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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133화 (133/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133화

에드워드는 황제에게 이보다 분명할 수 없는, 확실한 거절을 받았다.

이반 황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에드워드를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겠노라 했고(13년이 지난 뒤에서야 그는 말을 번복했다), 또다시 눈에 띄면 죽일 거라는 의사 역시 확실하게 밝혔다.

밀포드가 에드워드를 이용해서 황제로부터 얻어 내고 싶었던 게 무엇인지 몰라도 밀포드에게 있어선 무척 중요한 것이었으리라고, 에드워드는 확신했다.

밀포드는 그날 일어난 일을 제 식대로 해석하고, 사실을 부정했다.

에드워드가 인사만 잘했다면— 이반 황제는 그를 받아 줬을 거다. 에드워드가 실수한 건 내 가르침의 문제가 아니다. 나의 정성 어린 가르침을 에드워드가 부족하여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탓이다.

결함은, 나에게 없다.

“제가…… 제가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해 가르쳤는데. 황자님께서 일을 그르친 겁니다. 제 얼굴에 먹칠을 하셨군요.”

제 잘못은 없다.

오직 모자란 에드워드의 잘못이다.

끝내 밀포드는 제 생각이 맞음을 정의 내리고, 진실이라 생각했다.

당시 에드워드 또한 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황궁에서 돌아온 그다음 날, 그가 상당히 확신에 찬 목소리로 어젯밤 제가 저지른 실수를 조목조목 짚어 줬기에.

이후에도 밀포드는 에드워드를 황족답게 만드는 데 집중했다.

‘밀포드 씨’라는 경칭으로 부르게 했지만, 밀포드 또한 에드워드를 꼬박꼬박 ‘황자님’이나 ‘전하’라고 불렀으며 경어를 사용했다. 에드워드가 자신이 황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릴까 봐 부단히 애를 쓰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밀포드는 에드워드를 ‘이상하게’ 가르쳤다.

에드워드는 평범한 예법 수업을 받으면서도 기본이 되는 춤에는 무지했고, 식사 예법은 평민 수준으로 가르쳤다. 마치, 일부러 에드워드의 ‘결함’을 만드는 것 같았다.

그 증거로 밀포드는 에드워드의 부족함을 지적할 때마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제가 채워 주지 못한 모자람을, 그 나이라면 당연히 저지르는 실수들을 지적하며— 제 결백함을 확인 받았다.

황제와 대면 이후, 밀포드는 아무리 바빠도 아침 식사만큼은 에드워드와 함께 보냈다.

이러한 일상의 변화는 에드워드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기반으로 그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결함’을 자신이 아닌 외부에서, 그러니까, 에드워드에게서 찾아내는 시간이었다.

“허리는 펴고 계셔야 합니다.”

잔잔한 눈으로 에드워드를 지그시 바라보던 밀포드가 지팡이로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작은 몸은 지팡이가 닿자마자 크게 움찔거렸다. 그 반동에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스푼이 바닥에 떨어졌다. 은식기는 대리석 바닥과 부딪혀, 경쾌하면서도 신경을 긁는 불쾌한 소리를 냈다.

밀포드가 못마땅한 듯 눈썹을 씰룩거렸다.

“……미, 밀포드 씨가 치셔서.”

밀포드의 한숨 소리를 들은 에드워드는 당황했다.

에드워드는 변명하듯, 혹은 억울한 듯 말을 계속하다가 밀포드의 얼굴에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다는 걸 눈치챘다.

그에겐 변명에 불과한 해명이다. 에드워드는 말을 멈추고는 의자에 뛰어내려, 얼른 스푼을 주웠다.

밀포드는 조잡한 움직임으로 뒷정리를 하는 에드워드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는 에드워드가 제 얼굴만 한 무거운 은색 스푼을 오른손에 쥔 채, 다시 끙끙대며 의자 위로 기어오르는 걸 구경했다.

그는 숨을 가쁘게 내쉬는 에드워드를 바라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지금 황자님께서 하신 말씀인즉…… 제 잘못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는 겁니까?”

늦은 답이었지만, 에드워드는 그것이 제 해명에 대한 밀포드의 답이라는 걸 알았다.

“……아, 아뇨.”

“처음부터 바르게 앉아 있었다면 제가 지적하는 일도 없었겠죠.”

“…….”

에드워드는 고개를 푹 숙였다.

“구부정하게 앉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보세요. 지금도 고개가 바닥을 향해 있지 않잖습니까.”

새카만 눈이 에드워드를 차갑게 응시했다.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밀포드가 구부정한 자세를 싫어하는 거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에드워드는 요즘 더 예민해진 밀포드의 비위를 맞추려 자세에 신경을 썼지만, 아무래도 그의 눈에는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에드워드의 나이가 조금만 더 많았다면 그는 제가 앉은 모양새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알았을 거다. 오히려 밀포드가 이상한 트집을 잡고 있다는 것까지도.

“……죄송해요.”

하지만, 당시 에드워드는 고작 네 살이었다. 여느 아이들처럼 그에겐 가장 가까운 어른이자 후견인인 밀포드의 말이 법이었으며, 진실이었다.

“또 웅얼웅얼하시는군요. 말은 상대의 눈을 똑바로 보고 얘기하라고 가르쳤는데도.”

밀포드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에드워드를 지적했다.

“다 황자님을 위한 조언이니, 새겨들으십시오.”

“…….”

