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140화
사고의 전환은 전혀 다른 가정을 불러왔다.
에드워드가 결국 아쉐트의 마음을 얻어 내지 못하고, 시온과 아쉐트가 이어진다면. 그런 불가피한 상황이 온다면.
‘차라리 에드워드와 시온이 친한 게 낫지 않나?’
두 눈이 번쩍 떠지는 기분이었다.
물론, 제네비브는 에드워드와 아쉐트가 이어져 그가 흑화 할 여지를 아예 없애는 쪽을 선호했다.
‘하지만…… 보험 하나를 더 만들어서 손해 볼 건 없지.’
제네비브는 냉정하게 생각했다.
시온과 아쉐트가 이어지는 상황이 온다면, 에드워드가 흑화 하지 않도록 최대한 막는 게 제 임무였다. 그런데 만약 에드워드와 시온이 친구가 된다면…… 그가 흑화를 아예 안 할 수도 있었다.
‘친구와 좋아하는 사람이 같다고 싫어할 애는 아니니까…….’
제네비브는 시온과 티격태격하는 에드워드를 봤다.
원작에서도 아쉐트가 좋아하는 사람이 에드워드가 그토록 싫어하는 ‘시온’이어서 유독 그런 반응이 나온 거였다. 그러니 둘 사이에 어떤 오해가 있든, 정치적으로 어떻게 엮여 있든, 하루빨리 풀게 해서 친구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이제 같은 클럽이니까, 좋든 말든 접점은 생기겠지.’
그리고 제가 중간에서 열심히 바람을 불면 된다.
‘게다가 지금 아쉐트는 시온에게 감정이 없는 것 같은데……. 빨리 에드워드와 아쉐트를 밀어주면 되겠다.’
잘만 활용하면 이득만 남는 클럽 활동이었다.
제네비브는 환호하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에드워드와 시온 사이에 낀 아쉐트를 봤다. 중간에 있는 아쉐트의 금빛 눈동자는 안절부절못했다.
제네비브가 열이 붙은 말다툼을 말리려던 차.
쾅!
아쉐트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찍었다. 한순간 조용해진 와중, 시선은 전부 아쉐트를 향했다.
“싸우지들 마세요.”
아쉐트가 손을 문지르며 말했다.
“두 분 모두 어느 정도는 맞아요. 블렛 선배는 면접 때 안 계셨으니 잘 모르실 거고, 헤이븐 선배는…… 솔직히 면접에 집중한 것 같지 않았고요. 그래도 공평성을 위해서 블렛 선배의 의견은 너무 죄송하지만…… 참고만 해 둘게요.”
“그러면 나는 찬성에 한 표고, 시온은…… 어쨌든 반대를 했으니까 반대표에 하나네. 이제 네 선택에 달렸어, 아쉐트.”
제네비브는 아쉐트의 말에 동의하듯 말했다.
어차피 시온은 빌헬름이 가입하든 말든 이제 흥미를 잃은 모습이었다. 마치 에드워드가 동의해서 거절한 것 같았다.
“저는…… 가입에 찬성할게요.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아쉐트가 말했다.
그녀의 대답을 듣자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제네비브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반발은 있겠지만, 어쨌든 정말 괜찮은 부원이 들어왔으니 형평성이 없었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잘된 일이네요.”
서류를 정리하던 에드워드가 넌지시 말했다.
“뭐가?”
“걱정했잖아요. 아무도 안 뽑으면 뮐리아가 곤란해질 테니까.”
에드워드가 부실 반대편에서 서류를 정리하는 아쉐트를 힐끔 보며 말했다.
“티 났어?”
그 시선의 방향을 읽은 제네비브가 물었다.
“네. 뭐, 그쪽은 모르는 것 같지만요.”
“옆에서 도와줘서 고마워.”
제네비브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고작 이런 거로 뭘요. 어쨌든 마음을 돌려놓아서 다행이네요.”
스스로가 연상되었는지, 에드워드는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
그 표정을 본 제네비브는 얼굴을 굳혔다. 아직 따돌림은 시작되지 않았는데, 감정은 벌써 시작되려고 하는 건가?
‘……왜 갑자기 실망하고 그래? 바란 일인데.’
제네비브는 어두워지는 표정을 애써 밝혔다.
“아, 그리고 오늘은 같이 못 돌아갈 것 같아요. 데클렌 총장님과 면담이 있어서…….”
