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122화
“네, 저도 그렇게 들어왔어요.”
에드워드가 대답했다.
덕분에 제네비브는 당장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아졌다.
그렇다면 왜 밀포드는 에드워드를 칼리지에 합격시킨 걸까. 수중에 두는 게 더 다루기가 편한 거 아닌가?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그게 아니라면 반대를 했는데, 에드워드가 워낙 출중해서 반대 의견이 묵살됐나?
‘밀포드가 수상해 보여서 뒷조사했는데, 그가 왜 싫어하는 너를 칼리지에 합격시켰는지 알려 줄 수 있을까? 너는 밀포드가 장학 재단 소속이란 걸 알고 있었어?’
—라고 물어볼 수 없는 노릇이기에, 제네비브가 내놓은 대답은 결국 “그렇구나.”였다.
“장학생 선정만이 학생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에요. 선정된 이후에 학교생활을 봐주는 것도 방법이죠.”
생각해 둔 게 있는지, 에드워드가 매끄럽게 말을 이어 갔다.
“학비만 면제되고 나머지는 장학생이 사비로 알아서 충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교복이나 교재 같은……. 졸업한 선배들이 두고 간 물품을 받기도 하는데, 그래도 그걸로는 부족하죠. 장학생이란 티가 어떻게든 나서 적응하기가 어려워요.”
이건 경험자만 알 수 있는 이야기다.
“장학생과 일반 학생은 딱 보면 구별이 되니까요.”
에드워드가 말했다.
하지만 제네비브는 그의 말을 완전히 공감하지 못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이 사람이 장학생인지 일반 학생인지 자세히 관찰한 적이 없어서 그런가, 그녀의 눈에는 다 똑같은 학생처럼 보였으니까.
그러나, 그건 오로지 제 관점에서 볼 때였다. 제네비브는 구태여 반박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네 말은, 장학생이어도 귀족들과 섞일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게 낫다는 거지? 칼리지가, 내 말은 파인트리 서클이 입학의 계기를 만들어 줬으니까, 그 이후를 돕는 체계가 잡혔으면 하는 거고.”
제네비브는 에드워드가 한 말을 정리했다.
“네. 딱 그 뜻이에요.”
에드워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것보단 장학생 인식 개선이 먼저 되어야 할 텐데, 계급 사회니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지…….’
생각해 보면 제 친구들이 특이한 경우였다. 어쩌면 에드워드가 내놓은 대안이 가장 정답에 근접할지도 모른다.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전부 담은 두 사람은 다시 테이블로 돌아갔다. 제네비브는 산더미처럼 쌓인 고기를 떨어트리지 않으려 주의를 기울였다.
그동안 시온은 음식에 손도 대지 않았는지, 접시 위 음식은 아까와 똑같은 상태였다.
“오, 이걸 다 드시는 건가요?”
시온이 제네비브가 내려놓은 접시를 보며 물었다.
아무리 세인트 존 칼리지의 식사가 맛있다고들 하지만, 제네비브 혼자 먹기엔 양이 많았다. 에드워드가 저녁 식사로 준비된 모든 종류의 고기를 적어도 두 점씩 제네비브의 접시 위에 올려 준 덕분이다.
제네비브는 육즙이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보며 어색하게 웃어 봤다. 그만 줘도 된다고 말할 순간을 놓쳐 버린 탓이다.
“제네비브는 너무 말랐어요.”
그런데 에드워드는 당연히 제네비브가 이만한 양을 먹어야 한다는 듯 말했다.
“응? 내가 말랐다고?”
난생처음 듣는 말에 제네비브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제 옆자리와 맞은편에 앉은 남자들에 비하면 ‘말랐다’라는 표현이 나올 수 있으나, 그래도 몇 년 동안 스포츠를 했었는데. 그만큼 제네비브는 일반 학생들보다 근육량이 많은 편이었다.
‘두 사람 앞에선 하나 마나 한 이야기지만…….’
