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1장. 부부의 탄생 (8)
사람들은 모두 강렬한 충격을 받았는데, 타티아나는 본인의 직각 어깨를 유지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해 보였다.
몇 번이나 자세를 고쳐 잡더니 나중에는 태연하게 재촉하기까지 했다.
“이게 어렵나?”
“…….”
물리적으로는 쉬웠다.
단지 예법과 신분제에 따른 정서가 거기까지 허락하지 않을 뿐이었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오늘 일정이 있었고, 본인 나름대로는 마음이 급했다.
새벽 운동을 마친 후에는 여느 때처럼 목욕을 해야 했으며, 그다음에는 사흘 전 결혼한 남자와 아침 식사도 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타티아나가 생각할 때 그녀의 남편은…… 식사 시간에 5분 늦는 것도 싫어할 사람 같았다.
타티아나는 남편과 벌써부터 다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무언의 눈빛으로 시녀를 독촉했다.
예법과 신분제에 따른 정서가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나?
그렇다면 윗사람의 명을 따라야 한다는 데에도 마찬가지의 논리가 적용된다.
가엾은 시녀 아이는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하는 눈으로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이름이 뭐야?”
“코니입니다. 비전하.”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름이라 생각하며 타티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코니, 손수건 있지?”
“……예?”
“깔고 앉아. 나 좀 있으면 땀 많이 날 거야.”
“…….”
“그냥 앉으면 더럽잖아.”
그 순간 코니의 표정은 아까보다 더욱더 가엾어지고 말았다.
‘진짜 왜 이러시는 거죠? 비전하도 이러시는 이유가 있으실 거 아녜요.’
아무리 비가 직접 권했기로서니 시녀가 왕족의 몸 위에 앉는 건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손수건까지 깔라고 말한다. 시녀의 옷자락이 더러워질 것을 걱정하며.
따뜻한 배려를 받은 코니는 이 순간 성은이 망극했다.
너무 망극한 나머지 그냥 여기서 콱 죽어 버리고 싶었다.
타티아나가 ‘안 하고 뭐 하지? 슬슬 팔이 아프려고 하는데?’ 생각하며 지루한 표정을 짓자, 코니는 눈을 질끈 감고 타티아나의 등에 걸터앉았다.
그래도 손수건은 깔지 않았다.
최후의 순간까지 버리지 못한 처절한 직업 정신 때문이었다.
“비전하, 정말 죄송합니다. ……흐윽.”
“……울어?”
타티아나는 비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삼켰고, 나머지 시녀들은 어느덧 ‘나만 아니면 돼’ 정신으로 똘똘 뭉쳐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관망하는 중이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곡예단에서 나온 사람인가 싶었는데 비전하는 사실…….
‘차력사셨군?’
계획에 없이 타인의 무게까지 짊어지게 된 타티아나의 얼굴은 진지했다.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그 땀은 카펫 위로 뚜욱, 뚜욱, 짙은 자국을 만들며 떨어졌다.
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힘이 들어 간 팔뚝과 어깨 또한 미세하게 떨린다.
혀를 깨물고 싶다는 심정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코니는 타티아나와 한 몸이 되어 그 떨림을 고스란히 느꼈다.
“소, 송구합니다, 비전하.”
“…….”
타티아나가 제일 싫어하는 게 운동할 때 말 시키는 거였다. 호흡이 흐트러지기 때문이었다.
들숨과 날숨.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다들 알고 있나?
운동 효과를 배가시키기 위해선 호흡이 근육의 완급을 따라가야 했다.
하지만 이 경우엔 타티아나도 원인을 제공했으니 상대의 말에 응해 주는 게 옳다.
“으, 뭐가.”
“제가…… 너무 무거워서요……. 송구합니다.”
타티아나는 눈살을 찌푸렸다가 헛웃음을 흘렸다.
참, 운동하는 사람 힘 빠지는 소리 하고 있었다.
“이건…… 네가 무거운 게 아니야.”
“…….”
“내가 부족한 거야. 알았어?”
“그게 그거…….”
“아니라고.”
어떻게 그게 그거야. 그 둘은 완전히 달라.
하지만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신 타티아나는 그냥 하던 일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고독한 길을 어떻게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겠나?
검술가의 삶은 정진, 오로지 정진뿐이었다.
상황적 핑계 따위는 결과를 바꿔 주지 못한다.
그래서 외로운 거다.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다시 한번 팔을 접었다.
모두의 감탄을 자아낼 만큼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자벨을 위시한 시녀들은 이제 정말로 꽃술을 가져와서 흔들며 응원의 박수를 보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한계라는 것은 언젠가, 누구에게나 오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조만간 이 상황이 정리될 것 또한 예감해야 했다.
그리고 그럴 때 튀어나오는 게 바로 정신력이다.
타티아나는 그들의 예상보다는 훨씬 더 오래 버텼다.
하나만 더, 마지막 하나.
날씨가 좋으니 하나 더. 근데 내일은 안 좋을 수도 있으니까 미리 하나 더.
타티아나는 굳이 이런 부분에 최선을 다하다가 끝내는 카펫 바닥에 철퍼덕 엎어졌다.
“어머, 어머. 어떡해…….”
왕족의 등을 깔고 앉은 걸로도 모자라, 그 왕족에게 상해를 입힌 건가.
혹시 장 파열 같은 건 아니겠지?
코니는 울상이 된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했으나, 아쉽다는 표정을 짓던 타티아나는 툭툭 털고 일어나 코니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 다쳤어?”
“아니, 전, 아니…… 저는…….”
“다음번엔 안전하게 내려 줄게. 약속할게.”
“……예?”
……다음번이요? 그게 뭐예요?
