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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22)화 (20/130)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2장. 실전 돌입 전 필수 예제 (8)

기드언은 그런 누이를 본체만체하며 무시했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그럴 수 없는 입장이었다.

타티아나가 ‘저분, 괜찮으신 거예요? 당신 누나 말이야. 지금 너무 심하게 웃는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자 그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놔두세요. 가끔 저럽니다.”

“…….”

“미친 거 아니에요. 그런 가족력은 없으니까 안심해요.”

아아, 그랬구나. 아인슬러 가 사람들은 미친 게 아니라 그저 개성이 강한 것뿐이었구나. 참 다행이네.

그런데 폭언을 쏟아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이를 바라보는 기드언의 시선에는 이렇다 할 악의가 없어 보였다.

그냥 좀 귀찮아하는 기색 정도랄까.

바이칼 왕자를 대하던 태도를 생각하면, 사이가 괜찮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타티아나는 깔깔대며 웃는 스칼렛 공주를 따라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었고, 기드언은 그런 아내를 파티장 중심부로 이끌었다.

연단 아래로 내려온 김에 좀 걷기 위해서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젊은 신혼부부에게 섣불리 다가오는 이들은 없었다.

타티아나의 양부모였던 뮐러 부부만이 긴장한 기색으로 다가와 형식적인 안부를 전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한 명의 예외가 더 있다면, 그건 스칼렛 공주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연회장 한복판에서 신나게 웃던 스칼렛은 언제부턴가 두 사람을 꼬리처럼 따라다녔다.

그녀는 호시탐탐 자신의 올케와 대화할 기회를 노렸으나, 기드언은 만만치 않았다.

남동생의 철옹성 같은 방어력에 이를 갈던 스칼렛은 결국, 그냥 대놓고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너 때문에 올케가 파티를 즐기지 못하잖아!”

기드언은 시끄럽다는 듯 귀를 후비며 물었다.

“그게 왜 나 때문입니까.”

“네가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무서워서 못 오잖아.”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심심하면 저리 가서 매부랑 놀아요.”

“어떻게 이런 날까지 같이 붙어 다니니? 원래 파티에선 남편 흉도 보면서 스트레스 풀고 그러는 거야.”

“……비한테 이상한 물 들일 생각하지 마십시오. 비는 누구 흉보는 걸 즐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기드언이 눈살을 찌푸리는 사이 스칼렛은 타티아나에게 쏘옥 팔짱을 꼈다.

그는 다시금 타티아나를 자기 쪽으로 끌어 오려 했으나, 이내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

타티아나에게는 사실상 오늘이 공식적인 사교계 데뷔인 거나 다름없었다.

지난 데뷔탕트 때 기드언이 청혼 공격으로 큰 혼란을 초래한 탓이었다.

미안한 마음이 손톱만큼이라도 있다면 지금이라도 데리고 다니면서 귀족들을 한 명 한 명 소개해 주어야 할 텐데…….

기드언은 자신이 이런 일에 그다지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방해나 안 되면 다행이지.

그러니 다른 적임자를 찾아야 할 텐데, 거기에 또 스칼렛 공주만 한 사람은 없었다.

몇 년 전, 외국의 유력 가문에 시집을 갔다가 남편과 함께 돌아온 공주는 귀국하기가 무섭게 파티를 종횡무진 휩쓸었다.

세련된 감각과 구김살 없는 태도는 사람들을 매료했고, 그녀가 사교계 여왕이라던 왕후의 자리를 위협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때마다 꽤 쓸 만한 정보와 사교계 비화를 기드언에게 물어다 주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결국 기드언은 고심 끝에 타티아나에게 공주와 동행할 것을 권유하기로 했다.

“누이랑 잘 붙어 다녀요. 좀 짓궂어 보여도, 많이 도와줄 겁니다.”

“……네?”

“적당히 놀고 나면 신호를 줘요. 데리러 올 거니까.”

하지만 타티아나는 고맙기는커녕 봉변을 당한 기분이었다.

‘지금 나를 당신 누나한테 떠넘기고 혼자만 쏙 빠져나가겠다는 거야? 당신한테나 친누이지, 나에겐 아직 어려운 시댁 식구란 말이에요. 둘만 있는 게 아주 편하진 않다고요…….’

이게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인가 싶어 타티아나는 기드언을 샐쭉하게 노려보았다.

그러나 이내 그녀는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혼은 부모로부터 정서적 독립을 이룬 사람들이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 말에 빗대자면 기드언은 본인 가족들로부터 너무 완벽히 독립한 나머지 필요하다면 전쟁도 불사할 것 같은 남자였다.

한데 그런 사람이 누이와 함께 다니라 권유했다면 다 이유가 있겠거니, 혹은 별문제 없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타티아나도 기드언에 대해 그 정도의 신뢰는 갖고 있었다. 게다가…….

“와아, 등 예쁘다. 진짜 멋져…….”

스칼렛 공주는 어느새 타티아나의 맨살을 슬쩍슬쩍 어루만지며 감탄사를 흘리고 있었다.

공주는 이 연회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타티아나 눈에는.

그런 미인에게 인정을 받으니 타티아나도 그만…… 기분이 흡족해지고 말았다.

게다가 이건 남편의 가족이 처음으로 보내는 호의적인 제스처였다.

그 신호를 접수하고 금세 태세를 전환한 타티아나는 스칼렛과 팔짱을 낀 채 파티장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리고 아담한 체구의 공주에게서 나오는 엄청난 에너지에 진심으로 탄복했다.

스칼렛은 이 사람과 인사를 하다가, 또 저 사람과도 인사를 했다.

