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128화
남자가 본인에게 어떠한 존경이나 애정이 없는 삶을 살았다는 게 한눈에 보였다. 엉망인 그의 삶은 외관까지 반영되어, 명백한 마약 중독자의 모습으로 구현되었다.
설령 마약에 중독된 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고 해도,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가 결코 정상이 아니라는 건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남자가 제네비브와 시온을 번갈아 보았다.
그가 입을 열자마자 풍기는 역한 구취에 제네비브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이내 제 실수를 깨달은 제네비브는 곧바로 표정을 바로잡았다.
“크리스털 제조를 부탁하지. 여기는 아이스라고 하던가.”
시온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남자를 향해 약병을 던졌다.
그러자, 앙상한 남자는 몸까지 던져 가며 약병을 잡았다. 남자는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무 책상 위로 엎어졌는데, 얼마나 낡았는지 그 충격만으로도 책상은 산산이 조각났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살펴보는 대신, 오로지 약병을 바라보았다. 그는 심지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물건을 대하듯 병을 어루만지기까지 했다. 생기 따위 없던 텅 빈 눈에는 활력이 감돌았다.
“어느, 어느 약국에서…….”
남자가 몸을 일으키며 두 사람을 향해 걸어왔다. 자세히 보니 이빨도 몇 개 빠져 있었다. 그나마 남은 썩은 이빨 몇 개도 잇몸에 간신히 붙어 있는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행동하는 시온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5번가 골목 약사가 추천했다만.”
“그, 그렇군요…… 어서 만들,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들어오시죠!”
그가 새는 발음으로 말했다. 시온은 먼저 안으로 들어가, 제네비브가 들어올 때까지 문을 잡아 줬다.
방은 밖에서 보던 것보다 심각했다.
창문은 나무판자로 가려져 방 안으로는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았다. 문 사이로 들어오는 미약한 빛만으로 제네비브는 내부 구조를 대강 파악해야 했다.
벽지가 벗겨지고, 낡은 침대는 방 끝에 배치되었다. 낡은 화장대 위로는 사용한 것 같은 주사기와 파이프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카펫은 신발을 신었는데도 끈적거리는 게 느껴졌으며, 부서진 책상 다리와 나무 조각들이 어지럽게 흩뿌려졌다.
그보다 더 심각한 건 냄새였는데, 공기에는 퀴퀴한 곰팡내와 역겨운 지린내로 가득했다. 제네비브는 로브를 더 끌어당겨 얼굴을 감추었다. 그러곤 코를 소매에 박아, 들어오는 냄새를 최대한 차단했다.
“처음 경험하는 겁니까? 아이스에 대해선 어떻게 들었는지…….”
“그게…….”
제네비브는 아본리아 억양으로 말하려고 했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그보다 제네비브는 입을 다물고 싶었다. 방 안에서 풍기는 냄새가 너무 끔찍해서 그 냄새의 맛이 혀에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칼리지 공부 때문에 힘들거든. 아이스가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하여.”
시온이 그녀 대신 대답했다.
약효를 제대로 말한 건지, 남자가 칭찬을 받은 양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럼요! 세간에서 아이스가 우울하고, 이상한 거라고들 하는데…… 실은 아닙니다! 아이스는 중독, 중독성도 덜해 적정량만 먹으면 괘, 괜찮거든요.”
벅벅, 남자는 목을 긁었다.
“아이스를 처음 겨, 경험하는 분들께는 공짜로 제작해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곤 기쁘게 말했다.
치익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곧 불붙은 성냥이 방 안을 환하게 밝혔다. 초를 밝힌 남자는 쭈그려 앉아, 부러진 책상 사이로 꼬깃꼬깃한 장부를 주웠다.
“원래 책상, 책상에 앉아서 하는 건데…….”
남자는 아쉬운 대로 화장대에서 진행하자고 말했으나, 시온이나 제네비브 둘 다 그럴 생각이 없었다. 쓰다 만 주사기에 몸을 기대다니…… 죽어도 사양이었다.
“서서 하죠.”
시온이 다급하게 말했다.
“불편하게 정리할 필요 없어.”
제네비브 역시 시온을 지지했다. 저 바늘에 찔렸다가 몸에 어떤 이상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배, 배려 감사합니다.”
