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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132화 (132/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132화

에드워드는 지금도 가끔 그날을 회상할 때면 생각한다. 만약 그날 제대로 행동했다면, 첫 단추를 제대로 채웠다면, 제 사정은 조금 달라졌을까?

밀포드는 황제궁 안으로 들어가기 전, 에드워드의 연갈색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가 에드워드에 대한 애정, 혹은 관심을 종종 표현할 때 쓰던 방식이었다.

밀포드는 에드워드의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마치 빼먹은 부분은 없는지 꼼꼼하게 점검한 후에야 그를 데리고 황제궁 안으로 들어섰다.

밀포드는 미로처럼 복잡한 내부를 제집 복도인 양 망설임 없이 걸었다.

그런 그를 뒤따르던 어린 에드워드는 처음 보는 호화로운 황궁의 모습에 현혹되지 않으려 노력해야 했다.

황제궁은 밀포드 저택의 화려함에 익숙한 에드워드에게도 새로운 볼거리로 가득했다. 책에서나 보던 그림과 조각이 벽을 빽빽이 장식했고, 수도사들이 세공한 촛대와 장식들이 어울리게 배치되었다.

어린 에드워드는 이를 천천히 감상하고 싶었다.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예술을 감상한다’라는 행위가 정확히 무엇인진 몰랐지만, 그는 본 적 없는 아버지에게 몇 달 동안 연습한 인사를 보여 주는 것보다 그림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 당시 전자가 얼마나 ‘인생에서 중요한 기회’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편이 더 정확했다.

조금만 더 느리게 걸으면 안 되냐— 라고 부탁하기 위해 에드워드는 밀포드를 보았다. 그런데, 걸음을 재촉하던 밀포드의 얼굴에서는 보기 드문 미소와 처음 보는 기대감이 읽혔다.

“…….”

그런 밀포드의 모습을 본 에드워드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에드워드가 저를 잘 따라오는지 가끔 확인하는 걸 제외하면 오로지 앞만 보고 걸었다.

한참을 말없이 걷던 그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악단의 연주가 들려오는 문 앞에서 마침내 멈췄다.

“황자님,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밀포드는 에드워드를 어두운 복도에 세워 두곤 제법 따뜻하게, 기대에 찬 어조로 말했다. 밀포드는 그 말을 끝으로 틈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는 문을 열었다.

“…….”

밀포드가 문을 여닫는 순간 보였던 연회장은 마치 기분 좋은 꿈을 엿보는 것 같았다.

찰나의 순간에 보였던 황금빛 연회장 속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 모습이었다. 그 누구도 고통이나 근심은 없어 보였고, 오로지 행복만이 존재하는 공간 같았다.

저 마법 같은 공간에, 아버지가 있다.

4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살아온 에드워드는 사실 제 아버지가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다.

제 또래를 만날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비교할 대상이 없었거니와 밀포드가 입버릇처럼 ‘네 어미가 너를 죽이려고 했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기에 부친에 대한 관심 역시 자연스럽게 줄어든 탓이다.

하지만, 저런 마법 같은 공간에서 아버지가 나타난다면.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아 본 적 없는 에드워드는 그가 원하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그 이름 모를 것이 좋을 거라는 건 직감적으로 알았다.

어린 에드워드의 마음속에는 기대감이 조금씩 자랐다. 에드워드는 밀포드가 말한 대로 가만히 그곳에 서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밀포드는 한참이 지나고서야 돌아왔다.

“황제 폐하께서 곧 오실 겁니다.”

밀포드가 기대에 부푼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처럼 십여 분이 지나자 문이 다시금 열렸다.

문 사이로 건장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웃음을 짓고 있던 남자는 문이 닫히기 무섭게 표정을 굳혔다. 에드워드는 본능적으로 그가 자신을 싫어하고 있음을 알았다.

“…….”

“으흠.”

에드워드가 선뜻 움직이지 못하자, 밀포드가 헛기침을 했다. 그가 짚고 있던 지팡이로 카펫을 툭툭 치고 나서야 에드워드는 간신히 움직였다.

“……제, 제국의 태양을 뵙습니다.”

수없이 해 온 인사였다. 몇 달 동안 연습하고, 이곳에 오기 전까지 했던 인사를 그대로 보여 주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에드워드는 제 기량을 보여 주지 못했다.

이어지는 침묵에 에드워드는 천천히 시선을 올렸다.

“…….”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귀찮다는 듯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아들을 바라보는 눈빛은 결코 아니었다. 그의 시선에는 일말의 애정도 담겨 있지 않았고, 대답 없는 행동에선 그 어떤 관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마치 귀찮은 일에 휘말린 사람처럼 팔짱을 끼고 있기만 했다.

히끅.

너무 긴장해서일까, 딸꾹질이 나왔다. 에드워드는 제멋대로 튀어 오르는 어깨를 숨기려고 애쓰며 이 순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야말로 최악의 첫인상이었다.

