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136화
에드워드의 과거를 들은 제네비브의 두 눈은 충격과 혐오감으로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그런 끔찍한 짓을…….’
왜 하필 에드워드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던 걸까.
제네비브는 괜찮다고, 네 탓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보아하니 에드워드는 제 말을 들은 것 같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들을 상황이 아니었다. 에드워드는 그저 제네비브를 끌어안은 채, 계속해서 불안감을 토해 냈다.
그가 비교적 덤덤하게 말했던 초반 내용에 의하면 밀포드는 누군가를 보살펴선 안 되는 사람이었다.
십여 년간 있었던 일을 고작 30분 만에 전부 이야기해 줬을 리 만무했지만, 그 정보만으로도 제네비브는 밀포드가 어떤 사람인지 손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이런 에드워드의 과거사를 비추지 않은 소설이 현명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냉정하다고 해야 할지.
제네비브가 밀포드에 대해 그만 알아보겠다고 약속하고 나서야 에드워드는 안정을 되찾아 갔다. 호흡이 고르게 변했다. 에드워드가 진정했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제네비브는 그에게서 떨어졌다.
눈가 부근에 닿았던 소매가 촉촉하게 젖었다. 에드워드는 자신이 울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제네비브는 그걸 상기해 주는 대신, 그의 뺨을 쓸어 줬다.
곧, 근처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식사를 끝낸 학생들이었다.
‘시간이 벌써…….’
하지만 에드워드를 교실로 데려가려는 생각은 곧장 사라졌다. 조금 전 상황을 미루어 보아, 지금 에드워드는 쉬어야 했다.
“힘들면 병동 가서 누워 있을래?”
제네비브가 물었다. 그래도 저보다는 의료 지식이 있는 사람 주변에 있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에드워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드워드 역시 제 상태를 인지했는지, 그는 딱히 교실로 갈 채비를 하지 않았다.
‘여기에 혼자 두고 갈 수도 없고…….’
짧게 고민한 제네비브는 수업을 빠지기로 했다. 다행히 1교시는 지리학이었다. 하루 정도 빠지는 거야 괜찮겠지.
제네비브는 그리 생각하며 에드워드의 옆자리에 앉았다. 샐리 교수나 이후, 오후 수업 교수들도 너그러운 편이라 잘 말한다면 괜찮을 거다. 에드워드와 수업이 겹치는 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 몰랐다.
“……수업, 안 들어요?”
에드워드는 제 옆에 앉은 제네비브를 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
“너를 두고 내가 어떻게 가.”
“……그래도.”
“괜찮아진 것 같으면 그때 갈게. 근데 지금은 아니야.”
제네비브는 에드워드가 ‘괜찮아졌다’는 거짓말을 하기 전에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따뜻한 것 좀 만들어 줄까? 아까 만져 보니까, 손이 차서.”
사실 만들어 줄 생각으로 물어본 거였다. 제네비브는 에드워드가 대답하기도 전에 스토브로 다가가 물을 끓였다.
에드워드는 궁금한 게 있으면 본인에게 물어보라고 했지만,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어떻게 곧바로 질문을 던질까.
제네비브는 이후에 할 질문들을 생각하며 팔팔 끓는 물을 컵에 채웠다.
에드워드가 차가운 손을 녹이며 커피를 마실 때 즈음, 기숙사는 다시금 텅 비었다.
“…….”
에드워드가 제 이야기를 해 줬으니, 제네비브는 자신도 제 이야기를 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솔직하게는 저 역시 위로를 받고 싶었다.
“실은, 주말에 테수스에서…….”
제네비브는 말을 하며 에드워드를 봤다.
테수스 거리를 언급할 때마다 에드워드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그의 탓이 아니라는 걸 말해 줬는데도 에드워드는 아직도 자책하는 것 같았다.
“……역시, 무슨 일이 있었군요.”
에드워드가 두려움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무슨 일은 없었어. 있긴 했는데, 위험한 건 아니고―.”
제네비브는 우왕좌왕하며 에드워드를 안심시키는 데 여념이 없었다.
“제임스.”
제네비브는 말하다 말고, 잠시 목을 매만졌다.
“제임스를 만났거든.”
“……카터 선배를요?”
환락의 테수스와 성실한 제임스를 쉽게 연결 짓기 어려운지 에드워드가 다시 확인하듯 물었다.
“나도 많이 놀랐어. 거기서 제임스를 볼 줄 몰랐는데…….”
제네비브는 한숨을 내쉬었다.
“제임스가 요즘 나를 무시하고 있어.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네. 대화해 보려고 하고, 편지도 몇 번 보내 봤지만, 전혀 상대를 안 해 줘. 나와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아.”
“피한다고요? 카터 선배가 그런 것 같지 않았는데…… 카터 공작저에서는, 그래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나요.”
카터 공작령에서 좋은 기억이 없던 두 사람의 표정은 조금 안 좋아졌다.
“으응, 그랬었지. 근데 그 이후부터는 조금…… 나를 피하는 것 같아.”