제네비브는 우람한 체구를 지닌 에드워드와 시온을 보며 생각했다. 그들이 코웃음이나 안 치면 다행일 지경이었다.
“마른 건 너무 갔고…… 네가 큰 거지.”
차마 제 입으로 ‘날씬하다’고는 말할 수 없어서, 제네비브는 말을 에둘렀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고, 시온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광경을 보는 사람처럼 그런 둘을 구경했다.
민망해진 제네비브는 고기를 접시에 담긴 음식을 우걱우걱 먹었다.
에드워드는 밥을 먹는 제네비브를 흐뭇하게 지켜보다가, 제네비브가 음식을 삼키는 걸 확인하고는 대화를 재개했다.
“교수 상담은 어땠어요?”
에드워드가 물었다.
“아, 저는 샐리 교수님께서 담당하셨습니다. 지리학 담당 교수였던가요?”
분명 제네비브에게 하는 질문이었지만, 시온이 여상하게 대답했다. 덕분에 제네비브는 대답하고자 열었던 입을 다물며 시온이 하는 말을 들었다.
세인트 존 칼리지의 가산점은 우드 칼리지의 채점 체계 중에서 그와 비슷한 것으로 환산된다고 한다.
샐리 교수는 분명 클럽 활동이나 학과 수업에 관련하여 여러 가지 정보를 알려 줬겠지만, 귓등으로도 안 들었는지 시온은 ‘학교만 졸업하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굳이 클럽 활동까지 하며 바쁘게 살 필요는 없죠. 사람이 여유가 있어야지.”
시온은 그렇게 말했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제네비브는 어쩐지 시온이 황실 사람에게 제가 성실하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아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저도 딱히 뭘 더 하라는 건 없었어요. 총장님이 이대로만 하면 된다고.”
그리고, 에드워드는 노골적으로 시온을 무시하며 제네비브를 향해 말했다.
‘그래도 아직 싸움은 안 났으니, 된 거겠지……?’
제네비브는 맞장구를 쳐 주며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했다.
“아, 그러고 보니 달링 양께선 학교를 다시 다니는 거라고 하셨죠. 그러면, 저번 학기 성적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전부 폐기처리 되었어. 상담 때 헤일리 교수님이 클럽 활동을 해 보라고 하셨는데…… 딱히 할 게 없어서 내가 하나 만들까 고민 중이야.”
그 순간,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남자 둘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제네비브를 바라보았다.
“…….”
이유는 굳이 묻지 않더라도 알 것 같았다.
에드워드는 (일단) 자신을 좋아하니 따라올 생각일 거고, 시온은 저를 볼 때마다 앵무새처럼 하던 제안을 성사시키기 위해 가입할 기세였다.
“당장 하겠다는 건 아니고, 생각만 하는 중이야. 생각만.”
두 사람의 적극적인 태도를 보자니 클럽을 창설하겠다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사라졌지만.
“확정되면 알려 주시죠. 우선, 이틀 뒤 투어부터 잘 부탁드립니다.”
시온이 아쉽다는 어투로 말했다.
“알겠어.”
“……이틀 뒤 투어라뇨?”
처음 듣는 소식에 에드워드는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헤일리 교수님이 내게 교환 학생 투어를 맡기셨어. 가산점이 40점이래!”
신날 상황은 아니었지만, 가산점을 생각하자니 목소리가 저절로 높아졌다. 하루 만에 가산점을 그렇게까지 얻을 수 있는 활동은 많지 않았다.
“2학년을 왜 3학년이…….”
“학교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소개해 주면 좋은 거죠. 오늘만 해도 길을 몰라, 한참을 헤맸습니다.”
시온이 에드워드의 말을 재빨리 끊자, 에드워드는 매섭게 시온을 노려보았다.
이 두 사람은 그냥 선천적으로 잘 안 맞는 것 같다. 제네비브는 시온이 에드워드의 속을 덜 긁기를 바랐다.