그 말을 들은 에드워드는 억울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눈을 마주 보고 대답해서 밀포드는 버릇이 없다고 그를 혼냈다. 그 날카로운 반응을 기억해서 시선을 피한 건데, 이제는 똑바로 고개를 든 채 대답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뭐가 정답인지 모르겠다.

밀포드가 자신에게 어떤 모습을 보고 싶은 건지 감이 안 잡힌다.

에드워드는 제 의문을 해소하고 싶었지만, 이미 지난 몇 주의 경험으로 부질없는 짓임을 알았다. 차라리 그의 말을 다 듣고, 진심이 담긴 사과를 건네는 편이 더 편했다.

이렇듯 밀포드는 아침부터 에드워드의 부족한 점을 만들어 내고, 찾아내기 바빴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밀포드의 한탄을 들을 때마다 오늘은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지 저울을 재는 데 여념이 없었다.

“나이프 드는 방법을 아직까지도 모릅니까?”

오늘은 제대로 대답해야 하는 날이다.

“……아무도 안 알려 줬어요.”

에드워드는 아까보다 뚜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걸 가르쳐야만 아는 겁니까.”

“…….”

“저와 지금 몇 년째 식사를 함께하는 중인데, 저를 보고 따라 할 생각은 해 본 적 없으신 것 같군요. 황자님은 그렇게 평생 남 탓만 하고 살아갈 겁니까?”

에드워드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눈을 마주 볼 용기가 없었던 에드워드는 나이프를 쥔 주름진 손을 연신 힐끔거렸다. 식사 분위기는 에드워드가 어설프게 나이프를 잡는 방법을 바꾸고 나서야 풀렸다.

“이렇게 부족하시니, 황제 폐하께서 전하를 받아들이지 않는 겁니다.”

밀포드는 혀를 차며 말했다.

“저라고 이런 얘기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닙니다. 전부 에드워드 전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죠……. 제가 아니면 누가 알려 드리겠습니까. 당장 발렌티나만 해도 전하께 이런 말을 해 드리진 않을 텐데요.”

안타깝다는 어조인 것으로 보아, 아침 식사 지적은 이쯤에서 마무리되는 것 같았다.

시시각각 바뀌는 밀포드의 감정을 따라가는 일은 벅찼다. 오늘은 그나마 빨리 끝난 편이었다. 에드워드는 버터 바른 빵을 오물거리며(그는 쩝쩝거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자세를 올바르게 유지하는 데 집중했다.

에드워드는 밀포드 저택의 귀빈이자 불청객이었다. 귀빈에 어울리도록 밀포드의 드높은 기준에 자신을 맞추는 동시에— 불청객인 만큼 집주인의 요구 사항을 들어야 했다.

에드워드는 밀포드가 바라는 모든 기준을 충족시키려 노력했지만, 저는 그에게 언제나 부족한 황자로 남을 것 같았다.

‘어떤 태도로 대답하길 바라는가’와 비슷했다. 밀포드가 에드워드에게 바라는 모습은 모호했다. 어떤 때는 황족처럼 고귀하고 당당한 모습을 바라다가도, 어떤 때는 하인처럼 그를 주인으로 대접하길 바랐다.

저울질할 수 없는 모호함을 에드워드가 어느 정도 읽게 됐을 때쯤, 밀포드는 그제야 가끔 미소를 지어 줬다.

“전하께서만 처신을 잘한다면, 제가 이런 얘기는 안 했을 것 아닙니까.”

밀포드는 가끔 너그러워진 말투로 말하고는 했다. 그는 과거의 에드워드를 질책하며 현재의 에드워드를 칭찬했다. (밀포드치고) 따뜻한 말투와 자애로운 표정을 하고 있으니, 에드워드는 그 말이 진심으로 덕담인 줄 알았다.

하지만, 따뜻한 말도 신기루에 불과했다. 밀포드는 따뜻할 때보다 차가울 때가 많았고, 그는 에드워드가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으니.

“저라서 에드워드 전하를 지금 이렇게 지켜 드리고 있다는 걸 모르십니까? 모건이 전하를 죽이려는 걸 제가 막지 않았으면, 지금 전하는 이곳에 서 있지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나쁜 사람은 저군요. 살려 주고, 테이블 위에 빵을 올려 주었는데도…….”

지금 황자님 하나 때문에 제가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고 있는지— 그 말을 끝으로 밀포드는 혀를 찼다.

모건.

얼굴은 모르고, 이름만 아는 어머니. 원치 않아 자신을 없애려고 했고, 원치 않은 아이를 낳으며 죽었다. 어렸을 때부터 밀포드에게 듣고 자란 이야기였다.

에드워드에게 있어 밤마다 듣는 제 일화는 불을 뿜는 드래곤을 무찔러 공주를 구한 기사의 이야기와 다를 게 없었다.

드래곤은 어머니였으며, 공주를 구한 기사는 밀포드였다. 그리고 드래곤이 죽이려고 했던 공주는 자기 자신이었다.

밀포드는 에드워드가 마음의 빚을 지게 하는 데 성공했다. 에드워드는 현재의 삶이 아무리 갑갑하다 하여도 밀포드가 정말 자신을 돕고, 구했다고 생각했으니까.

물론 완벽한 보호자는 아니지만,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어쨌든 밀포드가 에드워드를 도운 건 사실이었고, 밀포드가 자신을 도우며 피해를 입은 것도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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