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118화 (118/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118화

에드워드는 제네비브가 먼저 착석하는 걸 보고 난 뒤, 자리를 골랐다.

그는 이상하리만큼 제네비브의 주위를 선호했는데, 처음에는 가볍게 넘어갔지만 행동이 반복될수록 의식이 되었다. 에드워드는 제네비브의 앞자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자리를 거쳐 갔다.

“…….”

자리에 앉은 제네비브는 이번엔 대각선 뒷자리에 앉은 에드워드를 힐끔 쳐다봤다.

당연하게도 그에게 시선을 주는 사람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에드워드는 교실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을 앗아 갔다.

순간 그와 눈이 마주칠 뻔한 제네비브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공용어 교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수업이 겹치는 것뿐인데, 괜히 확대 해석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안토니오 군, 부디 수업에 집중했으면 좋겠군.”

몇 주가 지나면 알아서 사그라질 일이지만, 교수들은 학생들의 관심이 수업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게 탐탁지 않은 것 같았다. 그들은 몇 번이고 헛기침하며 학생들의 신경을 끌었고, 이는 로드리게즈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로드리게즈 교수는 수업이 아닌 에드워드에게 정신이 팔린 학생들을 귀신같이 잡아내, 지문 해석을 시키거나 설명을 요구하는 등 수업을 듣지 않았으면 대답하지 못할 질문을 했다.

“전체 공지 사항을 하겠네. 교수 상담이 있는 학생들은 각 교수의 사무실을 찾아가도록. 그리고 내 담당 학생들은 같이 따라오길 바라네. 다이애나, 캐서린, 카를로…….”

비로소 수업이 끝나고, 로드리게즈 교수가 짧은 공지 사항을 내렸다.

제네비브는 책상 정리를 하며 로드리게즈 교수의 뒤를 쫓아가는 학생들을 보았다.

“제네비브는 상담이 언제예요?”

교실에 혼자 남은 줄 알았건만, 바로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까, 깜짝이야……!”

제네비브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쓸어내렸다.

“나도 이제 가야지. 나는 헤일리 교수님이 담당하셔서, 이제 사무실로 찾아가야 해. 에드워드, 네 담당 교수는 누구야?”

제네비브는 수업 동안 받은 유인물을 교재 사이에 끼우며 물었다.

“저는 총장님이 봐주시기로 했어요.”

에드워드가 멋쩍게 말했다. 그는 특혜를 받고 있는 스스로를 그리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총장님 사무실이 여기랑 가까워서 편하겠다.”

해서, 제네비브는 큰 유난을 떨지 않기로 했다.

“나중에 보자.”

“네, 이따 봐요.”

온종일 같이 있을 줄 알았던 둘은 드디어 떨어졌다.

제네비브는 종종걸음으로 헤일리 교수의 사무실로 향했다. 복도부터 상담을 기다리는 줄이 길게 있었다.

한차례 상담이 끝났는지, 아비게일이 힘없이 사무실 문을 열고 나와 기다리는 다른 사람에게 나오라 말했다.

“현실 자각이 엄청 됐어요. 헤일리 교수님이 최대한 예쁘게 말을 포장해 주시는 편인데도…… 어휴.”

아비게일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녀의 말을 들으니 제네비브는 새삼 긴장이 되었다. 아비게일 정도면 성적도 괜찮았고, 폴로 클럽 주장까지 하고 있으니 가산점 받을 구석이 많았다.

하지만, 제네비브는 달랐다. 유급하며 3학년에 받은 가산점은 전부 사라졌고, 성적 또한 폐기되었다.

아비게일이 떠나가고, 시간이 더 흐른 뒤에서야 제네비브는 헤일리 교수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헤일리 교수는 제네비브에게 뜨거운 차를 권하며, 본격적인 상담을 시작했다.

교수 상담에선 주로 칼리지 생활에 관해 이야기하거나 앞으로 점수 운영을 어떻게 할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는데, 특히 헤일리 교수는 후자에 집중하는 편이었다.

“확실히 3학년 가산점이 빠진 건 많이 아쉽겠어요. 그래도, 달링 학생이라면 가산점이 없더라도 잘할 거라 믿습니다. 폐기된 성적이긴 하지만, 여기 보면 졸업 시험 성적이 준수하게 나왔거든요.”

헤일리 교수가 손에 든 제네비브의 서류를 보며 말했다.

“어쩌면 수석 졸업이 가능했을 수도 있었겠네요. 해리슨 학생은 과외 활동을 거의 안 하던 편이라……. 폴로 클럽은 탈퇴했군요?”

헤일리 교수가 서류를 보며 말했다.

“네, 칼리지 재학한 지 3년이 초과되어서 대회 출전이 어려워져서요. 문제가 될까요?”