제 실책을 파악한 에드워드는 방황하는 눈으로 밀포드와 이반 황제를 보았다.

밀포드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갔다. 몇 분 전까지 깃들어 있던 기대감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는 실망스럽다는 기색을 숨김없이 표출했다.

심장이 납처럼 무거워졌다.

“모건이 낳은 아이입니다.”

밀포드가 애써 태연하게 설명했다.

“……죽은 줄 알았는데.”

마치, 에드워드가 죽길 바란 사람 같았다. 그의 목소리에선 이상한 아쉬움까지 느껴졌다.

“내 아이라는 증거는?”

“자랄수록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머리와 눈동자 색을 제외하면 제가 기억하는 폐하의 어린 시절과 똑 닮았으니까요.”

이반 황제의 냉정한 반응에 놀라는 것도 잠시, 밀포드는 재빨리 에드워드를 그의 앞으로 내밀었다.

순간, 에드워드는 넘어질 뻔했다. 간신히 중심을 잡은 에드워드는 창피한 상황을 만들지 않았다는 데 작게 안심했다.

“윌리엄.”

이반 황제가 어이가 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밀포드의 말을 잘랐다.

“자네, 점점 선을 넘고 있군.”

“……송구합니다, 폐하.”

밀포드가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사과했다.

“그래서, 내가 어쩌기를 바라는 거지?”

이반 황제가 거만한 눈으로 밀포드와 에드워드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답을 원하는 질문이 아니다. 밀포드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설마, 저 모자란 놈을 내 자식으로 인정하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지. 자네가 그렇게 멍청하진 않으니 말이야.”

모자란 놈.

비소 섞인, 저를 지칭하는 말에 에드워드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당황한 건 밀포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내 눈에 띄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 밀포드.”

이반 황제는 ‘밀포드’를 유독 강조하며 말했다.

“아무리 나라도 아이를 죽이는 건 귀찮으니 말이네.”

“…….”

세상 물정 모른다고 하더라도 이반 황제가 진심으로 한 말인 건 알았다.

노골적으로 느껴지는 살의에 에드워드는 도망치듯 가장 익숙한 밀포드의 뒤에 숨으려고 했다. 하지만, 밀포드는 짜증스러운 손길로 그런 에드워드를 자신에게서 떼어 냈다.

밀포드는 경멸하는 눈으로 에드워드를 보며 지금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결과를 내기 위해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폐하께서 바라시는 대로 에드워드 전하, 아니, 에드워드 군이 황족이란 사실이 절대로 알려지지 않게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제 수중 아래에서 감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조건으로는?”

이반 황제가 물었다.

“요즘 테수스 거리 건물을 사들이고 있는데, 방해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밀포드는 그 자리에서 차선책을 구상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지는 대화는 굉장히 어려웠고, 어린 에드워드는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감조차 못 잡았다. 사업체니 세금이니 규제니 하는 이상한 용어들이 오갔고, 그 내용을 대략이나마 기억한 에드워드가 이해한 건 시간이 더 흐른 뒤였다.

밀포드는 기분이 상당히 안 좋은 상태로 돌아왔다. 능구렁이처럼 그 자리에서 차선책을 생각해 내 계약까지 따 온 사람치고는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었다.

“수업을 더 늘려야겠습니다.”

에드워드와 이반 황제의 첫 만남이 끝나고 밀포드가 저택에서 처음 꺼낸 말이었다. 그 말을 기점으로 밀포드 저택 내에서 에드워드의 취급은 많이 바뀌었다.

“미, 밀포드. 미안해요…….”

에드워드는 밀포드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밀포드 씨.”

“…….”

“밀포드 ‘씨’라고 부르십시오.”

에드워드가 ‘밀포드’라고 부르건 ‘윌리엄’이라고 부르건 신경 쓰지 않던 그가 거만하게 말했다. 밀포드가 ‘밀포드 씨’가 된 것도 그날 이후부터였다.

밀포드는 에드워드를 도맡아 키웠던 아본리아 유모를 해고한 뒤, 언어가 안 통하는 렐타 사람을 고용했다. 밀포드 저택은 대대적인 물갈이를 진행했고, 더불어 흉흉한 소문까지 돌았다.

에드워드는 하루아침에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동시에 너무나 익숙한 사람과 24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밀포드와 보내는 시간이 드물었던 과거와 다르게 그날부터 에드워드는 거의 매일을 밀포드와 함께 보냈다.

에드워드에게 있어 그 당시 밀포드는 유일한 가족이라면 가족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지지와 애정을 기반으로 한 가족의 형태가 아닌, 매일 자신을 평가하는 사람이란 게 문제였다.

그리고 여기서 더 큰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에드워드가 제 문제가 있는 일상을 문제라고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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