

“정확히 무엇이 궁금한진 모르겠으나…… 내게서 원하는 답을 못 들을 수도 있네.”

“그래도 괜찮아요.”

제네비브는 흔쾌히 대답했다. 들은 내용에서 필요한 답을 찾아내는 게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었다.

“나는 황실 5부대에 소속되었던 타일러 에이브러햄이라오.”

노인은 자신을 1부대가 아닌, 5부대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아가씨들이 궁금해하는 밀포드는 내 윗 기수였지. 나보다 나이가 다섯은 많았던가.”

“…….”

노인의 나이를 들은 제네비브는 충격을 받았다. 딱 보기에도 에이브러햄이 밀포드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 굽은 등도 그렇고, 어두운 시야나 굼뜬 움직임도 그렇고.

‘……대체 얼마나 고생했으면.’

입 안이 썼다.

“라몬 폐하가 밀포드보다 한 살 어리셨지. 솔직히 말해서 아가씨들이 궁금해하는 둘의 관계가 어땠는지 이러쿵저러쿵 확실하게 말은 못 하오. 멀리서 본 게 전부였거든. 그래도 확실한 건, 그들이 자주 붙어 다녔다는 게지. 1부대장은 라몬 폐하의 비위 맞추길 어려워했는데, 밀포드는 그 일을 기가 막히게 해냈거든.”

노인은 라몬 황제의 성격이 ‘지랄 맞았다’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하지만 밀포드, 그 작자도 뭔가 필요한 게 있으니까 라몬 폐하의 비위를 맞춰 준 거겠지. 아주 독한 놈이었어. 부하들끼리만 있을 땐 상부에게 품은 불만이나 힘든 일을 털어놓기 마련인데,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니까 되레 황족 모독을 야기했다며 군부 재판에 보내 버리더군.”

그는 제 동기 중에서도 감옥에 간 사람이 여럿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때 알았지. 그놈은 지위에 눈이 돌아간 놈이라는 걸. 지위를 받아, ‘진짜’ 1부대 놈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놈이란 걸. 하지만, 하나는 알고 둘은 몰랐지 뭔가. 그게 다른 사람을 희생하면서까지 원하던 거였을 줄은…….”

노인이 들고 있던 컵에 힘을 줬다. 얇디얇은 철은 그의 손 모양에 따라 살짝 일그러졌다. 컵이 구겨지며 테이블엔 물이 흘렀다. 하지만, 노인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밀포드…… 그놈은 1부대에 완전히 소속되기 위해 5부대를 배신했수다.”

에이브러햄은 그때만 생각해도 이가 갈리는지 벽을 쳤다. 낡은 벽은 노인의 약한 힘에도 움푹 팼다.

“어떻게 배신을 한다는 거죠? 에이브러햄 씨와 밀포드는 이미 1부대 소속 아니었나요? 1부대는 지금까지 잘 이어지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제네비브가 의아하게 물었다.

물론, 신분에서 오는 여러 불합리함이나 다툼은 존재할 테지만, 1부대에 소속되기 위해 출신 부대를 배신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금발 머리 아가씨. 아가씨는 주로 누구와 대화를 하오. 평민? 아니면, 귀족?”

“…….”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제네비브는 입을 다물었다.

“아가씨 주변 사람들은 당연히 문제가 없다고 말하겠지. 귀족이니 말이야. 하지만 그들이 말하지 않는, 아가씨도 모르는 의견차는 분명 존재할 거요. 그런데, 50년 전은 얼마나 더 심했을 것 같소?”

“…….”

“나는 단 한 번도 진정한 1부대였던 적이 없었어.”

노인은 어린아이에게 설명하듯 느리게 이야기했다.

“귀족 부대와 평민 부대, 1부대와 5부대의 합병은 그저 눈 돌리기 용이었소. 지금보다 살기 팍팍할 때고, 지지하는 국민들도 사라지는 추세였기에 눈치를 본 게야. 금방이라도 반란이 일어날 기세였으니……. 제국은 노력만 한다면 된다는 희망을 심어야 했지.”

“…….”

“그게 바로 5부대였소. 평민들이 귀족과 같은 1부대로 승격했다는 것 자체가 희망을 준 게야. 제국은 개인이 노력만 한다면 작위든 명예든 얻을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5부대를 통해 보여 줬지.”

그런 뒷이야기가 있는 줄 몰랐다.

“물론, 당시 귀족 나리들은 5부대가 1부대에 소속되는 걸 반기지 않았네. 웃기지 않소? 1부대 유지비에 우리 세금이 절반이나 들어가는데도…….”

노인의 갈라진 웃음소리가 공허한 집 안을 채웠다.

“라몬 폐하께 알랑거리던 밀포드도 다를 건 없었지. 그도 평민 출신이었으니까.”

“…….”

