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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116화 (116/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116화

에드워드는 시온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는 제네비브의 손을 보며 두 눈을 좁혔다.

기실 시온의 넓은 등에 가려져 상대를 확인하기란 어려웠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그 손의 주인이 제네비브라는 걸 곧바로 알았다. 저러한 박자로 사람을 다독여 주는 건 제네비브뿐이었다.

만약 에드워드가 이때, 더 자세히 관찰했더라면 시온을 토닥이는 제네비브의 손길에는 호감이 아닌 황당함과 측은함이 묻어 있다는 걸 발견했겠지만…… 당시 에드워드에겐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설령 발견했더라도 그는 안도하기보단 어째서 제네비브가 시온 헤이븐에게 동정을 느꼈는지 의문을 품었을 거다.

그새 친해지기라도 한 건가? 그가 둘을 보았을 때는 대화가 끊겼을 때라, 에드워드는 앞선 상황을 추측하는 수밖에 없었다.

근래 들어 제네비브를 볼 때마다 그녀의 주변에 시온 헤이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 봤자 두 번뿐이지만, 에드워드는 저가 모르는 사이 두 사람이 얼마나 더 같이 있었을지를 생각해 보았다.

‘……내가 그렇게 생각할 입장은 아니지.’

에드워드는 유치한 질투를 느끼는 자신을 보며 객관적인 판단을 내렸다.

그는 곁눈질로 뒤에서 이 상황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는 한 여학생에게 시선을 뒀다. 부드러운 핑크빛 머리칼, 희미한 달빛을 받아 빛나는 금색 눈동자가 에드워드와 그 앞에 있는 시온 헤이븐, 그리고 제네비브 달링을 보았다.

길을 잃었다는 신입생이다. 본래 에드워드의 계획은 다이닝 홀에 도착하면 신입생과 헤어지는 것이었으나, 이러한 장면을 목격한 덕분에 함부로 말을 꺼내기 어려워졌다.

마치, 봐서는 안 될 장면을 본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리를 피해 주기는 싫었다.

“…….”

제네비브와 시온 중 에드워드의 존재를 먼저 알아차린 건 시온 쪽이었다. 그는 몸을 조금 비틀어, 제네비브가 뒤에 서 있는 에드워드를 볼 수 있게끔 도왔다.

시온이 움직이자 반대쪽으로 얼굴을 빼꼼 내민 제네비브는, 에드워드와 눈이 마주치는 동시에 시온을 거의 밀쳐 내듯이 자신에게 떨어트렸다.

“에드워드!”

그의 존재를 한 박자 늦게 확인한 제네비브가 외쳤다. 그녀의 목소리엔 반가움이 깃들어 있었다. 에드워드는 일순 굳었던 얼굴이 풀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조차 오래지 않았다. 제네비브가 반가운 얼굴로 에드워드에게 다가오려던 찰나, 시온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아 저지했다.

그 모습에 에드워드가 인상을 쓰는 사이, 시온이 제네비브를 부드럽게 당겼다. 한순간에 거리가 가까워졌고, 시온이 고개를 숙이며 제네비브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다른 사람 앞에서 귓속말하는 건 예의가 아닙니다.’

지금까지도 불편하기만 한 ‘누군가’에게서 질리도록 들은 예법을 이런 식으로 공감하게 될 줄 몰랐는데.

그간 에드워드는 귓속말을 써 가면서까지 신경 쓰며 무시할 존재가 되지 못했고, 책봉 이후에는 그 누구도 그가 보는 앞에서 무례를 저지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에드워드의 머리를 한껏 복잡하게 만들던 귓속말이 드디어 끝났는지, 시온이 제네비브에게서 멀어졌다.

“……조금 생각해 볼게.”

제네비브가 시온이 속닥였던 제 귀를 문지르며 그리 말했다.

“긍정적인 답, 기다리겠습니다.”

시온이 매끈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는 붙잡은 제네비브의 손을 놓아주곤 흠잡을 데 없는 인사를 한 뒤에 다이닝 홀로 돌아갔다. 그리고 제네비브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며 그런 시온의 뒷모습을 보았다.

헤이븐과 무슨 이야기를 했던 건가요? 에드워드는 당장 다가가 질문하고 싶은 마음을 꾹 억눌렀다.

그의 잡념을 끊은 건 신입생이었다.

“저…… 다이닝 홀은 여기가 맞나요?”

신입생이 이어 질문을 건넸다.

“저 남학생분이 들어가신 곳으로 가면 되는 거죠……?”

간신히 붙잡은, 말할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신입생은 질문을 더욱 구체적으로 만들었다.

“어! 제네비브 선배……?”

“……아쉐트?”

그런데 두 사람은 언제 일면식이 있었는지, 신입생이 친근한 목소리로 제네비브를 불렀다.

이 신입생의 이름이 아쉐트였구나. 에드워드는 그제야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제네비브의 눈치를 살폈다.

“둘이 같이 온 거야?”

제네비브가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그 순간, 에드워드는 그녀가 묻지도 않은 모든 걸 설명해 주고 싶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런 관계가 아니라고. 신입생이 길을 잃었다고 하여 길을 안내해 준 것뿐이라고. 이름조차 제네비브가 말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고.

“제가 또 길을 잃어서…… 이분이 알려 주셨어요.”

그때, 아쉐트가 말했다.

“네가 말한 대로, 저쪽으로 가면 다이닝 홀이야.”

