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131화
오늘 하루는 에드워드에게 있어서 빈말로도 결코 ‘괜찮지’ 않았다.
온종일 제네비브가 안 보여 아비게일에게 그녀의 행방을 묻자, 돌아오는 대답은 ‘어제 속이 안 좋다는데……’와 같은 대답이었으니.
그 소식을 들은 에드워드는 당연히 하루가 제네비브를 향한 걱정으로 시작됐다.
제네비브의 기숙사를 찾아가도 문은 굳게 잠겨 있었으며, 돌아오는 답도 없었다. 식사하는 모습조차 못 봤으니 당연히 최악을 상상하게 된다.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아픈 건가.
종일 괜찮은지 한 번만 확인해도 더 이상 바랄 게 없던 그의 눈앞에 제네비브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떨어졌으니, 에드워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제네비브는 아프다는 사람치고는 너무나 멀쩡해 보였다.
담쟁이덩굴을 잡아서 벽을 오르는 모습이나(에드워드는 담쟁이덩굴 뒤에 있는 파이프의 존재를 몰랐다), 비상 사다리를 향해 뛰어가는 모습이나.
아무리 눈치가 없는 사람이더라도 그런 그녀의 행색을 보면 제네비브가 무단 외출을 하고 돌아오는 길임을 알 수 있었다.
제네비브가 건강하다는 걸 확인한 순간 드는 안도감만큼 에드워드의 마음에는 섭섭함이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제네비브가 자신에게 모든 걸 알려 줄 의무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탓이다.
‘나는 그 정도의 의지도 안 되는 사람인가?’
문득, 에드워드는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녀에게 있어 자신은 아직 그렇게까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상대인 건지.
이어서는 불안해졌다.
‘차근차근 이야기하고,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솔직하게 말해 달라고 하는 게 낫겠지.’
에드워드는 주방을 분주하게 오가며 생각을 정리했다.
어떻게 말을 꺼낼지 정한 에드워드는 이내 방금 잡았던 제네비브의 손이 차가웠다는 걸 기억하며 물을 끓였다.
그는 핫 초콜릿과 제 커피까지 만들어, 한 잔을 제네비브에게 건넸다.
“어디 다녀오신 거예요?”
대체 어떤 일정이었기에 자신에게도 비밀로 해야 했던 걸까.
“칼리지 밖으로 나갔어…… 시온 헤이븐과.”
“…….”
또 시온 헤이븐이었다.
에드워드는 표정 관리를 하려고 했지만, 반사적으로 나온 반응을 조절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시온 헤이븐과는 함께해도 되는 일정인데, 나는 안 된다는 뜻인가? 어째서 시온 헤이븐은 되는데, 나는 안 되는 거지?
시온을 향한 부러움이 온몸을 덮쳤다. 속이 뒤틀렸다.
감정적으로 행동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에드워드는 여름 동안 들었던 말을 복기하며 속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제네비브의 입에서 ‘시온 헤이븐’이 흘러나오며 나타났던 질투는 그녀의 입에서 다른 사람의 이름이 등장하자마자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내가 밀포드에 대해 알려 달라고 해서 그런 거야.”
“…….”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밀포드.
그 이름을 듣자, 에드워드를 휩쓸었던 여러 감정은 곧장 자취를 감췄다. 오로지 한 가지 감정만이 전신에 남았다.
“밀포드 씨를…….”
에드워드는 떨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몸은 제 말을 듣지 않았다.
에드워드가 들고 있던 머그잔 속 커피는 잘게 요동치기 시작했고, 몸이 떨면서 목소리까지 함께 떨었다.
옅은 공포감이었다.
어쩔 수 없는, 오랜 시간 학습된 결과였다. 몸에 밴 나쁜 습관이며 앞으로 에드워드가 고쳐야 할 나쁜 버릇이었다.
“어떻게.”
그 이름이 제네비브의 입에서 나올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가장 숨기고 싶은 치부가 까발려진 것 같았다.
무단 외출이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조금 짜증 나고, 아주 많이 섭섭했지만— 그래도 제네비브 나름의 사정이 있었겠지. 시온과 요즘 어울렸으니, 둘이 따로 볼 일이 있었겠지. 그렇게 이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저 모르게 밀포드 씨를 알아내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다.
“……어째서.”
“네 뒤를 마음대로 찾아봐서 미안해.”
제네비브가 에드워드를 바라보았다.
오로지 선의만으로 점철된, 이상하면서도 좋은 눈이었다. 그렇지만 에드워드는 그녀를 마주 보고 싶지 않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건 제네비브가 좋아서라던가, 그녀가 옆에 있어서 그렇다는 단순하고 간단한 게 아니었다.
짧은 시간 동안 에드워드가 느낀 건 층층이 쌓인 여러 겹의 감정이었다. 대체 어떤 것부터 꺼내어 해소해야 할지 갈피조차 안 잡혔다.
제네비브가 밀포드 씨를 알아냈다는 불안감. 그렇다면 그녀가 분명 위험한 곳에 갔을 거라는 것과 자신을 밀포드 씨를 투영해서 보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 말없이 제 뒤를 시온 헤이븐과 찾아봤다는 걸 알게 된 이후 느껴지는 배신감.
왜 그녀가 자신의 개인사를 들추는지 모르겠고, 그 대상이 왜 하필이면 밀포드 씨인지도 모르겠다.
