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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맥주병도 비었다.
“더 드실래요?” 에리코가 물었다. “아니면 다른 술로 할까요?”
“흠, 글쎄.” 고스케는 술병이 늘어선 진열장에 시선을 던졌다. “이번에는 부나하벤 위스키를 온 더 록(위스키 등을 얼음과 섞어 마시는 방법—옮긴이)으로 마셔볼까?”
에리코는 고개를 끄덕이고 온 더 록 잔을 꺼냈다.
바 안에는 <아이 필 파인I Feel Fine>이 흐르고 있었다. 고스케는 무심코 손끝으로 카운터를 두드리며 리듬을 맞추다가 얼른 손을 거둬들였다.
그나저나, 하고 가게 안을 둘러보며 다시금 생각했다. 이런 작은 도시에 이만큼 훌륭한 바가 있다는 건 뜻밖이다. 비틀스 팬이라면 고스케 주위에도 꽤 있었지만 자신보다 더 열렬한 마니아는 적어도 이 도시에는 없을 거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마담이 아이스피크로 얼음을 깨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고스케는 조각도로 나뭇조각을 깎던 시절을 떠올렸다.
아동복지시설에서의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먹는 것도 부족함이 없고 학교도 보내주었다. 특히 처음 일 년 동안은 나이를 속인 탓에 한 학년이 낮아져 학교 공부가 전혀 힘들지 않았다.
이름은 ‘후지카와 히로시’로 계속 밀고 나갔다. 모두들 그를 ‘히로시’라고 불렀다. 깜빡 대답이 늦어지는 실수는 처음 한동안뿐이고 금세 그 이름에도 익숙해졌다.
하지만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아니, 그런 친구를 만들지 않았다는 게 옳을 것이다. 친해지면 진짜 이름을 밝히고 싶어진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어진다. 그걸 피하기 위해서라도 한사코 혼자일 필요가 있었다. 그가 소극적이었기 때문인지 다가오는 친구도 거의 없었다. 어쩐지 으스스한 녀석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딱히 따돌림을 당한 적은 없지만 시설에서도 학교에서도 고스케는 고립되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도 그리 외롭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시설에서 생활하면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그것은 목각이었다. 근처 길가에서 목재를 주워 조각도를 들고 마음 내키는 대로 뭔가를 만들어나갔다. 처음에는 단순한 시간 때우기였다. 하지만 몇 개 만들다 보니 푹 빠져들었다. 동물, 로봇, 인형, 자동차, 무엇이든 조각도로 깎아냈다. 복잡하고 어려운 것일수록 도전하는 보람이 있었다. 설계도도 없이 손끝의 감을 따라 조각하는 게 재미있었다.
완성품은 나이 어린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사람 사귐이 서툰 ‘후지카와 히로시’의 선물에 당황하던 아이들도 조각품을 받아 들면 웃는 얼굴을 보였다. 새 장난감을 받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윽고 아이들 쪽에서 먼저 청해왔다. 다음에는 ‘무민(핀란드의 토베 얀손이 그린 그림책 캐릭터.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옮긴이)’을 만들어줘. 나는 가면 라이더가 좋아. 고스케는 그런 요구에 응해주었다. 아이들이 기뻐하는 얼굴을 보는 게 즐거웠다.
고스케의 목각 인형은 직원들 사이에서도 유명해졌다. 어느 날, 직원실에 불려간 그는 관장에게서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받았다. 목공 기술자가 되어보겠느냐는 것이었다. 관장의 지인 중에 목각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이 후계자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곳에 들어가 제자 수업을 받으면 분명 고등학교에도 보내줄 것이라고 했다.
중학교 졸업이 바짝 다가와 있을 때였다. 고스케를 어떻게 해야 할지, 시설 직원들도 고민스러웠을 터였다.
마침 그즈음에 고스케의 신원에 관한 수속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호적을 새로 만드는 것이다. 가정 재판소에 호적 취득 허가를 신청했는데 그것이 인정되었다. 일반적으로는 나이 어린 유기 아동 등에 내려지는 조치여서 고스케 정도의 나이에 호적 취득이 인정되는 일은 드물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고스케처럼 자신의 신원을 고집스럽게 밝히지 않는 데다 경찰에서조차 밝혀내지 못한 경우는 여태까지 없었기 때문에 그런 신청을 할 필요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고스케는 가정 재판소 직원도 몇 차례나 만났다. 그들 역시 어떻게든 고스케의 출신을 알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고스케는 지금까지와 똑같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모종의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해 자신에 대한 기억이 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 즉 이 아이는 자신에 대해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른들은 그런 시나리오를 만들어냈다. 아마도 그것이 이 귀찮은 안건을 처리하는 데 가장 편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리라.
중학교를 졸업하기 직전에 고스케는 ‘후지카와 히로시’라는 호적을 손에 넣었다. 사이타마 현의 목각 장인의 휘하에 제자로 들어간 것은 그 바로 뒤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