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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23)화 (21/130)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2장. 실전 돌입 전 필수 예제 (9)

귀족들의 눈동자는 타티아나의 입을 향해 모여들었다.

하지만 지나친 호기심이 섞여 있고, 어쩌면 무례라고도 볼 수 있는 이 질문에 타티아나는 생각했다.

지금이야말로 ‘아니, 남의 사생활을 왜 이렇게까지 궁금해하시는 거예요?’ 묻고, 난 이 친목 중심의 사교계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음을 인정할 때가 아닐까?

이게 혼자만의 속사정이었다면 타티아나는 까짓것 적당히 얘기해 주고 어울렸을 것이다.

그러나 침대에서 일어난 일은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의 이야기였다.

타티아나는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기드언이 배우가 되어 움직이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저기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본인 성생활이 남의 가십으로 소비되어야 하는 기드언은 무슨 죄가 있길래.

그는 얼굴 좀 찌푸린 것 말고는 오늘 아무 짓도 안 했다.

그러나 타티아나는 ‘죄송해요, 그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네요’ 정색하거나, 적당히 얼버무리며 말을 돌릴 수 없었다.

그녀의 남편에게는 지저분한 소문들이 이미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녀가 어정쩡하게 반응하면 사람들은 옳다구나, 하며 그 소문에 살을 붙일 것이다.

이래도 곤란하고, 저래도 곤란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몹시 건강하더라고 말하는 편이 낫겠지?

“얼음장 같은 건 모르겠어요. 제게는 밤에도, 낮에도 따뜻한 분이에요. ……뜨겁고.”

그러하다. 전혀 그래 보이지 않지만 기드언은 사실 남들보다 몸에 열이 많은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밤 기온이 제법 쌀쌀해졌는데도 매번 그렇게 웃통을 벗고 자는 걸 보면.

타티아나는 정말로 순수하게 그 얘기를 한 거다.

혹시 다른 해석을 한 사람이 있다면…… 뭐, 거기까진 책임 안 지겠다.

귀부인들은 ‘호오’ 하며 입술을 동그랗게 모으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했다.

타티아나는 사람들을 살피다 스칼렛 쪽을 바라보았다.

공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자세히 보니 새어 나오는 웃음을 삼키고 있었다.

타티아나는 이 정도면 그럭저럭 넘어간 건가? 하고 안도했다.

하나 대화가 겨우 이 정도로 마무리될 줄 알았다면, 타티아나는 상대를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다.

“조만간 귀여운 아가님을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씩씩한 아드님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머, 부인. 아들만 있으셔서 딸 키우는 재미가 얼마나 좋은지 모르시나 봅니다.”

“호호, 그런가요?”

순식간에 시작된 새로운 전개에 타티아나는 어어억, 하는 소리를 낼 뻔했다.

하지만 기드언 부부가 조만간 귀여운 아가를 낳는다 해도, 사람들은 또 다른 훈수를 둘 것이다.

그다음엔 정해진 수순처럼 ‘그래도 둘은 있어야지요’라는 말이 따라오겠지.

아들을 낳으면 ‘딸도 있어야지요’, 딸을 낳으면 ‘아들도 있어야지요’.

이 틀에 박힌 레퍼토리를 모르는 이는 세상에 없다.

왜 사람들은 사람의 인생에 정해진 사이클을 만들어 놓고 모두를 그 안에 욱여넣으려고 하는 걸까.

타티아나는 모친이 남긴 저서에서 이러한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첫째, 다수가 선택한 삶의 방식과 가족 형태가 인류의 생존과 존속에 유리했을 것이다.

둘째, 내가 그 다수의 방식에 속해 있다는 사실은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이러한 의문이 든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가 똑같은 쳇바퀴를 돌 수는 없을 텐데?

사이클 밖에 있는 자는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을 위협하는 자가 아니다. 그냥 본인에게 맞는 다른 사이클을 찾아 그 안에서 열심히 걷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굳이 박수와 응원까지는 안 보내도 되지만 다 똑같이 늙어 가는 짧은 인생, 본인만 맞다고 타인에게 훈수를 두는 건 좀 우습다는 거다.

그러나 이렇게 거창한 담론으로까지 옮겨 갈 필요는 없고, 타티아나는 그저 좀 귀찮았을 뿐이다.

남들이 이래라저래라 왈가왈부하는 게.

그리고 귀부인들의 대화 주제가 자녀 교육으로 서서히 넘어갈 때쯤, 가만히 앉아 있던 스칼렛 공주는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부인들, 갓 결혼한 내 올케를 난처하게 만들지 마세요. 이러다 태어나지도 않은 내 조카 중매까지 서시겠습니다.”

“어머, 스칼렛 전하. 저흰 그냥 옛 생각이 나서 그렇지요. 한참 재미가 좋을 때 아닙니까.”

“흠, 그래 봐야 부부가 사는 건 어디든 다 비슷한 거 아닌가요. 뻔한 소리 그만하고 우리, 더 재미있는 얘기를 해 봐요. 엘렌 부인, 오늘 그 드레스 말입니다. 어느 디자이너 작품이죠? 내가 늘 생각해 왔는데, 부인께 가장 잘 어울리는 색조는…….”

