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129화
“얼마나 위, 위험한 곳을 원하시는지…….”
“…….”
시온이 말없이 노려보자, 남자가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테, 테수스 7번가에 있습니다.”
“그쪽 조직에서 운영하는 게 맞고?”
“네, 네…….”
남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리스톨에 유흥가는 테수스밖에 없, 없습니다.”
“언제부터 열리지?”
“해가, 해가 지면서부터 시, 시작되죠.”
“9월이니…… 대충 여섯 시 정도겠군요.”
시온이 말했다.
저녁부터 유흥가가 열린다니. 수도에 사는 사람들은 마음 놓고 다닐 수 있기는 할까? 리스톨의 막장 운영에 제네비브는 손뼉이라도 쳐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창시자님께서 소유하신 고, 골목입니다……. 테수스 자체, 자체가 위험한 곳이니 조심하십시오…….”
남자는 친절하게 걱정까지 해 줬다.
“창시자?”
이상한 단어에 제네비브는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조직 우두, 우두머리를 부르는 말입니다.”
남자는 아무도 그의 정체를 모른다고 덧붙였다. 그는 황홀한 표정으로 얼굴도 모르는 ‘창시자’를 찬양해 댔다. 하지만, 이 방에서 ‘창시자’의 정체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그밖에 없을 거다.
비로소 들어야 하는 정보를 다 들은 시온은 그만 나가자고 했다. 제네비브는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상쾌한 공기를 들이쉬며 깔아뭉개고 있던 남자에게서 떨어졌다.
“이거랑 내가 준 감기약에서 추출한 아이스는 갖든가 말든가 해. 구매는 사양하지.”
시온은 집을 나서기 전, 들고 있던 아이스 조각을 남자에게 던지며 말했다.
제네비브는 도망치듯 건물에서 빠져나왔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아…….”
제네비브는 질린다는 듯 중얼거렸다. 남자의 집에 오래 머물러서 그런가, 집 안에서 풍기던 역겨운 냄새가 자신에게 밴 것 같았다.
제 옷소매를 킁킁거리며 남은 냄새가 있는지 확인하던 제네비브는, 얼마 지나지 않아 창문에 비친 사나운 몰골이 된 자신을 보았다.
“싸우다가 온 사람 같네.”
제네비브는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말했다.
“싸우긴 했으니까요. 덕분에 살았습니다. 밥부터 먹죠. 달링 양도 아침은 안 먹었을 거 아닙니까.”
시온이 큰길로 나오며 말했다.
제네비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배가 고프긴 했다.
둘은 걷고 걸어, 조금 먼 식당에서 간단한 아침 겸 점심을 가졌다. 둘은 실내에 앉는 대신 야외에 착석했는데, 아직 몸에 냄새가 남은 것 같아 고른 자리였다.
십여 분 전까지만 해도 비위 상하는 곳에 있어서 그런가, 주문한 라자냐를 본 제네비브는 배고픈 것과 별개로 입맛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제네비브는 음식을 억지로 입안에 욱여넣으며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천천히 복기했다.
윌리엄 밀포드는 마약상이고, 그의 수단은 체계적이며, 그의 조직은 마약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범죄 사업도 한다.
“…….”
밀포드의 정체를 알아낸 이상, 제네비브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제네비브는 고개를 들어, 때마침 매시 포테이토를 먹는 시온을 봤다.
과연 시온도 밀포드가 에드워드의 보호자였다는 걸 알고 있을까? 에드워드를 적대적으로 대하는 이유가 그저 황족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밀포드가 그를 키웠다는 걸 알아서 그런 걸까? 시온에게 물어볼까?
이내, 제네비브는 고민을 멈추었다. 에드워드의 개인사를 시온에게 떠들어 댈 순 없으니.
“달링 양, 당신 뒤쪽이 바로 리스톨의 자랑스러운 테수스입니다.”
으깬 감자를 먹던 시온이 갑자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제네비브는 몸을 돌려, 시온이 말한 곳을 보았다.
“이곳은 테수스 옆 지역인 오디이시고요.”
“…….”
테수스와 오디이시 사이는 좁은 거리 하나가 가로막고 있었다. 바로 옆 동네였지만, 테수스와 오디이시의 차이는 선명했다.
제네비브가 발걸음 해 본 리스톨의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깨끗한 오디이시와 다르게, 고대어로 ‘깨끗하다(Tersus)’라는 의미를 지닌 테수스는 그 이름이 무색하게 더럽기 짝이 없었다.
거리가 가까웠던 탓에, 제네비브는 테수스를 제대로 관찰할 수 있었다.
테수스는 쓰레기와 때 묻은 먼지가 어지럽게 널려 있어 가련한 풍경을 만들어 냈다. 건물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너덜너덜했고(마약상이 살던 회색 지붕 건물보다 더 낡았다), 전단지 같은 종이가 바람에 따라 날아다니고 있었다.
“지금은 처량하기 짝이 없지만, 유흥가가 그렇듯 어두워지면……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죠.”
시온이 제네비브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말했다.
“그럼, 저 거리가 전부…….”
제네비브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만한 규모가 유지되는 건 그만한 사람들이 방문하기 때문이었다.
「나, 정말 이해를 못 하겠어. 어떻게 마약상이 파인트리 서클 이사가 될 수 있었던 거야? 그리고, 너는 그걸 어떻게 아는 거고…….」
제네비브는 다시 식사에 집중하며 물었다.
