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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13)화 (14/130)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1장. 부부의 탄생 (13)

만약 타티아나가 저렇게 웃고도 또 한 번 선물을 거절했더라면, 사람들은 이제 무기 공방을 쓸어오다 못해 푸줏간까지 뒤져 봐야 했을 것이다.

다행히 그녀는 실컷 웃고 난 뒤에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본인의 예상보다 훨씬 가벼운 무게에 감탄했다.

“……전하, 진짜 좋은 검이에요. 아세요?”

그런데 검을 몇 번 휘둘러 보던 그녀의 얼굴에는 오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직접 써 보니 어렴풋이 느껴졌던 것이다.

무게도, 검신의 길이도…… 이거 왠지 내 맞춤형인 것 같다고.

타티아나는 어느덧 확신에 가까운 의심을 품게 됐다. 하지만 헛다리를 짚은 거라면 다소 창피한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다.

그녀는 꽤 조심스러운 어조로 넌지시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냥 처음부터 저 주려고 준비했다고 말하지 그러셨어요?”

그러게. 내가 왜 그랬을까.

기드언은 딴청을 피우듯 식탁 모서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는 단지 거창한 보물이라도 하사하는 것처럼 구는 게 내키지 않았을 뿐이었다.

아무런 과시 없이, 어떠한 부담도 주지 않고, 나한테 이런 게 있는데 혹시 너한테 필요한 거라면…… 그냥 네가 써 줬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담백하게 넘어가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인정해야 했다.

그렇게 아무런 설명 없이 어물쩍 넘어가기엔, 상대가 다 알아들어 줄 거라 기대하기엔 서로가 공유한 시간이 부족했으며 둘 사이가 그만큼 가깝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뭐, 마음에는 들어요?”

“말했잖아요. 좋은 검이라고.”

과연 이 검을 용도에 부합하게 사용할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타티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휙, 휙 가볍게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지켜보던 기드언은 계속 생각해 왔던 한 가지를 더 언급했다.

“내 연무장, 비가 써도 됩니다.”

“……전하 개인 연무장을요?”

“네, 언제든 맘 편히 사용해요. 어차피 난 바빠서 예전만큼 자주 못 가니까.”

타티아나는 남편이 공사가 다망하다는 얘기를 듣고도 다른 부분에 훨씬 더 집중했다.

그 깨끗한 살기가 꾸준한 수련 없이도 가능한 거였구나, 놀라워서였다.

역시 타고난 건 어디 안 가나 보다.

그녀는 좀 부러워질 뻔했는데, 기드언은 때맞추어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 비의 반가운 마음은 알겠지만, 기사들 있는 곳엔 너무 자주 놀러 가지 마십시오.”

“……그건 또 왜요?”

그야 간단했다. 기드언은 왕실 친위대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의 참모진 대다수는 블룸 경 사후 새롭게 등용된 사람들이었고, 그는 친위대 소속 기사는 아무도 자신의 호위로 두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에서 ‘난 그 새끼들을 못 믿겠어요’ 하고 솔직하게 답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내의 호감을 사기란 어렵지 않을까?

아내의 친부는 친위대 간부였고, 그건 양부 또한 마찬가지인데.

기드언은 진실에 적당하여 기반하여 그럴듯한 핑계를 만들어 냈다.

“비. 사람들은 적어도 두어 달 동안은 전부 당신만 쳐다볼 겁니다. 뭐 트집 잡을 게 없나 궁리하면서, 새로운 왕족을 도마 위에 올리기 위해서요.”

“…….”

“난 기사들이라고 입이 다 무겁다고는 생각 안 해요.”

타티아나는 기드언의 말을 곧바로 알아들었다. 심지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녀가 이제껏 쭉 겪어 온 무수한 경험들 덕분이었다.

사람들은 원래도 그녀의 검에 관심이 많았다.

왕자비가 되었으니 이제 더 심해질 테지?

잘하면 잘해서 말이 나올 것이다.

명색이 왕자비가 왕족으로서의 의무는 제쳐 두고 검만 부여잡고 산다고.

체통에 품위에 온갖 고릿적 예법들까지 머리채 잡혀서 끌려 나올 게 뻔했다.

