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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119화 (119/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119화

큰 소동은 아니었다. 주먹 다짐도 없었고, 오가는 모욕적인 언사도 없었다.

그저 (작위가 없는) 알렌 코치가, 기가 막히는 순간을 골라서 무려 제국의 황태자나 되는 에드워드의 이름을 막 부른 것뿐이었다.

평소라면 학생들의 말소리에 묻혀 당사자를 제외하면 못 들었을 거고 (분명 알렌 코치도 그럴 거라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부른 것이겠지만) 하필이면 다이닝 홀이 이상하리만큼 조용해진 순간에 맞춰 울려 퍼진 터라 모두가 그 말을 들었다.

그 덕에 침묵은 길게 이어졌다. 수십, 아니, 수백 쌍의 흥미 섞인 눈동자가 그 둘을 보았다.

“……그, 그때 그 일 때문이라면 내가 사과하마.”

자존심 때문인지 뭔지, 알렌 코치는 제게 꽂히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에드워드는 알렌 코치가 뻔뻔하게 나오는 이유가 그저 제 펜싱 실력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보다 훨씬 복잡했다.

에드워드는 모르는 일이지만, 콜린스 가문은 펜싱 클럽 내에서 입김이 센 알렌 코치에게 많은 뒷돈을 쥐여 줬다.

하지만 찰스 콜린스가 퇴학당하며 다시 자금줄을 찾아야 했는데, 그를 성사하기 위한 디딤돌이 바로 에드워드였다.

물론 고리타분하고 원칙 주의자로 알려진 이반 황제는 돈을 챙겨 주지 않겠지만, 제 자식이 황태자와 친해지길 바라는 학부모들은 달랐다.

에드워드는 자신을 붙잡는 알렌 코치를 내려다보았다. 다소 절박하기까지 한 표정을 지은 남자가 굳은살 박인 손으로 자신을 붙잡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강한 악력으로 제 손목을 쥔 알렌 코치를 보았다. 현역 선수나 기사가 아님에도 그의 힘은 꽤 좋았다.

“다 지나간 일이잖냐. 물처럼 흘려보내. 그, 그래! 이젠 찰스도 없잖아!”

알렌 코치는 사과하는 사람치고는 그다지 미안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에드워드를 제 쪽으로 당겼다. 적어도 당기려고 했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작은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 관심이 없는 척, 제 할 일을 하는 척하며 알렌 코치가 무슨 일을 말하고 있는 건지 궁금해했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그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줄 생각이 없었다.

“…….”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조금 전 에드워드가 한 일이라고는 펜싱 클럽 테이블을 지나쳐 간 것뿐이었다. 클럽 홍보와 가입이 이루어지는 낯선 광경을 보며, 괜찮은 클럽이 있는지 둘러보던 중 난데없이 알렌 코치가 갑자기 튀어나와 그를 불렀다.

“뒤에 조금 삐꺽거리기는 했지. 암, 그렇고말고. 우리 둘 다 실수한 거 아니겠냐. 근데, 정말 다시 들어오면…….”

둘 다 실수했다니.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하아…….”

대신, 에드워드는 짜증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자 그를 억세게 붙잡던 손에서 힘이 사라졌다.

“저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입장은 아니지 않습니까?”

에드워드는 마치 더러운 게 묻은 양 손을 털어 내며 말했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존재했는지, 알렌 코치는 말문이 막힌 듯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잘 알아들어서 다행입니다.”

에드워드는 다이닝 홀 안으로 들어오는 스미스 감독을 보며 말했다.

갖출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를 보인 후, 에드워드는 건물을 빠져나갔다.

알렌 코치가 안색 하나 안 바꾸며 다시 펜싱 클럽에 들어오라고 권유하는 것도 싫었고, 마음에 없는 사과를 듣는 것도 싫었다. 굳이 찰스까지 언급하며 안 좋은 일을 끌어오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만약 지금 에드워드가 조금만 더 냉정했더라면 그는 뒤에서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을 거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듣지 못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나머지 발이 가는 대로 움직였다.

그렇게 다이닝 홀을 나선 에드워드는 지난 학기에 제네비브와 조정 경기를 봤던 언덕에 섰다.

푸른 하늘을 담아낸 학교 호수나 차가운 가을 공기, 그리고 서서히 난색으로 변하는 학교 풍경은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었다. 학교에서 멀어지니 아까보다 머리가 정리된 기분이었다.

“…….”

알렌 코치를 제 인생에서 잘라 내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에드워드는 되도록 조용히 해결하고 싶었다. 이미 한바탕 소문의 중심이 되었는데, 또 그 같은 경험을 겪고 싶진 않았다.

저번 재판은 이반 황제가 힘을 써 소문이 많이 사그라진 거지, 저 홀로 일을 일으켰다간 일이 어떻게 번질지 모르는 일이다.

‘이럴 때 어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하지만…….’

솔직히 주변에 의지가 되는 어른이 없었다.

가족이 생겼다고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첫인상이 별로 안 좋아서 그런가, 에드워드는 그에게 그렇게 큰 애착을 느끼지 못했다.

친아들을 잃은 오필리아 황후는 신경 쇠약이었고, 가드너는 이반 황제의 사람이란 걸 구태여 숨기지 않았다.

물론 밀포드보다는 나았지만, 최악이 아니라고 전부 좋은 건 아니었다. 눈치를 봐야 하는 상대가 아니라 안심이, 의지가 되는 사람이 제 삶에 있었으면 했다.

에드워드가 자신의 가족 관계를 다소 염세적인 태도로 바라보던 사이, 그의 신경을 거스르는 소리가 들렸다.