문제 될 하나 것 없는, 제네비브다운 친절한 답이었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제네비브의 암녹색 눈이 저와 아쉐트를 천천히 번갈아 보는 걸 마주하자, 잘못한 게 없음에도 불안해졌다. 지금 제네비브가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략 가늠이 되었다. 좋은 생각은 아닐 것이다.

아쉐트는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곤 다이닝 홀 안으로 들어갔다. 이후, 복도에는 둘만 남게 되었다.

“잘 지냈어?”

먼저 말을 꺼낸 건 제네비브였다.

그녀는 아쉐트에 대해 별로 궁금하지 않다는 듯, 별다른 말 없이 에드워드에게 안부를 물었다.

이렇게 둘만 있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책봉식 이후로 처음이니, 두 달이 지났다.

‘두 달…….’

제네비브를 두 달 만에 보는 거다.

에드워드는 새삼스레 그녀를 보지 못한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래도 책봉식 연회 동안, 더 만날 줄 알았는데.

아쉬운 감정을 되새기던 그는 현재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디에 있었어? 수업 등록하는데 안 보여서, 나는 네가 학교를 그만둔 줄 알았어.”

제네비브가 평소와 같은 친근한 어투로 물었다. 그녀의 반응으로 보아, 아본리아 황족은 돌아다니며 수업 등록을 안 해도 된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그걸 말할 수는 없지.’

에드워드는 말을 아꼈다.

“제가 첫날부터 빠질 리 없잖아요. 방금 도착하신 거예요?”

조금 전만 해도 그렇게 생각할 입장이 아니라고 했으면서, 에드워드는 유치하게 시온에 대한 운을 띄는 자신을 비웃었다.

“그건 아니고. 먼저 왔었는데, 담당 교수님께 이번 학기 시간표 제출하는 걸 까먹었거든. 헤일리 교수여서 다행이지, 브라이언 교수님이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제네비브가 벽에 기대며 한숨을 쉬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그녀가 고른 수업으로 흘러갔다.

“이번에 신설된 <정치와 역사>를 들어 보려고. 브라이언 교수님 수업이긴 한데, 그래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맞아, 통계학은 안 들으려고 해.”

에드워드는 제네비브가 고른 수업을 기억하며 그녀가 하는 모든 말을 경청했다.

“너는 무슨 수업 들어?”

“저는 다른 학생들 시간표가 확정된 이후에 골라야 해요. 황족이 듣는 수업이라고 하면 대다수 학생이 몰리면서 다른 수업들은 폐강된다고 해서.”

에드워드는 그제야 대답했다.

“아……. 하긴, 그러겠다. 그래서, 수업은 골랐어?”

“네, 방금 다 골랐어요.”

에드워드는 담백하게 대답했다.

“그러면 나한테도 비밀이겠네.”

“우선은 그렇죠.”

“알려 주면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닐 거니까, 말하지 마.”

제네비브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

그녀는 일부러 아쉐트에 관해 묻지 않는 것 같았다. 정말 괜찮은 건가? 아니면, 묻지 않을 정도로 제게 관심이 없는 건가?

평소처럼 대화하는 제네비브를 보며 기뻐하는 것도 잠시, 에드워드는 이게 좋아해도 되는 일이 정말 맞는지 고민했다.

어쩌면 제네비브가 신경 쓰기를 조금 바랐던 것 같기도 하다. 아쉐트와 나눴던 단순한 대화(라고 할 것도 없었지만)를 오해하지 않기를 원하면서도, 그녀가 저를 신경을 쓰고 있다는 신호를 내심 기대했다.

‘……설명할 기회가 갖고 싶었던 걸 수도.’

에드워드는 저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제네비브를 보며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럴 관계는 아니지. 현실로 돌아온 에드워드는 제네비브를 보았다.

“……아쉐트는 어떻게 만나게 된 거야?”

그런데 짧게 존재한 침묵을 깨고 제네비브가 물었다. 조심스러운 목소리는 마치 에드워드의 반응을 살피는 것 같았다.

“…….”

불과 몇 초 전까지 제네비브가 아쉐트에 관해 물어보지 않을 거라고 판단해서일까? 에드워드는 아쉐트라는 껄끄러운 주제가 나오자 잠시 당황했다.

“길을 잃었다고 했어요.”

드디어 해명의 기회를 얻은 에드워드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제네비브라면 도와줬을 테니까…… 저도 돕고 싶어졌어요.”

맹세코 제네비브에게 어떤 오해의 소지도 주고 싶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최대한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제 결백을 드러내려 노력했다.

“……그랬던 거였어?”

하지만, 제네비브는 생각한 것과 다르게 조금 뻣뻣하게 대답했다.

* * *

‘……소설에서 에드워드가 하던 일이잖아.’

제네비브는 그의 대답을 들으며 오전에 제가 아쉐트를 대했을 때 느꼈던 위화감의 출처를 깨달았다.

소설에서 에드워드는 길을 잃은 아쉐트를 도왔다. 다만, 소설에서 아쉐트가 가려던 곳은 다이닝 홀이 아니라 기숙사 건물이었다.

그러니까 원래 에드워드가 해야 했을 일을 오전에 제네비브가 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원작의 흐름이란 게 정말로 존재하는지, 에드워드와 아쉐트의 첫 만남은 본질은 같되 달라진 디테일로 이어졌다.

‘그래서 여자 주인공을 만난 에드워드는…….’

제네비브는 에드워드를 슬쩍 관찰했다. 딱히 사랑에 빠지거나 호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네. 별건 없었어요. 근데…….”

“…….”

“헤이븐과는 무슨 얘기를 한 거예요?”

대신, 에드워드는 아쉐트가 아닌 다른 곳에 관심을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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