“괘, 괜찮아……! 나도 아쉐트랑 할 얘기가 있어서. 면담 잘하고, 조심히 들어가.”
“바로 앞인데요. 제네비브도 조심히 다녀와요.”
에드워드는 싱그러운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에드워드가 먼저 부실을 나가며, 시온 역시 나갔다. 또 사귀자니 어쩌자니 하는 말을 할 줄 알았지만, 아쉐트가 있어서 그런지 잠잠했다.
‘그편이 낫지.’
저 역시 에드워드와 아쉐트 사이를 가깝게 만들어야 하니까.
제네비브는 아쉐트를 도와 부실을 정리했다. 아쉐트는 안 쓰는 벽난로에 다가가 쪼그려 앉았는데, 의아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맑은 미소와 함께 설명했다.
“지원자를 평가한 종이요. 전부 태우기로 했잖아요.”
“그랬지…….”
“공개되면 정말 곤란해지니까요. 확대 해석할 여지도 있고…….”
아쉐트가 성냥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나도 도울게.”
아쉐트는 시온의 불성실한 평가서와 성냥을 건네줬다. 그녀의 옆에 앉은 제네비브는 종이에 불을 붙였다. 불이 붙은 종이는 스멀스멀 타올랐다.
“남자들 사이를 좋게 만들어야겠어. 빌헬름이 오면 기절하는 게 아닐까 몰라.”
이제 자연스럽게 에드워드를 언급하면 된다. 하지만, 어째 입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근데 아쉐트, 너는 어째서 잡지 클럽을 만들고 싶었던 거야?”
대신, 제네비브는 전혀 상관없는 주제를 꺼냈다.
처음부터 남자 이야기를 하면 이상할 거라는 자기 합리화와 함께, 기숙사 복도에서 재회한 아쉐트를 떠올렸다. 그때 얼마나 열정적으로 클럽에 관해 설명했던가.
예상 밖의 질문이었는지, 아쉐트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역시 여자 주인공이라 그런가…… 예쁘다.’
멍하니 얼굴을 감상하던 제네비브는 이내 고개를 흔들며 아쉐트의 말에 집중했다.
“물어볼 줄은 몰라서, 음……. 이유라…….”
말을 더듬거리던 아쉐트는 곧 말을 정돈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예요.”
“두 가지?”
“……저만의 것을 갖고 싶었어요.”
소박한 답이었다. 짧게 “그렇구나.”라고 동조한 제네비브는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네. 아버, 아니, 뮐리아 자작님은……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아.’
이건 원작에서 언급되었던 설정이었다. 아쉐트의 입에서 그녀의 과거사가 나올 줄 몰랐다.
“그게…… 뮐리아 가문이 처음부터 어려운 건 아니었어요.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거든요. 아버지가…… 한, 십 년 전부터?”
가물가물한 설정을 그녀의 입에서 다시금 확인 받을 줄은 몰랐다.
부모가 어딘가에 빠져서 패가망신한 이야기는 종종 들리는 이야기다. 여자 주인공은 뭐였더라? 사유가 무엇이든, 아쉐트 역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건 달라지지 않았다.
“도박에 빠지셨어요.”
“아, 아쉐트…… 말하기 싫으면 말 안 해도 돼.”
이렇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어도 되는지 모르겠다.
“오, 걱정 마세요! 제네비브 선배는 소문을 퍼트릴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아쉐트는 손까지 저어 가며 괜찮다고 말했다.
저를 믿어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차마 사람을 믿지 말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제네비브는 가만히 아쉐트의 말을 들었다.
“아무튼……. 도박에 빠졌을 때는 그래도 괜찮았어요. 그래도 어머니의 지참금이나 선대 자작님의 자산이 커서. 근데…… 언젠가부터 약에 손을 대셨어요. 도박할 때까지는 제 물건이 있었는데, 마약부터는 그게 아니었죠.”
아쉐트는 별일 아니라는 듯 이야기했다.
“마약…… 이라고.”
최근에 관련 경험을 한 제네비브는 표정을 굳혔다.
“……네. 아! 너무 많은 걸 이야기하는 걸까요? 이런 얘기가 불편했으면 죄송해요.”
아쉐트가 다급하게 사과했다.
“아, 아니야. 얘기해 줘서 고마워.”
제네비브가 대답했다.
“아니에요. 아무튼…… 그래서 제 것을 만들고 싶었어요. 신문 클럽이나 다른 클럽들도 있지만, 그건 이미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클럽이잖아요?”