분명 아까까지는 이국에서 들여온 시트러스 향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정신을 차려 보니 그녀는 처음 보는 사람과 악수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머, 이게 무슨 일이람’ 하며 고개를 몇 번 털고 나니 어느새 눈앞에는 체스판이 놓여 있는 거다.

스칼렛 공주가 체스 말을 들고 있는 신사를 대신하여 ‘체크메이트!’ 외쳤고, 타티아나는 기사도 정신이 느껴지는 승부였다며 박수를 쳤다.

타티아나는 이게 마치 어릴 때 배웠던 춤과 같다고 생각했다.

초 단위로 파트너를 바꾸어 가며 계속되는 춤.

그런데 스칼렛 공주의 능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녀는 기드언과 남매라는 것을 증명하듯 이 정신없는 와중에도 대화 상대를 걸러 내고 엄선했다.

‘저치랑은 말을 섞지 않는 게 좋겠다’ 싶으면 타티아나의 팔짱을 낀 채 그 사람 앞을 빙그르르, 돌아서 지나쳤던 것이다.

그때마다 어찌나 우아하게 팽글팽글 잘 도는지, 타티아나는 스칼렛 공주가 팽이인 줄 알았다?

“올케, 힘들지?”

“아뇨, 저는 잘 안 지쳐요. 오히려 공주 전하가…… 제 생각보다 훨씬 체력이 좋으신 것 같네요.”

“사실 엄청 힘들어. 근데 파티도 전투거든. 안 힘든 척하는 거지, 나 아까부터 발이 너무 아팠어.”

타티아나는 뒤늦게 공주의 높은 구두 굽과 빨개진 복숭아뼈를 확인하고는 안타까워하며 웃음을 흘렸다.

“잠깐 앉을까요?”

“응, 좋지, 좋지.”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한 채 원형 테이블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타티아나는 사람들 시선 때문에 다리 한 번 주무르지 못하는 공주에게 속삭이며 말했다.

“편한 거 신으세요. 예쁜 것도 좋지만 나중에 척추에 안 좋은 영향이 갈 수 있거든요?”

“나 예뻐 보이려고 이러는 거 아니야. 이런 거 안 신어도 난 예뻐.”

“…….”

본인 입으로 자기가 잘났다는 얘기를 하는데 반박할 수가 없었다.

확실히 공주가 기드언과 남매는 남매구나, 생각하며 타티아나는 웃었는데 공주는 뾰로통한 얼굴이었다.

“올케는 키가 커서 내 마음 모를 거야. 파티에서 사람들을 대할 땐 눈높이도 중요하다? 저어기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거랑, 위에서 내려다보는 거랑은 느낌이 달라.”

이렇게 얘기하면 타티아나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공주는 파티도 전투라고 말한 바 있다.

전투는 원래 피지컬 싸움이었으며 그 시작은 언제나 눈싸움이었다.

이때 어느 쪽이 위에서 내려다보느냐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인 게 맞다.

타티아나와 스칼렛은 전혀 다른 분야를 얘기하면서도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꽤 즐거운 시간이었으나, 공주와 왕자비가 이야기꽃을 피우자 사람들은 또 거기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합석을 청한 건 파티 경력이 짱짱한 귀부인들이었다.

그녀들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타티아나에게 물어왔다.

“비전하, 결혼 생활은 좀 어떠신지요? 신혼 재미는 좋으신가요?”

아. 또 시작되었다.

타티아나는 오늘 이 질문을 스무 번도 넘게 받았다.

이 정도면 대답하는 게 앵무새여도 살짝 지겹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원래 모든 결혼한 새댁들의 숙명이었다.

간혹 지겹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나한테 물어볼 게 정말 그거밖에 없어요?’ 반문하면 이 친목 중심의 사회에서 낙오되니 조금 더 인내심이 좋은 앵무새가 되기로 하자.

이럴 땐 그냥 적당히 대답하면 된다. 둥글둥글하게.

“네, 모든 것이 편안하고 좋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남의 얘기가 이렇게 심심하게, 아무런 굴곡 없이 마무리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

귀부인들은 부채를 촤라락, 착, 착 펼치더니 살랑살랑 나비처럼 흔들었다.

우리, 본격적으로 수다를 한번 시작해 보자는 신호였다.

“전 기드언 전하가 그렇게 웃으시는 걸 처음 봤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전 예전에 전하 곁에만 가도 몸이 으슬으슬 떨리곤 했답니다.”

아아. 그건 다른 이유가 아니라 살기라는 것 때문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사람이 영문도 모르고 죽어날 수 있으니 타티아나는 그 부분만큼은 나중에 꼭 기드언에게 주의를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자리에 이렇게 오래 계시는 것도 처음 아닙니까? 연회장에선 늘 인상을 찌푸리고 계셨잖아요. 이렇게 눈썹을 무섭게…….”

아아. 그건 후각이 예민해서였을 것이다.

강한 향들이 코끝을 파고들어 신경을 자극하는 게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왕족들은 왜 보통 성격이 더러운가.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대부분의 상황을 통제할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힘과 권력에 익숙하다.

그런데 더 아이러니하게도 본인 감각만큼은 본인 마음대로 안 되거든.

그러니까 남들에게는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짜증이 나는 거지.

타티아나는 그녀들의 말을 건성건성 흘려들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가끔은 바보처럼 이유 없이 웃기도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타티아나를 둘러싼 부인들에게선 다소 심술궂고도 민망한 질문이 흘러나왔다.

“여인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으시더니, 이런 걸 보면 다 짝이 있다는 말이 맞는 게지요.”

“그래도 여전히 차가운 성정이시란 건 변함없지 않습니까? 비전하는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기드언 전하께선 밤에도…… 얼음장 같은 분이시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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