제네비브는 말을 이어갈수록 이런 식으로 죄책감을 덜어 내려는 게 잘못된 일이라 생각했다.
에드워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제네비브는 제 죄책감을 함부로 덜어 내선 안 된다는 거였다. 에드워드는 누가 보더라도 잘못한 게 없지만, 제네비브는 아니니까.
제네비브가 생각에 잠겨 침묵을 지키던 찰나, 에드워드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제네비브.”
에드워드가 부드럽게 말했다.
“괜찮아요?”
제네비브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냥……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 모르겠어. 졸업하고 연락이 끊길 수 있지. 하지만 연락이 끊긴 거랑 연이 끊긴 건 많이 다르잖아. 걔가 나를 피한다는 걸 알고 나니까, 내 일부분이 사라진 것 같아.”
자신이 구실을 내어준 것일지도 모르는데 슬퍼한다는 게 모순적이었다. 하지만, 그 자책을 말해 줄 수 없던 제네비브는 이마를 짚었다.
그녀가 자책의 소용돌이에 빠지려는 걸 제지한 건 에드워드였다. 에드워드는 어색하게 제네비브의 어깨에 위로의 손을 얹었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손길이었다.
“저는…… 친구를 가져 본 적 없어서 좋은 위로나 조언은 못 해 줄 거예요.”
그의 말을 들으며 제네비브는 작게 웃었다.
“그렇지만 통제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제네비브가 자책할 필요는 없어요. 당장은 알 수 없는 일이더라도…… 그래도 시간이 들으면 나아지겠죠. 지금 제임스 선배에게도 힘든 시기니까.”
“…….”
“가끔은 먼저 다가가는 것보다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그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도 방법이라면 방법이죠. 두 분 다 좋은 사람이니까, 잘 풀릴 거예요.”
“할 수 있는 일이라니?”
제네비브의 질문에 에드워드는 골똘히 고민하는 듯 ‘음…….’ 소리를 냈다.
“제임스 선배가 말을 걸 때, 아니면 전과 같은 분위기를 낼 때 어떤 대화를 나눌지 생각해 보는 게 있지 않나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미안해요.”
“아니야,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 조언도 좋았고!”
제네비브는 진심으로 말했다. 제임스와 다시 대화할 순간만 고대했을 뿐, 실상 그와 어떤 말을 나눌지에 대해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래도 대화 나눌 순간은 곧 많이 있을 거예요.”
“예를 들어……?”
“다음 달에 가을 사냥 대회를 하잖아요.”
에드워드가 말했다.
그간 많은 일 때문에 잊고 있었던 대회를 떠올리며 제네비브는 작은 탄성을 질렀다.
아마 제임스는 참가할 거다. 가문이 불안정한 시기이니만큼 기반을 닦아 놓아야 하는데, 사교 시즌이 끝나가는 9월에 대규모 사냥대회만큼 좋은 기회도 없었다.
‘정 어려우면 오웬에게 물어도 되고.’
에드워드와 대화를 나누니, 마음이 어느 정도 편해진 기분이었다. 물론 다 털어놓지 못한 만큼 반쪽짜리 고민 상담에 완벽하지 못한 조언이었지만, 그래도 위로만큼은 온전히 와닿았다.
그 뒤로 제네비브와 에드워드는 월요일 모든 수업을 빼먹었다. 점심 대신 주방 찬장에 남은 크래커를 먹으며 시간을 보낸 둘은, 이어 과제에 대해 짧은 대화를 나눴다.
그사이 에드워드는 많이 나아진 것 같았다. 사실, 에드워드는 점심 때쯤에는 평소처럼 돌아왔다.
하지만, 제네비브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약간의 사심이 담긴 행동이었고, 에드워드 역시 ‘괜찮아졌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수업이 전부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서야 에드워드는 주방을 벗어났다.
제네비브는 에드워드의 뒷모습을 보며 그가 해 준 조언대로 제임스와 어떤 대화를 나눌지 고민했다.
과연, 관계 회복을 위해 이거면 충분할까?
* * *
기숙사 주방을 벗어난 에드워드가 찾아간 사람은 시온 헤이븐이었다.
해결해야 하는 일.
본인이 할 수 있는 일.
에드워드에겐 그게 바로 시온 헤이븐이었다. 에드워드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며 시온에게 할 말을 생각했다.
시온은 여전히 혼자 다녔는데, 에드워드에겐 그편이 오히려 편했다. 텅 빈 복도에는 에드워드와 시온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아, 반갑습니다. 에드워드 전하.”
시온이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대체 무슨 정신으로 제네비브를 그곳에 데려갔는지 궁금하다만.”
복도 전체에 목소리가 울렸다. 고함을 지르지 않았지만, 뚜렷한 문장을 담고 울린 메아리는 고함처럼 들리게 했다.
시온을 찾으며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말하기로 정했지만, 막상 그를 마주하니 말은 생각보다 날카롭게 나왔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당황하거나 미안하지 않았다. 지금 이렇게 침착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저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관용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