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139화
아쉐트는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알겠어요.”
그래도 부원의 의견을 무시할 순 없다고 생각했는지, 별다른 반발 없이 동의했다.
“응. 좋은 부원을 찾으면 또 좋은 일이니까.”
제네비브는 한숨을 돌렸다.
면접이 결코 짜고 치는 판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새로운 부원을 뽑아야 한다. 스포츠처럼 한눈에 실력을 알 순 없으니, 지원자는 면접을 통해 아쉐트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했다.
제네비브는 진심으로 좋은 지원자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럼, 일단 면접에 어떤 질문을 할지 정해 보자.”
제네비브는 노트를 펼치며 말했다.
그렇게 원작 속 세 주인공이 제시하는 질문을 받아 적기 시작하며, 제네비브는 현재 이 가십지 클럽이 얼마나 기반이 부족한지 새삼스럽게 실감하게 되었다. 원래부터 존재해야 할 절차도 없다니…….
그렇게 질문을 정한 네 사람은 지원자들을 나누어 언제 면접을 볼지 정했다.
“각자 본인 학년을 도맡으면 되겠군요.”
시온이 말했다. 모두 비슷한 비중으로 가입 신청을 했던 터라, 시온의 의견대로 하는 편이 가장 효율적이었다.
“그럼, 나와 에드워드가 3학년을…….”
“저, 제가 조금 생각해 봤는데요…….”
말 끊어서 죄송해요— 아쉐트는 사과를 하며 마저 말을 이어 갔다.
“……블렛 선배는 면접에 안 나오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요.”
아쉐트가 똑바로 말했다.
이와 비슷한 당돌한 발언을 조금 전에 한번 들어서 그런가, 그녀의 발언은 놀라웠으나 전보다는 빠르게 적응되었다.
그녀는 혹시라도 오해를 살까, 곧바로 제 주장에 근거를 덧붙였다.
“블렛 선배 덕분에 지원자가 많아진 건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면접은 블렛 선배가 없어야 더 정확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제네비브는 아쉐트의 말에 일부 동의했다.
오로지 황태자와의 친분을 위해 지원서를 낸 이들이니, 에드워드가 있으면 그들이 정말 클럽 활동에 관심이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같은 맥락으로, 수고스럽겠지만…… 제네비브 선배가 혼자 3학년을 맡아 줬으면 좋겠어요.”
아쉐트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에드워드는 아쉐트를 설득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도 아쉐트가 틀린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걸 인지한 듯했다.
“으음…… 나는 괜찮은데…….”
제네비브는 말끝을 흐리며 에드워드를 살짝 바라보았다. 에드워드는 정말 괜찮을까? 혹여 소외감을 느끼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런 그녀의 걱정을 읽기라도 한 듯,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쉐트. 네 말대로 할게.”
“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
그렇게 클럽의 공식적인 첫 회의가 끝났다.
아직 할 일이 남은 듯, 아쉐트는 부실에 남았다. 시온은 그 누구보다 빠르게 방 밖으로 나갔고, 에드워드는 문밖에서 아쉐트에게 인사하는 제네비브를 기다렸다.
“무슨 얘기를 나눴어요?”
에드워드가 물었다.
“면접에 대해서 더 얘기했어. 아쉐트는 질문이 조금 많다고 생각하나 봐.”
그의 질문에 대답하며 제네비브는 문득 궁금해졌다. 비로소 여자 주인공과 안면을 트게 되었는데, 에드워드는 아쉐트를 어떻게 생각할까?
“첫 클럽 모임은 어땠어?”
차마 아쉐트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할 수는 없어서 돌리고 우회하다 보니 이런 질문이 탄생했다. 이를 계기로 아쉐트에게 관심이 생기는 건 아닐까. 습관적인 의구심은 쉽게 떨쳐 내지지 못한다.
“제가 하는 일이 너무 없어서……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에드워드가 난감하다는 어조로 대답했다. 아직 아쉐트에게 큰 관심은 없는 것 같았다.
“곧 할 일이 많아질 거야.”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며, 마음 한구석에서는 안도감이 퍼졌다. 아직은 괜찮다. 하지만, 이런 안도감에 계속 취해 있어서도 안 된다.
그날 미리 말을 맞춘 대로 제네비브는 3학년에게, 시온은 2학년에게, 그리고 아쉐트는 1학년에게 면접 일정을 알렸다.
학생들에게 면접 공지를 내는 것도 일이었다.
