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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135화 (135/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135화

급격하게 낮아지는 제네비브의 목소리를 들으며 에드워드는 정곡에 찔린 사람처럼 설명을 보강하듯, 다시 말을 풀어 이야기했다.

“전부 제 탓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에요. 그래도, 영향을 끼쳤다고는…….”

온전히 자신을 원망한 건 아니라고 하면 괜찮지 않을까. 이 말을 들으며 제네비브의 마음이 편해졌으면 좋겠다.

물론, 말장난에 불과한 변명이었다. 제네비브가 알아채지 못할 리 없다는 걸 알지만, 에드워드는 이런 얄팍한 수를 써서라도 그녀의 기분이 나아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제 거짓말을 눈치챈 제네비브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움직임 없이 침묵을 지키던 제네비브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에드워드, 하나만 분명하게 할게.”

제네비브는 에드워드가 꼭 알아듣길 바라는 것처럼 정확한 발음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그곳은 너 때문에 만들어진 게 아니야.”

부드럽고 자그마한 손이 그의 손등 위를 덮었다.

몇 년 동안 차곡차곡 쌓은 믿음은 그 한마디에 곧장 사라지지 못했다. 그리 손쉽게 사라질 수 있는 개념이 아니었다.

“…….”

하지만, 그 믿음이 주던 죄책감을 해소하는 데엔 도움이 됐다. 몸을 갑갑하게 짓누르던 응어리가 조금은 사라진 것 같았다.

“밀포드가 테수스 거리를 만들면서 한 번이라도 네 의견을 물어봤어?”

에드워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잖아. 설마하니 그 사람이 네 허락을 구한 것도 아닐 거고.”

제네비브는 화를 억누른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최대한 침착한 어조로 말하려는 듯 보였으나, 에드워드는 그 목소리 끝이 떨고 있다는 걸 기민하게 잡아챘다.

“규제가 들어온 상황에서 범죄로 돈을 벌겠다는 건 그 사람의 선택이야.”

매끈한 이마에는 이따금 세로선이 팼다. 제네비브는 말을 하다가도 답답한 듯 연거푸 마른세수를 했다.

“규제가 들어왔다고 돈을 아예 못 버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업을 못 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런데도 범죄를 저지른 건 너를 탓할 것도 없이, 그 사람의 선택이야. 밀포드 그 사람의 논리대로라면 아본리아, 아니, 이 대륙은 이미 범죄자 소굴이 되었어야 돼.”

제네비브는 계속해서 열변을 토해 냈다.

그녀는 비소를 지으며 밀포드 씨를 두고 ‘웃긴 사람’이라고 말하며 빈정거리다가, 이내 분해진 듯 식탁을 손바닥을 쾅 내리찍기까지 했다. 그 탓에 식탁 위 책들은 원래 위치에서 살짝 벗어났다.

“네 허락을 구했으면 모를까. 아니, 솔직히 그것도 말이 안 되지. 그 어린애가 뭘 안다고……. 만약에 밀포드가 네 허락을 구했으면, 너는 그걸 받아들였을 거야?”

그 당시 밀포드 씨의 보살핌—제네비브는 그게 학대라고 말했다—밑에서라면 어떤 답을 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에드워드는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답을 말했다.

“아뇨.”

“그래, 허락 안 했을 거잖아.”

제네비브가 믿음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본인의 선택을 너로 합리화한다는 게 말이 안 돼……. 대체 왜 저러는 거지.”

제네비브는 진절머리 난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모습이 마치 밀포드 씨에 대해 더 알아보려고 하는 것처럼 보여, 에드워드는 다급하게 그녀를 저지했다.

“밀포드 씨는 위험해요.”

“…….”

“그러니, 더 알아보려고 하지 마세요.”

“……티 났구나.”

제네비브가 어색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네, 아주 많이 났어요.”

에드워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제네비브는 그만두겠다는 말도, 알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녹색 눈에선 약간의 걱정과 탐구심이 읽혔다.

그녀가 밀포드 씨에게 관심을 끄게 만들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그가 정말 위험한 존재라는 걸 확실하게 알려야 한다.

‘……하지만, 말해도 되는 건가?’

에드워드는 고민했다.

과연 이 이야기를 제네비브에게 해도 괜찮은 건가. 제네비브와 내가 이런 얘기를 나눠도 괜찮을 정도로 긴밀한 관계였던가.

불안감이 몸을 지배했다.

