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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26)화 (24/130)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2장. 실전 돌입 전 필수 예제 (12)

* * *

새벽하늘은 어스름했다.

슬그머니 일어난 타티아나는 조금 전에야 잠이 든 기드언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약간은…… 얄미워져 버렸다.

‘너무 편해 보이는데? 좋은 꿈 꾸나 봐.’

타티아나는 체력에 자신이 있었다. 정신력도 평균 이상이라고 자부했다.

그러나 세상에 튼튼한 사람이 그녀뿐인 것은 아니다.

기드언도 어지간한 기사들은 다 그 앞에 끌려 나와 반성해야 할 정도의 체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이 함께 밤을 보내다 보니…… 그들은 첫날밤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세상의 끝을 보고야 말았다.

거기에 더해 타티아나는 또 한 가지 문제를 겪고 있었다.

그녀는 꾸준히 운동을 해 온 사람이지만, 근육은 원래 그 쓰임새가 다 다른 것이다.

미용 근육과 노동 근육이 다르고, 인부들의 신체와 기사들의 신체가 또 다르다.

타티아나는 예전에는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몰랐던 근육을 ‘이게 되나?’ 싶은 방향으로 움직여야만 했다.

그것도 몇 시간에 거쳐서.

후유증은 상당했다.

온몸이 찌뿌둥한 것이, 하루 이틀 정도는 근육통 때문에 고생할 조짐이 보였다.

보통 사람들이었다면 침대에 파묻혀서 휴식을 취할 것이나, 타티아나는 이럴 때일수록 몸을 조금씩 움직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뭉친 근육을 풀어 주는 방법 정도는 이미 도가 터 있었다.

결국 타티아나는 개운하다 못해 상쾌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기드언을 뒤로한 채 침대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잠시 탁상 앞에서 고민하더니 모처럼 검을 집어 들었다.

기드언이 선물했던 그 보검이었다.

“비, 비전하…….”

타티아나가 문을 열자 밖에 있던 시녀들은 일제히 얼어붙었다.

새된 비명을 내지르려다 얼른 입을 틀어막는 이도 있었다.

아침부터 너무 강렬한 걸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기드언이 자기 비의 몸에 보란 듯이 자국을 남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약과였다는 듯, 오늘은 그때와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가운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타티아나의 몸은 수두라도 앓고 난 것처럼 붉은 흔적들로 빼곡했다.

사실은 좀 다친 사람 같았다.

아무래도 지난밤, 저 방에서 큰일이 있었던 게 분명한데…….

왕자비는 오늘따라 풍기는 분위기마저 심상치 않다.

축 늘어진 보랏빛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 손동작에선 나른함이 묻어났고, 미간을 좁힐 땐 시니컬한 피로감이 느껴진다.

한데 한쪽 손에는 너무나 섬뜩한 게 들려 있다.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은 어스름 속에서도 번쩍번쩍하며 매서운 빛을 뿜어냈다.

요요하면서도 음산한 분위기였다.

“기, 기드언 전하는…….”

이자벨은 자중하며 말끝을 삼켰으나 사실은 ‘죽이셨습니까?’라고 물어볼 뻔했다.

전에 없이 퇴폐적인 분위기를 줄줄 흘리고 있는 타티아나가 마치 의뢰를 끝마치고 나온 암살자처럼 보여서였다.

그러나 그저 몸이 좀 찌뿌둥하고 피곤할 뿐이었던 타티아나는 상당히 무성의하게 답했다.

“전하? 자는데.”

“…….”

“왜? 깨워 줘?”

“……아닙니다.”

“그래, 더 주무시게 놔둬. 방금 막 잠드셨거든.”

타티아나는 뒤늦게 어깨를 쭈욱 펴며 기지개를 켰다.

고개도 좌우로 두어 번 꺾어 보았다. 그러자 우둑, 두두두둑 하며 관절에서 험악한 소리가 났다.

타티아나는 인상을 찡그리더니 시녀들에게 부탁했다.

“나, 오늘은 운동한 다음에 뜨거운 물로 씻어야 할 것 같아. 늦게 말해 줘서 미안해.”

“염려 마세요, 준비해 놓겠습니다. 그런데…….”

“응?”

“일단은 몸을 좀 쉬게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아냐. 이럴 때일수록 움직여야 돼. 그래야 몸 상태가 다시 올라와.”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타티아나의 눈빛, 표정에는 아직도 군데군데 관계의 여운이 남아 있었다.

대체 얼마나 요란한 밤을 보냈길래.

운동복으로 갈아입겠다고 가운을 벗으니 안에 있는 속살은 더 가관이었다.

선명하기 그지없는 잇자국이 누구의 것인지는 너무나 분명했다.

그걸 보는 시녀들의 얼굴은 점점 발갛게 달아올랐다.

“……기드언 전하께서 비전하를 많이 좋아하시나 봅니다.”

“그런가.”

“예, 그래도 좀 살살하라고 넌지시 말씀해 보시어요. 이러다 피를 볼까 염려되옵니다.”

타티아나는 그제야 자신의 맨몸을 여기저기 훑어보았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좀 민망한 꼴이기는 했다.

그러나 기드언에게 내 몸이 도화지냐고 앙칼지게 따질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녀 또한 지난밤, 그의 등에다가 손톱으로 오선지를 쫙 그어 버렸기 때문이다.

일부러 그랬던 건 아니고 몸부림치다가 손이 미끄러…… 뭐, 아무튼 진짜로 실수였다.

