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121화
현재로선 제대로 알 길이 없었다.
보통의 학생이라면 장학 프로그램과 거리를 두는 게 상책이었다. 학년 수석을 차지하더라도, ‘우리 가문은 빈곤하지 않다’를 증명하기 위해 거절하는 게 장학금이었다.
물론, 귀족 특유의 포장을 곁들여 ‘나보단 도움이 더 필요한 학생에게 써 달라’고 이야기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고 반복되어 결국 흐지부지되는 게 대다수다.
한마디로 장학 프로그램은 많았지만, 실제로 장학금을 누리는 사람은 많이 없단 뜻이다.
지나친 비약인 건 알지만, 에드워드는 장학생이었다. 과연 장학 재단의 이사가 장학생 선정에서 정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근데, 밀포드가 개입한 거라면 에드워드는 아예 칼리지 입학을 못 한 게 맞지 않나?’
제네비브는 제 말에서 모순을 발견했다.
밀포드는 에드워드를 별로 안 좋아한다. 그러니, 꼴도 보기 싫어서 세인트 존 칼리지에 입학을 ‘시켜 줬다’라고 말하는 건 너무 멀리 간 생각이다.
“장학생도 결국 본인이 신청해야 진행되는 거고……. 아무튼, 어떤 루트로 장학생 신청했는지 물어봐야겠네.”
제네비브는 작게 중얼거렸다.
밀포드라는 인물 자체를 물어보는 것과 다르게 이 정도 질문은 괜찮지 않을까. 밀포드는 에드워드가 먼저 이야기해 주지 않는 이상, 조용히 있는 편이 나았다.
‘……더 의지해도 되는데.’
아까 전, 언덕에서 그랬던 것처럼 제게 고민을 털어놓았으면 좋겠다.
물론 그것도 몇 개월 전에 있었던 일을 알려 준 것이니, 의지할 사람이 필요할 때 자신을 찾아 주길 바랐다.
‘아직 그렇게까지 의지가 안 되는 사람인가?’
여기까지 생각하니, 제네비브는 문득 걱정이 됐다. 원작이 진행됨에 따라 에드워드 홀로 삭이다가 스스로를 좀먹으면 어떡하지?
하지만, 제네비브는 이타적인 걱정에서 제 이기적인 본심을 발견했다.
결국, 자신은 에드워드가 아직 ‘그 정도로’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좋아하는 마음을 덜어 내도 모자랄 판에, 어떻게 하면 더 친해질 수 있을지나 궁리하고 있다니.
‘아무튼, 왜 물어보냐고 하면 뭐라고 둘러대지?’
제네비브는 잡념을 지우며 다시 현실에 집중했다.
아는 사람이 칼리지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기를 희망한다, 또는 달링 가문이 자선 사업을 늘리려고 하는데 어떤 장학생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게 좋을까, 등등……. 제네비브는 어떤 게 가장 자연스러울지 한참을 고심했다.
성과라면 성과였다. 제네비브는 <파인트리 서클>을 덮으며 생각했다.
이후, 책을 원래 자리에 돌려놓은 제네비브는 다이닝 홀로 걸음을 옮겼다.
이번 학기 첫 저녁 식사였다. 발은 몸에 새겨진 대로 지난 학기 친구들과 즐겨 앉던 자리로 갔다.
하지만, 휴게실 소파가 그랬던 것처럼 이곳 또한 다른 학생들의 차지가 되었다. 제네비브는 낯선 감정과 함께 빈 테이블을 찾았다.
사람이 몰린 곳은 아니나 다를까, 에드워드가 앉아 있는 테이블이었다.
에드워드와 자신 사이엔 테이블 한 개가 가로막고 있었지만, 제네비브는 그들의 대화를 전부 들을 수 있었다.
학생들은 몇 시간 전 소동을 언급하며 메이슨 알렌이라는 사람에 대한 불쾌감을 보이는 등, 에드워드의 공감을 사려고 했다.
‘진짜 대단한 사람이긴 하지…….’
알렌 코치에게 겪었던 에드워드의 일화를 되새기며 제네비브는 속으로 그를 비꼬았다.
‘코치라는 사람이 학생 보호는 안 하고, 판매하고 있으니.’
일 년이 지나서야 칼리지를 불태운 에드워드의 인내심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질 정도다.
생각을 마친 다음 간단히 저녁을 골라 담은 제네비브는, 에드워드를 지나쳐 가며 빠르게 그의 테이블을 훑어봤다. 학생들에게 (주로 펜싱 클럽 소속 남학생들이었다) 붙잡힌 에드워드는 음식조차 가지러 가지 못했다.
그러던 중, 제네비브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고생해.’
제네비브는 살짝 측은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뻥긋거렸다.
그러자, 에드워드가 자신도 안다는 듯 힘겹게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내색하지 않으려는 것 같긴 한데, 그의 얼굴에선 채 숨기지 못한 피곤함이 묻어났다.
‘하긴, 에드워드도 오늘 하루가 길었을 텐데 저렇게 붙잡혀 있으니…….’
제네비브는 제대로 쉬지 못하는 에드워드를 안타깝게 보며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그를 동정할 만한 입장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학교 투어를 달링 선배님께서 하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
혹시라도 자신을 잊으면 안 된다는 듯, 시온이 불쑥 나타나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시온이 적당한 양의 식사를 담은 접시를 든 채 테이블 앞에 서 있었다.
시온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제네비브는 그를 보자마자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아직 시온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건만, 제네비브의 몸은 알아서 급격히 피곤해지고 있었다.
“그건 어떻게 안 거야?”
제네비브는 잠깐 존대를 할지 고민했으나, 그냥 제 편한 대로 하기로 했다.
“상담 때 교수님이 알려 주시던데요. 누구였더라…… 샐리 교수?”