만약 제네비브가 저를 다시 한번 피하게 된다면, 그건 아마도 지금 하려는 말 때문일 테다. 이번이야말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강을 건너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곧 제 고민이 사치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 이야기하지 않아서 혹여 그녀가 위험해진다면……. 죽는 날까지 후회하는 것보다 이게 나았다.

“저 때문에 사람이 죽었어요.”

에드워드는 간신히 입술을 뗐다.

아니나 다를까, 갑작스러운 고백을 들은 제네비브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에드워드는 곧바로 반응하지 못하는 제네비브의 시선을 피했다.

“유모를 렐타인으로 바꿨다고 했죠.”

“……그랬었지.”

제네비브는 느리게 대답했다.

“제가…… 렐타어를 알아듣기 시작하면서 그분에게…… 밀포드 씨에 대해 안 좋게 말했어요. 불평을 한 거죠. 아마도 많이 힘들다고 했을 거예요.”

말은 그나마 논리정연하던 아까와 달리, 뒤죽박죽 이어졌다.

“무슨 얘기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요. 그런데 몰랐는데, 밀포드 씨가 그 자리에 있었어요. 밀포드 씨가 있다는 걸 알았으면 그런 말은 안 했을 거예요. 제가 어떻게 감히, 밀포드 씨 앞에서…….”

그날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당시 응접실의 딱딱하던 공기와 밀포드 씨가 지었던 표정. 밀포드 씨를 보자마자 무릎을 꿇으며 렐타어로 사죄를 하던 발렌티나.

“아무튼…… 보통은 제가 혼났는데, 그때는 발렌티나가 혼났어요. 제 말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그날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지만, 에드워드는 정작 자신이 뭐라고 말했는지는 기억이 안 났다. 제가 한 말을 떠올리려고 할 때마다 머리가 뿌옇게 변한다.

하지만 가장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 다시는 밀포드 씨의 험담을 하지 말자는 다짐이었다.

그날을 회상하니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손끝은 차가웠다. 숨소리가 조금씩 가빠졌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간다.

어렵게 묻었던 과거의 일을 떠올린 대가는 컸다. 어둠에 잠식된다면 이런 기분일까. 머리가 울리고, 눈앞에 있어야 할 제네비브가 흐려진다. 시야가 어두워졌다.

그때, 누군가가 제 손등을 천천히 쓸어 주는 감각과 제 이름을 걱정스럽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툭. 누군가 저를 감싸 안았다. 어깨에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겨우 현실감을 되찾은 에드워드는 고개를 내렸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제네비브가 어느새 제 옆으로 와 있었다.

“에드워드, 힘들면 말 안 해도 괜찮아.”

네가 힘들면 말 안 해도 돼.

제네비브는 그를 세게 끌어안으며 달래듯 중얼거렸다.

“…….”

위아래로 오르다 내리던 어깨는 점차 평온해졌다. 가빠졌던 호흡도 점차 느려졌다.

에드워드는 서서히 돌아오는 제 숨소리를 들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저녁에, 저택 뒤편에 큰 연못이 있었는데…… 밀포드 씨가 그곳에 발렌티나를 빠트렸어요.”

제네비브는 대답 없이 에드워드를 안아 주기만 했다.

“저는 하지 말라고 부탁했지만…… 밀포드 씨는…….”

에드워드는 말을 채 끝맺지 못했다. 그는 결국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떻게든 헤엄쳐 수면으로 올라오려던 발렌티나가 생각난다. 조용한 저택 후원에서 비명을 지르던 발렌티나. 렐타어로 사과를 외치던 렐타인 유모는 곧 작은 거품만을 내고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밀포드 씨는 그런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저는 제네비브가…….”

나 때문에 죽는다면.

에드워드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할 거다.

“……제네비브도, 저 때문에 죽는다면.”

상상만 해도 싫었다. 목소리가 먹먹해지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러니 제발, 위험한 건 이제 그만해 주세요. 아니면, 그냥 저한테 물어봐 줘요.”

질문이 뭐든, 제가 알려 드릴게요. 제가 답할게요. 에드워드는 애원하듯 말했다.

그녀가 밀포드 씨에 대해 알아보았다는 말을 듣고 에드워드가 느낀 여러 감정은 결국 부가적인 것이었다. 그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부터 파생된 감정이었다.

“……알았어.”

제네비브는 다른 말을 덧붙이는 대신, 그에게 오로지 알았다는 답만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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