제네비브는 온종일 칼리지를 돌아다녀야 했다. 3학년 때부터 새로운 클럽 활동을 시작하는 건 드문 일이었지만, 이번에는 그 수가 예외적으로 많았다.
“아…… 네, 고마워요.”
몇몇은 에드워드가 오지 않았다는 것에 대놓고 실망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갈수록 제네비브는 이를 즐기는 방법을 배워 갔다.
* * *
부실은 며칠 전과 비교하면 훨씬 깨끗해졌다.
낡은 카펫은 사라지고, 광을 낸 나무 바닥이 모습을 드러냈다. 표시를 남겨 둔 오래된 가구들까지 빠지자, 부실은 제네비브가 기억하던 것보다 훨씬 넓어졌다.
“여기에 점수를 작성하면 돼요.”
아쉐트가 작은 미소를 머금으며 제네비브와 시온에게 종이를 건넸다. 이날까지 준비했던 건지, 종이에는 각 지원자의 이름과 점수표가 있었다.
“……이걸 다 언제 준비한 거야?”
제네비브는 감탄하며 물었다.
“주장으로서 이 정도는 해야죠.”
아쉐트는 헤헤 웃었다.
“어떻게 쓰라는 거지?”
시온이 종이를 앞뒤로 훑어보며 물었다.
“지원자가 괜찮은 것 같으면 체크 표시를, 별로면 엑스 자 표시를 하면 돼요. 면접을 마친 후에 태울 예정이라, 어떤 내용을 써도 상관없어요.”
제네비브와 시온이 착석하고서야 아쉐트는 부실 밖으로 나가, 지원한 학생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 복도가 사람들로 가득 찬다는 건 생각도 못 했는데. 신기한 일이었다.
에드워드가 없는 건 확실하게 도움이 됐다.
아쉐트의 안내에 따라 부실로 들어온 학생들의 변화하는 표정을 바탕으로 제네비브는 그들의 목적이 에드워드인지, 아니면 정말 ‘클럽 활동에 흥미가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지원자 중 9할 이상은 에드워드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원한 동기는 어떻게 되나요?”
“……그냥, 재미있어 보여서.”
대다수가 흥미가 급락하니 지원 동기조차 제대로 밝히지 못했고, 대부분 불성실한 태도로 임했다.
“우리 클럽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나요?”
“그으…… 에드워드 선배는 탈퇴했나요?”
몇 명은 이런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렇게 비슷한 분위기의 면접으로 무려 세 개의 조가 거쳐 갔다.
제네비브는 점차 열정을 잃어 가는 아쉐트를 불안하게 바라보다가 더 대단한 광경을 보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시온이 더 볼 필요도 없다는 듯 아직 면접을 보지도 못한 면접자들의 이름에 엑스 자 표식을 찍찍 긋고 있는 모습이었다.
“괜찮은 사람이 없잖아요?”
그 시선을 읽었는지, 시온이 뻔뻔하게 말했다.
“너도 내가 아니었으면 탈락이었어.”
제네비브는 떨떠름한 미소를 지어 주며 대꾸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시온의 행동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제네비브는 제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시온처럼 미리 불만족 표시를 하느냐, 아니면 차근차근 천천히 불만족 표시를 하느냐의 차이 같았다.
그렇게 다섯 개의 조가 넘어갈 때 즈음이 되어서야 괜찮은 사람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말 괜찮다는 인상을 준 사람은 아직까지 없었다.
아쉐트는 모두가 마음에 안 들었던 건지 슬쩍 그녀의 종이를 보았을 때, 제네비브는 아쉐트가 모두에게 탈락 표시를 남긴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그녀는 저나 시온과 다르게 지원자의 이름 아래에 성심성의껏 탈락한 이유를 메모했다.
그걸 보니, 제네비브는 자연스럽게 이후에 일어날지 모르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게 되었다.
‘아쉐트의 따돌림을 어떻게 방지해야 할까…….’
제네비브는 펜 끝을 잘근잘근 물었다.
고작 클럽에 가입하지 못했다는 이유 하나로 아쉐트를 괴롭히겠느냐만, 지원자들은 전부 살면서 답으로 거절을 받아 본 적 없는 귀족들이었다.
만약 아쉐트가 같은 귀족이었다면 달랐겠으나, 그녀는 몰락 귀족이었다. 충분히 일어나고도 남는 일이다.
‘잠재울 수 있으면 최대한 그러는 게 낫지…….’
