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134화
오랜만에 기분 나쁜 옛일을 떠올렸다. 정신은 다시금 밀포드 씨를 볼 때마다 느끼던 불쾌한 죄책감 속에 잠식되었다.
여러 장면이 머릿속을 스쳤다. 대부분 밀포드 씨에게 실수를 범하는 어린 제 모습이었다.
사소하게는 매번 똑같은 자세 지적을 듣는 날부터 크게는 렐타인 유모에게 밀포드 씨의 뒷담화를 하다가 걸린 날까지. 그날은 밀포드 씨가 기분이 나빠지면 어떤 일까지 저지를 수 있는지 알게 된 날이기도 했다.
“…….”
에드워드는 그 일까지 떠올리곤 몸을 작게 떨었다.
잊고 싶었던 과거의 일들과 과거의 인물, 그리고 그때 받은 죄책감이 에드워드의 신경을 야금야금 갉아 먹었다.
하지만 하나 같이 전부 스스로가 범한 과오들이라 당당하게 말할 수 없었다.
‘전부 알려 주면…….’
에드워드는 제네비브의 반응을 추측했다. 물론, 제네비브라면 추측할 것도 없이 제 편을 들어 주기는 할 거다.
‘……하지만.’
하지만, 만약에 그녀가 갔던 테수스 거리가 저 때문에 생겼다는 것까지 알게 된다면…….
‘황자님을 맡으며 규제가 들어왔습니다. 황송하군요.’
비아냥거리는 밀포드 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시야가 넓어지고, 머리가 자라나며, 그 말이 전부 사실이 아니란 것쯤은 에드워드도 알았다. 그렇지만, 제 책임이 아예 없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았다.
십여 년 전 그날, 제가 실수하지만 않았더라면. 밀포드 씨는 합법적인 사업을 계속 이어 가고, 음지 사업에는 손을 대지 않았을 거다. 그런 수치스러운 거리는 저 때문에 탄생한 거다.
에드워드는 그렇게 들었으며, 그렇게 믿었다.
제네비브가 방문했던 위험한 환경이 저 때문에 조성되었다는 게 몸서리칠 정도로 싫었고, 저로 인해 제네비브가 그런 상황에 놓였다는 사실 역시 끔찍하게 싫었다.
에드워드는 옅은 자기혐오를 곱씹으며 제네비브를 그런 곳까지 안내한 시온을 원망하다가, 제네비브를 걱정하다가, 그녀의 테수스 방문 소식이 밀포드 씨의 귀에 들어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여러 감정을 배회하던 에드워드를 끝내 점령한 건 진한 후회였다.
“…….”
말을 정리해서 더 부드럽게 말했어야 했다. 제 감정에 휩쓸려서 그렇게 쏘아붙여선 안 되었다. 제 실수였다.
제네비브에게 사과해야 한다. 용서를 늦게 구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이미 밀포드 씨와의 경험으로 충분히 배웠다.
‘그렇다면, 제네비브에겐 어디까지 알려 줘야 하는 거지?’
에드워드는 답 모를 질문을 하며 목 부근 단추를 힘없이 풀었다.
이런 사소한 고민을 나눌 사람이 제 주변에 없다는 게 우스웠다. 아무리 황족이라 하여도 시간은 고민할 시간을 더 내어 주지 않았다.
그렇게 에드워드가 고민을 거듭하는 사이, 어느새 주말은 지나고 월요일이 되었다.
신입생들에겐 오늘이 첫 번째 미사였다.
톰슨 씨가 얼마나 예민한 사람인지 모르는 신입생은 마음 편히 시시덕거렸다. 그 덕분에 신입생과 2, 3학년의 차이는 뚜렷했다.
톰슨 씨의 성격을 전해 듣지 못한 신입생들은 그에게 혼나며 지금껏 누려 온, 제가 가진 지위가 통하지 않는 특수한 경험을 했다.
에드워드는 신입생들의 과제를 압수하는 톰슨 씨를 지나쳐 3학년 자리에 앉았다.
그가 고른 곳은 3학년 구역의 가장 마지막 줄이었다. 이는 꽤 고심하여 고른 자리였는데,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제네비브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주말 내내 고민한 게 무색하게도 에드워드는 아직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 정하지 못했다.
에드워드는 제 뒤통수에 콕콕 박히는 시선을 최대한 무시하며 자연스럽게 성전을 펼쳤다. 겉보기엔 미사에 집중하는 모습이었지만, 에드워드의 신경은 온통 제네비브에게 가 있었다. 그리고 뒤늦게 도착한 제네비브는 에드워드가 예상했던 대로 아비게일 리트먼의 옆자리에 착석했다.
미사가 시작되기 전, 사제가 나누는 지루한 덕담을 들으며 에드워드는 생각을 정리했다. 여전히 답이 안 보이는 제네비브와의 대화와 반대되게 해결해야 할 또 한 가지 과제만은 명확하게 보였다.
‘시온 헤이븐.’
에드워드는 항상 같은 미소를 짓는 2학년생을 떠올렸다. 마이언에서 봤을 땐 괜찮은 사람 같았는데, 어찌 된 게 보면 볼수록 인상이 안 좋아졌다.