남자는 시온에게 펜과 장부를 건넸다. 남자는 이름과 추천 약국을 작성하라 했고, 시온은 뻔뻔하게 제 이름을 ‘조지 필처’라고 작성했다.
“언제 받을 수 있나? 보시다시피 우리 둘은 아주 바빠서.”
“빠르면 오늘…… 오후 중으로 받을 수 있, 있습니다. 하지만 더 걸릴 수도 있으니, 개인 연락망을 따로…….”
남자가 장부의 빈칸을 가리키며 말했다. 피가 나도록 긁어서 그런가, 그의 손톱 아래로는 피가 갈색으로 말라붙어 있었다.
“내가 그럴 사정이 안 되어서 말이지. 네가 지금 가진 건 없나?”
세인트 존 칼리지로 마약 배달이라니. 걸리는 그 순간 바로 퇴학이다.
‘……어쩌면 지금 여기에 온 것 자체가 퇴학 사유일 수도.’
하지만, 이미 발을 내디딘 후다. 제네비브는 걱정을 애써 뒤로 넘겼다.
“그, 그건…….”
남자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분명 갖고 있는 사람의 태도였다.
“내가 방금 네게 준 약에서 아이스 10회분가량을 만들 수 있다고 들었는데.”
“…….”
“하지만, 방침상 너는 내게 3회분만 주겠지.”
“그, 그걸 어떻게…….”
“그중 2회분은 네가 받을 거고…… 아마도 수당 대신이겠지—.”
시온이 방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래서 이딴 곳에 사는 걸 거야. 아무튼, 나머지 5호분은 위에서 먹겠고. 아닌가?”
도대체 이런 건 어디서 알게 된 정보인지 모르겠다. 제네비브는 꿋꿋하게 제 주장을 펼치는 시온을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남자를 보았다.
누구에게나 달콤한 제안일 거다. 특히 그 같은 마약상에게는 더. 지금 가진 걸 주면 원래 제 몫이었던 세 배 가치의 물건을 그냥 주겠다는 거니까. 바보가 아닌 이상, 수락해야 하는 제안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남자 또한 그사이 계산을 끝냈는지 그는 ‘화장실에 보관하고 있다’며 벽에 붙은 문을 열었다.
“…….”
제네비브와 시온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생각보다 무섭네요.」
시온이 속삭이듯이 공용어를 꺼냈다.
「넌 이걸 어떻게 아는 거야?」
「이 약물이 헤이븐 영지에서 금지되었다고 했잖아요. 아버지와 가문 사람들과 함께 조사했죠.」
시온이 대답했다.
「약사는 찾아온 손님당 중개 수수료를 받습니다. 일반인에게 추천하는 거죠. 방금 저 남자가 말했던 것처럼 첫 투약 손님에게는 공짜로 마약을 제공하고, 중독이 되었다 싶으면 그때부터 제작비를 서서히 올리는 겁니다.」
「그래서, 약사와 저 남자가…….」
「네. 약사는 여기를 소개했고, 남자는 저희에게 공짜 약을 제안한 겁니다.」
수법이 악랄했다. 제네비브는 진한 혐오감을 느꼈다.
「물론 저 남자는 아이스만 한 것 같진 않다만…… 그래도 다행인 건, 아직 우리를 경계하지 않다는 겁니다. 운이 좋았어요. 어떤 지역들은 지인 소개가 아니면 알려 주지도 않고, 어떤 구역은 다단계식으로 운영된다고 들었거든요.」
제네비브는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남자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것으로 대화는 일단락되었다.
“여기, 순도 높은 크리스탈…… 그, 그러니까, 아이스입니다.”
‘아이스(Ice)’ 혹은 ‘크리스털(Crystal)’이라는 이름답게 남자가 건넨 마약은 노란빛 액체에서 추출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투명하고 반짝거리는 유리 조각이었다.
하지만 마약이란 걸 알고 나니, 절대 손대고 싶지 않았다.
‘드디어 알아냈어.’
제네비브는 아이스를 보며 생각했다.
밀포드가 마약상이라는 것도 알아냈고, 그의 마약 사업이 상당히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에드워드는 어떤 사연으로 밀포드의 아래에서 자라게 되었던 걸까.’