코니는 왜 나 혼자서 독박을 써야 하나 억울해져 동료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이미 나만 아니면 돼 정신으로 무장한 동료들의 동조를 얻어 내기엔 역부족이었다.
타티아나는 혼자 여유롭게 마무리 운동까지 마치고는 수석 시녀에게 다가가 요청했다.
“나 목욕하고 싶은데.”
“예, 비전하. 이미 준비해 두었사옵니다.”
“그래? 난 보통 찬물로 목욕하니까 앞으로 온수는 꼭 없어도 돼. 혹시 필요하면 내가 먼저 말할 테니까 그건 걱정하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이건 하인들에게는 반가운 일이었다.
발터 왕실사에서 왕족들의 목욕물 온도를 못 맞췄다고 목이 잘려 나간 하인이 단 한 명도 없었을까?
그런데 왕자비가 이런 거 저런 거 따지지 않겠다며 나서서 일을 줄여 주니 좋은 거겠지.
그렇지만 이자벨은 이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여도 되는지 아직까지 의문이었다.
아마 이제까지 경험해 온 왕족 유형과는 너무 달라서 그녀도 낯설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뮐러 가 하녀들이 당부한 건 딱 하나뿐이었다.
왕자비가 수련할 때는 어지간하면 건드리지 말라고.
그건 어쩌면 자리를 피해 주라는 뜻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성의 수석 시녀가 이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면, 그 또한 타티아나에게는 소기의 목적 달성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이러한 속내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별거 없었지?’
난 생각보다 아주 평범하고 재미없는 사람이야.
그러니 날 너무 신경 쓰거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고. 큰 기대는 갖지 말라고.
타티아나는 오랜만에 몸을 푸니 상쾌해졌는지 목을 또 한 번 좌우로 꺾었다. 그러고는 시녀들 틈을 헤치고 대욕탕을 향해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타티아나가 식사 장소에 도착한 건 약속 시간보다 5분 정도 이른 시각이었다.
미온수로 말끔히 씻어 낸 그녀의 얼굴은 말갛고 보송보송해서 보는 이들을 미소 짓게 했다.
하지만 그 얼굴을 보고 누구보다 헤벌쭉해야 할 새신랑은 평소처럼 얼음 조각 같은 표정이었다. 심지어 까칠해 보이기까지 했다.
타티아나는 자신보다 먼저 도착해 있는 기드언에게 말을 걸었다.
“아침에는 특별한 일정이 없으신가 봐요.”
“당분간 조찬이나 석찬 약속은 잡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요?”
“신혼이니까요. 아내랑 좀 친해져 보려고요.”
기드언은 어젯밤, 타티아나의 침실에서도 비슷한 말을 했다.
왕족에게는 길일이라는 개념이 있다. 그날의 합방은 의무나 다름없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길일이 아닐 시엔 굳이 같은 침실을 쓰지 않아도 책잡힐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데 기드언은 어제도 타티아나의 침실을 찾아들더니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의아해진 타티아나도 묻지 않아도 될 것을 묻고야 말았다.
‘이럴 거면 왜 오셨죠?’
‘친해지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
그는 그 한마디로 모든 걸 때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 그리고 대체 얼마나 친해지고 싶길래?
영혼의 단짝이라도 되고 싶은 건가.
타티아나는 그런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기드언과 타티아나는 결혼을 했고 법률상 가족이 됐다. 앞으로 공유해야 하는 일도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성격상 모든 부분이 맞지는 않을 테고, 세상에는 사이가 나쁜 부부도 꽤 많다.
피를 나눈 가족의 경우에도 그러하니까.
타티아나는 친부모님을 몹시 사랑하고 존경했지만, 가끔은 그들을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있었다.
부모님 또한 그녀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으리라.
그러나 ‘그건 불가능해요’ 하며 여기서 선을 딱 그어 버리면 신혼에 싸우자는 말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타티아나는 그냥 농담을 건넸다.
“전하는 참 편하시겠어요.”
“뭐가 말입니까.”
“그 친해지잔 말로 모든 상황을 다 돌려 막고 계시는 것 같으세요.”
기드언은 ‘내가 성의 없어 보인단 뜻입니까?’ 하고 물었고, 타티아나는 그건 또 아니라서 고개를 저었다.
그는 오히려 타티아나에게 꽤 많은 성의를 보이고 있었다.
침실에 혼자 두지 않았고, 잠자리의 속도도 배려해 주었으며, 일정을 빼 가면서까지 함께 식사하자고 말한다.
타티아나는 단지 그 의중을 파악하기가 어려웠을 뿐이었다.
데뷔탕트의 그 밤.
당신은 왜 나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고 기다렸다는 듯 말을 걸었는지.
왜 나에게 청혼했으며 마치 잘해 주려는 사람처럼 행동하는지.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텐데.
그러나 타티아나에게 궁금한 점이 있는 건 기드언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는 다리를 꼬고 앉더니 한쪽 얼굴이 뭉개질 정도로 깊게 뺨을 괴었다. 그러고도 한 치의 오점 없이 잘생긴 외모로 타티아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뭐 할 말 있으세요?”
“아뇨.”
“근데 왜 그렇게 사람을 빤히 보시죠?”
“음.”
‘비가 예뻐서요’와 같은 사탕발림은 기드언의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모양이지?
타티아나도 그런 오싹한 농담은 기대 안 했다. 대신 그는 태연스러운 얼굴로 사람의 허를 찌르듯이 말했다.
“좀 궁금해서 말입니다.”
“…….”
“비가 새벽같이 혼자 침대를 쏙 빠져나가서 뭘 했을지요.”
“…….”
“사람 자고 있는데, 몰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