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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137화 (137/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137화

언짢은 티가 역력한 어조에도 불구하고 시온은 상당히 뻔뻔하게 나왔다. 에드워드가 언제 적 일을 지목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듯, 그는 고민하는 척을 이어 갔다.

그렇게 몇 초가 흘렀을까. 시온은 이내 “아!” 하는 탄성을 내뱉었다.

“제가 셈을 못 하는 게 아니라면, 달링 양은 성인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 정도는 알아도 될 나이죠.”

시온이 얄미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것도 모르냐’ 같은 속마음이 들려왔다.

“위험한 곳인 건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달링 양이 원하셔서 도왔을 뿐입니다.”

입에 걸고 있던 미소는 곧 사라지고, 싸늘하고 적대적인 눈빛으로 대체되었다.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그의 태도를 보며 에드워드는 문득 자신이 시온에게 잘못한 게 있는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도움을 청할 만한 사람이 저밖에 없었던 것일 수도 있지만……. 뭐, 그 점이 싫으셨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리죠.”

시온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에드워드에게 있어 그 말은 마치 ‘너를 못 믿어서 이 사태가 일어난 거다—’처럼 들렸다.

에드워드는 얼굴을 붉혔다. 시온이 한 말에 반박하려던 차, 상대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전하께선 걱정 마시기를. 무슨 말씀인지는 잘 알아들었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죠.

에드워드는 시온의 말속에서 희미하게 담긴 적의를 감지했다. 에드워드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시온을 보았다.

“헤이븐, 말은 똑바로 해야 할 것 같군.”

에드워드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제네비브가 테수스에 ‘가고 싶게 된’ 계기는 네가 제공한 거야.”

시온은 대꾸하는 대신, 입을 다물었다.

만약 시온이 평범하게 학교에서 알려 줬다면 제네비브는 마약상을 만나거나 그런 곳에 갈 이유가 없었다. 제게 와서 물어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테수스에 무사히 다녀온 건 축하해 줄 만한 일이지만, 그곳이 위험하다는 건 알아줬으면 좋겠어. 듣자 하니 마약상이 알려 준 곳이라고 하는데. 일이 꼬였다면 두 사람 모두 위험에 휘말렸을 거라는 생각, 못 해 봤나?”

에드워드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너를 위해서라도 방금 한 말은 지키는 게 좋을 거야.”

그 경고를 끝으로 에드워드는 시온을 지나쳤다.

인적이 없어 정적만이 가득한 복도에 에드워드의 발소리만이 메아리쳤다. 물먹은 솜처럼 온몸이 축 늘어졌다.

에드워드는 복도를 거닐며 시온과 나눈 대화를 다시금 새겨 봤다. 시온 헤이븐은 어려운 대화 상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대화를 나누기 좋은 상대도 아니었다.

에드워드는 문득 제네비브가 보고 싶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봤던 사람이었지만, 시온의 어조와 표정이 심어 준 의심이 커지지 않으려면 제네비브를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녀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제네비브는 기숙사 휴게실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창가 부근의 테이블에 앉았다. 빠진 수업 과정을 따라가는 중인지, 각 수업에서 받은 과제와 필기를 수월하게 베끼는 중이었다.

에드워드는 살며시 제네비브 곁으로 다가갔다. 비교적 편한 사복으로 갈아입은 제네비브는 어느 남학생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어떤 구실로 말을 걸 수 있을까. 짧은 고민을 마친 에드워드는 입을 열었다.

“클레이브, 나도 봐도 될까.”

“아…… 물론, 물론이지!”

말라깽이 남학생이 화들짝 놀라곤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말했다.

“다 쓰고 가져다줄게. 네 방은…….”

“329호! 편하게 쓰고 줘. 그리고 뭐 더 필요한 거 있으면…….”

“교재면 될 것 같네.”

에드워드는 고맙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 아니…… 뭘.”

크흠! 클레이브는 아무렇지 않은 체하며 대답했다.

“제네비브와 같이 볼게. 그래도 되지?”

“그럼! 제네비브 선, 아니, 제네비브. 에드워드와 같이 봐.”

제 앞이어서 그런 걸까, 클레이브는 입에 한창 달고 살았던 ‘선배’라는 호칭을 생략하고 제법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잠자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제네비브는 클레이브의 말을 들었을 때, 작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여기에 앉아.”

이어 미소를 머금은 제네비브가 제 옆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제네비브가 가리킨 자리에 앉기 무섭게, 에드워드는 지금 자신이 그녀와 얼마나 가까운지 알아채지 않을 수가 없었다.

“종이랑 펜, 빌려줄까?”

교재를 빌린 사람치고는 준비물이 없다는 걸 알아챈 제네비브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

에드워드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순 제네비브가 몸을 가까이했던 탓에 에드워드의 심장은 크게 울리고 있었다.