저는 제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소유하고 싶어요— 아쉐트는 그렇게 덧붙이며 말을 이어 갔다.
“뭐, 얘기한 김에 더 말하자면…… 마약이 사람을 얼마나 미치게 만드는지 알게 되니까 무섭더라고요. 아버지가 저를 다른 사람과 결혼시키려고 했고, 저는 그걸 알았고, 그게 싫어서 여기로 도망쳐 온 거예요.”
아쉐트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분위기가 무거웠다. 뮐리아 자작이 나쁜 사람인 건 알았지만, 이렇게 당사자의 입에서 듣자니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다른 하나는 뭐야?”
제네비브는 분위기를 바꾸고자 물었다.
“그건…… 나중에 알려 드릴까요?”
아쉐트는 농담하듯 해맑게 말했다.
미소를 짓는 그녀의 얼굴에는 그림자 한 점 없어서, 그 누구도 그녀가 그런 일을 당했다는 걸 생각하지도 못할 정도였다.
“…….”
에드워드가 어째서 아쉐트를 좋아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그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때 묻지 않은 모습이 끌렸겠지.
“그래. 네가 알려 주고 싶을 때 이야기해 줘.”
제네비브는 감히 공감하지도 못 하는 일이었다.
“네에. 먼저, 일어나고요. 방금 손 데일 뻔한 거 있죠?”
세 사람의 평가서가 재가 되자, 아쉐트는 옷을 털어 내며 일어났다.
‘만약 이 세상이 소설이 아니었다면…….’
등장인물의 불행 역시 없는 일이 되었을까. 평범한 삶을 살았을까. 아니면, 이렇게 계속 살아갔을까. 제네비브는 무의미한 가정을 이어 갔다.
“그래서, 다른 하나는 뭐야?”
“이 소식지를 크게 키우고 싶어요.”
아쉐트가 말했다.
“학생들에게 좋은 유흥거리를 만들어 주고 싶어요. 아무리 주말마다 수도로 돌아가고, 빌젠가 타운하우스로 돌아가면 뭐 하나요? 이미 사교계 소식에서 한발 멀어졌는데……. 그래서 제가 칼리지에 머무는 3년 동안은 우리 소식지에 익숙해져서— 결국 졸업하고 나서도 찾게 만들고 싶어요.”
처음 듣는 클럽 목표였다.
제네비브는 그녀의 말에 수긍하며, 의구심을 털어놓았다.
“그건 익명일 때나 안전한 게 아니야?”
제네비브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이미 주장이 누구고, 부원이 누구인지 아는 상황이다.
‘게다가 에드워드가 이런 가십지에 엮여 있다는 게 알려지면…….’
무사히 황태자가 되어야 하는데, 과연 이런 추문에 얽히는 게 좋을까? 제네비브는 에드워드가 이 클럽에 가입하는 게 과연 좋은 생각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이제야 왜 아쉐트가 빌헬름을 배제하려고 했는지 이해가 된다.
“오, 이미 익명인 소식지는 많죠. 제가 익명으로 운영한다 하여도 매력적이지 않아요.”
아쉐트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우리 클럽은 그냥…… 익명의 사람들이 적은 이야기를 합쳐서 편찬할 거예요.”
“괜찮네. 출처를 적고, 글을 적당히 정리해서 다시 쓰는 거니까.”
그러면 아쉐트가 지탄 받을 일도 없어진다. 만든 사람이 클럽도 아니고, 제3의 미지의 인물이니, 원망을 들을 이유도 없어진다.
“종합 소식지로 키우는 거죠.”
“그렇게 되면 미리 그런 가십지를 받아야 할 텐데.”
사교계의 가십지는 대부분 익명이라 어려울 게 분명했다.
“네……. 그래서 그 점은 찬찬히 생각해 봐야 해요.”
“그렇게 키워서 뭘 하고 싶은 거야?”
제네비브가 물었다.
“덩치를 키워서 아버지를, 뮐리아 자작님에게 마약을 준 사람을 찾아내 폭로하고 싶어요.”
아쉐트가 대답했다.
모두가 찾아보는 소식지가, 마약을 전파하고 다니는 사람을 찾아낸다.
“개인적인 복수도 아니고, 아버지를 위한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그래도 사람이 마약에 손을 대게 하는 건 너무 질이 나쁘잖아요?”
아쉐트가 처음 보는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