제네비브는 손가락 사이로 펜을 굴리며 생각했다.
“이제 마지막 조예요. 데리고 올게요.”
자리에 일어선 아쉐트가 말했다.
“마지막까지 힘내자!”
제네비브는 격려하듯이 말했다.
하지만 마지막이니만큼 세 사람은 진이 빠졌다. 불성실한, 가끔은 가식적인 답을 반복해서 듣자니 간신히 남은 기력마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조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는데, 제네비브는 신문부 부실을 찾아갈 때마다 종종 보았던 남학생이란 걸 기억해 냈다.
“자기소개를 해 줄 수 있나요?”
아쉐트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저는 2학년의 빌헬름 브리크트입니다. 교내 신문인 <더 칼리지>를 작업한 경험이 있어, 여러분에게 적당한 인쇄소와 괜찮은 팁들을 알려 줄 수 있고…….”
빌헬름은 술술 답을 내뱉었다.
그는 클럽 활동에 정말 관심이 있는 것 같았고, 면접자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열정이 있었다. 제네비브 그를 직접 경험해 본 적 없지만, <더 칼리지>에서 굴러 본 경험이 있으니 클럽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왜 클럽이 당신을 뽑아야 하는지 말해 줄 수 있나요?”
아쉐트는 아까보다 힘이 더 들어간 목소리로 물었다.
“저는 이 클럽에 들어오기 위해 신문 클럽을 탈퇴했기 때문입니다!”
빌헬름의 패기 넘치는 답에 세 사람은 한순간 조용해졌다.
사실, 이 정도면 충분한 합격점이었다. 제네비브는 이 순간, 이보다 사람에게 감사함을 느낄 순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제네비브는 자신감과 함께 아쉐트가 뭐라고 썼는지 확인했다.
“…….”
하지만 아쉐트는 아직 확신이 안 선다는 듯, 물음표 표식을 남겼다.
[제일 괜찮다. 근데 신문 클럽에서 잡지로 잘 적응할까?]
아쉐트는 단정한 글씨체로, 빌헬름에 대한 걱정을 짧게 적었다.
한참이 지나 면접이 끝나고, (그다지 성의를 보이지 못한) 지원한 학생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후, 세 사람은 의견을 바쁘게 나누었다.
성의가 없는 학생은 모두가 비슷하게 느꼈는지, 거의 모든 학생이 빠르게 간추려졌다.
문제가 되는 사람은 빌헬름이었다.
솔직히 제네비브는 그를 합격시키고 싶었다.
‘합당한 결과라는 걸 알려 줄 수 있지.’
빌헬름이 2학년 사이에서 평판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면접을 통해 새로운 부원이 가입한다면 불공평하다는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온은 반대했고, 아쉐트도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가 진짜 따돌림당하겠어……!’
제네비브는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정확한 답을 못 내리고 있을 때, 에드워드가 뒤늦게 부실 안으로 들어왔다.
“면접은 어땠어요?”
“나름 괜찮은 사람이 몇 명 있었어. 나는 브리크트가 좋았는데.”
제네비브는 제발 동의해 달라는 심정으로 빌헬름을 언급했다.
“제일 괜찮은 사람 같기는 했어요……. 근데, 체계가 안 잡힌 이곳에서 잘 적응할지…….”
아쉐트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체계가 잘 잡힌 곳에서 클럽 활동을 하다가 오면 더 도움이 되겠지. 나는 스포츠 클럽에서만 활동해서…… 이런 지적인 클럽 활동에 도움을 많이 줄 수 있을지 잘 모르겠거든.”
제네비브는 절박하지 않은 척 이야기했다.
“저는 별로.”
하지만, 의견 차이가 아직도 있었다. 그건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아쉐트는 아니었고, 그냥 모든 지원자에게 탈락을 준 시온이었다.
“가십과 정보 전달은 그 색채가 ‘아주’ 다른데, 브리크트 군이 편견 없이 적응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모든 사람에게 싫은 표시를 한 사람이 딱히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잠자코 대화를 듣던 에드워드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판단은 면접 때 없던 전하보다는, 직접 본 제가 더 잘할 것 같지 않습니까?”
시온이 대답했다.
“…….”
순간, 에드워드의 표정이 굳어졌다. 대체 뭘 했다고 이렇게까지 사이가 안 좋아진 거지?
‘좀…… 친해지면 안 되려나?’
제네비브는 으르렁거리며 서로를 잡아먹을 듯 구는 에드워드와 시온을 보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