설령 돈이 많다 하더라도 마약 공급 같은 중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파인트리 서클에 들어올 수 있을 리 없었다.
「어쨌든, 표면적으로는 멀쩡한 제약 회사니까요. 돈이 없는 사람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설치해 놓았으니, 사람들 눈에는 그가 성자처럼 보일 거 아니겠습니까?」
시온이 매시 포테이토와 함께 나온 고기를 썰며 말했다.
「서류 작업이 굉장히 꼼꼼합니다. 아예 제약사와 범죄 조직을 철저하게 구분해 놓았으니, 보통은 연관성을 찾는 쪽이 신기한 거죠. 약은 문제가 없다, 그걸 악용하는 사람이 문제다, 척결에 힘을 쓰겠다…… 뭐 그렇게 얘기하고 다니는 겁니다. 정말 아는 사람들만 아는 정보고요.」
시온은 고기를 오물거렸다.
「그리고 제가 알고 있는 이유는, 말했잖습니까. 헤이븐 영지에서 가문과 함께 마약 조사를 했다고요. 우리 가문에서 조사하다가 결국 밀포드까지 도달한 거고.」
「근데, 너는 내 친구들이 밀포드 얘기를 꺼린다고 말했잖아. 그건 뭔데? 내 친구들도 아는 거야?」
제네비브는 그의 말에서 모순을 잡아냈다.
「그건…… 저도 모릅니다. 근데 아본리아 중앙 귀족은 거의 다 아는 정보라서 말입니다.」
시온이 말을 이어 갔다.
「그냥 짐작한 거죠.」
「……고작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거야?」
제네비브가 물었다.
“「뭐,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돈이란 마약과 비슷하니까요.」 아무튼, 슬픈 얘기는 그만하고, 다 먹고 수도 구경이라도 하죠.”
시온은 제네비브를 구경시키려 했지만, 그녀는 한사코 이곳에 있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어차피 구경한들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았다.
“괜찮아. 그냥 여기에 있자.”
“계속 여기에 앉아 있다가 바로 테수스로 가면 식당 주인이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시온이 날카로운 질문을 했다. 결국, 명령에 가까운 권유였다는 소리였다.
“그건 그러네…….”
“달링 양은 미행이나 조사에 재능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일어나죠.”
시온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말단 마약상을 지나치게 빨리 찾은 덕분에 제네비브는 시온과 함께 해가 질 때까지 시간을 무료하게 오디이시 주변에서 보냈다.
해가 지자마자 음산하고 황폐했던 테수스 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반짝거렸다.
“이제부터는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시온이 주의를 줬다. 테수스 가까이 갈수록 잊고 있었던 긴장감이 온몸에 감돌았다.
테수스에 완전히 발을 들인 순간, 제네비브는 이곳에 온 걸 조금 후회했다.
테수스 7번가를 향해 달려 들어오는 마차가 많았다. 마차 겉면에 가문의 인장은 없었지만, 마부와 풋맨까지 있는 걸 봐서는 상당한 가문의 사람들일 거다. 사교 시즌도 이제 끝물이니, 마지막 며칠을 더럽게 놀다 갈 심보 같았다.
붉은 거리는 그야말로 무법 지대였다.
한쪽은 무리를 지어 투견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마약 밀거래를 진행 중이었다. 인간의 수준이 어디까지 떨어질 수 있는지, 이 골목이 친히 알려 주는 것 같았다.
이런 사업이 허가가 나기는 하는 걸까. 제네비브는 퇴폐적인 분위기의 가게를 지나치며 생각했다.
“한번 둘러보고 나갑시다.”
시온이 말했다.
“이게 전부 밀포드 소유라고…….”
제네비브는 안 믿긴다는 듯 중얼거렸다.
“어때요, 제 쓸모가 이제 조금 실감 납니까?”
“조금…….”
“길 잃지 않게 조심하세요. 마약상이 위험하다고 말한 곳입니다.”
시온이 말했다.
“어째서 이런 사업들이 아직도 존재하지?”
제네비브는 옅은 혐오감을 드러냈다.
“왜 때문이겠어요. 결국 돈이죠, 돈. 놀랍게도 전부 합법입니다.”
시온이 냉소적으로 대답했다.
그는 이런 사업체가 얼마나 많은 돈이 되는지 이야기하며, 얼마나 많은 세금이 이곳에서 거둬지는지 알려 줬다.
테수스는 들은 대로 위험했다. 거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칼싸움하는 사람들까지 본 제네비브는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돌아가자. 볼 건 다 본 거 같아.”
“원하시는 대로.”
시온이 말했다.
제네비브는 걸음을 재촉하며 골목을 빠져나왔다. 안 좋을 걸 너무 많이 본 나머지 머리가 아파 온다.
그렇게 테수스를 거의 다 빠져나올 때 즈음, 제네비브는 만날 줄 몰랐던 사람을 보게 되었다.
“……제임스가 왜 여기에.”
제임스가 테수스 입구 부근에 서 있었다. 동행인이나 호위 없이, 그는 초점 없는 눈으로 거리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잘못 본 건가?’
그럴 리가. 그를 몇 년 동안 봐 왔는데 잘못 봤을 리가 없다.
대화할 타이밍도 아니고, 적절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도 알았지만, 제네비브는 그를 보자마자 질문이 쏟아지듯 피어났다.
제임스와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왜 이곳에 왔는지부터 대체 왜 자신을 무시하는지까지.
그리고 곧, 제네비브와 제임스의 눈이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