에드워드에겐 제네비브의 인간관계를 간섭할 권리가 없었다. 그러니 시온이 제네비브와 어울릴 때는 질투심이니, 저에겐 간섭할 권리가 없니 하며 넘어갔지만, 그녀를 테수스 거리까지 안내한 건 상식 밖의 일이었다.
‘사람을 그렇게 위험한 곳으로 데려가면…….’
테수스 거리가 위험하다는 건 아본리아 사람이라면 전부 아는 일이다. 에드워드는 입 안 여린 살을 씹었다. 아무리 제네비브가 부탁한 거라고 해도, 일반적으로 그런 곳에 데려간 건 말이 안 됐다.
비로소 미사가 끝나며 신전 안은 제법 소란스러워졌다. 톰슨 씨는 언제나처럼 지적한 학생들을 데리고 사무실로 (끌고) 갔고, 다른 학생들은 들어온 문으로 다시 나갔다.
“…….”
시온 헤이븐은 군중 속에서도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그 이유를 두고 다른 사람들은 시온이 주변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서 찾기 쉽다고 대답할 테지만, 에드워드는 그가 항상 제네비브 주변에 있어 눈에 거슬린다는 답을 내놓을 거다.
아침 다이닝 홀에서 시온 헤이븐은 너무나 당연하게 제네비브의 맞은편에 앉았다. 2학년 친구가 없는 건지, 아니면 제네비브 주변에 있고 싶어 하는 건지. 주말 동안 함께 겪은 ‘모험’에 대해 말하기라도 할 건가.
속으로 빈정거리던 에드워드는 곧 제가 빈정거렸다는 사실이 창피해졌다. 제네비브에겐 그렇게 말해 놓고 질투 같은 걸 할 정신은 남아 있다니. 양심에 찔렸다.
에드워드는 제게 달라붙는 사람들을 간신히 떼어 놓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제네비브와 시온이 앉은 테이블에 가까워질수록 에드워드는 둘이 아무런 대화를 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았다. 두 사람 사이의 유일한 대화라고는 시온이 저를 보며 건넨 ‘에드워드 전하시군요’라는 말 한마디뿐이었다.
시온의 말로 제 존재를 알게 된 제네비브가 고개를 획 돌렸다.
“에, 에드워드…… 좋은 아침이야.”
평소와 다른 뻣뻣한 반응에 에드워드는 주말에 했던 제 실수를 다시금 실감했다.
“아직 식사 안 했으면 같이 먹을래……?”
제네비브는 애써 평소와 같은 어조를 유지하며 그에게 합석을 권유했다.
“아뇨, 이미 먹어서요.”
“아…….”
“주말에 있었던 일로, 잠깐 대화하고 싶은데.”
에드워드는 축 처지는 제네비브의 어깨를 보며 재빨리 말했다. 그가 토요일 일을 상기시키자, 제네비브는 다소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는 조금 그렇고…… 나가서 얘기할까.”
제네비브는 시온을 보고는 말했다. 그녀의 제안에 에드워드는 흔쾌히 응했다.
둘이 향한 곳은 주말과 마찬가지로 기숙사 주방이었다. 아무도 없는 기숙사 건물은 공허했다. 제네비브와 에드워드는 마호가니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제가 어떻게 밀포드 씨를 알게 되었냐고 물었죠.”
제네비브는 여전히 긴장을 풀지 못한 채 고개만 찬찬히 끄덕였다.
“너 몰래 조사해서 미안해. 말하기 불편한 일이라면…… 말 안 해도 괜찮아.”
제네비브가 재빨리 말했다.
“나는 그냥…… 걱정되어서 그랬어. 그래도 몰래 너에 대해 알아내려고 했던 건 내 잘못이지.”
제네비브 또한 주말 동안 고민했던 건지, 그녀는 그에게 사과부터 건넸다.
“아뇨, 말씀드릴게요.”
짧은 침묵을 유지하던 에드워드는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밀포드 씨는 저를 키워 주신 분이에요.”
에드워드가 말을 꺼냈다.
제네비브는 에드워드의 말에 끼어들거나 작은 동조의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녀는 에드워드가 다음 말을 하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에드워드는 머릿속으로 생각나는 일화와 단어들을 거침없이 말했다.
네 살 때 부친을 본 일부터 밀포드 씨가 여태 자신을 어떻게 대했는지까지. 초반에는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을 앞서 말하며 밀포드 씨를 일부 변호했지만, 말을 할수록 어째 억울함만 커져 가는 것 같았다.
“저는…… 현실이 너무 암담해지면 오히려 침착해지더라고요. 그럴 상황이 아닌데도.”
별다른 생각과 고민 없이 말한 만큼, 에드워드는 오로지 자신의 시점에서 이야기했다. 누군가를 변호하거나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말 대신, 다소 억지처럼 들릴 수 있는 감정의 골까지 털어놓았다.
“그래서, 테수스 거리가 생겨난 건 저 때문이에요.”
에드워드가 말했다.
“……에드워드.”
“…….”
이야기를 전부 들은 제네비브가 말했다.
“그건 네 탓이 아니야.”
제네비브는 어쩐지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녀는 복잡한 감정이 담긴 한숨을 내쉰 후, 에드워드를 바라보았다.
“너를 맡기로 결심했으면, 그 사람이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제네비브는 진지하게 말했다.
“너는 그러면…… 여태까지 이게 너로 인해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