그렇게 수도 외출 목적은 끝이 난 것 같았다. 아니, 그렇게 끝나야 했다.
하지만 제네비브와 시온이 간과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지금 그들이 상대하는 남자가 마약 중독자라는 점이었다.
자고로 무언가에 중독된 사람들은 미래의 행복보단 현재의 쾌락에 눈이 먼 자들이었다.
남자는 벼랑 끝까지 몰린 사람처럼 가쁜 숨을 내쉬었다. 어두운 촛불에 비춘 그의 모습은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씩씩거리던 그의 어깨는 위아래로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제네비브는 남자의 불안한 상태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는, 거의 시온에게 돌진하듯이 달려들었다.
“……!”
제네비브는 반사적으로 발을 내밀었다. 말캉하면서 동시에 딱딱한 것이 발등에서 느껴졌다. 이어 누군가 넘어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외마디 비명이 방 안을 채웠다.
제네비브는 넘어진 남자의 등에 올라타, 손으로 그의 목을 짓눌렀다.
“시온! 괜찮아?”
제네비브는 시온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는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몰랐던지,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제네비브와 남자를 보았다.
제네비브 아래 깔린 남자는 그녀를 떼어 내려는 듯 몸을 풀썩거렸지만, 지나치게 가벼웠던 탓에 꿈틀거리는 것 외엔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자각했는지, 그는 이내 빠져나오려는 대신 놓친 아이스를 주우려 안간힘을 썼다.
불과 몇 센티미터 안 떨어진 곳에 아이스가 있었지만, 그의 손은 닿지 않았다. 남자의 처량한 모습을 보던 시온은 아이스 조각을 주워 들었다.
“네…… 저는 괜찮습니다.”
남자의 시선은 시온이 드는 아이스 조각에 고정되었다.
시온은 그런 남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더 볼 수 있는데, 보시겠어요? 이번에는 이런 허술한 곳이 아니라— “목숨이 소중하면 조용히 있으세요.” 정말 위험한 곳으로 가는 건데.」
「……여기서 더 볼 게 있다고?」
지금 이걸로 충분히 위험한 경험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 더 위험한 곳으로 가자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 황실의 위협을 받으면서 살아온 덕에, 이런 것쯤은 위협도 아니라는 건가?
제네비브는 인상을 쓰며 그를 보았다.
「네, 그럼요. 설마, 마약 파는 사람이 마약만 팔겠습니까? 이렇게나 조직적인데.」
시온이 장부를 펼치며 말했다.
여기서 더 있다니. 이미 밀포드가 마약상이라는 사실부터 머리가 아픈데, 이게 새 발의 피라는 게 안 믿긴다.
「……그래. 가자.」
그래도 알아내야 했다.
밀포드가 무려 내로라하는 마약상이라는 걸 알게 된 만큼, 제네비브는 혹시나 그가 에드워드의 흑화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 참이었다.
「대신, 조건이 있어. 못해도 열 시 열차는 타고 돌아가야 해.」
제네비브는 진지하게 말했다. 수도에 하룻밤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내건 조건에 시온은 크게 웃었다. 그는 열 시 전에 열리는 곳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했지만, 어쨌든 그러겠노라 대답했다.
「그럼, 또 어디를 가야 해?」
제네비브가 물었다.
「저야 모르죠.」
제네비브는 그를 한번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 사람은 알 겁니다.」
시온은 제네비브가 깔고 있는 남자를 보며 말했다. 남자는 불안 가득한 눈으로 시온을 바라보았다.
“저기, 조금 위험한 곳 없나? 이쪽 조직과 관련된 곳으로 안내해 주면 좋겠다만.”
시온은 아이스를 남자의 머리맡에 두며 말했다.
“그럼, 이 아이스는 당신에게 돌려주도록 하지. 어쩌면 당신의 고객이 될 수도 있고.”
“곧바로…… 곧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고객’이란 말을 들은 남자는 언제 달려들었냐는 양 충실한 개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약을 주겠다는 말에 곧바로 자세를 낮췄다.
그는 제 인생이 얼마나 망가졌는지도 모르는 사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