“아.”
제네비브는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자리에 사람 있나요?”
하지만, 시온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물었다. 심지어 그는 제네비브가 대답하기도 전에 이미 식사가 담긴 점심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아니.”
그 모습을 보며 제네비브는 그가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앉을 위인임을 눈치챘다. 대답을 들은 시온은 처음부터 본인 자리였다는 양 자연스럽게 동석했다.
“근데, 2학년 구역은 저쪽이야.”
제네비브는 옆을 가리키며 말했다.
“교환 학생이라 몰랐던 걸로 하죠.”
시온은 바로 맞받아쳤다.
“그래…….”
차마 한숨을 쉴 수 없었던 제네비브는 숨을 깊게 내쉬는 걸로 만족했다. 또 사귀자니, 만나자니, 하는 말을 들을 생각에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 왔다.
“교수님께서 학교 투어는 이틀 뒤에 진행된다고 하더군요.”
반면, 시온은 의외로 평범한 말을 건넸다.
경계심을 낮추려는 수작인가? 제네비브는 그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대답했다.
“나는 들은 게 없는데?”
금주 내로 투어 일정이 잡힌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잡힐 줄은 몰랐다.
“내일 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온이 대답했다.
“그래…… 뭐, 궁금한 건 없고?”
“흐음, 글쎄요.”
시온은 관심이 없는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아, 없진 않네요.”
“뭔데?”
“제가 건넨 제안의 답을 이제 들을 수 있는지가 궁금하군요. 생각할 시간은 충분히 있었던 것 같은데.”
시온이 말했다.
물론, 그런 쪽으로 궁금한 점을 물어본 게 아니었다는 건 제네비브도 알고 시온도 알았다.
“아직 하루도 안 지났잖아.”
“거의 다 됐잖아요.”
그런 시온을 보며 제네비브가 생각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하려던 차, 두 사람 사이에 접시 하나가 떨어지듯 놓였다.
“자리, 없죠.”
익숙한 미성이었다.
에드워드였다. 급하게 온 건지, 그는 다소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에드워드가 가지고 온 접시에는 식사라고 할 만한 게 거의 없었다. 저 체구를 작은 방울토마토와 과일 몇 개로 만들어 낼 수 있었다면 제네비브는 진작 거인이 되었을 거다.
“많이 남았지.”
제네비브는 기쁜 마음으로 대답했다.
에드워드의 개입 덕분에 시온과의 대화가 끊겼다. 시온은 고개를 까닥이며 간단한 인사를 했고, 못마땅한 눈으로 시온을 보던 에드워드는 그 인사를 받아 줬다.
“에드워드,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제네비브는 제 옆에 자리를 잡은 에드워드를 보며 말했다.
“네, 뭔데요?”
에드워드는 곧바로 물었다.
“그게…….”
제네비브는 말하려다 말고 시온에게 곁눈질했다. 에드워드에게 장학 프로그램에 관해 물으려고 했지만, 시온이 있는 곳에서 물어보는 건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나 고기를 더 먹어야 할 거 같은데, 같이 가지러 갈래?”
하여, 제네비브는 말을 바꿨다. 그러자 에드워드는 조금 전보다 밝아진 모습으로 흔쾌히 응했다.
음식을 부실하게 가져온 게 저만의 착각은 아니었는지, 에드워드는 접시 위로 음식을 가득 담았다. 제 접시에 고기 요리를 담던 에드워드는 제네비브의 접시 위에도 몇 점 올려 줬다.
“일은 잘 해결됐어?”
제네비브는 가장 자연스러운 서두를 꺼냈다.
“네, 해고하기로 말씀하셨어요. 추후에 이런 일 없도록 주의하겠다는 약속도 받아 냈고요.”
제네비브는 에드워드의 대답을 들으며 고생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요?”
“세인트 존 칼리지 장학 프로그램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어?”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제네비브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물어보려고 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니 역시나 갑작스럽기 짝이 없는 질문이었다.
“그게, 가문에서 하는 자선 사업이 있는데 장학 프로그램이 어떤지 보려고. 괜찮으면 돕고 싶기도 하고…….”
제네비브는 변명처럼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곧바로 설명해 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에드워드는 상당히 오랫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그는 기계적으로 제네비브가 들고 있는 접시에 고기와 생선 요리를 (무게감이 느껴질 정도로 많이) 덜어 줬다.
고기가 가득 쌓일 때가 되어서야 에드워드는 입을 열었다.
“저는 제네비브가 장학생 지원을 안 했으면 좋겠어요.”
어렵게 에드워드가 꺼낸 말은 의외의 것이었다.
“……왜?”
예상 밖의 대답에 제네비브는 조금 당황했다.
“장학생 선정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세인트 존 칼리지에서 학생을 고르는 거고, 다른 하나는 파인트리 서클에서 고르는 거죠. 둘은 각기 다른 장학 재단에서 고르는 거고요.”
“응.”
“근데, 지금 우리 학교에는…… 장학생이 학년당 한 명뿐이잖아요?”
“…….”
에드워드가 쓴 미소를 지었다.
“파인트리 서클 장학 재단에서 고르는 학생은 반드시 학교에 다니게 돼요. 확정인 거죠. 하지만, 학교가 고른 학생은 그 이후로 여러 심사를 거친대요. 저도 그쪽은 아니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그는 말끝을 흐렸다.
“어쨌든, 세인트 존 칼리지 장학 재단에서 고른 학생은 절대로 학교에 다닐 수 없는 거죠. 칼리지에 지원을 해도 다른 곳으로 샐 거예요.”
“그럼 너는…… 파인트리 서클 장학 재단을 통해 칼리지에 들어왔던 거야?”
근데, 파인트리 장학 재단 이사는 밀포드잖아. 제네비브는 뒷말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