“밀포드는 1부대에 ‘완전히’ 소속되기 위해 우리를 이용했소. 무슨 말로 우리를 구워삶았는지, 이젠 기억도 안 나……. 앞뒤 어순도 안 맞고, 돌이켜 생각하면 헛소리에 가까웠던 것도 같군. 다만, 그때는 놈의 말을 안 들으면 내가 쓰레기가 되는 것처럼 느껴졌소.”

에이브러햄은 밀포드가 간사한 흑마법 같은 화법을 구사했노라 이야기했다.

“5부대 동기들도 같은 말을 했지. 그렇게 밀포드는 5부대가 모아 놓은 전 재산을 가져가 날렸어. 우리의 돈으로 1부대에서 자리를 확보한 거요.”

“…….”

“따져 봤지만, 불가능하더군. 치밀한 놈이 계약서까지 쓰게 했거든. 5부대 출신들은 이상한 죄목으로 하나둘 잡혀갔소. 빚까지 져 가며 밀포드에게 돈을 쥐여 주는 멍청한 놈도 존재했지. 멍청함은 죄라는 걸, 나는 그때 처음 알았소.”

그는 하지만 그땐 이게 잘못된 일이라는 걸 알려 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어떻게 알라는 거냐— 라는 원망 섞인 말을 했다.

누군가 알려 준 적 없다면 모르는 게 당연했다. 그의 탓이 아님을 위로해 주려 했지만, 입이 선뜻 열리지 않았다.

밀포드는 제네비브의 상상보다 더 속이 좁은 인간이었다.

그녀는 밀포드가 조금 더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다. 조금 더 극적이길 바랐다. 대체 자신은 뭘 기대하고 있었던 걸까? 그가 5부대를 전멸시켜, 공로 아닌 공로를 인정받아 떵떵거리며 살았다는 이야기를 기다렸나?

조금 더 대단한 악당일 줄 알았다. 아예 공감이 안 될 정도로, 비현실적인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얄팍한 사람이었다. 없는 사람의 것을 빼앗아서 한다는 게 고작 상급자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라니.

“그래도 마음의 위안이 되는 건, 그놈이 다리 병신이 되었다는 거요. 그 일이 조금만 늦게 일어났어도 그놈은 그렇게 원하던 작위를 얻었을 텐데.”

에이브러햄은 켈켈 웃었다. 그가 당한 것에 비교하면 새 발의 피였지만, 밀포드가 바라던 걸 못 얻은 것만으로도 통쾌한 것 같았다.

“이반 황제를 구하느라 부러졌다지.”

노인이 말했다. 초점 없는 탁한 눈이 즐거운 듯 접혔다.

사고가 날 뻔했다는 건 처음 듣는 이야기다. 왜 라몬 황제와 밀포드의 사이가 안 좋냐는 질문에 비웃었는지 알 것 같았다. 제 아들의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인데 어떻게 사이가 안 좋을 수 있을까.

“그놈 때문에 나는 평생 모아 놓은 돈을 잃었소. 아내와 자식도 잃었지. 밀포드는 대단한 악당은 못 되지만, 엄청난 개새끼요.”

“…….”

“그 자식은 지금도 호의호식하면서 살고 있겠지. 소식은 모르지만, 그냥 알아. 모든 걸 빼앗겨도 다시 올라갈 사람이거든.”

수십 년간 이어진 학습적인 패배감이었다. 제 멍청한 선택을 얼마나 후회하고, 그로 인해 잘 사는 이와 얼마나 많은 비교를 했을까.

“아가씨들이 해결해 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래도, 이 노인네의 말을 들어 줘서 고맙구려.”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네비브가 공손하게 말했다.

* * *

“어땠어? 나는 생각을 좀 해 봐야 할 것 같은데.”

블랑카가 물었다. 마차는 다시금 수도의 중심부로 진입하고 있었다.

“안타까웠는데, 좀 이상해.”

제네비브는 완전한 형태의 건물을 보며 말했다.

“고작 사기꾼을 두고 오웬이 그만두라고 할 것 같진 않아. 뭔가 더 있어.”

가정을 바꿔야 했다. 이반 황제와 밀포드가 사이가 안 좋았던 게 아니라, 노인의 말처럼 두 사람이 오히려 친했다면.

“불법적인 사업을 한 걸 수도 있어. 아본리아 사정은 잘 모르지만…… 원래 나라마다 암시장 같은 게 있잖아.”

하지만, 그 폐쇄적인 곳을 성인식을 치르지도 않은 이들이 찾아내기엔 무리가 있었다.

“우선, 지금 우리가 찾아볼 수 있는 걸 찾아보자. 나는 파인트리 서클에서 찾아볼게.”

“나는 아본리아 좀 봐야겠어. 이반 황제가 죽을 뻔했다니, 솔직히 안 믿기잖아!”

그렇게 역할 분담을 한 제네비브와 블랑카는 다가올 제네비브의 성인식에서 조사한 걸 서로에게 알려 주기로 했다.

하지만 계획이란 게 늘 그렇듯, 크고 작은 변동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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