“……마이언에서 그 사람을 봤을 때, 위험한 사람 같았어. 그래서 알아본 건데…….”
제네비브는 몸을 살짝 일으켜, 주방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다.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제네비브는 다시 에드워드를 봤다. 적어도 에드워드는 그녀의 움직임을 그렇게 읽었다.
“불법 사업체를 운영해. 마약상인 것 같기도 하고…….”
위험한 사람 같았으면 애초에 관심을 두지 말았어야죠. 에드워드는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해, 속으로만 대꾸했다.
제네비브는 쏟아 내듯 에드워드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녀가 아닌 다른 곳을 보는 에드워드의 눈치를 보는 듯, 제네비브의 목소리는 끝을 향할수록 힘을 잃어 갔다.
하지만 제네비브는 더는 속이지 않고 모든 걸 알려 주기로 결심한 건지, 시온 헤이븐과 함께 마약상을 만나고 테수스 거리를 다녀왔다는 사실까지 알려 줬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에드워드는 제네비브가 사지 멀쩡하게 칼리지로 돌아온 것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졌다.
자칫하면 행방불명이 되는 곳에 제네비브가 갔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곳을 찾아간 이유가 오로지 저를 위해서란 사실이, 에드워드는 싫었다.
“……너는, 그런 사람을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어째서 제네비브는 이토록 아무렇지 않게 위험 속에 발을 내디디는 건가. 저를 위해 그랬다는 건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에드워드는 고마운 정보단 그녀의 무모함에 화가 났다.
“……테수스를 갔다고요.”
에드워드는 원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저를 걱정했다면, 그런 곳에 가면 안 됐었죠.”
그래서 쏘아붙였다.
더 짜증스러운 건 제네비브가 정말 자신을 염려해서 그 위험한 곳까지 갔다는 거고, 저 또한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거다.
그의 머릿속을 헤집는 수많은 감정은 화로 표출이 되었다. 날카로운 대답을 들은 제네비브는 입을 다물었다.
“대체 왜 스스로를 위험에 내모는 거예요?”
에드워드는 이해가 안 됐다.
그는 최대한 자제하려고 했지만, 치미는 짜증과 화는 작은 틈 사이로 조금씩 새어 나왔다.
“……나, 나는.”
제네비브는 대답하지 못했다.
“좋은 저녁 보내세요.”
에드워드는 고개를 푹 숙이는 제네비브를 지나쳐, 주방을 나갔다.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른다.
* * *
에드워드가 가진 기억은 여느 아이처럼 서너 살 무렵부터 시작된다.
그는 그럭저럭 괜찮은 삶을 살았다. 적어도 네 살의 에드워드는 그런 인상을 느꼈었다. 비록 제 모친은 그를 낳자마자 죽었고, 덕분에 가족이라고 할 만한 사람도 없었으나, 에드워드는 부족함 없이 자랐다.
에드워드를 키운 건 윌리엄 밀포드였는데, 그가 말하기로는 어미의 배 속에서 죽을 뻔한 에드워드를 그가 살렸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자란 에드워드는 밀포드를 아버지 내지 우상처럼 여겼다.
현재의 에드워드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당시 그는 그 어떤 귀족 가문의 도련님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고 자랐다.
그렇게 ‘괜찮았던’ 삶이 현재 에드워드가 기억하고 있는 ‘괜찮지 않은’ 유년기를 형성하게 된 건 ‘그날’이 기점이었다.
그날은 에드워드가 밀포드 저택에서 처음으로 외출한 날이자 황궁을 난생처음 방문하는 날이기도 했다.
제 또래의 어린아이들은 코빼기도 안 보이는 연회장. 화려한 마차들이 황궁 안으로 계속해서 들어갔다. 마차에서는 고급 제복을 입은 남자들과 당대 유행하던 마담 퐁퓌리의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들이 내렸다.
에드워드는 마차에서 그 동화처럼 반짝이는 장면을 보며 저 또한 저곳에 갈 줄 알았다.
하지만 밀포드의 마차는 연회가 열리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들어갔다. 샛길로 빠진 마차는 어두컴컴한 길을 따라가 건물의 뒤쪽으로 향하더니, 서서히 속력을 낮췄다.
“황자님, 기다리시죠.”
먼저 내린 밀포드는 지팡이를 짚으며 마차에서 내리려는 에드워드를 제지했다. 가죽 장갑을 낀 손이 에드워드의 안경을 벗겼다.
“앞이 안 보여요.”
한순간 흐릿해진 세상에 에드워드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황자님께서 하자가 있다는 걸 알리면 안 되죠.”
아직은 밀포드가 그에게 친절했을 시절, 그는 에드워드에게 덧붙여 말했다.
그 당시, 아직 ‘하자’가 무슨 뜻인지 모르던 에드워드는 그저 밀포드의 손길을 가만히 받았다.
“황자님, 황제 폐하를 만나면 어떻게 인사해야 한다고 했죠?”
“제국의 태양을 뵙습니다.”
어린 에드워드는 밀포드의 요구를 수월하게 해냈다.
“잘하셨습니다.”
밀포드가 미소를 짓자, 눈가에 옅은 주름이 생겼다.
에드워드는 당시 나이답게 아이다운 면도 있었지만, 또래보다 영특했으며 공부를 즐거움으로 알았다.
그런 에드워드를 밀포드는 제 방식대로 아꼈다.
—그가 쓸모가 없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