제네비브가 건넨 펜과 종이를 받은 에드워드는 천천히 클레이브의 문학 과제를 받아 적었다. 클레이브는 그런 두 사람 사이를 알짱거리다가, 교수의 부름을 받고서야 드디어 사라졌다.

이후, 두 사람 사이에는 대화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다.

느슨하게 땋은 머리를 한 제네비브는 턱을 괴며 클레이브의 교재를 베끼기 바빴고, 에드워드는 힐끔거리며 그녀를 쳐다보다가 다시 정신 차리기를 반복했다.

이렇듯 아무 말이 오가지 않았지만, 에드워드는 이 순간이 주는 고요함이 좋았다.

제네비브가 자신을 못 믿어서 제게 못 물어본 게 아니라, 저를 배려해서 물어보지 않은 거다. 누가 보더라도 밀포드와 제 관계는 이상했으니. 이제야 머리가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제네비브가 누구보다 자신을 생각해 주었다는 걸 알지만, 그걸 새삼 깨달았기 때문일까.

에드워드는 바쁘게 글씨를 써 내려가는 제네비브의 손을 붙잡고, 그녀를 껴안고 싶다는 생각을 간신히 억눌렀다.

이런 곳에서 그런 짓을 할 수 없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녀를 곤란하게 해서는 안 됐다. 무엇보다 두 사람의 관계는 아직 그렇게까지 발전하지 않았으니까.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마음을 드러내야 한다. 제 마음을 밝히고, 제네비브의 마음을 얻어 내려면 앞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 많다는 걸 알았지만…… 지금 에드워드는 제네비브의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고 싶었다.

침묵이 주는 편안함을 느끼며, 에드워드는 그렇게 제네비브와 함께하는 몇 분을 즐겼다.

“어디 다녀온 거야?”

긴 침묵을 깨트린 건 제네비브였다.

“잠깐 볼 사람이 있어서요.”

에드워드는 말을 얼버무렸다.

“교수님을 뵈려고 했는데, 사무실이 닫혀 있어서.”

시온 헤이븐에게 경고를 했다— 와 같은 말을 하면 제네비브에게 너무 부담을 주는 일 같았다.

“난감하네. 출석 관련해서는 내일 가서 얘기해야겠다.”

에드워드는 대화 주제를 자연스럽게 과제와 책으로 돌렸다. 제네비브와 대화를 나누며, 에드워드는 제 피곤함이 눈 녹듯 사라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에드워드는 제네비브와 대화를 나누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런 시간이 자주 오기를, 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계속해서 위험에 노출되면.’

이런 순간도 그저 신기루에 불과해질 거다.

에드워드는 시온 헤이븐을 감시하기로 마음먹었다. 시온에게 약속 아닌 약속을 받아 냈지만, 솔직히 말해 에드워드는 아직도 그가 의심스럽다.

‘두 사람이 같이 있는 곳이…….’

에드워드는 흘러내린 제네비브의 잔머리를 조심스레 정리해 주며 생각했다.

* * *

“…….”

제네비브는 점심 식사 테이블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래서……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일까?

에드워드, 시온, 그리고 아쉐트가 자신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녀로선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척 보기에도 벌써부터 관계가 악화된 남자 주인공 두 명과 딱히 남자 주인공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여자 주인공, 그리고 원작에 이름 한 줄 나온 적 없는 제네비브 본인.

제네비브는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를 회상했다.

먼저, 제네비브가 점심을 담고 자리에 앉았다. 그다음에 아쉐트가 쭈뼛거리며 다가와서 클럽 활동이 어려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말은 안 했지만, 아무래도 새로운 부원을 모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았다).

“바쁜 일도 얼추 끝나 가서 나도 홍보를 도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제네비브가 저 역시 부원을 찾아보겠다고 이야기하던 차, 에드워드가 다가와 클럽에 가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이어 언제부터 당연한 일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당연한 수순으로 시온이 다가와 그 옆에 앉았다.

“…….”

덕분에 이런 광경이 완성되었다.

먼저 입을 연 건 아쉐트였다.

“전하 덕분에.”

“그렇게 안 불러도 됩니다.”

“아, 네……! 그럼 블렛 선배 덕분에 이렇게 부원 모집이 끝났어요!”

아쉐트의 말을 들은 에드워드는 정말 아주 조금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실은, 에드워드도 클럽 활동을 안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던 걸까?

제네비브는 새로운 감상으로 테이블에 자리한 인원을 바라보았다.

‘분명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이런 상황은 절대로 피하자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말이지.’

제네비브는 옛날에 느꼈던 다짐을 다시금 추억하며 방과 후에 담당 교수를 찾겠다는 아쉐트의 말을 들었다.

어쨌든,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아쉐트를 향한 괴롭힘도 잦아들 거라는 생각과 함께 제네비브는 옅은 한숨을 쉬었다.

“네가 가십지에 관심이 있는 줄 몰랐어.”

제네비브는 에드워드를 보며 말했다.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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