“헉, 허억…….”

언덕 아래서부터 숨찬 소리가 들렸다.

에드워드는 튕겨 나오듯 언덕 아래를 확인했다. 햇빛을 받아, 화사한 금빛 머리칼이 눈에 들어왔다.

“……제네비브?”

그녀는 많이 힘든지, 대답조차 못 하며 무릎에 손을 대고는 가만히 서 있었다.

“에드워드…… 너, 진짜 빠르다……. 아까 불렀는데, 못 들었어……?”

이제 제네비브는 거의 기어가듯이 엉금엉금 언덕 정상까지 올라왔다.

그 질문을 들은 에드워드는 작게 “네.” 하고 대답하며, 제 교복 외투를 제네비브에게 건넸다.

외투를 받은 제네비브가 뭐냐는 듯 바라보자, 에드워드가 대답했다.

“덮고 계세요.”

“……아, 고마워.”

제네비브가 말했다.

에드워드는 제 외투를 무릎 위에 덮는 제네비브를 보며, 그녀가 왜 자신을 찾아왔을지 생각했다.

이유는 쉽게 짚어졌다. 아마도 조금 전 일 때문이겠지. 여기까지 생각한 에드워드는 전혀 다른 얘기로 대화 주제를 돌리려고 했다.

“너희 코치랑 무슨 일 있었어?”

하지만, 제네비브 쪽이 더 빨랐다.

제네비브는 염려하는 어조로 묻곤 에드워드를 샅샅이 쳐다봤다. 불편한 건 아닌지, 혹시 힘든 상황은 아닌지.

“…….”

그런 제네비브를 보며 어떻게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에드워드는 전부 말했다.

펜싱 클럽 생활은 즐겁긴 했지만, 큰 애착은 없었다. 소속감도 없었고, 그저 마이언에 가기 위한 수단이었기에 찰스와 같은 클럽에 소속되고 싶지 않아서 돌아오자마자 클럽을 탈퇴하려고 했다. 하지만, 의사를 말하기 전에 알렌 코치가 이상한 계약서를 내밀었다고.

“……이상한 계약서?”

그의 말을 가만히 듣던 제네비브가 물었다.

“싸움 투기장에서 일하는 계약서 같더라고요. 제 진로를 아예 그쪽으로 잡더군요.”

에드워드는 허탈하게 웃었다.

이런 치부를 알리면 창피할 줄 알았는데, 막상 말하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제네비브에게 거짓말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그런 식으로 부수입을 얻는 것 같아요. 제 추측이지만요.”

그 기분에 말을 계속하다 보니 너무 많은 걸 알려 준 것 같지만.

두 사람 사이에선 잠시간 침묵이 감돌았다. 그가 한 이야기를 전부 들은 제네비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어 그녀는 이마를 짚으며, 그보다 더 분한 것처럼 행동했다.

“고발해야 해.”

제네비브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이건 알려야 하는 문제야! 너희, 아니, 펜싱 클럽 코치를 고발해야 해. 그런 사람이 교육자의 자리에 있어선 안 돼. 정말 너에게 그런 식으로 말했어?”

제네비브가 진지하게 열변을 토해 냈다.

“그러면서 오늘 그렇게 얘기한 거고? 와, 너무 뻔뻔한 거 아니야? 진짜 웃긴 사람이다…….”

지금 상황에 안 맞는다는 걸 알았지만— 에드워드는 얼굴까지 붉힌 채 저 대신 화를 내는 제네비브를 보며, 어쩌면 의지가 되는 사람이 꼭 없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어느 정도 지나간 일이라 그런가, 그녀가 주는 이러한 관심도 퍽 괜찮았다.

“그러면 일을 너무 크게 벌이는 건 아닐까요.”

에드워드는 조금 편해진 마음으로 말했다. 이미 여름에 한차례 큰일이 있었다. 이제 되도록 소란의 중심이 되는 건 피하고 싶었다.

‘가만히 있을 것도 아니지만.’

에드워드는 그렇게 생각하며 제네비브의 답을 기다렸다.

“물론, 네 의사가 제일 중요하지…….”

제네비브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 갔다.

“근데, 만약에 그 코치가 계속 그 자리에 있으면…… 다른 학생들한테도 너한테 했던 짓을 그대로 할지도 모르잖아.”

“…….”

미처 생각이 닿지 못한 부분이었다.

에드워드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제가 알렌 코치에게 당한 일에만 심취해서, 큰일을 벌이기 싫어서, 만약 알렌 코치가 계속 그 자리를 유지하면 어떻게 될지. 저와 같은 일을 겪을지 모르는 다른 학생들은 어떤 감정을 느낄지 생각하지 못했다.

“……제가 해결할게요.”

에드워드가 말했다. 이 일을 조용히 해결할 방법이 있었다.

“어떻게?”

제네비브는 의아하게 물었다.

“예전에 제네비브가 좋은 방법을 알려 줬잖아요.”

“내, 내가?”

그녀가 짚이는 게 없다는 듯 말했다.

“네, 마이언에서요.”

에드워드가 대답했다.

나서기 싫다면, 다른 사람의 손을 쓰면 되는 일이다.

“그러니, 이번 일은 제가 해결할게요. 아, 그리고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

“방금 총장님과 면담을 끝마치고 나왔는데, 다시 찾아가면 모양새가 이상하진 않을까요?”

황족답지 않다거나, 예의가 없다거나. 에드워드가 물었다.

“에드워드, 너는 이제 황태자야. 네가 하는 일이 곧 황족다운 거지.”

제네비브가 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대답을 들은 에드워드는 제네비브와 헤어진 뒤, 갈 곳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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