그런데 기드언은…… 오히려 좋아했다.

더 할퀴어 보라고 강요하다가 나중에는 ‘깨물어 봐, 어?’ 하며 본인의 팔뚝을 그녀의 입가에 갖다 대기까지 했다.

그때 그는 살려고 발버둥 치는 사냥감 앞에서 고무된 짐승 같았다.

처음 경험하는 성애의 희열에 완전히 취해 있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기드언을 바라보는 타티아나의 눈빛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기드언에게…… 또 해 보고 싶다고까지 말했으니까.

‘미친 자여. 이 미친 자여…….’

내가 왜 어제 그런 말을 했을까?

하지만 기드언은 그녀의 말 또한 몹시 마음에 든 눈치였다.

그는 입가에 매달린 선득한 미소를 굳이 숨기려 하지 않고, 그녀의 귓바퀴를 핥으며 속삭였다.

‘우리 아까 내기했죠. 누가 더 잘하나.’

‘…….’

‘또 하고 싶을 정도면 내가 이긴 거잖아.’

‘…….’

‘아니야. 이건 티티가 이긴 걸로 해요. 사실은 내가 너보다 더하고 싶으니까.’

지난밤의 기억은 머리를 비집고 점점 그 영역을 넓혀 왔다.

조만간 날이 밝아올 텐데. 오늘의 태양이 뜰 텐데. 그렇다면 어김없이 성실한 하루를 보내야 하는데?

타티아나는 낯부끄러운 기억을 떨쳐 내고자 괜히 헛기침을 하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목을 좌우로 두두둑 꺾었고, 양손을 동그랗게 굴리며 손목 관절을 풀었으며, 이어 허리, 정강이. 그리고 발목…….

평소와 다름없는 순서였다. 그러나 시녀들은 그녀의 동작이 어느 때보다 과격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타티아나는 지금 겨우 스트레칭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머릿속은 아직도 끈적한 말과 낯 뜨거운 장면으로 가득했다.

엉켜 있는 근육을 풀며 깨우고 싶었는데, 깨어나는 건 근육이 아니라 이성이었다.

결국 타티아나는 칼을 들고 기드언의 개인 연무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치 연병장을 구보하는 병사처럼 기합이 단단히 들어간 자세로 흙바닥을 달리기 시작했다.

맑고 시원한 공기가 폐부 깊숙한 곳까지 밀려 들어오자 금세 기분이 좋아진 타티아나는 소회를 밝혔다.

“역시…… 세상에 공복 유산소만큼 상쾌한 건 없어.”

달리기와 걷기는 참 좋은 운동이다.

진입 장벽이 전혀 없고 누구나 쉽게 시도할 수 있는 운동이라서 귀부인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가끔은 파티에서도 언급되곤 한다.

‘나 앞으로는 마차 안 타고, 걸어 다니기로 했어. 매일매일 1만 보 채워서 살 뺄 거야.’

한데 뭔가를 좀 해 보겠다고 결심한 사람한테 굳이 이렇게 대답하는 이들도 있다. 소파에 누운 자세로 쿠키 하나 들고…….

‘걷는 것만 갖고는 절대 살 안 빠져.’

그들은 언쟁을 펼치다가 마지막에는 꼭 가만히 있던 타티아나를 해결사처럼 바라보고는 했다. 어서 정답을 내놓으라는 듯이.

하지만 그녀도 답은 모른다. 변수가 한두 개여야지.

서로 먹는 것도 다르고 체질도 다르고.

변인 통제가 불가능한 실험군은 실험군으로서 큰 가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는 건 있다.

‘안 하는 것보단 나아. 걸으면 최소한 정신 건강이라도 좋아져.’

타티아나는 본인의 맑고 건강한 정신을 지키기 위해 연무장을 계속 달렸다.

그리고 정확히 서른 바퀴를 채웠을 때, 동쪽 하늘에서는 빠알간 태양이 고개를 내밀었다.

타티아나는 기지개를 다시 한번 쭉 켰다.

보아라! 결혼을 했어도 세상은 그대로가 아닌가!

남자와 하룻밤 자고 일어나도 오늘의 태양은 또 똑같이 뜬다!

이처럼 천지가 개벽하는 변화는 쉽사리 일어나지 않으니, 검술 실력도 항상 제자리일 수밖에 없는 거다.

“…….”

본인이 지금 약간 미쳐 있다는 것을 자각하며 타티아나는 피식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녀는 실로 오랜만에 벌레 따위를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검법을 펼칠 목적으로 검을 잡아 보았다.

서광을 품은 칼날은 아까보다 훨씬 상서롭고 예리해 보인다.

타티아나는 눈을 내리깔고 한참 동안 그 검 끝을 바라보았다.

뛰어난 기사들은 검을 휘두르기 전, 보통 무슨 생각을 할까?

타티아나는 한때 그걸 궁금해한 적이 있다.

그때는 기사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골치 아픈 징크스마저도 ‘어? 멋있는데? 뭔가 있어 보여.’ 생각할 나이라서.

‘아빠, 아빠는 전투에 나가기 전에 무슨 생각 했어? 샘슨 아저씨는 늘 신께 기도를 올렸대.’

‘야, 야. 그럴 시간이 어딨냐, 빨리 뛰쳐나가서 한 놈이라도 더 죽…….’

‘…….’

‘나라와 민족을 생각했단다, 타냐.’

거짓말쟁이.

애들도 그 정도는 다 안다.

타티아나는 킥킥 웃으며 시원하게 검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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