제네비브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문제 될 건 전혀 없으니까요. 달링 학생이 잘할 건 알지만, 그래도 클럽 활동은 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어쨌든, 세인트 존 칼리지를 다니는 이유가 공부만 하기 위함은 아니잖아요?”

헤일리 교수가 말했다.

“가산점 나올 구석 한두 군데를 만들어 놓아서 나쁠 건 없죠. 스포츠 클럽이 아니더라도, 제네비브 학생이 활동할 곳은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칼리지에 등록된 모든 클럽 목록이에요.”

헤일리 교수가 무언가 빼곡하게 적힌 종이를 건넸다. 주류인 스포츠 클럽뿐만 아니라, 소규모로 운영되는 작은 클럽들도 있었다.

“음…… 지금 골라야 하는 건가요?”

제네비브는 ‘미술 클럽’이나 ‘오케스트라’ 같은 단어들을 읽으며 물었다.

“그럴 리가요.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작은 것부터 하면서 생각해도 좋고요.”

그럴 리 없다는 말과 다르게 헤일리 교수가 명백히 권유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작은 거라뇨? 제게 시키실 일이라도 있나요?”

제네비브는 의아하게 물었다.

“네, 마침 달링 학생에게 딱 맞는 일이 있습니다. 칼리지 교환 학생에게 학교 안내를 해 줄 학생이 필요한데, 학생 중에선 달링 학생에게 가장 적합할 것 같았답니다. 맡을 수 있나요?”

헤일리 교수가 물었다.

“…….”

거절하더라도 제네비브에게 오는 불이익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일 년을 봐야 할 교수의 면전 앞에서 거절할 수는 없었다.

제게 이득만 있을 제안을 선뜻 수락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시온 헤이븐 때문이겠지. 저를 보자마자 또 사귀자는 둥 이야기할지 모를 시온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 왔다.

“교환 학생 투어는 인당 가산점을 10점씩 부여하고 있습니다. 올해 교환 학생 수는 전부 네 명이니…… 총 40점이겠네요.”

“……할게요.”

가산점 40점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점수도 아니고. 학년 수석을 해야 받을 수 있을까 말까 한 점수였다.

“잘해 줄 거라 믿습니다. 그럼, 이름을 올려 두겠어요. 이번 주 내로 일정이 잡힐 거예요.”

“……네.”

결국, 또 이렇게 시온과 꼬이는구나. 제네비브는 허탈하게 웃으며 사무실을 나왔다.

* * *

교수 상담이 끝난 제네비브는 아비게일과 약속한 대로 폴로 클럽 홍보를 도왔다.

클럽 홍보는 전부 다이닝 홀에서 이루어졌다.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다이닝 홀은 테이블마다 클럽 하나가 자리를 차지하며 신입생들에게 홍보하기 바빴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신입생들은 원하는 클럽을 찾아 이름을 등록했다.

비록 저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세인트 존 칼리지의 폴로 클럽이 잘 알려진 만큼 가입을 희망하는 학생들은 많았다. 굳이 제네비브가 없더라도 아비게일과 다른 부원들이 알아서 잘했을 것 같았다.

돕곤 있지만, 소속되지는 않았다. 폴로 클럽 테이블에 앉아 있지만, 이제 더 이상 폴로 클럽의 일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제네비브는 기분이 조금 미묘해졌다.

“제네비브 선배, 이제 이 정도면 될 것 같아요. 도와줘서 고마워요.”

“또 필요한 일 있으면 불러 줘.”

폴로 클럽 테이블에서 나온 제네비브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이닝 홀 구석에 선 제네비브는 헤일리 교수가 줬던 클럽 목록을 보며 자신이 들어갈 만한 클럽이 있는지 생각했다.

“오케스트라는…… 입단 테스트 때부터 탈락이겠지.”

제네비브는 ‘오케스트라’라고 적힌 부분에 줄을 그었다.

다음은 미술 클럽. 예술은 하는 게 아니라, 관람하는 거다. 애초에 예술적인 감각이 0에 수렴했기에 본인이 쓰는 물감은 재료 낭비였다.

그렇게 자신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판단하며 할 수 없는 클럽을 긋고 긋다 보니 남는 클럽이 거의 없었다.

‘……결국, 이렇게 방과 후 귀가 클럽을 창설하는 건가.’

제네비브는 냉소적으로 생각하다가, 정말 제가 만들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만들게 된다면 이름은 뭘로 하지? 하지만, 잠깐의 망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에드워드……! 제발 한 번만 들어 줘라……!”

다이닝 홀 한 곳에서 소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

‘에드워드’라는 이름에 제네비브는 재빨리 소동이 일어나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이 몰린 곳은, 다른 곳도 아닌 펜싱 클럽의 테이블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