반면 못하면 못한다고 또 이런 말이 나오겠지.

블룸 경 같은 후대가 나오는 건 불가능하다고.

숱하게 들어온 얘기다.

역시 남아로 태어났어야…… 하는 말을 들었던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속만 상할 뿐이니 타티아나는 여기까지만 생각하기로 했다.

다만 한 가지는 꼭 묻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다.

“혹시 전하께서 제가 어디 내놓기 창피해서 그러시는 건 아니죠?”

타티아나의 반응을 기다리던 기드언은 그 말에 그녀를 한동안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얼굴을 찌푸리고 말았다.

뭐 저딴 말이 다 있나 싶어서였다.

급하게 밀어붙인 결혼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러니 자신에 대한 신뢰가 별로 없을 거라는 점도 이해하지만, 그렇다 한들 같이 있기 창피한 사람한테 청혼을 하는 등신도 있나?

“비, 무슨 그런 말이 다 있죠? 전혀 아녜요. 내 말은 허튼소리를 떠들어서 비를 성가시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을 거란 뜻이었습니다.”

“…….”

“물론 그 입들을 다 찢어 놓을 수는 있는데…….”

“…….”

“솔직히 말하면 시간이 좀 걸립니다.”

많이는 아니고 한두 달? 하고 그가 단서를 달자 타티아나는 크게 웃어 버렸다.

기간이 구체적인 게 웃겨서.

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난감하단 표정을 지었다.

왕자는 지금 웃자고 농담을 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드언은 저걸 계획한 뒤 충분히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걸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어느새 타티아나는 웃음을 멈추고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다.

꽤 오랜 시간, 아주 곰곰이.

그러다 그녀는 슬쩍 속눈썹을 들어 올리더니 기드언을 바라보며 물었다. 좀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전하는요. 혹시 검술 연습하다가 개구리 본 적 있나요?”

“…….”

글쎄. 한두 번쯤이야 있었겠지만, 타티아나가 단순히 그걸 궁금해하는 건 아닐 것이다.

기억에 남을 정도로 특별한 사건은 없어서 기드언은 그냥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타티아나는 무슨 대단한 경험담을 자랑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했다.

“전 많아요. 엄청.”

블룸 가 저택에는 양서류와 파충류가 참 많이도 살았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어머니 때문이 아니었을까?

마력은 음기를 동반하곤 하니까.

마탑 주변에는 비가 자주 내리며, 요즘 마물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발터 북부는 유독 춥다.

“어릴 때 말이에요. 연습하다 진도가 잘 안 나가면 개구리랑 놀았어요. ……사실 전 좀 자주 놀았어요.”

타티아나는 검술이 잘 안 풀리는 날이 참 많았기 때문이다.

그녀를 두고 천재라 일컫는 사람들은 지금도 존재했지만, 그녀는 그럴 때마다 속으로 생각하곤 했다.

스스로를 의심할 때도 많다.

어쩌면 자신은 그냥 부모를 잘 만난 범재 정도가 아닐까? 하고.

타티아나는 본인의 발끝을 내려다보다가 비뚤비뚤 걸음을 옮겼다. 마치 개구리의 이동 경로를 차단하듯이.

어릴 때 경험을 기드언 앞에서 그대로 재연하는 것이다.

“몇 시간을 이러고 놀아도 개구리는 내가 가자는 방향으로는 절대 안 가 주는 거예요.”

“응.”

어떻게 한 번도 안 들어줄 수가 있죠? 야속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중얼거리던 타티아나는 피식 웃으며 코끝을 찡그렸다.

“근데 말이에요. 제가 고작 개구리 때문에 몇 시간이나 그러고 있을 필요가 있었을까요?”

“…….”

“진짜 궁금한 건 또 있어요.”

“…….”

“걔가 제 입맛대로 뛴들 제가 정말로 행복해질까요?”

한낱 개구리도 내 맘대로는 안 뛰던데, 입이 있어서 떠드는 사람들을 타티아나가 막을 순 없었다.