“시온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학생들도 있어. 이렇게라도 도움이 되면 좋은 거지.”
“…….”
“고기 식겠다, 빨리 먹자. 에드워드 너는 송아지 고기, 맞지?”
“……네.”
제네비브는 산더미처럼 쌓인 고기 중 가장 두툼한 스테이크를 에드워드의 접시 위에 올려주었다.
“맛있게 먹어.”
그제야 에드워드의 표정이 풀렸다.
‘매번 이렇게 중간에서 중재하는 건가…….’
걱정이 태산처럼 쌓였다. 제네비브는 작게 썬 고기를 입 안에 넣었다.
‘학교 투어만 끝나면…… 시온이랑도 안녕이다.’
제네비브는 맞은편에 앉은 시온을 보며 다짐했다. 두 사람을 같은 곳에 두는 건 미친 짓이다.
* * *
목요일에 진행되는 교환 학생 투어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시온 헤이븐만 나타났다.
“다른 학생들은?”
필요한 책을 다 대출하지 못하면서까지 달려왔건만, 제네비브는 약속 시간에 전부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는 데 의아함을 느끼며 물었다.
“안타깝게도 모두 사정이 생겨서 제가 열심히 둘러보고 알려 주기로 했습니다.”
시온이 입술에 호선을 드리며 말했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필시 시온이 손을 쓴 거다.
“…….”
제네비브가 못 믿겠다는 듯 가느다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자, 시온은 사뭇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정말 그렇게 신뢰를 못 줍니까?”
“아무래도…… 그런 편이지.”
제네비브가 대답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실이에요. 서류에 문제가 있어서 셋은 방금 행정실로 불려 갔어요. 일정을 다시 잡겠다고 전하라 하더군요.”
시온이 제네비브에게 행정실 쪽지를 건넸다. 그의 말대로 행정실 직원의 손글씨가 그녀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럼, 너도 그때 같이 듣지…….”
제네비브는 가방을 고쳐 매며 기숙사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 낌새를 눈치챈 시온이 필사적으로 제네비브를 붙잡았다.
“제가 정말 다른 날에는 시간이 없어서 그런데, 안 되겠습니까? 길 헤매느라 죽을 것 같아요.”
그는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힘들게 교실을 찾아다니고, 도서관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지금껏 가 본 적 없다고 토로했다.
제법 진심이 담겨 있는 그의 한탄에 제네비브는 결국 투어에 응했다.
“여기부터는 교수들 사무실이야. 문 앞에 이름이랑 담당 과목이 쓰여 있으니까, 확인하면서 찾으면 되는 거고…….”
하지만, 시온은 길을 몰라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는 사람치고는 그다지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 그의 보라색 눈은 연신 주변을 흘겨보듯 지나쳤다.
짝!
제네비브는 그런 시온을 보며 그의 눈앞에서 손뼉을 쳤다. 생각보다 크게 난 소리에 시온의 몸이 작게 움찔했다.
“길을 몰라서 힘들었다는 것치고 집중을 안 하는 것 같은데.”
“투어, 더 안 해 주시나요?”
시온이 잔디에 주저앉은 제네비브를 보며 물었다.
“이미 길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이틀이나 홀로 헤매면서 돌아다녔는데, 이쯤 되었으면 당연히 익숙해져야죠.”
시온이 당당하게 되물었다.
“그러니까, 다 알고 있는데 왜 아까는 모르는 척하면서 나랑 있으려고 하냐고.”
“저는 이미 제 마음을 고백했는데…….”
제네비브는 눈을 굴리며 오기 전, 도서관에서 대출한 <파인트리 서클>을 꺼내 펼쳤다. 시온이 자연스럽게 옆에 앉았다.
제네비브를 힐끔거리던 시온은, 곧 “어?”라는 소리를 내며 밀포드의 초상화를 가리켰다.
“이 사람은 어디에 가도 보이는군요.”
시온이 아는 체하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