스칼렛 공주는 갑자기 개인별 맞춤 컬러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많이 걸어 다녀서 지친 줄 알았는데, 갑자기 또 어디서 에너지가 샘솟는 모양이었다.

타티아나가 낙법에 대해 밤을 새워 가며 강론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스칼렛은 의상 하나를 가지고도 3박 4일 동안 얘기하는 게 가능한 사람이었다.

타티아나는 사람 피부색을 계절로 나눌 수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근데 지금 날 도와준 거겠지?’

그녀가 반신반의하며 스칼렛을 힐끔 바라보았을 때였다.

공주는 그녀를 향해 한쪽 눈을 깜빡이며 윙크를 보냈다.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엽고 상큼해서 타티아나는 눈 끝을 접으며 웃고 말았다.

* * *

파티가 한창일 때 연회장에서 빠져나온 기드언과 타티아나는 침실로 향했다.

두 사람이 저녁 일정을 함께 소화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렇게 나란히 귀가한 것도 당연히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타티아나는 복도를 걷는 내내 이상할 정도로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은 그녀가 화장을 지우고 기드언이 몸을 씻고 온 뒤에도 계속됐다.

그를 등진 채로 침대에 누워 타티아나는 대체 어떤 생각에 빠져 있는 걸까?

기드언은 그것까지는 짐작할 수 없었다. 다만 신기한 건, 그녀의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느껴진다는 것이다.

어떻게 아내의 등만 보고도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부부는 원래 이 게 다 되나?

‘파티에서 뭔가 일이 있었던 건가.’

어쩌면 그녀는 기드언이 대신 처리해 주어야 할 그 세 명을 벌써 만난 것인지도 모른다.

한데 그런 일이 있다면, 그냥 바로 일러바치면 그만이었다.

그는 내일이 오기도 전에 지금 바로 처리해 줄 수 있었다.

물론 기드언도 타티아나가 일이 그렇게 흘러가게 놔두지 않을 거라는 건 안다.

혹시 누이가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 걸까? 둘만 두지 말았어야 했나.

그런데 기드언은 스칼렛이 큰 실례를 범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혈육이라고 편을 드는 건 아니었다.

공주는 어딜 다녀올 때마다 타티아나의 근황에 대해서도 간간이 소식을 물어다 주곤 했다.

그걸 몇 번 반복하다 보니 그녀는 타티아나에게 저 혼자 친밀감이 생겨 버린 눈치였다.

상대가 자신에게 호감을 품고 있다는 것쯤은 타티아나도 알아챘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대체 뭐가 문제일까.

역시 유흥 문화가 만악의 근원인가.

비약이라는 걸 알지만 기드언은 파티란 참 쓸모없는 행사라는 본인의 감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내의 사교 모임을 경계하는 남편들이란 어디든 종종 있기 마련이다.

거기만 다녀왔다, 하면 가정에 풍파가 생기니까.

기분이 상한 채로 돌아와 꽁한 티를 내기도 하고, 혼자 우울함에 빠져 집안 분위기를 우중충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불안한 전개는 다른 남편들과 자신의 남편을 비교하며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상황이다.

그런데 기드언은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나랑 비교할 만한 놈이…… 그리 많진 않을 텐데?’

그가 자존감이 대단히 높은 남자라서 이런 발상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는 단지 타티아나의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 뿐이었다.

‘넌 너랑 검을 겨룰 만한 상대한테만 흥미를 갖잖아.’

블룸의 딸은 정말로 아무나 남편감으로 안 본다는 거다.

그리고 기드언이 추측해 봤을 때, 타티아나와 검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남자는 이 세상에 그리 많지 않았다.

왕실 친위대를 통틀어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고심하던 기드언은 결국 혼자서는 답을 내리지 못하고, 타티아나의 머리칼을 건드렸다.

마치 고양이가 꼬리로 사람의 다리를 감싸듯, 그녀의 머리카락을 꼬리 삼아 검지로 뱅글뱅글 감아 올렸다.

시큰둥한 표정을 하고 있던 타티아나는 등 뒤를 힐긋 보며 물었다.

“뭐 하세요, 갑자기.”

“비의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아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

“풀어 주려고 노력도 하고 있습니다.”

오늘따라 말이 번지르르하네? 생각하면서도 타티아나는 순간적으로 풋, 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일종의 신호다.

잔뜩 무게를 잡고 있던 상대가 웃어 버리면 탐색전과 신경전은 거의 끝났다고 보면 된다.

다음 순서는 ‘들어 볼 테니까 일단 얘기해 봐’ 하며 팔뚝을 툭, 쳐 주는 것이다.

“왜 그러는데?”

그러면 이제 여물 대로 여문 열매가 탁, 터져서 씨앗을 쏟아 내듯이 뭔가가 나오기 마련인데…….

“혹시 전하는 말이에요.”

“응.”

“혼후 순결에 대해 확고한 신념 같은 게 있으신가요?”

“……음?”

너무 이상한 게 나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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