그들이 내 입맛에 맞는 말만 하기를 기대할 수도 없었고,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마음대로 떠들게 내버려 두세요. 전하께 피해가 되는 일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단지 저 때문이라면…… 전 거기에 신경 안 쓸래요.”

남의 말과 생각을 바꾸기란 몹시도 어려운 일이다.

타티아나는 굳이 그런 데에 진을 빼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사회운동가가 아니라, 그냥 흔한 운동중독자일 뿐이니까.

그러니 남들이 떠드는 시간에 난 턱걸이나 몇 개 더 하련다, 다짐하며 그녀는 발끝을 다시 바르게 모았다.

기드언은 타티아나의 말을 듣는 내내 피식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흘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완전한 미소를 입꼬리에 걸었다.

그는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이해했으며, 그건 그에게도 꽤 인상적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걸 어떡하나.

‘내 방식은 너랑 좀 달라.’

기드언은 타티아나의 손목을 쥔 채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런 건 별 게 아니라는 듯 덤덤하게 말한 것과는 달리 그녀는 꽤 복잡한 표정이다.

본인이 내뱉은 말에 스스로도 완전히 수긍하진 못한 사람처럼.

마치 개구리 때문에 마음이 상해서 시무룩해져 본 일이 있는 아이처럼.

기드언은 살갗 위로 불거진 그녀의 손목뼈를 엄지손톱으로 긁어내리다가 동그랗게 어루만졌다.

“비의 뜻은 잘 알았는데 말입니다.”

“…….”

“살다 보면 비에게도 도저히 참기 힘든 상대가 한두 명쯤은 생기지 않겠습니까? 이유 없이 싫은 사람이 생길 수도 있고.”

“……그렇기야 하겠죠.”

타티아나가 긍정하자 기드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언젠가 올지 모를 그날을 위해 그녀의 귓가에 은밀하게 속삭이며 약속했다.

“그때는 나한테 꼭 말하세요. 내가 이유를 불문하고 비를 대신해서 그 인간을 처리해 주겠습니다.”

“…….”

“다는 어려울 수도 있고, 그래도 한 세 명까지는.”

타티아나는 또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저 구체적인 숫자는 또 뭐람? 습관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하나 그녀는 뒤늦게 눈을 흘기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잘못이 저한테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럼 어떡해요.”

“그래서 단서를 달지 않았습니까. 이유를 따지지 않는 건 세 명까지라고.”

“…….”

“잘못이 딴 놈한테 있는 게 명백하면 내가 뭐하러 숫자 제한을 둡니까? 난 그럴 필요가 없어요.”

타티아나는 순간 말을 잃고 눈을 깜빡깜빡거렸다.

그녀는 그의 말에 농담이 단 한 톨도 섞여 있지 않다는 걸 지금에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기드언이 그녀에게 방금 한 건 진짜 약속이었다. 어지간한 문제는 다 네 편이 되어 내 선에서 정리해 주겠다고.

그 와중에 현실성을 고려한다고 혼자 세부 조항까지 검토했나 보다.

세상에. 꼼꼼하셔라.

그런데 명색이 아내라는 사람이, 남편이 아무 목이나 베고 다니도록 부추길 수 있나?

지금 설마 나보고 든든하라고 이러는 거 아니지?

솔직히 좀 든든하긴 했으나 타티아나는 다짐했다.

앞으로 살면서 좀 아니꼬운 일이 있더라도 그 앞에서는 티 내지 말아야겠다고.

그리고 이다음은 그에게 무어라 말해 주어야 할까.

아무튼 마음 써 줘서 고맙다고 얘기해야 하는 건지, 너무 그렇게 열심히 보호해 줄 필요는 없다고 얘기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솔직히 내가 누군가의 보호가 필요할 정도로 약한 사람은 아니잖아.

내가 블룸인 걸 아는 사람들은 보통 그 반대라고 생각할걸?

한참을 고민하던 타티아나는 언제부턴가 자신의 손가락을 쥐고 있던 기드언의 손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 손을 바라보다가 살며시 맞잡으며 이끌었다.

머릿속을 맴돌던 복잡한 말 대신 ‘우리, 이제 밥 먹을래요?’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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